역사속 오늘

북한 노금석 대위 미그15기 몰고 귀순

↑ 노금석 대위

 

6·25전쟁이 휴전하고 2개월이 채 지나지 않은 1953년 9월 21일 오전 9시24분, 김포공항 상공에 사이렌 소리가 요란했다. 소련제 미그15 전투기가 북한에서 휴전선을 넘어왔기 때문이다. 미그기는 곧 공항 활주로에 착륙했다. 미군이 미그기 옆으로 다가가자 조종사는 미그기 문 밖으로 나와 견장을 떼고 김일성 사진이 붙은 신분증을 밖으로 내던졌다. 조종사는 오전 9시 정각, 평양의 순안비행장을 이륙한 뒤 목숨을 걸고 휴전선을 넘어 자유의 땅을 찾은 노금석 대위(21)였다.

그에게 주어진 것은 자유만이 아니었다. 당시로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10만 달러(1800만환)도 주어졌다. 그해 4월 마크 클라크 유엔군 총사령관이 북한의 주력기인 미그15기의 기밀을 빼내기 위해 내걸었던 현상금이었다. 미그15기는 1947년 12월 시험비행 후 스탈린의 극찬을 받아 소련이 대량생산한 전투기였다. 6·25전쟁 때 소련의 한 조종사는 미그15기로 미 전투기를 20여 기나 격추시켰다.  북한의 주요 군사 시설과 남하하는 중공군을 폭격하며 제공권을 장악했던 미군의 B-29 폭격기도 요격, 미군에 큰 피해를 입혔다. 미군은 미그15기의 성능을 분석하기위해 미그15기를 손에 넣으려 했으나 성공하지 못했다. 그래서 미그15기를 몰고 오는 조종사에게 10만 달러를 지급하겠다고 현상금을 내걸었던 것이다. 현상금은 1953년 7월 6·25전쟁 휴전 후에도 유효했다.

귀순 직후 모습

 

노금석은 6·25전쟁 중 주로 중국 기지에 있었기 때문에 현상금이 있다는 사실을 모른 채 자유를 찾아 남하했다고 했으나 당시 신문은 그를 ‘20세기 최대 행운아’라며 그가 10만 달러를 어디에 쓸 것인가를 놓고 쑥덕공론했다. 노금석과 미그15기는 철저한 보안 속에 일본 오키나와의 미 공군 기지로 옮겨졌다. 이런 그에게 하나 반가운 소식이 들려왔다. 5년 전 남한으로 남하했던 그래서 헤어졌던 어머니가 그의 눈 앞에 나타난 것이다. 모자는 10월 12일 꿈같은 상봉을 했다. 노금석은 그해 11월 현상금을 받고 이듬해 5월 어머니와 함께 읿본 오키나와에서 미국으로 건너갔다.

미국에서 그는 칙사 대접을 받았다. 닉슨 부통령과 회견하고 1956년 8월 받은 미 영주권에는 아이젠하워 대통령이 친필로 서명했다. 1970년 1971년 두 차례 한국을 방문하고 귀순 40여년이 지난 후에는 자신의 인생역정을 담은 ‘자유를 찾은 미그15’라는 책을 냈다. 델라웨어 주립대학에서 수학한 후 보잉 제너럴·다이내믹스등 10개 항공회사에서 근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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