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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훈민정음 해례본>이 뭐길래… 좀처럼 해결책 찾지 못하는 ‘상주본’을 둘러싼 11년 분쟁 총정리

↑ 훈민정음 해례본 ‘간송본’ (출처 간송미술관)

 

by 金知知

 

훈민정음 해례본 중 ‘상주본’을 은닉하고 있는 경북 상주의 고서적상 배익기씨와 “소유권이 국가에 있다”는 법원의 판결에 따라 ‘상주본’을 국가에서 관리하려는 문화재청 간에 좀처럼 해결점을 찾지 못하고 있다. 훈민정음 해례본은 무엇이고 왜 ‘상주본’이 문제가 되고 있는지를 집중적으로 살펴본다.

 

조선왕조실록에 훈민정음 반포와 관련된 기록 두 개 있어

조선왕조실록에는 훈민정음 반포와 관련된 두 개의 기록이 나온다. 세종 25년(1443년) 12월 30일조에 ‘이달에 임금이 친히 언문 28자를 지었는데…이것을 훈민정음이라고 일렀다’는 기록과 세종 28년(1446년) 9월 29일조에 ‘이달에 훈민정음이 이루어졌다’라는 기록이 그것이다.

조선왕조실록 세종 25년 12월 30일조(왼쪽)와 세종 28년 9월 29일조

 

두 기록을 놓고 일제 시대 우리 학자들이 한동안 혼란에 빠졌으나 곧 정리가 되었다. 학자들은 1443년 12월에 한글이 만들어졌으나 문제점이 많아 3년 동안의 수정·보완 작업을 거쳐 1446년 9월에 한글을 반포한 것으로 해석했다. 그래서 1443년 12월보다는 1446년 9월을 한글이 창제된 시기로 보자고 결론을 내렸다. 그러나 실록에 1446년 9월 며칠인지가 명시되어 있지 않아 그해 음력 9월의 마지막 날인 9월 29일을 한글의 반포일로 간주했다.

일제 시대 한글연구단체인 조선어연구회는 훈민정음이 반포되고 8번째 회갑 즉 480주년이 되는 1926년의 음력 9월 29일을 양력으로 환산해 11월 4일 서울 식도원에서 반포 480년을 기념하는 행사를 열었다. 참석자들은 지석영의 제안을 받아들여 음력 9월 29일을 ‘가갸날’로 공식 확정했다.

1926년 11월 4일 서울 식도원에서 열린 ‘가갸날’ 기념식 (동아일보 1926년 11월 6일)

 

이듬해부터는 가갸날과 한글날이라는 명칭을 혼용했으나 모든 생활이 양력으로 이뤄지는 것과 달리 한글날만을 음력으로 지내는 것이 불편하다는 의견이 1931년 제기되어 1446년 9월 29일을 양력(율리우스력)으로 환산한 10월 29일을 훈민정음 반포일로 바꿔 기념했다. 그러다가 1582년에 율리우스력이 그레고리력으로 바뀐 점을 감안해 1934년부터는 음력 9월 29일을 그레고리력으로 환산한 10월 28일을 한글날로 기념했다.

한글날을 11월 4일에서 10월 29일로 변경한다는 동아일보 1931년 10월 27일자 기사

 

현재 기념하는 한글날 날짜(10월 9일)는 해례본에 근거한 것  

한글날 날짜에 다시 변경이 가해진 것은 1940년 8월 경북 안동의 한 고택에서 훈민정음 ‘해례본(解例本)’이 발견된 후였다. 세종대왕과 집현전 학자들이 창제한 훈민정음에는 ‘해례본’과 이를 한글로 풀이한 ‘언해본(諺解本)’이 있다. 언해본은 훈민정음의 요점을 간결하게 밝혀놓은 것으로, 세종 말년부터 세조 때까지 다양한 버전의 판본이 존재한다. 그중 월인석보(1459년) 제1권에 실려 있는 것이 가장 완벽하다. 교과서에 실려 누구에게나 익숙한 “우리나라의 말씀이 중국과 달라서 한자로는 서로 잘 통하지 아니한다”로 시작되는 문장은 바로 월인석보에 실린 언해본의 서문이다.

월인석보 언해본. 컴퓨터 그래픽 기술의 도움을 받아 2008년 원본에 가까운 모습으로 다시 태어났다. (출처 문화재청)

 

훈민정음 해례본은 훈민정음에 대한 해설과 예의(例義)가 적혀 있는 한문본이다. 목판본으로 만들어진 1책 33장 중 세종의 서문·예의가 4장 분량이고 집현전 학자 8명의 훈민정음에 대한 설명, 즉 해례가 29장 분량이다. 그중 정인지가 쓴 서문에 ‘세종 28년 9월 상한(上澣)’이라는 구절이 있다. 이를 근거로 1945년 해방 후부터는 상한, 즉 상순(上旬)의 끝날인 9월 10일을 양력으로 환산한 10월 9일을 한글날로 바꿔 기념하고 있다.

한글날을 10월 9일로 바꾸기 전 “1446년 9월조의 기록은 문자로서의 한글이 완성된 것이 아니라 해례본이 완성되었다는 뜻으로 해석해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되었으나 소수 의견으로 받아들여졌다. 북한은 세종 25년(1443년) 12월에 한글이 만들어진 것으로 해석해 12월을 양력으로 환산한 1월의 중간인 1월 15일을 한글날로 기념하고 있다. 즉 북한은 세종 25년에 한글이 반포되고 세종 28년에 이것을 정리한 해례본이 나온 것으로 해석한 것이다.

 

해례본은 경북 안동에서 발견된 2개 판본이 존재

해례본은 경북 안동에서 발견된 2개의 판본이 존재한다. 1940년 처음 발견된 판본은 전형필이 구입해 지금은 서울 간송미술관에 소장되어 있다고 해서 ‘간송본’으로 불린다. 간송본은 그동안 발견 경로가 경북 안동군 이한걸의 집에서 그의 셋째 아들 이용준이 발견한 것으로 알려져 왔다. 그러다가 실제는 같은 안동 지역 광산 김씨 종택인 긍구당 소장본을 이용준이 훔친 것이라는 주장이 2005년 제기되었다. 당시 긍구당을 지키고 있던 김응수가 자신의 사위인 이용준에게 긍구당의 책을 이용하게 했는데 이용준이 해례본과 김매월당집(김시습 문집)을 빼돌려 전형필에게 팔아넘겼다는 것이다. 간송본은 국내 유일의 해례본답게 1962년 국보 제70호로 지정되고 1997년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으로 등록되었다.

간송미술관이 2015년 훈민정음 해례본을 최대한 원형에 가깝게 복간한 간송본 (출처 간송미술관)

 

그런데 간송본과 동일한 진본(상주본)이 경북 상주에서 발견되었다는 사실이 2008년 7월 알려져 또다시 학계를 흥분시켰다. 고서적상 배익기씨가 “집을 수리하다 발견했다”며 상주본을 지역방송에 공개한 것이다. 상주본은 표기와 소리에 대해 한글이 섞인 주석을 붓글씨로 기재한 내용이 포함되어 주목을 받았다. 한글의 초창기 모습을 볼 수 있어 ‘간송본을 능가한다’는 평가까지 나왔다. 당시 상주본을 직접 살펴본 전문가는 “전체 33장 중 앞 7장과 뒤 1장을 빼고 20여 장이 있었다. 간송본과 같은 판본인데 인쇄 상태가 더 좋았다. 100% 진품으로 확신한다”고 했다.

 

‘상주본’ 소유권 분쟁, 법원의 판결로 정리되었으나 소유자가 계속 버티고 있어  

그런데 그로부터 한 달 뒤 상주시의 한 골동품 가게 주인 조모씨(2012년 사망)가 “해례본은 당초 경북 안동시 광흥사의 나한상의 뱃속에 들어 있던 복장(服藏) 유물로, 1999년 문화재 도굴범이 훔쳐 나에게 팔아넘긴 것인데 배익기씨가 고서적 두 상자를 30만원에 사가면서 가게에 있는 해례본을 몰래 훔쳐갔다”고 주장하면서 소유자 논쟁이 벌어졌다. 이에 대해 상주본을 발견했다고 발표한 배익기씨가 “집에 쌓여 있는 책을 정리할 때 발견한 것”이라고 맞서면서 소유권을 둘러싼 논쟁이 법정으로 비화되었다.

1999년 경북 안동 광흥사에서 모시고 있는 나한상의 복장 유물이 도굴되면서 등 쪽이 뜯겨나간 모습 (출처 광흥사)

 

조씨가 2010년 2월 배익기씨를 상대로 민사소송을 제기하고 2011년 6월 대법원이 ‘배씨가 훔친 것이니 골동품 가게 주인에게 돌려주라’고 판결했는데도 배익기씨는 해례본을 은닉한 채 소재를 밝히지 않고 있다. 검찰과 법원이 수차례 강제집행과 압수 수색을 했지만 찾아내는 데 실패했다.

그러자 검찰이 2011년 9월 배익기씨를 문화재보호법 위반 혐의로 구속 기소했다. 배익기씨는 2012년 2월 1심에서 징역 10년을 선고받았다. 이런 상황에서 조씨는 2012년 5월 상주본의 실물이 없는 상태에서 해례본을 서류상으로 문화재청에 기증했다.

그러나 배익기씨가 2012년 9월 항소심에서 무죄 선고를 받아 1년만에 풀려남으로써 새로운 상황이 전개되었다. 당시 2심 재판부는 “배씨가 해례본을 훔쳤다는 판단의 근거가 된 여러 증인의 진술이 신빙성이 없는 등 검찰 측에서 제출한 증거만으로 이 사건 공소사실을 인정하기에 부족한 만큼 ‘의심스러울 때는 피고인의 이익으로’라는 법리에 따라 무죄를 선고한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재판부는 “이번 판결은 공소사실의 인정 여부와 관련된 것이지 상주본이 피고인의 소유라든가 피고인의 주장이 사실이라고 확정하는 것은 아니다”고 덧붙였다. 항소심 판결을 2014년 5월 대법원이 확정함으로써 배씨는 법적으로는 무죄가 되었다.

배익기씨가 JTBC와 인터뷰하고 있다. (출처 JTBC)

 

법원, 민사소송은 조씨의 손을 들어주고 형사재판에선 배씨에게 무죄판결 내려  

민사소송에선 법원이 조씨의 손을 들어주고 형사재판에선 배익기씨에게 무죄판결을 내린 것은 조씨에게 소유권이 있지만, 배씨가 상주본을 훔친 것은 아니라고 본 것이다. 이런 모순된 결론에 대해 한 변호사는 “미국의 O.J. 심프슨 사건을 생각하면 이해가 쉽다”며 “심프슨은 전처를 살해한 혐의로 받은 형사 재판에서 무죄 판결을 받았으나 전처 유족이 심프슨을 상대로 제기한 민사 소송에서는 승소했다. 민사재판에선 조금이라도 증거가 많은 쪽이 이기지만, 피고인 한 명의 유무죄를 판단하는 형사재판은 99%의 증거도 모자랄 때가 있다”고 설명한다.

배익기씨는 항소심 재판 당시 해례본 공개를 약속했으나 대법원에서 무죄가 확정되자 해례본 행방에 대해 계속 묵비권을 행사하다가 2015년 3월 자신의 집에서 화재가 발생해 상주본의 일부가 불에 그을려 훼손되었다고 발표했다. 그리고 2015년 10월 1,000억 원을 보상해주면 국가에 헌납할 의사가 있다고 했다. 배씨는 문화재청이 2011년 9월 ‘상주본=1조원’이라고 한 감정을 근거로 그 금액의 10%인 1,000억 원을 요구한 것이라고 했다.

배익기씨가 2017년 공개한, 불에 타 훼손된 상주본 (출처 배익기)

 

이에 대해 문화재청 관계자는 “재판 과정에서 검찰이 상주본의 감정가액을 의뢰했고, 문화재위원 등 서지학자 4명이 모여 심의했다”며 “금전적 판단 자체가 부적절한 ‘무가지보(無價之寶·값을 따질 수 없을 만큼 귀중한 보물)’이지만 굳이 따진다면 1조원 이상이라고 판단했다”고 했다. 그러면서 “1조원은 상징적인 의미일 뿐 실제 감정가액은 아니다”라고 해명했다. 그러나 배씨가 1,000원의 근거를 1조원의 10분의 1로 삼았다는 점에서 비판에서 완전히 자유롭지는 못하다.

 

법원, 문화재청의 강제 회수를 막아달라고 제기한 배씨의 청구 기각

문화재청은 배씨를 상대로 한 민사 소송에서 소유자로 인정받은 조씨가 2012년 5월 상주본을 국가에 기증한 사실을 근거로 2016년 12월 법원으로부터 상주본이 국가 소유임을 인정받은 뒤 배씨에게 인도 요청을 했다. 그러자 배씨가 2017년 4월 문화재청의 강제 회수를 막아달라며 국가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했다.

흥미로운 것은 이런 와중에 배익기씨가 2017년 4월 경북 상주·군위·의성·청송 국회의원 재선거에 무소속으로 출마했다가 9만8488표 중 465표를 얻어 낙선했다는 것이다. 배익기씨는 선거에서 관심을 끌기 위해 선거 이틀 전 불에 타 훼손된 상주본 사진 한 장을 공개했다. 그러면서 “2015년 3월 집에서 불이 났을 때 1장은 소실됐고, 나머지 일부도 탔지만 내용은 알아볼 수 있다. 산속 깊이 숨겨 두었다”면서 “국회의원에 당선되면 완전히 공개하겠다”고 했다.

배씨는 당시 국회의원 재선거 후보 등록을 하면서, 자신의 재산을 1조4800만원이라고 신고하려고 했다. 문화재청이 2011년 상주본의 가치를 ‘1조원 이상’이라고 감정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상주시 선관위가 “실물 소유를 확인할 수 없어서 불가하다”며 이의를 제기해 재산 등록은 무산되었다.

배씨가 문화재청의 강제 회수를 막아달라며 국가를 상대로 제기한 소송은 2019년 7월 15일 대법원이 “상주본의 소유권이 국가에 있다”며 배씨의 청구를 기각함으로써 사건은 사실상 일단락되는 듯 했다. 하지만 배씨는 여전히 완강히 버티고 있다. 문화재청 관계자가 배씨를 찾아가 대법원 판결문을 전달하고 반환을 재차 요청했으나 배씨는 “1,000억 원을 주면 돌려주겠다”는 기존 입장을 굽히지 않고 있다.

배익기씨는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상주본이 어디 있는지는 알고 있지만 보관 상태는 나도 장담할 수 없다”며 대법원 판결에 대해서는 “상주본을 영원히 볼 수 없게 될 이상한 판결”이라고 불만을 표시했다.

현재 상주본에서 전체 몇 장이 남아 있는지, 어떤 상태인지는 알 수 없는 상태다. 다만 “이미 간송본이 국보로 지정된 만큼 유일본도 아닌 데다 불에 타 훼손되었고 보존 상태도 장담할 수 없다. 습도·온도에 취약한 지류(紙類) 문화재인 만큼 11년 전보다 가치가 현격히 떨어졌다고 봐야 한다”는 의견이 있기는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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