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속 오늘

스크랜턴 부인 설립한 이화학당 개교

스크랜턴 부인은 미국 세계여성해외선교부가 파견한 선교사다. 조선 땅을 처음 밟은 것은 1885년 5월 3일이다. 그는 조선 여성을 교육하는 것이 시급함을 깨닫고 서울 정동에 학교를 짓기도 전에 학생부터 모집했다. 그러나 교육을 받을 여건이 되는 여성들은 집안 깊숙한 곳에서 나오질 않았다. 가난한 집의 아이나 고아에게 눈을 돌렸으나 돈을 받고 남의 종이나 첩으로 팔아버리는 풍습이 아직 남아있던 탓인지 오히려 딸을 맡기는 부모들이 선심을 쓰듯 생색을 냈다.

1886년 5월 어느날, 가마를 탄 한 여성이 스크랜턴 부인을 찾았다. 고관의 소실로 결혼까지 한, 이름을 알 수 없어 ‘김부인’으로 불린 이 여성은 영어를 배워 왕비의 통역이 되고 싶다는 포부를 밝혔다. 5월 31일, 이 김부인 한 명 만을 상대로 한 역사적인 첫 수업이 시작됐다. 근대적인 여성교육이 첫 발걸음을 떼는 순간이었고 이화여대 첫 입학생이었다. 그러나 김부인은 불행히도 병이 들어 석 달만에 중도하차해야했다.

6월 말, 10살 난 꽃님이가 가난으로 딸을 부양할 수 없었던 엄마를 따라 학교를 찾았고, 곧이어 4살 난 별단이도 이곳에 보내졌다. 그해 여름에 만연된 콜레라로 서대문 근처에 버려진 어린애였다. 한국인 최초로 양의사가 된 김정동(박에스더)이 학교 문을 두드린 것도 이 무렵이었다. 11월, 그토록 학수고대하던 200평 규모의 한식 기와집 교사가 완성됐다. 이듬해 2월, 또 반가운 소식이 전해졌다. 고종황제가 ‘이화학당(梨花學堂)’이란 교명을 하사한 것이다. 이후 이화학당은 1904년과 1910년에 각각 이화여고와 이화여대로 분화돼 오늘에 이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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