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은 무척 어두웠지만 지구는 푸른 빛이었다.” 소련의 우주비행사 유리 가가린이 인류최초의 우주여행을 마치고 지구로 돌아와 던진 첫 마디였다. 1961년 4월 12일 오전 9시7분, 4.75t 무게의 소련 우주선 ‘보스토크 1호’가 유리 가가린을 태우고 하늘로 날아올랐다.
가가린이 지구를 한 바퀴돌고 1시간 48분 동안 우주에 머물다 지구로 무사히 귀환하자 미·소 간 우주대결에서 또 이겼다는 자부심이 소련 전역에 넘쳐났다. 소련의 이즈베스티야지(紙)는 ‘세계를 뒤흔든 108분’이란 제목을 대문짝만하게 달았고 프라우다는 호외를 찍었다. 가가린은 중위에서 소령으로 두 단계나 건너뛰었고, 레닌훈장까지 받아 소련의 영웅으로 떠올랐다. 그가 어린시절을 보냈던 그자츠크는 이름을 아예 가가린으로 바꿔버렸다. 소련은 여세를 몰아 이후에도 보스토크 이름을 단 유인우주선을 6번이나 발사, 모두 성공시켰다. 1963년 6월에 발사한 보스토크 6호에는 최초의 여성우주비행사 테레슈코바를 태워 ‘최초’ 수식어를 독점하며 미국인의 열등감을 부추겼다.
미국은 가가린의 우주여행 3주 뒤 셰퍼드 중령을 태운 우주선 ‘머큐리’ 캡슐을 쏘아 지구궤도비행에 성공시켜 겨우 체면은 세웠지만, 1957년 10월 최초의 인공위성 스푸트니크 발사 때의 충격에 이은 또 한 번의 패배로 미국의 자존심은 구겨질대로 구겨졌다.
스푸트니크 충격 때 대통령과학기술특별보좌국과 국립항공우주국(NASA)를 창설하는 등 부산을 떨었던 것처럼 이번에도 새로운 계획이 발표됐다. 1961년 5월 25일 케네디 대통령이 1960년대 안에 인간을 달에 착륙시키겠다는 야심찬 ‘아폴로 계획’을 발표한 것이다. NASA는 가능한 인력을 총동원했고 정부는 250억 달러라는 막대한 돈을 투입하는 총력전을 펼쳤다. 마침내 1969년 7월 20일 아폴로 11호를 타고 날아간 루이 암스트롱이 달에 인간의 첫 발자국을 남김으로써 미국은 그제서야 승리의 축배를 들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