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타인의 마음속 스승은 당나라 고승 현장과 13세기의 마르코 폴로
마크 아우렐 스타인(1862~1943)은 중앙아시아 타클라마칸 사막 주변의 실크로드를 탐험하고 그곳에서 발굴된 다량의 고문서와 벽화들을 서방으로 가져간 탐험가이자 고고학자다. 그가 모두 8차례에 걸쳐 중앙아시아와 서아시아를 누비고 다닌 거리는 4만㎞나 된다. 이런 공로를 인정받아 “마르코 폴로 이래 가장 위대한 아시아 탐험가”라는 찬사를 들으며 영국 정부로부터는 작위를, 옥스퍼드대와 케임브리지대에서는 명예박사 학위를 받았다. 반면 중국으로부터는 “보물 사냥꾼”, “실크로드의 악마”라는 악명을 얻었다.
스타인은 헝가리 부다페스트의 유대인 집안에서 태어났다. 10살 때 독일로 유학을 떠나 빈대와 라이프치히대에서 서아시아와 중앙아시아 언어와 역사를 공부했다. 22세 때인 1884년 독일 튀빙겐대에서 박사학위를 받고 영국으로 유학을 떠나 옥스퍼드대와 대영박물관에서 동양의 고고학과 언어들을 연구했다. 그 결과 그리스어와 라틴어는 물론 산스크리트어, 영어, 페르시아어 등을 능숙하게 구사했다. 스타인이 평소 마음속 스승으로 삼은 인물은 두 사람이었다. 7세기 당나라 고승인 현장과 13세기의 마르코 폴로였다.
스타인은 1887년 말 증기선을 타고 개통된 지 얼마 안 된 수에즈운하를 거쳐 영국령 인도로 건너가 교육 행정에 종사하며 평생의 꿈인 탐험을 준비했다. 그리고 1900년 5월 31일, 인도 북서부에 위치한 스리나가르를 출발해 카라코람 산맥을 넘어 타클라마칸 사막으로 가는 위대한 탐험의 여정을 시작했다.
스타인은 인더스강 상류와 빙하를 건너 4,800m나 되는 험준한 봉우리를 넘었다. 그렇게 카슈가르를 지나 타클라마칸 사막 남쪽의 호탄에 당도한 것은 1900년 10월 2일이었다. 스타인은 고대 호탄국의 유적지들을 둘러본 뒤 호탄 지역이 기원을 전후한 시기에는 불교문화권이 아니라 인도문화권이었음을 밝혀냈다.
‘불굴의 탐험가’ 스벤 헤딘이 1895년 12월 호탄 북동쪽의 사막 속에서 발견한 신비의 오아시스 도시 ‘단단위리크’도 찾아가 발굴을 시작했다. 발굴 첫날부터 줄줄이 쏟아져 나온 고대 불교 법전, 프레스코 벽화, 고문서들을 통해 단단위리크의 사막화 시기를 8세기 말로 추정했다. 단단위리크에서 3주를 보낸 그는 1901년 1월 호탄에서 300㎞ 떨어진 니야를 거쳐 다시 북쪽으로 110㎞가량 떨어진 유적지로 갔다. 1월부터 2월까지 그곳을 집중 발굴한 결과 기원전 105년에 쓰인, 고대 인도 언어 카로슈티문자로 일상사를 기록한 목간(나무로 된 편지) 100여 점을 발견했다. 이 목간은 지금까지도 가장 오래된 인도 문서로 기록되어 있다.
스타인은 이렇게 발견한 다량의 유물을 싣고 인도로 가지 않고 바로 대륙을 횡단해 1901년 7월 런던으로 갔다. 스타인은 중앙아시아에서 수집한 유물들을 대영박물관에 기증하고 2000년 역사를 가진 실크로드의 문화적 가치를 서구 사회에 알리는 데 주력했다. 1903년 발표한 탐험보고서 ‘모래에 묻힌 유적’으로 일약 유명 인사가 되자 1904년 영국으로 귀화했다. 이후 스타인의 탐험 소식을 전해 들은 독일, 프랑스, 일본도 중앙아시아의 보물을 손에 넣기 위해 실크로드 탐험에 경쟁적으로 뛰어들었다.
스타인의 2차 탐험은 1906년 4월 20일 파키스탄 북서부의 페샤와르에서 시작되었다. 목표지는 스벤 헤딘이 1901년 타클라마칸 사막에서 발견한, 1500년 전의 고대 오아시스 도시 누란과 천불동으로 유명한 돈황이었다. 누란은 1901년 헤딘이 마지막으로 다녀간 이후 아무도 들르지 않아 황량했다. 스타인은 누란에서 중국어 공문서와 카로슈티 목간을 다량 찾아냈다.
“위대한 아시아 탐험가” vs. “실크로드의 악마”
스타인이 누란을 떠나 험난한 길을 뚫고 돈황에 도착한 것은 1907년 3월 12일이었다. 그의 돈황 도착은 훗날 한 중국인 학자가 “원한에 사무쳐 이가 갈릴 정도”라고 표현할 만큼 중국인의 증오를 불렀다. 스타인은 6월 13일 돈황 천불동의 관리인 왕원록을 만나 천불동 17번 석굴에 비밀의 문서고가 있음을 알아냈다.
역사상 가장 오래된 이 문서고에는 줄잡아 4만 5,000종의 불교 문서와 그림이 보관되어 있었다. 스타인은 천불동의 불화와 경전의 가치를 전혀 알지 못하는 왕원록에게 고작 130파운드를 주고 1만 3,000여 점의 고문서, 벽화, 경전 등을 구입했다. 그중에는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금강경 목판본(868년)도 들어 있었다. 패망을 앞둔 당시의 청나라 조정은 변경에서 일어나는 이런 일들까지 챙길 만한 여유가 없었다.
스타인은 투르판, 쿠차, 호탄을 거쳐 1908년 11월 인도의 스리나가르로 귀환해 2차 탐험을 끝냈다. 1차·2차 탐험을 거쳐 스타인이 가져간 문서는 온전한 것이 7,000여 권, 일부만 남아 있는 것이 6,000여 권에 달했다. 스타인은 2차 탐험에서 동상에 걸려 발가락 두 개를 잘라냈다.
스타인의 3차 탐험은 1913년 8월 1일 시작되었다. 카슈가르를 거쳐 누란 지역의 유적을 조사한 뒤 1914년 3월 돈황으로 가 또다시 헐값에 경전을 사고 카슈가르와 스리나가르를 거쳐 1916년 3월 런던으로 돌아갔다. 스타인은 3차례에 걸친 험난한 여정을 통해 만리장성의 서쪽 끝 관문(가욕관)을 역사상 처음 발견해 만리장성의 총길이를 연장시키고 실크로드를 왕래할 때 반드시 통과해야 하는 옥문관의 위치를 찾아냈다.
스타인은 소년 시절부터 마케도니아 왕국의 알렉산더 대왕을 흠모한 사람답게 알렉산더의 원정길도 밟았다. 알렉산더 대왕의 원정군이 치열한 전투를 벌인 여러 현장을 확인했고 80세에 떠난 페르시아 대사막을 가로지르는 생애 최후의 답사 때는 대왕이 페르시아로 퇴각하던 길을 따라 걸었다. 160㎝의 단구에 강건하고 뚝심이 센 스타인은 81세로 숨질 때까지 탐험이나 여행을 떠나지 않은 해가 없었다.
3차례에 걸친 실크로드 탐험 이후에도 모헨조다로 유적(1926), 인더스 문명 유적(1927), 중동의 고대 유적 조사(1928), 중앙아시아 탐험(1930~1931), 이란의 고고학적 조사(1932·1935·1938), 요르단 유적(1939) 등을 조사하며 고고학자로 명성을 떨치다 1943년 10월 26일 아프가니스탄 카불에서 눈을 감았다.
오늘날 서양은 스타인을 중국 연구에 크게 기여한 ‘고고학적 탐험가’로 추앙한다. “우리가 유물을 가져가지 않았으면 그 혼란스러운 상황에서 유물들이 온전했겠냐”는 서양인의 의식 저변에 깔린 논리는 이랬다. 지진이나 지역 유물 사냥꾼들의 위험이 상존하고 있고 1862년의 예에서 보듯 중국 서북 지역에서 일어난 무슬림의 반란으로 유물이 상당량 파괴된 적이 있으며 1921년 중국으로 도망친 수백 명의 백러시아 군인이 중국 관헌에 의해 6개월 동안 돈황에 강제 수용되었을 때 무료함을 달래기 위해 그림 위에 러시아 연대 번호를 갈겨 써 유물이 많이 훼손되었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중국인들은 2차대전 당시 연합국의 폭격으로 베를린에 있던 중앙아시아 유물이 겪은 피해가 도굴꾼과 농부, 그리고 관개수로 조성과 지진 등으로 인한 돈황의 피해보다 훨씬 크다며 “학자의 탈을 쓰고서 자신들의 역사를 강탈해간 파렴치한 투기꾼”이라고 비난한다.
☞돈황 석굴사원
돈황은 한대(漢代) 이래로 중국에서 서역으로 나가는 유일한 관문으로, 육로를 통하려면 반드시 이곳을 거쳐야 했다. ‘타오르는 횃불’이라는 뜻의 돈황은 중국에서 출발해 타클라마칸 사막의 첫 번째 오아시스를 만날 때까지 식량과 물을 공급받을 수 있는 마지막 장소였다. 장도를 떠나는 사람들에게는 무사안녕을 비는 기도처였고 서역에서 살아 돌아온 사람들에게는 가슴을 쓸어내리며 안도의 한숨을 내쉬는 휴게소였다. 여행자들은 실크로드로 떠나기에 앞서 혹여 만날지 모를 악귀들이나 위험을 피하기 위해 돈황에서 기도할 곳을 찾았고 이 목적으로 돈황시에서 남동쪽으로 25㎞ 떨어진 지점에 만들어진 게 ‘막고굴’이라 불린 석굴사원이다.
석굴은 366년 낙준이라는 승려가 수행을 시작하면서 처음 생겼다. 이후 1000여 년 동안 수도승이 모여들어 한때는 1,000여 개의 석굴이 생길 만큼 번성했으나 지금은 492개만 남아 있고 이 가운데서도 각종 고문서가 발견된 17호굴(장경동)이 가장 유명하다. 굴에서 발견된 벽화를 합하면 4만 5,000㎡, 불상만 1,400여 기나 된다. 실로 세계 최대의 노천박물관인 셈이다.
19세기 말, 사실상 방치되어 있는 돈황 석굴사원의 모래나 먼지를 치우며 일상을 보내는 왕원록이라는 승려가 있었다. 1900년 6월 22일, 석굴(16호) 벽 갈라진 틈이 갑자기 눈에 들어와 왕원록이 벽을 파들어갔다. 순간 900여 년 전 타임캡슐이 눈앞에 펼쳐졌다. 17호굴이 발견된 것이다. 사방이 3m 정도인 밀폐된 공간에는 오랜 세월 숨죽이며 살아온, 서기 4세기부터 11세기까지의 중국어, 산스크리트어, 위구르어 등으로 쓰인 각종 고문서와 그림 5만여 점이 빼곡히 들어차 있었다. 그러나 당시는 청 왕조가 존망의 기로에서 내외적으로 갈등을 벌이던 때라 누구도 변방 한구석의 석굴에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왕원록만이 사실상의 모든 관리권을 행사하며 수호자를 자처했다.
1907년 3월, 영국 탐험가 마크 아우렐 스타인이 이곳에 첫발을 내디뎠다. 스타인은 돈이 궁한 왕원록을 130파운드로 꼬드겨 석굴 속에서 1만 3,000여 점의 유물을 빼내 영국 대영박물관으로 옮겼다. 1년 뒤 프랑스의 동양학자 폴 펠리오도 왕원록에게 90파운드를 주고 다량의 문헌더미를 프랑스로 빼냈다. 신라승 혜초의 ‘왕오천축국전’도 이때 프랑스로 쓸려 나갔다. 펠리오는 프랑스로 가져갈 수 없는 것은 수백 장의 흑백필름에 담아 훗날 6권의 사진집을 출판했다. 사진 속에 실린 유물들은 훗날 모두 사라지고 없어져 이 전집은 오늘날 돈황의 벽화와 조상들에 대한 귀중한 자료로 남아 있다.
이후에도 ‘오타니 컬렉션’으로 유명한 일본의 오타니 탐험대가 1912년 600여 점의 경전을 가져갔고, 미국의 랜드 워너는 1923년 다른 석굴에서 12폭의 벽화를 떼 내 미국으로 실어갔다. 중국 정부에 의해 유물 유출이 금지된 1930년대에 유물이 북경으로 옮겨지는 중에도 상당량이 감쪽같이 사라졌다. 이 방대한 중앙아시아 유물들은 최소 13개국 30군데의 박물관 등에 흩어져 보관되어 있다. ‘오타니 컬렉션’의 일부를 보관하고 있는 우리나라도 그 가운데 하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