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속 오늘

본격적인 러일전쟁에 앞서 전개된 제물포 전쟁

1904년 2월9일의 제물포 앞바다. 하루 전 중국 뤄순항엣 맞붙은 러일전쟁과는 별개로 또 하나의 전투가 이 곳에서 벌어졌다. 당시 제물포는 전쟁을 피해 밀려든 각국 함대들로 마치 군함 전시장 같았다. 일본 군함은 물론 프랑스, 영국, 미국의 군함도 눈에 띠었다. 러시아 전함 바락(노르만인)호와 카레예츠(고려인)호도 상선 숭가리(송화강)호와 함께 정박 중이었다.

일본이 정오까지 제물포항을 떠나라고 각국 함선에 최후통첩을 보냈지만 전쟁 당사국이던 러시아가 순순히 응할리 없었다. 곧이어 러시아 함정들과 일본 함대 간에 해상 포격전이 전개됐다. 러시아 함대는 전함수 14대 2의 절대적 열세를 극복하지 못하고 1시간 만에 만신창이가 돼 소월미도로 돌아갔다. 러시아 해군은 이 해전에서 수병 33명이 사망하고 97명이 부상하는 극한 상황에 처하자 항복 대신 자폭(自爆)을 선택했다.

당시 이 해전은 러일전쟁에 묻혀 세계의 이목을 끌진 못했지만 러시아인들에게 이 날은 ‘러시아인의 기개를 세계에 알린 자랑스러운 날’로 기록되고 있다. 러시아인들은 바락호 함장의 동상을 세우고, ‘바락’이라는 영화와 해전을 기리는 노래까지 만들어 지금까지도 해전에 참가한 병사들을 영웅시하고 있다.

그러나 최근 ‘바락호’에 관한 많은 이야기가 왜곡된 신화라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어 논란을 빚고 있다. 한 러시아 해양사학자는 “러시아군이 영웅적으로 싸우기는커녕 공황상태에 빠져 전사한 동료들의 시신을 챙기는 것도 잊고 달아나기에 바빴고, 또 바락호를 스스로 침몰시킨 것은 사실이지만 수심이 얕은 해안 부근에 침몰시켜 일본군이 바락호를 인양해 수리한 뒤 ‘소이야’란 이름을 붙여 일본함대에 배치했다”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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