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땅 구석구석

울릉도 성인봉 등정 길에서 만난 알싸하고 상큼한 바람 잊을 수 없어

↑ 성인봉 올라가는 숲길에서 잠시 쉬고 있는 아들

 

by 김지지

 

갑자기 울릉도로 떠나다

한 번도 가보지 못한 울릉도가 갑자기 궁금해졌다. 출발 이틀 전이었다. 아내와 아들딸에게 2박 3일 동안 울릉도에 다녀올 시간이 있는지를 타진했다. 공무원인 딸만 빼고 아내와 학생인 아들은 가능하단다. 문제는 함께 떠날 세 사람 모두 울릉도가 처음이라는 것.

배편 예약과 현지 숙소를 알아보는데 과정이 복잡하고 귀찮게 느껴졌다. 이내 이 모든 것을 대행해 줄 여행사가 떠올랐다. 전화로 문의하니 큰 여행사는 “배편 좌석이 모두 매진되었다”며 시큰둥하다. 소규모 여행사는 “지금은 자리가 없지만 대기명단에 올리면 가능하겠다”며 친절하다. 그러더니 그날 오후 “자리가 났다”며 연락이 왔다. 비용은 인당 36만 7000원이란다. 생각보다 비쌌으나 선택지가 좁아 싸고 비싸고를 따질 게제가 아니었다.

육지에서 울릉도행 배편을 이용하는 터미널은 강릉, 동해, 울진 후포, 포항 4곳이다. 거리는 포항(217㎞), 강릉(178㎞), 동해(161㎞), 울진 후포(159㎞) 순서로 멀다. 울릉도까지는 최단 거리인 후포에서 2시간 20분이 걸린다. 다른 노선은 3시간~3시간 30분 수준이지만 기상 상황이 나쁘면 더 길어진다. 동절기에는 후포와 강릉, 묵호 노선이 닫힌다. 포항에서 울릉도로 가는 배편만 운항된다.

서울 사람들이 주로 이용하는 곳은 강릉항여객터미널이다. 그곳에서 오전 8시 전후에 출발하는 울릉도행 배편을 이용해야 최소한 도착 당일 하루를 알차게 보낼 수 있다. 그러려면 새벽 4시쯤 서울에서 출발해야 하는데 단체버스나 개인 승용차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 우리는 승용차를 몰고 2018년 8월 31일 새벽 4시 서울 마포 집을 출발해 7시 20분경 강릉항여객터미널에 도착했다.

강릉에서 8시 20분 출항한 배는 3시간 만인 11시 20분 울릉도 동쪽에 위치한 저동항에 닻을 내렸다. 동해, 포항, 울진에서 출발한 여객선은 저동항에서 멀지 않은 도동항에 승객을 내린다. 저동항에서 현지 가이드를 따라가 짐을 푼 곳은 산쪽으로 10분 정도 올라간 곳에 위치한 △△호텔이었다.

저동항

울릉도에는 변변한 숙소가 없다는 사실을 이미 알고 있던 터라 별 기대를 하지 않으면서도 명색이 호텔이고 패키지 비용도 비싼 것 같아 약간은 기대했다. 하지만 육지의 여관보다 떨어지는 수준이어서 혹시나 하는 기대는 역시나로 끝나고 말았다. 산 속에 있어 마당이 넓다는 것을 빼고는 매력적인 요소가 딱히 떠오르지 않았다. 식사는 부실하지 않았지만 끼니마다 식단에 차이가 없어 아쉬웠다. 숙소가 산 속에 있어 늦은 밤 이곳저곳 둘러볼 수 없는 것도 불편했다. 더 실망한 것은 60대로 보이는 현지 가이드였다. 그는 여행사가 당초 알려준 일정 중 일부를 일부러 빠뜨려 나로 하여금 여행사에 전화를 걸어 항의하도록 했다.

 

울릉도 탄생과 일주도로

울릉도는 250만 년 전, 화산 폭발과 함께 바닷속에서 땅덩어리가 불끈 솟아오르면서 세상에 태어났다. 독도는 그보다 앞선 450만~250만년 전, 화산 폭발과 함께 생겨났으니 울릉도보다는 덩치는 많이 작지만 나이로는 형인 셈이다. 울릉도는 9300~6300년 전에 일어난 화산활동을 끝으로 더 이상 분화하지 않고 있다. 면적은 여의도의 25배 가량인 72.56㎢다. 길이는 동서 11㎞, 남북 10㎞이고 해안선 길이는 56.5㎞에 이른다. 울릉도는 성인봉의 높이가 986.7m이고 해저 깊이가 약 2000m여서 전체 키가 약 3000m나 되는 거대한 산인 셈이다.

우리 가족 3명을 포함해 10여 명의 일행은 울릉도 도착 당일 숙소에서 점심을 해결한 후 가이드가 운전하는 소형버스를 타고 일주도로를 둘러보는 오후 일정을 시작했다. 하지만 나리분지와 식물공원인 예림원을 제외하고는 이내 기억에서 모두 사라졌다. 울릉도에서 일주도로 관광이라 함은 동쪽의 저동을 출발해 시계방향으로 지척거리인 도동항을 거쳐 서쪽의 태하항과 북쪽의 천부항을 지나 나리분지로 올라갔다가 내려와 북쪽 해안가의 죽암몽돌해변을 구경한 후 역방향으로 돌아오는 코스를 말한다.

사전적으로 일주라면 섬을 한 바퀴 돈 후 원점회귀하는 것이겠으나 저동 북쪽의 내수전에서 더 북쪽에 위치한 북면의 섬목까지 4.75㎞는 아직 도로공사 중이어서 이 글을 쓰는 날을 기준하면 완벽한 일주는 아니다. 그래서 울릉도의 일주도로 관광코스는 내수전에서 섬목까지 짧은 구간은 B코스, 나머지 긴 구간은 A코스로 구분한다.

A코스 도로 공사는 1963년 3월 울릉도 종합개발계획의 하나로 선정되었으나 첫 삽을 뜬 것은 13년이 지난 1976년이다. 2001년까지 25년 간의 공사를 거쳐 39.8㎞ 구간을 개설했다. 나머지 B코스는 해안 절벽으로 이뤄진 난공사 구간이고 공사비도 부족해 미개통 구간으로 남겨 두었다가 2011년 12월 공사에 착수했다. 그후 B코스가 완공된 것은 내가 울릉도를 다녀오고 4개월이 지난 2019년 1월이다. 이렇게 울릉도 전체를 돌 수 있는 일주도로 44.55㎞가 착공 43년 만에 완전 개통됨으로써 울릉도에는 엄청난 변화가 예상된다.

일주도로

 

성인봉은 울릉도의 진산이자 랜드마크

성인봉이 없는 울릉도는 안꼬 없는 진빵이다. 성인봉을 산이라 부르지 않는 이유는 독립된 산체라기 보다는 나리분지를 둘러싼 칼데라 외벽을 이루는 외륜산 형태의 여러 봉우리 중 하나이기 때문이다. 나리분지는 북쪽의 나리봉(816m)에서 시작해 시계 방향으로 간두산(968m), 말잔등(907m), 성인봉(986.7m), 미륵산(905m), 형제봉(716m), 송곳산(611m). 알봉(538m)이 에워싸고 있다.

성인봉으로 올라가는 몇 개 코스 중 가장 널리 알려진 코스는 도동항에서 출발해 대원사 또는 KBS중계소를 경유하는 코스다. 택시를 이용하거나 샛길을 따라 15~20분 가량 걸어올라가면 대원사나 KBS중계소에 닿는다. 안평전을 경유하는 코스도 있긴 하지만 안평전이 도동항 아래의 사동항 깊숙한 곳에 있어 접근이 불편하고 상대적으로 멀다. 등산 시간도 더 걸린다. 저동항을 출발해 봉래폭포 방향으로 오르다 저동초등학교 못미친 곳에서 주사골을 거쳐 성인봉으로 올라가는 코스도 있고, 서쪽의 태하항에서 미륵산을 거쳐 올라가는 상대적으로 짧은 코스도 있다. 시간은 코스마다 사람마다 약간씩 차이가 나긴 하나 대략 5~8시간 정도 걸린다.

코스를 정리하면 이렇다. 가장 많은 등산객들이 이용하는 대원사 또는 KBS중계소 코스는 대원사~KBS중계소~팔각정~바람등대~성인봉~신령수~알봉분지~나리분지를 지나는 8.1~8.7㎞ 구간이다. 안평전 코스는 바람등대~성인봉~신령수~알봉분지~나리분지를 지나는 총 7.7㎞ 구간이다. 두 코스 모두 곳곳에 안내표지가 잘 갖춰져 있어 길을 찾는데 어려움은 없다.

성인봉 올라가는 KBS중계소 코스 (출처 울릉군청 홈페이지)

 

어느 코스로 올라가든 성인봉에서 나리분지로 하산하는 코스가 있긴 하지만 나리분지에서 주거지로 되돌아 나오는 교통이 불편해 성인봉으로 올라갔다가 출발지로 원점 회귀하는 사람들이 더 많다. 산행에 익숙한 사람들은 성인봉에서 나리분지로 내려와 오른쪽 천부항으로 내려가는 코스를 이용하기도 한다. 또는 나리분지로 내려가지 않고 북쪽의 성불사를 지나 추산리로 가기도 한다. 반대로 나리분지를 출발해 성인봉으로 올라가는 코스도 있으나 나리분지까지는 차량을 이용해야 하는 불편함을 감수해야 한다.

 

성인봉 등정의 매력은 울창한 숲과 그늘과 시원한 바람

우리는 숙소가 KBS중계소에서 산길로 10분 정도밖에 떨어져 있지 않아 KBS중계소를 출발지로 삼았다. 중계소의 해발고도가 250m이고 성인봉 정상이 986.7m이니 740m만 고도를 높이면 된다. 중계소에서 정상까지는 3㎞ 남짓이므로 우리 가족 발걸음으로는 2~3시간 가량 걸릴 것으로 예상하고 산행을 재촉했다.

KBS중계소든 대원사든 코스가 크게 위험하지는 않지만 그래도 초입은 산기슭이 가팔라 급한 숨을 내쉬어야 하는 곳이 적지 않다. 그렇게 30여 분 힘들게 올라 능선에 이르니 길이 유순해졌다. 비교적 평탄한 능선과 오르막이 반복된다. 길바닥에는 오랜 세월 쌓인 낙엽이 두툼하게 깔려 있어 발바닥에 와 닿는 감촉이 부드럽고 푹신했다. 무엇보다 딱딱하게 굳어 있는 육지의 산길과 달리 부드러운 흙길이어서 발걸음이 가벼웠다. 해안이 모두 검은색 화산암들로 구성된 울릉도에서 흙길은 예상치 않은 선물이었다.

양치식물인 고비가 성인봉으로 올라가는 길에 널려있다.

 

성인봉 등정의 매력은 울창한 숲과 그늘, 그리고 시원한 바람이다. 해발 600m 부근에는 희귀한 나무들이 군락을 이뤄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힐링이 된다. 나는 9월 1일 성인봉 등정길에서 만난 알싸하고 상큼한 그 바람을 잊을 수 없다. 좀처럼 경험할 수 없는 개운한 바람이었다. 하늘도 그렇게 맑을 수 없었다. 성인봉은 연평균 300일 정도 안개에 쌓여있다. 구름 한 점 없는 맑은날이라 해도 갑자기 해무가 몰려와 산정을 뒤덮는다. 그런데도 청명한 가을 하늘을 만났으니 행운이었다. 산길 곳곳에서 땅을 덮고 녹색의 카펫을 이루고 있는 고비나물 군락도 장관이었다.

성인봉 정상에서 바라본 북쪽 조망. 10시 방향 왼쪽이 미륵산~형제봉~송곳산으로 이어지는 능선이다.

 

들쑥날쑥한 외륜산과 움푹 꺼져 내린 분화구가 환상적 경관 연출

남들보다 늦은 3시간 만에 성인봉 정상에 오르니 멀리 북면 일대 풍경이 그림처럼 펼쳐진다. 더 멋진 풍경을 감상하려면 정상을 지나 조금만 내려가면 나오는 전망대에 서야 한다. 그곳에서는 산봉우리들이 불쑥불쑥 솟아올라 마치 키 큰 나무들처럼 총림(叢林)하는 것을 볼 수 있다. 성인봉을 중심으로 미륵산과 나리봉을 좌우로 잇는 들쑥날쑥한 외륜산과 그 가운데로 움푹 꺼져 내린 분화구가 환상적 경관을 연출한다.

성인봉 정상석

 

전망대에서 북쪽을 바라보면 멀리 말잔등과 간두산(천두산)이 보이고 그 능선을 따라 나리봉이 있다. 10시 방향 왼쪽으로는 미륵산~형제봉~송곳산으로 이어지는 능선과 그 오른쪽으로 알봉과 알봉분지가 통째로 눈에 들어온다. 아쉽게도 알봉분지 오른쪽에 있는 나리분지는 말잔등 능선에 가려 보이지 않는다. 북쪽 바다와 맞닿아 있는 뾰족한 봉우리는 송곳봉이다. 국내 최장인 400여m의 바위벽으로 울릉도 지형의 희귀성을 대변하는 상징적인 봉우리다.

나리분지 숲길 (출처 울릉군청)

 

성인봉에서 나리분지로 내려가려면 정상에서 왔던 길로 10여m 되돌아와 오른쪽 침목계단을 이용한다. 나리분지 주차장까지 거리는 약 4.5㎞다. 내리막에는 1500여 개의 데크 계단이 있어 나리분지에서 성인봉으로 올라가는 이들에겐 ‘공포의 계단’이다. 이 가파른 계단 길을 400m쯤 내려서면 성인정이라는 샘물이 있다.

샘터 조금 아래쪽 알봉전망대에 서면 아래는 온통 초록빛 원시림이다. 왼편으로 미륵산, 형제봉, 송곳산이 병풍처럼 둘러서 있고 알봉 오른쪽으로 나리분지가 평온하게 자리하고 있다. 계류를 따라 10여분 더 내려가면 신령수라는 샘터에서 맑은 샘물이 끊임없이 흘러내린다. 그곳에서 나리분지까지 이어지는 2㎞의 숲길은 평탄하고 호젓하고 운치가 좋아 무념무상으로 걷는데 적격이다. 들리는 거라고는 바람소리와 새소리뿐이다. 이곳에는 천연기념물 제52로 지정된 섬백리향과 울릉국화 그리고 많은 희귀 보호식물이 자생한다.

 

나리분지와 알봉분지는 화산폭발의 산물

나리분지는 울릉도가 생겨날 당시 강력한 화산폭발로 생긴 칼데라이다. 성인봉 역시 같은 폭발 때 생겨났다. 칼데라는 화산 폭발이 끝난 후 마그마가 빠져나와 생긴 지하의 빈 공간이 산 정상부의 무게를 이기지 못하고 꺼져서 생긴 넓은 함몰 분화구를 말한다. 알봉과 알봉분지는 나리분지에서 다시 화산이 폭발하고 용암이 분출해 형성되었다.

알봉을 경계선으로 북동쪽의 낮은 평탄지가 나리분지, 남서쪽의 높은 평탄지가 알봉분지다. 두 분지는 평균 경사도가 25도인 울릉도에서 드물게 평지를 이룬다. 특히 나리분지는 동서길이 1.5㎞, 남북길이 2㎞에 달하는 울릉도 최대 평지다. 해발고도는 350m로 성인봉과 630m 정도 차이가 난다. 행정지명은 나리동이다. 우리나라에서 칼데라는 백두산과 울릉도 두 곳뿐이다. 백두산 칼데라에는 천지가 칼데라호를 이루고 있고 울릉도 칼데라에는 나리분지와 알봉분지가 들어서 있다. 최근 한 연구결과에 따르면 약 2만 년 전까지만 해도 울릉도 칼데라에 백두산 천지처럼 물이 가득 차 있었다고 한다.

나리분지

 

나리분지는 조선 말기 울릉도 개척민들이 가장 큰 군락을 이뤘던 곳이다. 지금은 10여 가구만 거주하지만 개척 당시 이곳에는 90여 가구, 500여 명이 터를 잡고 살았다. 나리동에는 독특한 형태의 투막집과 너와집이 있다. 투막집은 통나무와 나무껍질로 지은, 방이 3칸 있는 집으로 육지에서 말하는 귀틀집이다. 옥수숫대나 억새로 지붕을 덮고 둘레를 촘촘하게 막았다. 너와집은 통나무로 집을 짓고 지붕을 너와로 이은 집이다. 현재 나리분지에 있는 너와집 1개소, 투막집 4개소는 도지정 문화재로 보호받고 있다.

나리분지 지도. 울릉군청 홈피에서

 

나리동은 개척자들이 섬말나리의 뿌리를 쪄 먹으며 목숨을 이었다는 눈물겨운 이름이다. 나리분지 이름도 여기에서 연유한다. 개척민들의 고생은 말이 아니었다. 특히 먹을거리가 마땅치 않았다. 다행히 울릉도에는 취나물, 부지깽이, 참나물, 명이 등 먹을 수 있는 나물이 지천이었다. 특히 긴 겨울을 지나고 나면 식량이 모두 떨어져 굶주림에 시달려야 했던 이른 봄, 잔설을 뚫고 솟아나는 명이는 반가운 생명줄이었다. 개척민들은 명이를 삶아먹고 명(命)을 이었다 해서 ‘명이’라고 이름을 붙였다. 나리분지는 울릉도에서 눈이 제일 많이 내려 울릉도의 물 저장고 역할도 하고 있다.

 

내수전 옛길과 해안산책로는 울릉도의 주요 산책길

울릉도 최고의 산책로는 일주도로 B코스인 북동쪽의 내수전 옛길이다. 남면 내수전 마을~북면 석포~섬목을 잇는 이 10리길(4.4㎞)은 빼어나게 아름다운 숲길이 자랑이다. 과거에는 북쪽 마을 사람들이 저동으로 넘어가 소금·쌀·옷가지 등 생필품을 구입한 뒤 집으로 돌아오는 생활길이었지만 지금은 빼곡하게 들어찬 울창한 숲을 걸으며 깎아지른 해안 절벽과 바다 풍경을 감상하는 산책로로 유명하다.

내수전 옛길 지도. 울릉군청 홈피에서

 

사람들의 손길이 닿지 않은 숲에는 고비나 관중 같은 양치식물이 빼곡하다. 야생화도 지천으로 피어 있다. 옛길 중간 지점 2㎞ 정도에 있는 정매화 계곡에서는 천연암반수보다 시원한 계류가 폭포수처럼 기운차게 흘러내린다. 무색, 무미, 무취의 물맛이 일품이다. 주변 해상에는 부속섬 죽도가 아름답다.

울릉도에서 또 하나 유명 산책길을 꼽으라면 도동항~행남등대~저동항으로 이어지는 해안산책로다. 내수전 옛길과 더불어 우리나라의 아름다운 주요 해안길로 꼽힌다. 이 길에서는 파도와 바람이 오랜 세월 다듬어놓은 울릉도의 용암을 지척에서 감상할 수 있다. 저녁 무렵이면 해안산책로를 따라 가로등에 불이 들어와 운치도 있다. 가파른 절벽이 해안을 이룬 이곳 특성상 그렇게 하지 않으면 길을 내기가 어렵기 때문에 대부분 인공적으로 만들어졌다.

현지 관광안내도에는 이 코스를 행남해안산책로와 촛대암해안산책로로 구분한다. 산책로 중간쯤에 행남등대가 있어 도동~행남등대(도동등대)까지는 행남 해안산책로, 저동에 촛대바위가 있어 행남등대에서 저동까지는 촛대암 해안산책로라고 구분했다. 도동항에서 행남등대를 지나 저동항 촛대바위까지 거리는 2.7㎞다. 도동항에서 해안산책길이 끝나는 마을 입구까지는 1.06㎞이고, 마을 입구에서 행남등대 오르는 길은 460여m다. 그곳에서 저동까지는 1.6㎞이다. 도동여객선 터미널에서 행담등대까지의 행남코스는 왕복 2시간, 저동 촛대바위 코스는 왕복 3시간 정도 걸린다. 행남등대는 절벽 꼭대기에 있고 460m를 들어갔다 다시 나와야 해서 그냥 지나치는 이들이 많지만 행남등대 전망대에서 본 저동항과 죽도는 쉽게 만날 수 없는 비경이므로 꼭 들러보는 것이 좋다.

행남해안 산책로

 

저동 쪽 해안 절벽에는 10번을 돌아야 아래로 내려갈 수 있는 꽈배기 다리가 있다. 높이가 53m나 되어 아찔하다. 도동항에서 출발하면 조금 가파르지만 덕분에 제법 산행의 묘미를 느낄 수 있다. 전체적으로 이정표가 잘 갖춰져 있어 길을 찾는 게 어렵지 않고 정비가 잘 되어 있어 위험하지도 않다. 다만 여름 한낮에는 땡볕이 심해 모자를 준비하고 물을 충분히 준비해야 한다.

 

내수전 일출전망대, 관음도, 예림원, 독도전망대, 봉래폭포, 촛대바위

울릉도 여행의 묘미 중 하나는 전망대에 올라 즐기는 파노라마 뷰다. 우뚝 솟은 봉우리와 경사지가 많은 울릉도엔 풍경을 감상하기 좋은 장소가 곳곳에 있다. 도동약수공원에서 케이블카를 타면 망향봉 정상의 독도전망대에 오른다. 드물지만 아주 맑은 날에는 92㎞ 거리의 독도가 보인다고 한다. 우리 가족이 전망대에 올라갔을 때 날이 쾌청하고 맑아 독도를 기대했으나 미세먼지 층 때문에 보이지 않았다. 전망대에서 내려다보는 도동항은 그럴싸했다. 도동항 주변 산세를 보고 있으니 연초록 일색인 스위스가 떠올랐다.

저동리 내수전 고개에서 주차를 하고 동백나무와 마가목 등이 우거진 시멘트 길을 지나 10여 분쯤 나무데크를 걸어올라가면 사방이 확 트인 전망대가 나온다. 해발 440m에 위치한 내수전 일출전망대다. 내수전은 조선 말기 울릉도 개척 시절 김내수란 사람이 밭을 일궈 붙여졌다. 전망대에 올라서면 넓게 뻗은 수평선이 보이고 너른 바다 위로 관음도, 죽도, 행남등대 등이 한눈에 들어온다. 멀리 저동항도 보인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먼저 해가 뜨는 독도 다음으로 빨리 일출을 볼 수 있다. 울릉도의 서쪽 끝 울릉도등대와 향목전망대도 빠질 수 없는 전망 포인트다.

내수전전망대에서 바라본 저동항

 

관음도는 울릉도의 부속 섬 중 하나로 독도와 죽도에 이어 세 번째로 크다. 깎아지른 듯한 현무암에 둘러싸여 사람 발길을 타지 않은 덕에 때묻지 않은 원시림을 간직하고 있다. 길이 140m, 높이 37m, 폭 3m의 섬목-관음도 보행전용 현수교가 놓이면서 관음도 곳곳을 걸어서 둘러볼 수 있게 되었다. 해안 절벽에 설치한 엘리베이터를 타고 7층까지 올라가면 보행전용 현수교 입구로 이어지는 산책길이 나온다. 바다 위를 건너는 다리는 아찔하다. 파란 현수교를 건너면 1㎞ 길이의 순환탐방로와 전망대, 휴게소 등이 있다. 천천히 길을 따라 걸으며 삼선암과 죽도 등 수려한 자연경관을 즐길 수 있다. 관음도 산책도 좋지만 관음도에서 바라보는 울릉도 풍경은 더 매혹적이다.

관음도(출처 경북도청 홈페이지)

 

예림원은 울릉도만의 특산식물이 있는 식물공원이자 국내 최초의 문자조각공원으로 북면 현포리 노인봉과 추산 송곳봉 중간 언덕 위에 있다. 문자조각공원은 문자를 나무에 새기고 다듬어 조형미와 생명력을 표현했다고 해서 붙여졌다. 약 3만3000㎡ 규모의 예림원을 둘러보는데 걸리는 시간은 1시간이다. 2007년 개장했다.

수령 300년 이상의 주목, 300~500년의 모과나무, 400년 훨씬 넘는 향나무 등 보기드문 분재와 울릉도 특산 자생식물이 야외에 전시되어 있다. 그중 단연 눈길을 끄는 것은 수령 1200년으로 추정되는 울릉도 최고령 주목나무와 수령 500년 된 울릉도 동백나무다. 이곳 나무 중 밤에 빛난다고 해서 이름 붙여진 섬개야광나무는 울릉도에서 자생하는 희귀수종으로 천연기념물 51호 멸종1급으로 지정되어 있다. 전망대에서는 일몰도 함께 감상할 수 있다. 노인봉 정상까지 산책로가 마련되어 있고 인공폭포도 3곳 있다.

독도전망대에서 내려다본 도동항

 

봉래폭포는 울릉도를 대표하는 폭포다. 저동항에서 2㎞ 상부에 위치한 3단 폭포로 울릉읍 주민의 상수원이다. 물이 콸콸 쏟아졌으나 육지와 달리 지하수에서 내려오는 폭포란다. 봉래폭포 가는 길엔 삼나무숲을 이용한 삼림욕장, 자연바람이 나오는 풍혈, 울릉도의 옛 가옥구조인 너와집 등이 있다. 울릉도의 다른 관광지에 비해서 비교적 잘 꾸며졌으나 육지의 관광지와 비교하면 심심하다.

일주도로를 따라 달리면 특이한 바위산만큼이나 바다 위에 솟은 바위섬이 자주 보인다. 태생이 화산섬인 울릉도 주위엔 화산 폭발로 만들어진 기이한 바위섬이 많다. 하나하나 모양도 다르고 저마다 간직한 이야기가 다른 만큼 찾아보는 재미가 쏠쏠하다. 저동항에는 오징어잡이 배가 정박해 있고 바닷쪽으로 촛대바위가 있다. 저동항을 수호신처럼 지키고 서 있는 일종의 망부석이다. 일출과 야경이 멋져 특히 저녁이면 주민들이 즐겨찾는다. 조업나간 아버지를 기다리다 돌로 굳어버린 효심 깊은 딸의 전설이 서려 있어 ‘효녀바위’라고도 한다.

저동항 촛대바위

 

독도새우, 따개비밥, 홍합밥

우리 가족이 울릉도에서 먹어본 특산음식은 독도새우, 따개비밥, 홍합밥이다. 독도새우는 서울 강남에서 유명하다는 집에서 먹은 것과는 모양이 달랐다. 서울 음식점에서 파는 독도새우가 경량급이라면 울릉도의 독도새우는 중량급이었고 색깔도 울릉도 것이 더 붉고 진했다.

따개비밥과 홍합밥은 울릉도만의 별미다. 따개비는 높이와 폭이 1㎝ 정도로 바닷가 바위에 붙어산다. 일명 삿갓조개라고도 한다. 따개비와 크고 잘생긴 홍합을 한 번 삶은 다음 참기름·간장을 넣고 볶다가 쌀을 넣고 각종 야채와 섞어 밥을 짓는다. 이렇게 지은 따개비밥이나 홍합밥에 양념장을 넣고 쓱쓱 비벼 먹으면 별미라고 하는데 사실 별미는 맛있다는 뜻이 아니라 기념으로 한번쯤 먹어보면 좋다는 의미다.

울릉도 관광을 하려면 저동항 부근에 숙소를 정하는 게 좋다. 저동이 도동보다는 넓고, 버스와 택시도 쉽게 이용할 수 있다. 그렇다고 도동이 엄청 불편한 것도 아니므로 도동이라고 잘못된 선택은 아니다. 우리 가족은 배로 섬 둘레를 한바퀴 도는 유람선 일주관광과 독도관광은 하지 않았다. 여느 섬에서와 다를 바 없는 풍경들을 감상하는 것일 뿐, 울릉도 특유의 아름다움과는 거리가 멀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독도관광을 포기한 것은 울릉도 관광만 하는데도 일정이 촉박하고 TV에서 오랫동안 많이 보아온 터라 호기심이 거의 발동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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