뱅기타고 세계로

중년 남성 8명의 일본 도호쿠 지방 단풍 여행기 (상)

↑ 핫코다산의 오다케산

 

by 김지지

 

함께 여행 떠난 친구들은 80학번 대학동기

 

각자 업무 바빠 일정 잡는 게 쉽지 않은데도 빨리 결정돼 다행

여행지는 일본 도호쿠 지방이고 일정은 2018년 10월 12일부터 17일까지 5박 6일이다. 도호쿠 지방은 일본 혼슈 동북부의 아오모리, 아키타, 이와테, 미야기, 야마가타, 후쿠시마 6개현을 통칭한다. 함께 여행을 떠날 일행은 8명이다. 1년 전, 10박 11일 일정으로 스위스 여행을 함께 했던 8명 중 2명만 바뀌고 6명은 그대로다.

스위스든 일본이든 8명의 공통점은 성균관대 80학번 동기이고 대학 시절 전공 서적 보다는 사회과학서를 탐독하고 행동하는 데 적극적이었다는 것이다. 물론 40년 가까운 세월이 흐른만큼 일부 친구(정확히는 한 친구)는 세상을 바라보는 관점과 해석을 달리 하고 있다. 함께 여행을 떠난 8명의 전공은 사학(2명), 경제학(2명), 무역학(1명), 신문방송학(1명), 유학(1명), 도서관학(1명)이고 직업 역시 각기 다르다.

여행 계획은 작년 스위스 여행을 다녀온 후 그해 말에 확정되었다. 스위스 여행 때는 경비를 모으는 기간이 길고 비용 또한 적지 않게 들어서 그런지 다음 여행은 가까운 곳으로 가자는 쪽으로 일찌감치 결론이 났다. 스위스 여행 때는 1인당 월 10만원씩 3년간 모은 360만원에 추가 경비 90만원을 더해 공동경비로 1인당 450만원 정도 들어갔다. 이런 점을 반영해 정한 여행지가 가을 단풍으로 유명한 일본의 도호쿠 지방이었다. 2018년 1월부터 10만원씩 모아 9월까지 모으니 1인당 90만원이 쌓였다. 여기에 10~20만원 더 추가하면 공통경비로 부족하지 않을 것으로 계산되었다.

각기 다른 길을 걷고 있는 8명 중년 남성들. 오소레잔 보다이지에서

 

8명 모두 각기 다른 분야에서 활동하는 터라 일정 잡는 게 쉽지 않을 것으로 예상되었으나 다행히 쉽게 결정되었다. 스위스 때도 그렇고 이번의 일본도 그렇지만 이렇게 해외여행을 떠날 때 가장 고민이 많을 수밖에 없는 친구는 자영업자다. 그중에서도 가장 곤란했을 친구는 그 기간 아예 문을 닫아야 하는 치과의사 박동규다. 그런점에서 동규는 쉽지 않은 결단을 스위스에 이어 2년 연속했다. 병원 간호사들이 해마다 “원장님 올해도 어디 멀리 다셔오셔야죠?” 할 것 같다는 농담이 여행 중 오갔다. 다른 자영업자 친구도 피해가 있겠지만 그렇다고 사무실이나 영업장 문을 닫는 건 아니어서 치과의사만큼 피해가 크지는 않을 것이다.

이번 여행 일정은 오영수가 짰다. 그는 전문직 종사자여서 바쁜 와중에도 틈틈이 5박 6일 일정을 시간대별로 세세하게 짰다. 네 차례나 바뀌는 호텔을 예약하고 숙소 부근의 맛집까지 찾아보는 용의주도함을 보였다. 출발에 앞서 일본어 기초회화 학습 영상, 일본 온천 이용법 등도 단톡방에 올리는 수고로움을 아끼지 않았다. 심지어 우리가 현지에서 렌트카를 빌려 운전하는 것까지 감안해 일본에서 운전시 주의 사항까지 알려주었다.

영수는 일본 현지에 가서도 낮에는 여행을 하고 밤에는 밤늦도록 술을 마시며 웃고 떠드는 바쁜 일정 속에서도 틈틈이 페이스북에 일본 여행기를 올렸다. 그것을 보고 그는 멀티가 가능하고 이타적 인물임에 틀림없다고 확신했다. 친구들이 노고에 미안해하고 고마워하면 “여행은 준비할 때 가장 마음이 설레고 좋은 거”라며 되레 “그 즐거움을 거의 내가 독점해서 미안하다”고 했다.

 

낮에는 여행, 밤에는 음주와 수다

이희용은 영수가 짜놓은 스케줄에 맞춰 영수와 함께 현지 일정을 조율하고 리드했다. 이번 여행에서도 희용의 역할이 돋보인 것은 해박한 지식과 모두를 수시로 박장대소하게 하는 아재 개그였다. 오랫동안 관찰한 결과 희용은 이른바 알쓸신잡(알아두면 쓸데없는 신비한 잡학사전)에 독보적이었다. 스페셜리스트가 아닌 제너럴리스트를 지향해야 하는 언론인으로 30년 이상 살아와 그런 면도 있지만 기본적으로 그는 알쓸신잡에 적합화된 유형이었다. 뇌구조를 살펴봐야 알겠지만 한쪽 뇌로는 전문지식이 들어와 오래지 않아 빠져나가도록 구조화된 반면 다른 뇌는 알쓸신잡성 지식을 오랫동안 담아두는 데 유리하게 설계된 듯하다. 심지어 그는 고교 때 반우들의 번호까지 대부분 기억하고 있다.

이번 여행에서 일행의 기대를 한몸에 받은 친구는 민병래다. 그는 자기 사업을 하면서도 짬짬이 각자 분야에서 열심히 살아가는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를 사진과 함께 개인 블로그에 올리는 것을 취미로 하고 있다.

본인은 극구 부인해도 아마추어인 우리가 볼 때는 인물 사진에 정통한 나름 사진 작가다. 나는 이번 여행에서 가급적 병래 주위를 얼쩡거리며 그의 모델이 될 것을 자처했다. 그 덕에 멋진 사진을 많이 건졌다.

사진 촬영에 여념이 없는 병래. 폼이 멋지다.

 

사실 병래는 이번 여행에 가장 늦게 합류했다. 그는 바쁜 업무 일정 때문에 쉽게 동참을 결정하지 못하고 망설였다. 이런 병래를 결정적으로 끌어들인 건 희용이 보낸 몇 문장이었다. 병래의 후일담에 의하면 글을 본 병래 아내가 일본 여행을 적극 권했다고 한다. 내용은 이랬다.

“너 사실 작년에 우리끼리 스위스 갈 때 부러워했잖아. 그래서 축하 플래카드까지 만들어줬고. 그땐 너무 멀고 일정도 길어서 강력하게 권유하기 어려웠는데 이번에는 일정도 짧고 거리도 가까워서 괜찮지 않을까 싶어. 단풍 구경한 뒤 온천에 몸 담그고 청주 한 잔 마시며 인생 이야기를 나눠보자꾸나. 아름다운 추억과 행복한 경험은 저축했다가 나중에 찾아 쓸 수 있는 게 아니라네. 그때그때 흘러가는 것을 잡아채서 즐겨야 하는 거지.”

8명이 여행을 떠나니 돈 관리가 당연히 중요하다. 그 몫은 이번에도 김태성이 맡았다. 태성은 최근 본인의 사업 방향을 놓고 고민이 많았을텐데도 기꺼이 또는 어쩔 수 없이 그 중차대한 회계 임무를 떠맡아주었다. 성격상 1엔이라도 숫자가 맞아야 직성이 풀리는 그로서는 몹시 귀찮은 일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동안 우리가 함께 여행할 때마다 태성이가 회계 관리를 잘 했기 때문에 이번에도 그 역할을 피할 수는 없었다.

한상철은 다른 사람의 말을 충분히 듣고 웃음과 맞장구로 공감을 표시하는데 달인이다. 기본적으로 마음이 열려있어야 가능한 일이다. 실제로 그와 얘기를 나누다보면 사고가 유연하다는 것을 자주 경험하게 된다. 나는 그와 생활 반경이 달라 자주 만나지는 못하지만 전언에 따르면 대학 동기 여학생들도 상철을 가장 편하게 생각한다고 한다.

홍갑표는 늘 부처님 같은 미소와 달관한 듯한 표정의 주인공이다. 목소리는 언제나 조곤조곤하다. 갑표의 이런 표정과 목소리는 뭇사람들의 격한 감정을 무장해제시키는데 더없이 유용해 보인다. 갑표 역시 말을 하기보다는 듣는데 능하다.

8명 친구 중 말을 즐겨하고 사랑하는 사람을 꼽으라면 희용, 동규, 태성이다. 희용이 손짓 발짓하며 말을 즐기는 만담가 유형이라면 동규과 태성이는 조용하면서도 주제 불문의 온갖 이야기를 쏟아내는데 일가견이 있다. 셋이 모이면 대화가 끊이지 않는다. 동서와 고금을 막론한다. 희용과 동규는 애주가다. 둘 다 덩치가 크고 장군감 외모다. 나는 30대 시절 보았던 거의 내 허벅지 굵기만한 동규의 종아리를 잊지 못한다.

 

단풍 유명한 핫코다산이 우릴 향해 손짓했지만… : 핫코다산, 다모야치 습원,

 

일본에서의 첫 운전, 자꾸 갓길쪽으로 치우쳐

2018년 10월 12일 인천공항을 빠져나간 여객기가 2시간 20분의 비행 끝에 일본의 아오모리 공항에 도착한 것은 오후 12시 25분이었다. 아오모리현은 쓰가루해협을 사이에 두고 홋카이도와 마주하고 있는 혼슈 최북단 현이다. 남북으로 길게 뻗은 오우 산맥이 현을 동서로 갈라놓고 있다.

이곳에는 세계최대의 너도밤나무 원생림으로 세계유산에 등록된 시라카미 산지(白神山地)와 아름다운 경관을 자랑하는 쓰가루 국정공원이 있다. 특산물은 전국 1위 생산량을 자랑하는 아오리 사과다. 한때는 ‘합격사과’로 우리나라 매스컴을 탄 적도 있다. 농민들이 태풍에도 떨어지지 않은 사과를 ‘시험에 떨어지지 않는 합격사과’로 홍보해서 판매한 것이 성공을 거뒀다. 그러다보니 아오모리에는 사과를 가공한 먹거리가 많다.

우리는 공항을 빠져나와 공항 바로 옆 렌트카 대여점에서 승용차 2대를 빌려 첫 여행지인 핫코다산(八甲田山, 1584m)으로 차를 몰았다. 운전은 국내에서 미리 국제운전면허를 발급받은 영수와 갑표가 했다. 10인승 이상의 차량을 1대 빌리면 여러모로 편리하겠으나 일본에서 15인승 차량을 운전하려면 현지에서 면허를 따로 발급받아야 하는 불편을 피하기 위해 2대를 렌트했다. 렌트카에는 한글 내비게이션이 있어 목적지를 찾는 게 그리 어렵지는 않다. 게다가 개인 스마트폰마다 구글 앱이 깔려 있으니 지리 때문에 겁낼 필요는 없다.

문제는 일본이 영국과 함께 우측 운전의 대표국가이고 이 때문에 교통신호등 체계가 우리와 다르다는 점이다. 게다가 아오모리현은 일본 중심에서 멀리 떨어진 변방이라 국도든 지방도로이든 1차로가 많고 도로 폭도 좁다. 그래서 그런지 1차선 도로에는 마주오는 도로로 넘어가 앞차를 추월해도 좋다는 의미로 그어진 점선이 도로 중앙에 많다. 운전대가 우측에 있어 마주오는 차를 의식하며 운전하다보니 우리도 모르게 자꾸 왼쪽 갓길쪽으로 치우친다. 그러나 엄밀히 말하면 운전대가 우측에 있어서 차가 갓길쪽으로 치우친다기 보다는 도록폭이 좁아서 그런 것이다. 왜냐하면 한국에서 운전대가 왼쪽에 있다고 해서 차가 오른쪽으로 치우치지 않기 때문이다. 결국 폭이 좁은 도로에서 운전이 익숙하지 않은 게 원인이다.

법적 제한속도는 일반도로는 시속 60㎞, 고속도로는 시속 100㎞다. 감시 카메라가 있을텐데도 우리와 달리 눈에 잘 띄지 않는다. 고속도로 이용료는 일본의 다른 물가와 비교하면 상대적으로 엄청 비싼 편이다. 핫코다산 초입으로 진입하니 주변이 탁트인 곳에 분식집이 보여 그곳에서 첫날의 늦은 점심을 해결했다.

 

산 정상에 정말 오르고 싶었는데 시간이 허락하지 않아

우리가 핫코다산을 등정하기로 한 첫째 이유는 단풍에 대한 기대였다. 그런데 서울보다 위도가 높고 고지대인데도 아직 단풍이 들지 않아 첫날부터 아쉽다는 느낌을 떨치지 못했다. 나중에 알고 보니 이곳 단풍은 10월 말부터 절정기에 접어든다고 한다. 핫코다산에 오르려면 먼저 산 아래에서 로프웨이를 타고 올라가야 하는데 우리는 오후 3시가 훨씬 지나서 로프웨이 터미널(승차장)에 도착했다. 로프웨이는 스키 리프트의 일종으로 사방이 트인 버스같은 박스를 매달아 산 위까지 동력으로 끌어올리는 장치다. 한꺼번에 수십 명을 태운다.

핫코다산 로프웨이. 아오모리현 제공

 

주차 후 느긋하게 승차장 입구로 다가가니 “4시 30분까지만 로프웨이를 운행한다”는 안내문이 붙어있어 우리를 당황케 했다. 위도가 우리나라 보다 높아 해가 빨리 진다는 사실을 미처 생각하지 못하고 여유롭게 시간을 보낸 결과였다. 상행 로프웨이 마지막 시간이 4시 30분이 아니라 산 위에서 하행하는 마지막 로프웨이의 터미널 도착시간이 4시 30분이라는 사실에 마음이 더욱 급해졌다. 더구나 우리 일행 얼마 앞에서 대기줄이 끊겨 더더욱 조급해졌다. 결국 우리는 3시 40분에 출발하는 마지막 로프웨이를 타고 올라갔다가 20~30분 만에 내려오는 신세가 되었다.

핫코다산은 아오모리, 이와테, 아키타 3개현이 한 발씩 걸치고 있는 도와다 하치만타이(十和田 八幡平) 국립공원 북부에 있는 8개 봉우리의 총칭이다. 일본 100대 명산 중 하나로 꼽히고 단풍이 아름답기로 유명하다. 핫코다(八甲田)라는 이름은 최고봉인 오다케산(大岳山·1585m)를 중심으로 8개 봉우리가 붙어있는 모습이 거북이 등을 연상한다고 해서 붙여졌다. 1500m 이상의 고봉은 오다케산, 이도다케산(井戶岳山·1550m), 아카쿠라다케산((赤倉岳山·1548m) 등이고 분화구는 이도다케산에 있다.

핫코다산 등정은 주차장이 있는 675m 높이의 산로쿠역에서 로프웨이를 타는 것으로 시작한다. 로프웨이 선로 길이는 2450m이고 최대 101명까지 태운다. 로프웨이 창밖은 세계 최대 규모의 너도밤나무 숲이 끝없이 펼쳐져 장관이다. 10분 정도 올라가 1320m 높이의 산초코엔역(산정공원역)에 내리니 바람이 세고 사방이 운무로 축축하다. 산초코엔역에서 100여m를 걸어올라가면 사방을 한눈에 볼 수 있는 해발 1324m의 다모야치다케(田茂萢岳) 전망대가 나타난다. 그곳에서 10분 정도 올라가면 다모야치 습원(田茂萢湿原) 일대의 산책길로 연결된다.

핫코다산에서 내려다 보니 속이 후련하다.

 

그러나 우리는 마지막 하행 차편 출발 시간이 4시 20분이라 습원 산책은 포기하고 탁 트인 주변 일대를 조망한 뒤 바로 로프웨이를 타고 내려와야 했다. 결국 핫코다산 정상 주변의 능선길과 습원 일대를 산책하려던 계획은 첫날부터 빗나갔다. 서울에서 출발할 때 가장 기대한 곳이 핫코다산이었다는 점에서 정말 아쉬웠다. 내일이라도 다시 올라가고 싶었으나 이미 정해놓은 계획이 있어 그럴 수도 없었다.

 

핫코다산~다모야치 습원~오다케산~쓰가유 온천(혹은 원점회귀)

다모야치 습원은 여러 연못과 늪이 있는 고산식물의 보고이자 핫코다산에서 가장 아름다운 곳이다. 이곳에서는 6월이면 철쭉꽃 등 각종 야생화들이 만발해 장관을 이룬다. 다모야치 습원에는 소요시간이 30분 걸리는 1㎞짜리, 1시간이 걸리는 1.8㎞ 산책길이 조성되어 있다. 산책길은 하늘에서 보면 표주박 모양을 하고 있다고 해서 박을 뜻하는 ‘고드(gourd) 라인’으로 불린다.

핫코다산 지도. 로프웨이 승차장에서 제공하는 한국어 가이드에서

 

정상인 오다케는 다모야치 습원을 지나 아카쿠라다케와 이도다케를 거쳐 올라간다. 아카쿠라다케는 이름만 산일 뿐 정상다운 분위기를 갖추지 못하고 있다. 키 작은 나무가 빼곡히 자라는 능선에 팻말 하나 달랑 서 있을 뿐이다. 그렇지만 그 너머에는 거대한 분화구가 있는 이도다케가 있다. 그리고 그 뒤로 거대한 봉분 같은 모습으로 솟아있는 오다케를 비롯해 코다케(小岳·1,478m), 다카다오다케(高田大岳·1,552m), 히나다케(雛岳·1,240m) 등 핫코다산을 이루는 봉우리들이 바라보인다.

오다케 산 정상은 날씨가 좋을 때는 서쪽인 한반도 동해, 동쪽인 태평양, 북쪽인 홋카이도에 이르기까지 세 방향의 바다를 바라볼 수 있을 만큼 조망이 좋다. 능선길을 오르려면 로프웨이 터미널에 비치된 지도를 안내판 삼으면 된다. 한글안내도도 있어 편리하다.

오르막에 자신이 없는 사람은 다모야치 습원을 지나 첫 번째 갈림길에서 능선길 대신 오른쪽 허릿길을 따라가면 된다. 그러면 습지대인 가미케나시타이(上毛無岱)와 시모케나시타이(下毛無岱)를 거쳐 산 중턱에 있는 쓰가유 온천으로 내려갈 수 있다. 쓰가유 온천은 1000여 명이 동시에 이용할 수 있는 대형온천으로 1954년 국민온천 제1호로 지정되었다. 등정의 맛을 느끼려는 사람은 아카쿠라다케와 이도다케를 지난 후 오다케 산장이 나오면 오다케로 올라가지 않고 그곳에서 오른쪽으로 빠지면 역시 쓰가유 온천으로 내려간다. 총 산행거리는 10㎞이고 5~6시간 정도 걸린다. 다만 쓰가유 온천까지 가는 길이 비교적 가파르고 험해 온천으로 가지않고 오다케까지만 가고 원점 회귀하는 사람들도 많다.

핫코다산 위에 있는 목제 안내도

 

핫코다산은 세계적으로 눈이 많이 내리는 것으로 유명하다. 덕분에 겨울에는 세계적인 스키장으로 바뀌지만 눈 때문에 많은 사람이 죽기도 한다. 대표적인 사건으로는 러일전쟁 전인 1902년 일본 군대가 이곳에서 훈련 중 기록적인 한파를 만나 군인 201명 중 199명이 동사한 사건이다. 이 참변은 소설과 영화로도 꾸며졌다.

우리는 아오모리 시내로 돌아와 ‘아오모리 셀렉트 인 아오모리’ 호텔에 짐을 풀었다. 시내 한 가운데 있어 편리했다. 곧 호텔 바로 옆에 위치한 아오모리 밤바다에서 잠시 시간을 보내고 나서 인근의 식당에 자리를 잡았다. 이것저것 요기한 후 호텔로 돌아와 첫날부터 상철이 방에 모여 음주와 수다로 시간가는 줄 모르고 밤을 보냈다.

 

혼슈 최북단 시모키타 반도에서 홋카이도를 바라보다 : 오소레잔, 오마자키, 호토케가우라

 

오소레잔은 일본의 3대 영지 중 하나

둘째날(10월 13일) 여행지는 아오모리 최북단 시모키타(下北) 반도에 자리잡은 오소레잔(恐山), 오마자키(大間崎), 호토케가우라(仏ヶ浦)다. 아오모리 시에서 동쪽으로 향하다가 도끼처럼 생긴 시모키타 반도로 북상해 시계 반대 방향으로 돌아나오는 일정이다. 시모키타 반도는 일본의 국정공원 중 한 곳이다. 국정공원은 일본의 지자체가 관리하는 공원이니 우리로 치면 도립공원 쯤 되겠다.

첫 방문지는 아오모리 호텔에서 114㎞ 떨어진 오소레잔이다. 2시간 30분이 걸리는데 이곳에도 한글안내문이 있다. 오소레잔은 시모키타 반도 중앙에 있는 우소리코(宇曾利湖)라는 칼데라호를 중심으로 한 8개 외륜산(外輪山)과 그것들에 둘러싸인 분지의 총칭이다. 오소레잔은 일본의 3대 영지 중 한 곳 답게 유황 냄새가 자욱하고 용암이 만들어낸 돌무더기가 많아 다소 기괴스럽고 황량하다. 시모키타 반도에서는 옛날부터 ‘죽은 사람의 혼이 오소레잔으로 간다’는 말이 전해오고 있다. 오소레잔의 삭막함을 메워주는 것은 곳곳에 심어놓은 꽃들과 장식 그리고 화려한 빛깔의 바람개비다. 바람개비는 방문객들이 죽은 자에 대한 공양물로 꽃 대신에 바친 것이다.

보다이지 앞에서

 

알쓸신잡의 대가 희용에 따르면, 일본에서는 죽은 사람의 영혼이 바람으로 나타나 산 사람이 느낄 수 있고 바람개비는 돌아가는 모양이 윤회를 상징한다고 한다. 일본 작곡가 아라이 만이 2003년 발표한 노래 ‘천 개의 바람이 되어’가 2001년 지하철의 취객을 구하려다 숨진 이수현 씨의 추모 영화 ‘너를 잊지 않을 거야’(2006년 개봉)에 쓰이고 2009년 팝페라 가수 임형주가 취입해 그해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때와 2014년 세월호 참사 때 널리 불렸다고 한다.

오소레잔 초입에서 먼저 마주치는 곳은 862년에 세워진 보다이지(보리사·菩提寺)다. 귀신들이 깃들어 있는 만큼 절 입구 왼쪽에 지장보살 좌상 6구를 모시고 있다. 지장보살에 대한 희용의 설명이 또 이어진다. “지장보살은 지옥 중생이 다 구제되기 전에는 성불하지 않겠다는 서원을 세운 이른바 지옥의 신이다. 보통 두건을 머리에 두르고 육환장(六環杖)을 손에 든 채 염라대왕을 포함한 시왕(十王)을 거느리고 지장전, 명부전, 시왕전 등의 한가운데 앉아 있다. 이곳의 지장보살은 수인(手印·부처나 보살상의 손 모양)과 지물(持物·부처나 보살상이 들고 있는 물건)이 각기 달라 인상적이다.”

우소리코 쪽으로 걷고 있는 그들

 

우소리코는 전체적으로 아름답다. 호수 주변에는 주차장에서 2㎞가 채 안되는 산책로가 이어져 있고 호수를 일주하는 약 10㎞의 하이킹 코스가 있다. 산책로는 보다이지를 중심으로 호숫가를 돌고 야트막한 산자락을 거쳐 돌아오는 길이다. 물은 맑지만 물가 곳곳에는 위에서 흘러내린 누런 유황 성분이 부분부분 쌓여있다. 우소리코에서 흐르는 강은 삼도천(三途川)이라고 불리는데 불교에서 이승과 저승을 사이에 두고 흐르는 강을 말한다. 절 옆 식당에서 식사를 했는데 카레밥, 라면, 우동이 전부이다. 가격은 적당하지만 한국에서는 그 흔한 단무지나 김치 하나 없어 이곳을 권하고 싶지는 않다.

 

오마자키 부근에서 낚은 참치는 ‘참치의 지존’

오후 목적지는 오소레잔에서 60㎞를 더 북상해야 닿는 혼슈 최북단의 오마자키(大間)다. 지명인 ‘大間’은 이곳의 앞바다인 쓰가루 해협이 홋카이도와 혼슈 ‘사이’(間·간)라는 데서 왔다. 홋카이도의 하코다테와는 17.5㎞ 떨어져 있어 홋카이도가 손에 잡힐 듯 보인다.

홋카이도가 손에 잡힐 듯 하다. 왼쪽의 등대섬은 벤텐섬.

 

쓰가루 해협은 쿠로시오 해류(북태평양 서부와 일본열도 남쪽을 따라 북쪽과 동쪽으로 흐르는 해류), 쓰시마 해류(제주도 남동해역에서 대한해협을 거쳐 동해를 북상하는 난류), 치시마 해류(베링해에서 치시마 열도를 따라 남하하는 한류) 등 3개의 해류가 흘러들어오는 어장이어서 겨울이 되면 근해에서 200~300㎏이나 나가는 천연 참다랑어(구로마구로)가 잡힌다.

이곳 오마 항의 어선이 낚은 참치는 ‘오마 마구로’라고 해서 ‘참치의 지존’으로 불린다. 오마 마구로를 잡을 때는 절대 그물을 사용하지 않고 외줄낚시만 고집한다. 마구로에 상처가 나지 않으면서 싱싱하고 힘 좋은 상태로 잡아올리기 위해서다.  ‘도쿄의 부엌’이라는 쓰키지 수산시장 신년 첫 경매에서 늘 최고가로 낙찰되는 것도 ‘오마 마구로’다. 그동안 최고가는 2013년의 1억 5500만 엔(19억 2325만 원)이었다. 222㎏짜리였으니 1㎏에 866만 원꼴이다. 그러나 이 기록은 2019년 1월에 깨졌다. 도쿄의 한 수산시장에서 열린 새해 첫 참치 경매에서 278kg짜리 참치가 역대 최고가인 3억 3360만 엔(약 34억7000만 원)에 낙찰되었기 때문이다.

역대 최대급 혼마구로(400kg) 실물 크기의 조각상

 

쓰가루해협 가까이 조성된 전망공원에는 최북단 표석과 노래비가 세워져 있다. 이곳에서 잡힌 역대 최대급 혼마구로(400kg) 조각상이 실물 크기로 세워져 있고 바로 옆에는 이 거대한 물고기를 낚싯줄로 건져 올린 어부의 억센 팔뚝 형상이 놓여 있다. 바닥에는 일본 지도가 그려져 있는데 혼슈 섬의 동서남북 땅끝마을, 일본 전체 영토의 사방 땅끝마을이 모두 표시되어 있다. 전망공원 앞 등대섬은 벤텐섬이고 그 뒤로 홋카이도 땅이 보인다.

 

거대하고 이색적인 황갈색 기암들이 2㎞ 이상 늘어서 있어

반도 서쪽의 호토케가우라(仏ヶ浦)에 도착한 것은 해가 조금 남아있는 저녁 무렵이었다. 차를 타고가다 호토케가우라를 1㎞ 정도 앞선 지점에 전체 비경을 조망할 수 있는 나무데크 전망대가 있지만 제대로 감상하려면 도로에서 100m 이상 낮은 곳에 있는 해안가로 내려가야 한다. 해안가 까지 거리는 600m 정도다. 처음 400m는 완만하게 내려가다가 지그재그로 내려가는 200m의 급경사길에는 보드워크와 계단길이 조성되어 있다. 주차장에서 해안까지 20~30분 정도 걸린다.

호토케가우라

 

해안에는 거대하고 이색적인 황갈색 기암들이 2㎞ 이상 늘어서 있다. 2000만 년 전 유라시아 대륙이 분리되어 동해와 일본열도가 생겨날 때 일어난 화산활동의 결과라고 한다. 암석 덩어리들이 불상을 닮아 호토케가우라(佛ケ浦)라고 이름 지었는데 각각의 기암괴석들은 연화암, 오백나한, 지장암, 극락해변, 여래의목 등 불교에서 유래한 이름을 갖고 있었다. 경치가 이처럼 아름다운 관광지인데도 우리나라와 달리 횟집 하나 보이지 않고 멍게나 번데기 파는 행상 한 명 눈에 띄지 않는 것이 낯설었다. 관광객도 몇 명에 불과했다. 해가 뉘엿뉘엿 지고 있는 노을을 암석 위에서 바라보며 탄성을 냈다.

해가 완전히 저물어 아오모리로 향하는데 호텔까지 거리만 163㎞나 된다. 하루에 세 곳을 둘러보는 것까지는 좋으나 패키지여행이 아닌가 착각이 들 정도 이동시간이 길었다. 시간이 지체되어 저녁 식사를 하려 했으나 좀처럼 식당이 보이지 않았다. 결국 편의점에서 또다시 일본 벤또로 늦은 저녁을 해결했다. 이처럼 일본의 도호쿠 지방은 우리나라와 달리 길가에 식당이 좀처럼 눈에 띄지 않는다. 지나가다 간판을 보고 정차하면 영업을 하지 않는 곳이 태반이다. 마을이 나타나도 편의점만 눈에 띈다. 일본이 그만큼 땅이 넓고 사람은 적다는 뜻인데 지진만 없다면 정말 복받은 땅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둘째날도 같은 아오모리 호텔에 짐을 풀고 여지없이 음주와 수다를 즐겼다.

 

 

완연한 가을단풍에 탄성 절로 터져나와 : 오이라세 계류, 도와다코, 하치만타이산

완만하고 울창한 숲 지나는 14㎞의 계곡

셋째날(10월 14일) 일정은 오이라세 계류(奥入瀬 渓流)를 거쳐 도와다코(十和田湖)를 둘러보는 것이다. 이곳 역시 전체가 도와다 하치만타이 국립공원의 일부다. 오이라세 계류가 가까워질수록 완연한 가을단풍이 우리를 반겨 탄성이 절로 터져나왔다. 이틀동안 제대로 무르익은 단풍을 보지 못한 터라 더욱 반가웠으나 하필이면 이날은 내가 운전하는 바람에 여유롭게 감상하지 못하고 운전에만 집중해야 해서 무척 아쉬웠다.

오이라세 계류. 아오모리현 제공

 

오이라세 계류는 완만하고 울창한 숲을 지나는 14㎞의 계곡이다. 사이사이 이끼 낀 바위와 폭포와 소(沼)가 한데 어울려 신비감을 자아낸다. 일요일이어서 트레킹하는 사람들로 북적거리는 것을 보니 우리 역시 장시간 걷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으나 시간 부족으로 잠시 정차한 후 20분 정도 숲을 둘러본 것에 만족해야 했다. 14㎞ 거리를 걷는 게 부담스럽다면 중간 지점에 차를 정차한 후 걸어서 올라가거나 내려갔다가 다시 돌아오면 적당할 듯 싶었다. 숲길이 시작되는 입구에서 전동 자전거를 빌려준다니 그것을 이용해도 좋을 것이다. 계류의 발원지는 산중호수 도와다 호수이고 상하류의 고저차는 200m 정도다.

점심은 아오모리역 대합실 상점에서 구입한 도시락으로 도와다코 공원에서 해결했다. 다행히 화창한 날씨와 단풍이 어우러지고 잔디밭에는 벤치와 탁자가 놓여 있어 비록 내용물은 부실했으나 맛나게 먹을 수 있었다. 도시락을 먹은 후 남은 일회용 플라스틱 쓰레기가 새삼 걱정되었는데 우리나 일본이나 일회용 플라스틱 제품은 깊은 고민이 필요해 보였다.

일본에서는 역이나 기차 안에서 파는 도시락을 에키벤(驛弁)이라고 하는데 ‘역(驛)벤토’의 줄임말이다. 지역마다 특색 있는 재료와 조리법으로 만들어져 인기가 높다. 에키벤이 먹고 싶어 일부러 기차를 타거나, 기차를 탈 일이 없어도 에키벤만 사러 오는 사람도 있다고 한다. 우리가 에키벤 맛을 볼 수 있었던 것은 ‘에키벤’을 반드시 먹고야 말겠다는 희용의 강력한 의지와 열정 덕분이다. 도와다코 공원 바로 옆의 도와다 신사(807년 건립)는 빽빽한 삼나무 숲속에 자리잡고 있다. 삼나무는 두세 사람이 팔을 벌려 감아도 모자랄 만큼 굵고 하늘을 찌를 듯 높이 치솟아 있다. 신사 전각도 고졸한 기품이 넘친다.

도와다 신사

 

도와다 호수, 백두산 천지보다 둘레가 3배 넓어

신사를 둘러보고 도와다 호수로 빠져나오니 호숫가 모래사장에 나부(裸婦) 2명의 조각상이 보인다. 시인이자 조각가인 다카무라 고타로가 부인을 모델로 삼아 제작한 오토메(乙女) 동상이다. 일본에서 오토메는 평범한 여인을 뜻한다. 오토메 상은 눈에 눈동자가 없이 구멍만 뚫린 것이 특징이다. 어느 쪽에서 보거나 오토메상이 관람객을 응시하는 것처럼 느끼도록 하기 위한 것이다. 특정 장소에서 이 동상을 보면 호수 면에 반사하는 빛의 영향으로 두 여인의 손바닥이 붙기도 하고 떨어지기도 한다고 한다.

신사를 빠져나오니 엄청 크고 멋진 도와다 호수가 눈앞에 펼쳐졌다. 수면 위 해발이 401m인 도와다 호수는 전형적인 이중 칼데라 호수로 일본에서 3번째로 크다. 둘레가 46.2㎞이니 백두산 천지(14.4㎞)의 세 배가 넘는다. 다만 가장 깊은 수심은 천지(384m)보다 조금 얕은 328m다.

도와다 호수

 

호수 위에는 백조 모양의 배가 사람들을 태운 채 넓은 호수 위를 이리저리 한가로이 돌아다닌다. 좁디 좁은 인공호수에서 그것을 타야하는 우리와 달리 자연호수에서 멀리까지 이동할 있다는 점에서 부러웠다. 호수에는 40~50분 정도 걸리는 유람선도 있다. 차량으로 호수 주위를 돌 수도 있어 도와다 호수 방문은 강추다. 도와다코는 지금은 아모모리 현과 아키타 현 간에 경계가 분명하지만 아오모리 60%, 아키타 40%로 하는 경계를 확정한 2008년 11월까지는 경계가 분명치 않았다.

이곳에는 물고기가 한 마리도 살지 않아 1884년 시험적으로 붕어를 호수에 방류해봤으나 붕어는 모두 죽었다. 다행히 1903년 홋카이도에서 가져와 방류한 각시송어(히메마스)는 살아남아 각시송어는 오늘날 도와다코의 특산물로 자리잡았다. 그후 방류한 잉어, 붕어, 민물새우 등도 살아남아 지금은 어종이 15개 종류나 된다.

호수 주변을 벗어나 다른 곳으로 이동하기 위해 고갯길을 넘어가는 곳에 호수 전망대가 있다. 도와다코에는 두 개의 반도가 길게 돌출되어 있어 어디에서도 한눈에 호수 전체가 들어오지 않지만 전망대에서는 호수 전체를 조망할 수 있다. 하늘과 구름과 산과 호수가 적절히 배치되어 멋진 그림을 만들어낸다.

도와다 하치만타이 국립공원 지도
드라이브 코스로 유명한 ‘아스피테 라인’

다음 코스는 아오모리, 아키타, 이와테 세 현에 걸쳐 있는 하치만타이산(1613m)이다. 습지가 많아 야생 식물의 보고로 꼽히고 이곳 역시 일본 100대 명산에 든다. 정상으로 올라가려면 총길이가 27㎞인 ‘아스피테 라인’으로 불리는 산복도로를 타야 한다. 아스피테는 하치만타이산이 방패를 엎어놓은 형상을 뜻하는 순상(楯狀․아스피테)이어서 붙여진 도로명이고, 산복도로는 산(山)의 중턱(腹)을 지나는 도로를 뜻한다. 공식 도로명은 ‘현도(縣道) 23호’다.

하치만타이산과 아스피테 라인 지도. APPI 호텔 홈피에서.

 

아스피테 라인은 한적한 데다 주변에 막힌 곳이 없어 일본에서도 드라이브 코스로 유명하다. 도로를 달리다보면 넓은 고원 위에 제주의 오름처럼 작은 봉우리가 곳곳에 솟아 있고 그 사이에 이런저런 늪과 습지가 흩어져 있다. 아스피테 라인은 첫눈이 내리는 11월말 폐쇄되었다가 4월에 길이 열린다. 봄에도 도로 양측에 3~4m 높이의 설벽이 장관을 이룬다.

자동차로 30여 분간 아스피테 라인을 따라가다 보면 하치만타이산 정상 부근에 삼거리가 나타나는데 그곳에 미카에리 고개(見返り峠․1541m)가 자리잡고 있다. 미카에리 고개는 이와테현과 아키타현의 경계이자 아스피테 라인의 분기점이다. 삼거리에서 왼쪽이 아스피테 라인의 연장선인 현도 23호이고 오른쪽이 하치만수해(八幡平樹海) 라인으로 불리는 현도 318호다. 미카에리 고개에서는 ‘도호쿠의 후지산’으로 불리는 이와테산의 능선이 멀지만 뚜렷하게 보인다. 쉼터 건물인 레스트하우스와 주차장도 이곳에 있다.

이곳에서 하치만타이 정상으로 가는 산길을 오르다보면 왼쪽에 산중호수인 카가미누마(鏡沼)와 메가네누마(眼鏡沼)가 나타난다. 길은 나무 데크로 잘 꾸며졌다. 산 정상에 오른 뒤에는 또다른 산중호수인 하치만누마(八幡沼)와 무인산장을 지나 능선을 타고 겐타모리(源太森)와 차우스(茶臼) 산장을 거쳐 차우스구치(茶臼口) 주차장로 내려서는 게 일반적인 코스다. 10㎞로 짧지 않은 거리지만 경사가 완만해 4시간이면 마칠 수 있다.

 

하치만타이 정상 가는 길 놓쳐 흑곡지습원으로 올라가

우리는 미카에리 고갯길에서 주차한 후 하치만타이 정상으로 올라가야 했으나 모르고 지나치는 바람에 10여분 간 더 가다가 차우스구치 주차장이 나타나기 전 흑곡지습원(黒谷地湿原)으로 올라가는 간이 주차장이 보여 그곳에 주차한 후 흑곡지습원으로 올라가는 길을 택했다. 이곳 등산로 역시 습원이 많아 침목처럼 생긴 나무를 길게 깔아놓았다. 그곳을 지나자 키만큼 자란 조릿대 사이로 등산로가 나 있다. 조릿대에 가려 사방이 보이지 않으니 멋진 코스는 아니다. 등산로는 돌길로도 이어지는데 경사가 심하지는 않지만 걷기가 불편했다. 이마에 땀이 송글송글 맺혔다. 하치만타이는 산이 높아 날씨가 좋지 않을 때가 많다. 우리도 가랑비가 내려 우산을 쓰거나 우비를 걸치고 올라갔다.

하치만타이 흑곡지습원으로 올라가는 길. 침목처럼 생긴 나무가 곳곳에 깔려있다.

 

습원을 지나 1시간 정도 오르니 사람이 거주하지 않는 차우스 산장이 나타났다. 겨울에 눈이 많아서인지 산장 1층과 산장 출입문을 바닥에서 높은 곳에 설치했다. 날씨가 흐려 전망은 좋지 않지만 그런데도 멀리 조망할 수 있어 위안이 되었다. 기념촬영을 하고 차우스산에 오르려했으나 가랑비가 내리는 데다 곧 해가 저물 것 같아 산행은 포기하고 어둑해서야 주자창으로 내려왔다.

숙소는 하치만타이 인근 이와테 스키 리조트에 있는 ‘아피 그랜드 호텔’이다. 영수에 따르면 당초 ‘아피(安比․APPI) 힐즈 시라카바노모리(白樺の森)3’에 예약했는데 예약자가 너무 없어 호텔 측에서 바로 옆의 ‘아피 그랜드 호텔’로 바꿔주었다고 한다. 3성급에서 4성급으로 업그레이드된 것인데 값으로 따지면 1인당 4만원 짜리 호텔에서 12만원 짜리로 격상되니 횡재한 기분이다. 룸도 널찍하고 고급스러웠다. 그동안 일본에서 경험했던 호텔 중 최고 시설이었다. 참고로 아피는 이곳이 위치한 고원(高原) 이름이고 시라카바(白樺)는 자작나무다. 실제로 이 일대는 자작나무가 많다. 아피 그랜드 호텔은 4100명이 동시에 묵을 수 있는 숙소에 온천뿐 아니라 일본 최장 길이의 곤돌라(3494m)를 보유하고 21개 코스를 지닌 스키장과 골프장까지 갖춘 대형 리조트다.

문제는 호텔 주변이 새로 조성된 온천지역이어서 인적이 드물다보니 문을 연 식당이 없고 그 때문에 늦은 저녁에는 저녁을 먹을 장소가 마땅치 않다는 점이었다. 결국 호텔 안에서 다소 비싼 레스토랑에서 저녁을 먹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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