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속 오늘

히틀러, 유럽최고의 유대인 명가 로스차일드가(家) 급습

1938년 3월 13일, 유럽최고의 유대인 명가(名家)를 자랑하는 로스차일드가(家)의 오스트리아 빈 저택에 나치 친위대가 들이닥쳐 루이 폰 로스차일드 남작을 연행했다. 이날은 히틀러가 오스트리아를 강제병합한 날이었다. 히틀러가 이 가문을 겨냥한 것은 재산도 재산이었지만 무엇보다 이 가문이 미술품과 유물을 많이 소장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처럼 히틀러의 군화발이 닿는 곳은 언제나 문화재 약탈도 뒤따랐다. 유대인이 주로 표적이었지만 가장 큰 피해를 본 곳은 프랑스였다. 히틀러는 100년 전 나폴레옹이 빼앗아간 게르만 민족의 미술품을 되찾는다는 명분을 내세워 그의 또 다른 꿈 총통미술관 건립을 실현하려했다. 히틀러가 11세 때부터 18세까지의 청소년기를 보냈던 오스트리아 린츠가 후보지였다. 기습전, 로스차일드 남작은 상당수의 재산을 이미 영국으로 빼돌려 재산상의 큰 피해는 피할 수 있었지만 대부분의 소장품은 고스란히 히틀러 손에 넘겨져 총통미술관으로 보내졌다.

로스차일드가를 명문가로 일군 사람은 18세기 중엽 독일 프랑크푸르트의 유대인 거주지역 게토에서 태어나 자수성가한 마이어 암셸 로스차일드다. 프랑크푸르트, 런던, 파리, 빈, 나폴리 등으로 건너간 다섯아들도 현지에서 막대한 부를 쌓아가며 세계를 쥐락펴락했다. 이 가문의 성장사는 유럽의 근·현대사와 맥을 같이했다. 나폴레옹, 웰링턴, 메테르니히, 합스부르크, 히틀러 등이 유럽역사의 전면을 장식했다면 배후에는 로스차일드가가 얽혀있었다. ‘밸푸어선언’(1917년)을 이끌어내 유대민족 1900년 유랑의 한을 풀어준 것도, 이스라엘 건국시 재정적으로 후원한 것도 로스차일드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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