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암릉구간에서 내려다 본 의암호와 붕어섬
☞ 내맘대로 평점(★5개 만점). 등산요소 ★★★ 관광요소 ★★★
☞ 7~8㎞에 6~7시간
☞ 의암매표소~용화봉(정상)~흥국사~청운봉~등선봉~강촌교
by 김지지
2023년 5월 7일 홀로 춘천의 삼악산을 다녀왔다. 의암매표소에서 출발해 용화봉 정상과 흥국사를 지나고 등선봉을 거쳐 강촌교로 하산했다.
■삼악산과 주요 산행 코스
삼악산(654m)은 춘천 의암댐 서쪽 옆에 위치한 100대 명산이다. 용화봉(654m)·청운봉(546m)·등선봉(632m)이 강옆에 우뚝 솟아있어 ‘삼악산(三岳山’이다. ‘악(岳)’자 때문에 설악산, 월악산, 운악산 등처럼 “악!” 소리가 날 것 같지만 그 정도는 아니다.
삼악산 매력의 으뜸은 암릉이나 정상에서 바라보는 의암호와 북한강 줄기, 첩첩산중 산그리메와 춘천시의 조망이다. 의암호는 1967년 의암댐이 생기면서 조성된 인공호로 춘천을 ‘호반의 도시’로 만든 주인공이다. 둘째는 수억년 세월 동안 비바람과 물길이 빚어 놓은 기암괴석과 협곡, 그리고 크고 작은 폭포들 덕분에 아기자기한 산행을 즐길 수 있다는 점이다. 셋째는 접근성이 용이하다는 점이다. 경춘가도(46번 국도)에서 곧바로 산행하거나 ITX 청춘열차 혹은 경춘선을 타고 강촌역에서 내려 버스를 갈아타고 서너 정거장이면 바로 들머리다.
삼악산에는 1922년 지금의 북한강 줄기를 따라 만들어진 비포장 신작로가 생겨나기 전까지는 춘천에서 서울로 오가는 옛길이 있었다. 지금도 옛길 흔적이 곳곳에 남아 있다. 특히 석파령은 신작로가 생기기 전 서울과 춘천 사이 유일한 육로로, 서울에서 춘천으로 부임하던 전·현직 부사가 상견례를 하던 곳이다. 그래서 삼악산은 오래전부터 ‘춘천의 대문’으로 불렸다.
산행의 주요 들머리는 등선폭포매표소, 의암매표소, 강촌교 북단 등 세 곳이다. 이 가운데 강촌교 북단 서쪽 200m 지점에서 시작되는 등선봉∼청운봉∼용화봉(정상) 구간은 이용하는 등산객이 드물다. 조망이 없는 급경사에 위험한 암릉 구간과 부실한 안내판 때문이다. 이번에 다녀와 보니 보통 수준의 단독 초행자에게는 비추다.
의암매표소에서 정상까지 거리는 급경사의 암릉 구간 1㎞를 포함해 2㎞다. 암릉에서 조망되는 의암호와 북한강의 풍광이 감탄사를 자아낸다. 등선폭포매표소 출발 코스(3㎞)는 오름길이 순하고 기암괴석과 협곡과 폭포들을 볼 수 있어 상대적으로 더 인기가 있다. 전체적으로 의암매표소~정상~등선폭포매표소 구간은 5㎞ 거리에 3~4시간 소요된다.
■교통편
삼악산 접근 교통편은 승용차나 열차다. 전철은 ITX-청춘열차와 경춘선이 있고 승용차는 등선폭포매표소 옆에 주차장이 있다. 의암매표소에도 주차장이 있으나 주차공간이 7~8대에 불과해 좀처럼 자리가 나지 않는다. 결국 등선폭포 주차장에 주차하고 의암매표소까지 걸어가거나 버스를 타고 가야 한다. 두 매표소 사이 도보 시간은 20분 정도다. 열차를 타고 갈 경우 강촌역에서 내려 버스를 갈아타고 서너 정거장을 거쳐 삼악산으로 이동한다. 버스는 강촌역 바로 앞에 있다. 운행 버스는 4개 노선이 있는데 매 시간 대에 두 세 대가 강촌역을 경유한다. 모두 삼악산의 중요 기점인 등선폭포와 의암매표소 부근을 지난다. 버스를 타면 강촌역에서 등선폭포매표소와 의암매표소까지는 각각 10분, 15분 정도 걸린다. 다만 버스 안에 적혀있는 정류장 명칭과 매표소 명칭이 달라 운전기사에게 물어보는 것이 좋다.
■나의 산행 코스
▲의암매표소~정상(용화봉)~흥국사
나는 의암매표소를 들머리로, 등선폭포를 날머리로 삼았다. 올라갈 때는 급경사여도 하산길이 완만한 게 부담이 적다는 판단에서다. 하지만 예정에 없는 청운봉과 등선봉까지 올라가면서 시간과 거리가 늘어났다. 의암매표소로 가려면 강촌역에서 버스를 타고 의암댐 건너기 전 삼악산 정류장(신연교 앞)에서 내려 의암호(북한강)를 끼고 200~300미터를 걸어가면 된다. 등선매표소와 의암매표소 모두 2000원의 입장료를 받고 그 자리에서 춘천사랑상품권으로 바꿔주므로 사실상 입장료가 없는 셈이다. 춘천사랑상품권은 춘천 내 어디에서든 사용할 수 있다.
의암매표소에서 정상(용화봉)까지 거리는 2㎞다. 의암매표소 옆 데크계단을 5분 정도 오르면 흰색의 삼악산장이 보인다. 1960년대 박정희 전 대통령의 별장으로 지어진 건물이라는데 사실 여부는 확인하지 못했다. 폐쇄된 거 같은데 비교적 깔끔한 것을 보면 방치한 것도 아니다. 지금은 무슨 용도일까 궁금했으나 물어볼 데가 없다.
삼악산장을 지나 20분 정도 오르니 상원사다. 요사채가 외관상으로는 최근에 지어진 건물이어서 궁금증이 발동하지 않는다. 상원사에서 10분 정도 오르면 깔딱고개다. 매표소에서는 1㎞ 지점이고 앞으로 가야할 정상(용화봉)까지도 1㎞다. 깔딱고개부터 8부 능선까지는 의암호를 내려다보며 등반하는 급경사 암벽 구간이다. 두손두발을 사용해야 하는 이른바 사족보행의 암릉구간도 있지만 위험하기 보다는 스릴이 느껴진다. 철봉, 철제 디딤판, 철제 와이어, 철계단 등이 안전판 역할을 해 눈비가 오지 않는 한 위험하지는 않다. 고도가 높아질수록 의암호와 연을 맺고 있는 붕어섬, 레고랜드, 케이블카가 그림처럼 펼쳐지고 숲에 가려있던 의암댐이 윤곽을 드러낸다.
탁 트인 조망, 전국 어느 산에 견줘도 밀리지 않아
깔딱고개에서 1시간 정도 오르면 정상 200미터 전에 세워놓은 데크전망대다. 전망대를 세우기 전까지는 동봉으로 불렸다. 전망대에서 바라보는 탁 트인 경관은 전국 어느 산에 견줘도 밀리지 않는다. 산과 강이 춘천시내와 어우러져 있어 춘천이 호반의 도시라는 사실을 새삼 일깨워준다. 전망대 조망은 곧 오르게 될 정상(용화봉)보다 낫다. 춘천시, 붕어섬, 레고랜드는 식별할 수 있으나 멀리 소양댐, 오봉산, 사명산, 용화산은 윤곽이 흐릿한데다 위치 정보가 없어 그러려니 한다. 전망대에서 5분 거리에 정상인 용화봉(654m)이 있다. 그곳에서 북쪽을 바라보면 강원도 깊은 산골에서나 볼 수 있는 첩첩산중이다. 정상 안내판에 의암매표소 2㎞, 등선폭포 3.2㎞, 삼악산성 0.8㎞, 청운봉 1㎞로 적혀 있다.
정상에서 간단하게 요기를 하고 하산한다. 다소 가파른 내리막길이 한동안 이어지다가 곧이어 넓고 평평한 ‘큰초원’이 나타나고 쭉쭉 뻗은 나무들 사이로 부드럽고 멋진 흙길이 펼쳐진다. 저절로 걷는 속도가 빨라진다. 정상에서 20분 정도 내려가니 333개 계단이다. 계단을 내려가 다시 평온한 능선길을 걸으면 또 다시 쉼터가 있는 넓은 공터가 나타나는데, ‘작은초원’이다. 작은초원 이정표를 지나면 계곡 건너 숲속에 흥국사가 있다. 흥국사에서 등선폭포 하산길은 삼악산 산행길의 백미다. 흥국사에서 등선폭포까지 2㎞를 걸어내려가는데 1시간 남짓 소요된다. 등선폭포 길은 수억년 동안 비바람과 물길이 빚어 놓은 기암괴석과 협곡, 그리고 크고 작은 폭포들의 세상이다.
▲흥국사~청운봉~등선봉~강촌교
흥국사에는 후삼국시대에 세운 탑으로 전해지는 삼층석탑이 있다. 탑의 전체 높이는 1.34m 정도이며 부근에 산재해 있던 탑의 부재들을 모아 다시 세운 것으로 흥국사의 창건시기와 함께 하는 유서깊은 석탑이다.
흥국사를 둘러보는데 한 부부 등산객이 스님께 등선봉 길을 묻는다. 순간 청운봉과 등선봉이 궁금해졌다. 예약한 귀경 열차 시간이 많이 남아 있고 1㎞ 거리의 등선폭포로 바로 내려가려니 힘이 남아 산행을 여기서 끝내는 게 아쉽게 느껴졌다. 청운봉은 용화봉에서 능선을 타고 바로 이어지지만 지금 나는 용화봉에서 한참 내려간 흥국사에 있다. 삼악산 봉우리 종주는 해발고도가 100m 정도인 의암매표소에서 500m 정도를 올라가 용화봉에 오른 뒤, 능선을 타고 청운봉, 대궐봉, 등선봉 등 해발 500~650m를 오르내려야 하므로 체력 소모가 적지 않다. 더구나 나는 용화봉에서 능선을 타고 청운봉을 지나는 것이 아니라 용화봉에서 흥국사(해발고도 300m)로 내려와 다시 청운봉으로 올라가는 것이므로 조금 더 힘들 것이다. 그래도 청운봉과 등선봉이 궁금하니 어쩔 수 없다. 스님께 물어보니 흥국사를 바라볼 때 대웅전 왼쪽 뒤로 청운봉 오르막길이 있다고 한다.
흥국사에서 대웅전 뒤로 10분 정도 흙길을 걸어올라가니 삼악산 성지(城址)가 나온다. 용화봉 정상에서 서쪽 청운봉~등선봉 방향으로 뻗은 능선을 따라 축성한 고성지(古城地)인데 두 가지 설이 있다. 하나는 삼국시대 이전 맥국(貊國)의 성터라는 주장이다. ‘맥국’은 예·한과 더불어 삼국시대 이전 한반도를 차지하고 있던 부족국가였다. 또 하나는 신라 경명왕 2년(918년)에 태봉국의 궁예가 왕건에게 패해 패잔군졸들과 함께 피신처로 삼기위해 쌓았다는 주장이다. 청운봉 아래 성지(城址) 설명에 따르면 이 산성은 춘천에서 서울로 가는 교통로였던 삼악산의 석파령을 내려다보는 요충지에 동서로 길게 축성하고 현재는 5㎞ 정도의 산성이 남아있다고 한다. 실제로 걸어보니 산성이 제법 길다. 과거 산성에 최근 조성한 산성이 섞여 있다. 삼악산 성지에서 청운봉까지 능선길은 0.5㎞이고 뒤로 용화봉까지는 0.7㎞다. 삼악산 성지에서 25분 정도 거리의 청운봉(546m)까지 길은 성벽 위를 걷는 길이다.
등선봉 방향 표시가 없어 초행자들은 살짝 헷갈려
청운봉은 별도의 정상석 없이 최근 누군가 쌓아놓은 돌무더기 모습을 하고 있다. 안내판을 보니 청운봉에서 뒤의 용화봉까지는 1.2㎞, 날머리인 강촌까지는 3.7㎞ 거리다. 그런데 정작 중요한 등선봉 방향은 안내하지 않고 있다. 물론 지도를 보면 청운봉과 강촌 사이에 등선봉이 있다는 것은 알 수 있다. 하지만 지도를 준비하지 못한 등선봉 초행자들은 순간 당황하게 된다.
청운봉에서 앞 봉우리로 가기 위해 급경사길을 한참 내려가니 솔밭이다. 그곳에서 평지길 15분 정도를 걸어가면 삼거리다. 등선봉(직진) 0.8㎞, 흥국사(왼쪽) 0.7㎞를 알려주는 안내판을 보니 바로 앞을 가로막고 있는 봉우리로 오르는 게 힘들 것 같아 포기하고 그냥 흥국사로 내려갈까 하다가 흥국사로 가려해도 한참을 내려가야 하고 또 평지길 10여분을 걷는 동안 다시 힘이 생겨 등선봉에 오르기로 작심했다. 개그맨 이휘재 식 “그래 결심했어!”다.
오름길이 급경사여서 다소 힘이 들지만 등선봉이려니 생각하고 용을 쓰며 올라갔다. 중간 쯤에서 하늘을 향해 힘차게 뻗어있는 두 그루의 낙락장송한테서 힘을 받아 봉우리 정상까지 올라가니 20분이 걸렸다. 그런데 웬걸 있어야 할 등선봉은 없고 <대궐봉 619>이라고 써놓은 양철판(혹은 플라스틱)만 나무 위에 걸려있는게 아닌가. 대궐봉에도 흥국사 방향(1㎞) 표시만 있고 등선봉 방향 표시가 없어 살짝 헷갈린다. 더구나 흥국사부터 한 명도 만나지 않고 힘들게 혼자 걷고 있어 살짝 불안하기까지 했다. 그때 대궐봉에 구세주가 나타났으니 6~7명의 산행팀을 이끌고 있는 산악대장이었다. 그의 도움으로 이후 등선봉~강촌교 코스는 별 시행착오 없이 진행되었다. 이 글을 통해 그 산악대장에게 감사를 전한다.
급경사 암릉 구간이지만 위험하진 않아
대궐봉에서 등선봉(632m)까지 30분 거리의 능선길을 걷다보면 최근 다시 쌓은 듯 반듯반듯한 산성이 여기저기 보인다. 주위를 둘러보면 첩첩산중 모습이다. 등선봉을 지난 뒤에는 드문드문 북한강 줄기가 내려다보인다. 등선봉에서 15분 정도 지나니 멋진 조망바위가 앞을 가로막고 있고 바위 위에는 오래전 고사한 소나무가 온갖 풍상을 정면으로 맞고 있다. 바위 위에 올라서자 우뚝 솟아오른 삼악좌봉(570m)이 또다시 길을 막고 있다. 멀리 왼쪽 아래로는 북한강이 유유히 흐르고 그 너머로 강촌역이 비로소 내려다보인다.
조망바위에서 삼악좌봉을 지나는 구간은 추락주의 안내판이 세워져 있을 정도로 위험해 보이는 급경사 암릉이다. 물론 이곳에도 철제 발디딤판과 밧줄이 있어 주의하면 위험하지는 않다. 이곳의 바위는 규암이라는데 백설기처럼 흰색 바탕에 검은콩이나 건포도같은 점들이 박혀있다. 윤기까지 있어 신기한 마음에 만져본다. 삼악좌봉에서 급경사 암릉구간을 30분 정도 내려가니 급경사 흙길이 시작된다. 그저 그런 수목에 가려 조망은 없고 지겹기만한 급경사 길을 50분 정도 내려가서야 강촌교와 가까운 하산 기점을 만나는데 도로변 철조망에 뚫어놓은 틈새가 날머리다. 지저분하고 관리도 안되어 있어 이곳이 산행기점인가 싶을 정도다. 의암매표소를 출발한 시간이 오전 10시 30분이고 날머리에 도착한 시간이 오후 5시 10분이니 총 6시간 40분 걸렸다. 다른 블로그와 비교하면 빠르지도 늦지도 않다.
정확치 않은 현지의 산행 안내판을 기준하면 의암매표소 (2.0㎞) 용화봉 (1.1㎞) 청운봉 (1.9㎞) 등선봉 (1.8㎞) 강촌이니 총거리는 6.8㎞다. 용화봉에서 청운봉으로 직행하지 않고 흥국사로 내려갔다가 올라갔으므로 거리를 추가하면 7㎞ 이상이다. 강촌교 끄트머리인 강촌삼거리에서도 강촌역으로 가려면 다시 아스팔트길을 1.5㎞ 더 걸어야 한다.
▲청운봉~등선봉 총평
청운동과 등선봉은 사람들이 잘 다니진 않지만 산과 강이 내려다보이는 능선 조망은 빼어나다. 문제는 산행기점에서 등선봉 전 삼악좌봉까지 길이 급경사에 조망이 없어 가성비가 떨어진다는 점이다. 단독 산행이어서 좀 빨리 걸은 것도 있지만 산행 후 1주일 정도는 무릎에 약간 무리가 왔다. 혹자는 등선봉이 삼악산 정상인 용화봉과 높이가 비슷하고 오르내리막 내내 삼악산성이라는 역사의 흔적과 암릉이 어우러져 산길 걷는 재미가 삼악산의 다른 산길보다 윗길이라고 하지만 실제 이번에 걸어보니 당분간 다시 찾고 싶다는 생각은 들지 않는다. 자고로 명산이라면 또 찾아오게 해야 하는데 등선봉 코스는 한 번이면 족하다.
등선봉한테는 미안한테 등선폭포~용화봉~의암매표소 코스를 다 경험한 뒤 오르면 모를까 다른 구간을 놔두고 등선봉을 먼저 산행하는 것은 추천하고 싶지 않다. 등산객을 끌어들이려면 강촌교 들머리부터 삼악좌봉까지는 데크를 설치해야 한다. 역설적으로 이번 산행의 성과 중 하나가 “등선봉 가지말라”를 확인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