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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상인의 일본 산책] 후쿠오카 앞바다 휩쓴 두 번의 바람을 그들은 신국(神國) 사상 보급 위해 ‘가미카제(神風)’라 했다

↑ 몽골이 침략했던 하카타만 바다

 

by 장상인 JSI 파트너스 대표

 

제2차 세계대전 때 일본의 공군들이 미군의 대형 군함들을 향하여 돌진했던 전투 조종사를 가리켜 ‘가미카제(神風) 특공대’라고 한다. 전쟁 막바지에 일본은 미군의 상륙을 저지할 군비가 거의 바닥이 났다. 이때 일본은 가미카제 식 공격밖에 없다고 판단하고, 20세 전후의 지원병을 모집하여 자살 특공대를 구성했다.

“천황을 위하여! 나라를 위하여!” 구호 아래 꽃다운 젊은이들이 500㎏의 폭탄이 실린 전투기에 몸을 실었다. 돌아올 연료는 없었다. 기록에 의하면, 10여 회의 출격에 꽃다운 청년군인 1024명이 전사하고 그중 한국인이 11명이라고 한다. 얼마나 잔인한 일인가.

가미카제 특공대

 

어지러운 세상을 만나 / 덧없이 스러진 꽃들이여! / 그대들은 어이하여 / 세월의 원한을 안고 갔느냐? / 한 줌의 재가되어 사라졌느냐? / 아! 덧없는 인생이여! / 가엾은 꽃들이여!

 

몽골군, 일본군의 야습이 두려워 그날밤 배로 돌아간 것이 실패 원인

1206년 칭기스칸의 손자 쿠빌라이는 중국 대륙에 원(元)나라를 세운 뒤 고려를 굴복시켰다. 그후 일본 열도를 정복하고자 전쟁 길에 나섰다. 일본의 막부 호조 도키무네’(北条 時宗, 1251~1284)가 맞서서 싸우기로 결정했다. 그리고 일본의 비밀무기 가미카제가 등장했다.

쿠빌라이 칸

 

드디어 1274년 10월, 3만의 여·몽 연합군이 900척의 배에 실려 일본으로 향했다. 그들은 쓰시마를 거쳐, 이키 섬을 공격한 다음, 10월 20일 규수의 하카타(博多)만에 상륙했다. 하카타만은 후쿠오카(福岡) 시 입구에 있는 만이다. 일본은 그들에 맞섰지만, 속수무책이었다. 몽고의 기마군단의 강함에 대하여 그 누가 이유를 달수 있으랴.

몽골군은 해가 지자 일본인들의 야습을 두려워하여 배로 돌아갔다. 이것이 그들의 실패였다. 그날 밤 하카타만에 돌풍이 불었다. 물론 가미카제(神風)는 아니었다. 그 무렵에는 언제나 부는 바람이었다. 게다가 배는 고려인에게 강제로 만들게 한 배였으니 얼마나 허술했을까?

다음날 아침 해상에는 대부분의 배가 바다 속으로 가라앉았다. 3만 명의 병사 중 1만 3000여 명이 수장되었다. “복종하라”는 쿠빌라이의 명을 받은 사자가 두 번이나 일본에 건너갔으나, 번번이 목이 잘렸다. 일본은, 이들의 재침략을 대비하여 하카타만 연안에 울타리를 설치했다.

원나라의 일본 침공 해상길

 

원나라는 남송을 멸하고 전열을 재정비하여 다시 일본으로 향했다. 고려에서 4만의 동로군을, 중국 본토에서 10만의 강남군을 동원했다. 동로군은 5월에 출발했지만, 강남군은 6월 말 규수 북부에서 합류했다. 사가(佐賀) 현과 나가사키(長崎) 현의 바다에 떠 있던 배들은 침몰하지 않을 수 없었다. 여름 태풍이 몰려 왔기 때문이다.

원의 내습을 일본에서는 원구(元寇)라고 한다. 두 번의 바람 덕에 침략을 면한 일본은 애국정신의 고양과 신국(神國) 사상의 보급을 위하여 그 바람을 ‘가미카제(神風)’라 칭했다. 그리하여 육탄공격의 가미카제(神風) 비극이 잉태되었다. 비극은 그렇게 시작되었다.

 

내습한 원나라 군대를 ‘원구(元寇)’라며 원구방벽(元寇防壘) 세워 

하카타에 있는 몽골 침략에 대비한 성벽 현장을 방문했다. 역사 현장을 둘러보기 위해서다. 하카타의 날씨가 제법 쌀쌀했다. 좁다란 골목길을 돌아 소나무 숲이 우거진 산길을 따라 한없이 걸었다. 소나무도 인고의 세월을 겪은 듯, 온 몸을 비틀고 서 있었다. 하카타만에서 들려오는 파도소리가 제법 거칠었다. 그 여름의 태풍은 얼마나 거세었을까. 나의 눈으로도 그 날의 상황을 짐작할 수 있었다.

원구방벽(元寇防壘)

 

울타리는 그리 높지 않았다. 2~3m 높이의 돌담이었다. 길이로는 약 20㎞였다고 한다. 지금은 그 울타리가 거의 없어지고, 이곳이 가장 길게 남아있었다. 일부분은 그 시대의 모습으로 복원되어 있었다. 제일관광 회사의 야마우치씨는, “후쿠오카 시 니시진(西新)에도 울타리의 일부가 남아있지만, 이곳이 가장 길고 그리고 옛날의 모습대로 남아 있습니다”면서 “역사에 관심이 있는 사람 외에는 발길도 뜸하다”고 했다.

하카타만 어디에도 배 한 척 떠있지 않았고, 사람들의 발길도 없었다. 파도소리와 함께 소나무 숲에서 “윙윙”거리는 바람소리만 들릴 뿐 사방은 고요했다.

원구방벽(元寇防壘) 지도
인간은 정녕 전쟁을 좋아하는가?

미국의 문화인류학자 마빈 해리스는 ‘문화의 수수께끼’라는 책에서 “무사들이 무역로를 개척하기 위해서라든지, 천연자원, 값싼 노동력, 대량시장 등을 지배·개척하기 위해서 전쟁을 일으켰다는 사실(史實)들이 세세히 기록되어있다” 면서 전쟁의 비극을 우려했다.

“인간은 호전적이며, 본능적으로 공격적 성향이 있기 때문에, 또한 전쟁이 피치 못하게 일어난다면, 저 미사일들은 이런 인간들에게 영원한 작별의 키스를 던질 것”이라고 했다.

 

장상인 JSI 파트너스 대표

 

대우건설과 팬택에서 30여 년 동안 홍보업무를 했다. 2008년 홍보컨설팅회사 JSI 파트너스를 창업했다. 폭넓은 일본 네트워크를 가지고 있으며 현지에서 직접 보고 느낀 것을 엮어 글쓰기를 하고 있다. 저서로 <현해탄 파고(波高) 저편에> <홍보는 위기관리다> <커피, 검은 악마의 유혹>(장편소설)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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