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속 오늘

서윤복 美 보스턴마라톤 제패

1947년 4월 19일 오전 11시, 제51회 보스턴마라톤에 출전한 8개국 156명의 건각들이 출발 신호를 기다렸다. 출발선에는 가슴에 ‘KOREA’와 태극마크를 단 서윤복과 남승룡 두 선수의 모습이 보였다. 조금 떨어진 곳에는 경기 시작 전 출전을 포기한 손기정 감독의 모습도 눈에 띄었다.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되기 전이었으니 엄밀히 말하면 무국적 선수단이었다. 우여곡절 끝에 미군 프로펠러 군용기를 얻어타고 서울을 출발, 괌·하와이·샌프란시스코 등을 거쳐 일주일이나 걸려 도착한 탓에 몸은 천근만근 무거웠지만 뛸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다행이었다.

165cm·55kg의 왜소한 체격이었으나 24살의 서윤복은 “뛰다가 쓰러질지언정 기권하지는 않겠노라”고 입술을 깨물었다. 이윽고 출발 신호가 떨어졌다. 중간 지점부터 선두를 달리던 서윤복에게 위기가 찾아온 것은 30km 지점이어다. 연도의 한 관중이 서윤복을 격려하려고 박수를 친다는 것이 그만 끌고나온 개의 끈을 놓친 것이다. 도로 안으로 뛰어든 개 때문에 서윤복이 넘어진 사이 7∼8명의 선수들이 서윤복 곁을 스쳐 지나갔다.

벌떡 일어나 다시 뛰기 시작했으나 이번에는 운동화가 말썽이었다. 끈이 풀린 것이다. 서윤복은 아랑곳하지 않고 내처 달렸다. 32㎞ 지점에 위치한 악몽같은 ‘심장파열 언덕’도 남산 언덕길에서 흘렸던 땀을 생각하면 참을만 했다. 어렵게 선두를 탈환한 그의 눈에 멀리 결승점 보스턴시 청사가 들어왔다. 2시간 25분 39초, 세계 최고기록이었다. 광복 후 태극기를 달고 출전한 첫 국제 마라톤대회에서 우승까지 일궈낸 서윤복은 손기정을 부둥켜 안고 펑펑 눈물을 쏟아냈다. 곧 남승룡도 2시간 40분 10초를 기록하며 열두번째로 결승선을 통과했다.

서윤복의 장거에 감격한 김구 선생은 족패천하(足覇天下·발로 천하를 제패하다)를 휘호로 써주었고, 이승만 박사는 울면서 축하해줬다. 다시 3년 뒤 이번에는 함기용·송길윤·최윤칠 세 선수가 보스턴마라톤에서 각각 1·2·3위를 차지, 전 세계에 마라톤 강국 ‘코리아’의 이미지를 강하게 심어주었다. 그리고 반세기가 지난 2001년, 이봉주 선수가 또 우승함으로써 보스턴마라톤은 우리 마라톤사(史)에서 빼놓을 수 없는 주요 대회로 자리잡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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