뱅기타고 세계로

[이탈리아, 이 정도는 알고 떠나자④] 로마(1) : 포로 로마노, 캄피돌리오 광장, 콜로세움, 콘스탄티누스 개선문, 스페인 광장, 트레비 분수, 판테온 등

by 김지지

 

☞ 전문(全文)을 다른 곳으로 옮겼습니다. 클릭!!

 

■로마, 발길 닿는 곳마다 과거 역사 그대로 살아있어

 

이탈리아는 가는 곳마다 유적지이고 오늘의 유럽을 있게 한 뿌리이다. 그중 으뜸을 꼽으라면 당연히 발길 닿는 곳마다 과거의 역사가 그대로 살아있는 로마이다. 로마는 도시 전체가 유네스코가 정한 ‘세계유산 역사지구’다. 로마시는 단체 관광객이 투어를 하려면 로마인 안내인과 함께 다니는 것을 의무로 해 유적지 관리에 철저하다. 폼페이 관광 때도 로마인 안내인이 참관-안내했는데 일자리 창출과 연결된 관광산업에 도움이 될 듯싶어 우리도 참고하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봤다. 로마는 고대 로마를 꽃피운 포로 로마노, 중세 유럽의 중심지로 기능하던 로마 시내 전역, 교황청이 있는 바티칸시국으로 크게 나뉜다. 그중 대표적 유적지를 소개한다.

 

▲팔라티노 언덕, 포로 로마노

로마 시내에는 언덕이 7개 있다. 팔라티노, 카피톨리노(캄피돌리오), 아벤티노, 첼리오, 에스퀼리노, 비미날레, 퀴리날레 언덕이다. 언덕 주변에는 BC(기원전) 753년 로마가 건국될 때부터 현재까지의 방대한 물질적·정신적 유산이 집약되어 있다. 이 7개 언덕을 중심으로 대제국의 역사가 펼쳐졌으니 곧 로마제국의 모태인 셈이다.

7개 언덕 중 팔라티노와 아벤티노 언덕은 BC 753년 고대 로마를 건설한 로물루스와 레무스 쌍둥이 형제가 이곳 동굴에서 늑대의 젖을 먹고 자랐다는 전설이 전해온다. 늑대들은 광주리 속에 든 쌍둥이 아이가 테베라 강에 있는 것을 보고 물고 와 자신의 젖을 먹여 키웠다. 한 양치기가 이들을 발견하고 데려다 키우면서 로물루스, 레무스라는 이름이 붙여졌다. 형제는 성장한 후 나라를 건설할 때 늑대가 자신들을 키운 곳에 도읍지를 정하려 했으나 의견이 같지 않았다. 로물루스는 팔라티노 언덕, 레무스는 아벤티노 언덕을 선호했다.

그런데도 로물루스는 양치기들의 수호여신인 팔레스의 축제가 팔라티노 언덕에서 열리는 BC 753년 4월 21일을 로마의 건국일로 잡았다. 도읍지는 자기 이름을 따서 ‘로마’로 짓고 언덕 주변에 성곽을 쌓았다. 레무스가 이를 무시하고 경계선을 넘어오자 로물루스는 자신의 영역을 무단 침입했다며 동생을 살해했다. 로물루스는 이렇게 동생을 제거한 후 권력을 장악했다. 현재 로마시청은 물론 로마시에서 운영하는 모든 공기업은 늑대의 젖을 먹는 두 형제를 상징 마크로 사용하고 있다. 팔라티노 언덕에는 ‘로물루스의 집’이라는 팻말을 붙인 움막터가 있다.

팔라티노 언덕에 올라가면 서구 문명의 원류인 포로 로마노(로마 공회장) 유적지의 전경이 한눈에 들어온다. 포로 로마노의 메인 스트리트인 ‘비아 시크라(신성한 길)’를 사이로 왼편에는 바실리카, 에밀리아, 공회당, 원로원 건물 등 공공기관과 로마인들의 일상에 필요한 시설이 있고, 오른편에는 궁전과 신전들이 자리잡고 있다. 팔라티노 언덕은 황제와 신들을 모신 궁전이 많아서 오늘날 ‘궁전’을 의미하는 ‘Palace’의 어원이 되었다.

포로 로마노는 늘 사람들로 붐비는 소통의 장이었다. 이곳에서 정치인은 야외 연설을 하고 법관은 법을 집행했다. 사제는 종교행사를 주관하고 시민들은 쇼핑을 즐겼다. 포로 로마노는 BC 6세기 무렵부터 AD 3세기 말까지 로마의 정치경제 중심지였으나 서로마 제국이 멸망한 뒤에는 방치되어 사실상 폐허가 되었다.

 

▲카피톨리노 언덕, 캄피돌리오 광장

7개 언덕 중에서 가장 높은 곳은 카피톨리노 언덕이다. 언덕을 오르는 길은 두 갈래다. 하나는 콜로세움이 끝나는 곳에서 시작되어 로마제국의 심장이었던 포로 로마노를 가로지른다. 길의 이름은 ‘비아 사크라(Via Sacra)’. 성스러운 길이란 뜻이다. 당시 언덕 위에는 주피터 신전이 있었다. 그리스의 제우스에 해당하는 주피터는 로마에서도 으뜸 신이었다. 또 다른 길은 반대편 베네치아 광장에서 시작된다. 낮고 넓은 돌계단을 따라 올라가면 계단이 끝나는 곳에서 카피톨리노 언덕의 한가운데를 차지하고 있는 캄피돌리오 광장에 들어서게 된다.

광장은 16세기 중반 교황 바오로 3세(재위 1534~1549)의 요청을 받고 미켈란젤로가 구상하고 건설했다. 미켈란젤로는 광장을 좌우 한 쌍의 건물과 안쪽 정면 건물 중심으로 정비했다. 세나토리오궁, 콘세르바토리궁, 누오보궁이다. 정면의 세나토리오궁은 현재 로마 시청사로, 좌우의 콘세르바토리궁과 누오보궁은 현재 카피톨리노 박물관으로 사용되고 있다.

박물관 안에는 늑대 젖을 짜는 로물루스와 레무스의 모습을 비롯 많은 조각들과 청동상들이 있다.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박물관이라는 평을 듣고 있으며 교황 식스토 4세(재위 1471~1484) 때인 1471년에 지어져 전리품과 개인 선물들을 소장하기 시작했다.

미켈란젤로는 2세기 경에 만들어진, 로마의 평화를 이룬 5현제 중 마지막 황제인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재위 161~180)의 청동 기마상을 광장의 중앙으로 옮겨놓고 기마상의 대리석 받침대와 ‘코르도나타’라는 계단을 만들었다. 기마상 원본은 언덕 위에 지어진 카피톨리노 박물관에 보관 중이고 광장에 있는 것은 복사본이다.

광장 입구 양쪽에는 벌거벗은 채 말 옆에 서있는 두 청년의 석상이 있다. 유피테르 신의 아들이라는 뜻의 디오스쿠리 형제다. 형제는 로마 왕국과 주변의 라틴 부족들 간에 BC 499년에 벌어진 전투에서 백마를 타고 나타나 로마군의 승리를 이끈 뒤 홀연히 사라졌다. 이후 사람들은 이들을 유피테르 신의 아들 디오스쿠리 형제로 믿게 되었다. 미국의 국회의사당이나 정부의 행정 업무를 보는 건물을 지칭할 때 영어로 ‘캐피털(Capitol)’이라고 하는 것은 이 카피톨리노(Capitolino)에서 유래한다.

캄피돌리오 광장은 급진적으로 개혁을 추진하던 2명의 개혁가가 비참하게 살해된 역사를 안고 있다. 한 명은 기원전 133년 살해된 티베리우스 그라쿠스이고 다른 한 명은 중세 시대인 1354년 살해된 콜라 디 리엔초다. 그라쿠스는 자영업자의 몰락과 무산 대중의 비참한 삶을 해결하기 위해 나섰다가 귀족에게 죽임을 당했고 리엔초는 민중의 지지를 받아 권력을 장악했으나 결국에는 민중의 손에 죽었다. 모두 캄피돌리오 광장에서였다. 베네치아 광장에서 돌계단을 따라 오르다 보면 왼쪽에 있는 작지만 인상적인 동상이 리엔초의 동상이다.

 

error: Content is protected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