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속 오늘

‘아라비아의 로렌스’ 사망

1차 대전이 발발하고 600년 제국 오스만투르크가 꺼져가는 생명 연장을 위해 독일과 연합하자 영국은 오스만 지배하에 있던 아라비아의 하심가(家)와 협정을 맺어, 아랍인이 독립운동에 나서면 지원하기로 약속한다. 하심가의 후세인이 봉기한 것은 1916년 6월이었다. 토마스 에드워드 로렌스도 영국군 장교로 파견되었다. 옥스포드대를 졸업한 로렌스는 고고학자로 이미 3년 반 동안 중동 지역 이곳저곳을 돌아다녔던 이를테면 중동전문가였다.

로렌스가 세계의 주목을 끌었던 것은 1917년 7월 홍해의 요충지 아카바를 점령하면서였다. 로렌스는 오스만군이 전혀 예상치 않은 방향으로 기습 작전을 감행했다. 50여 명의 아랍군을 이끌고 6주 만에 1000㎞나 되는 사막을 가로질러 아카바의 배후를 친 것이다. 오스만의 사상자와 포로가 1200명에 달했지만 아랍군의 희생자는 2명뿐, 일방적인 승리였다. 고고학자 로렌스가 ‘아라비아의 로렌스’로 새롭게 세상에 알려지는 순간이었다. 로렌스는 특히 게릴라전에 능해 1년 반 동안 79차례나 철도를 폭파하는 탁월한 전과를 거뒀다. 그러나 고독한 싸움이었다. 영국이 프랑스와 중동 지역을 분할통치하기로 비밀협정을 체결하고 또 유대인이 팔레스타인에 국가를 건설할 수 있는 길을 터주었기 때문이다.

로렌스가 아라비아를 떠날 때 그의 몸에는 9군데의 총상, 33번의 골절상, 7차례의 비행기 사고 등으로 상처투성이였지만 정작 그를 괴롭힌 것은 강대국의 탐욕이었다. 로렌스는 서서히 자기 분열 증세에 빠져들었다. 귀국 후 모든 정치적인 보상을 뒤로하고 사병으로 입대했지만 매스컴이 그를 놓아주질 않자 은둔한다. 1935년 5월 19일, 오토바이 사고로 영광과 비극의 인생도 마침표를 찍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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