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세기 이야기

강수연 베니스 국제영화제에서 한국인 첫 여우주연상 수상

↑ 강수연이 열연한 영화 ‘씨받이’의 한 장면

 

잘 놀다가도 카메라 앞에만 서면 금세 눈물을 흘릴 줄 아는 타고난 배우

강수연(1966~2022)은 유아 시절부터 “예쁘고 깜찍하고 당돌한 아이” 소리를 들으며 연기 인생을 시작했다. 잘 놀다가도 카메라 앞에만 서면 금세 눈물을 흘릴 줄 아는 타고난 배우였다. 충무로에 아역배우가 몇 명 없어 강수연은 어려서부터 많은 작품에 출연했다. 초등학교에 입학해서도 학교 수업이 끝나면 바로 촬영 현장으로 향하는 날이 다반사였다. “고등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일요일을 편하게 쉬었던 게 딱 두 번이었다”고 회상할 만큼 강수연은 학창 시절을 정신없이 보냈다. 길거리 캐스팅으로 5살 이전에도 TV에 출연한 적이 있지만 공식 데뷔작은 5살 때인 1971년 TBC TV에서 방송한 어린이드라마 ‘똘똘이의 모험’으로 기록되어 있다.

10대 초반 강수연은 ‘별 3형제’(1977), ‘비둘기의 합창’(1978), ‘슬픔은 이제 그만’(1978), ‘하늘나라에서 온 편지’(1979) 등의 작품에서 꿋꿋이 살아가는 어린이들의 감동적인 삶을 주로 연기했다. 어려서부터 연기를 해서 그런지 사춘기 소녀 때도 제 나이보다 성숙한 처녀 역을 더 많이 맡았다. 중학교 3학년 때는 TV 드라마 ‘달무리’(1981)에서 가발을 쓰고 숙녀 역을 천연덕스럽게 연기하고, 여고 2학년 때는 영화 ‘약속한 여자’(1983)에서 23세의 여인 역을 능숙하게 소화했다. 10대 후반에 출연한 KBS 청소년 드라마 ‘고교생 일기’(1983~1986)에서는 손창민과 더불어 당대의 하이틴 스타가 되어 큰 인기를 누렸다. 영화 ‘고래사냥2’(1985)에서는 발랄한 청순미를 과시하고, 20대 초반의 ‘미미와 철수의 청춘 스케치’(1987)에서는 티없이 밝고 명랑한 모습을 연기했다.

‘고래사냥2’를 촬영할 때는 수영을 못하면서도 원효대교에서 한강으로 5번이나 떨어지는 프로다운 면모를 보였다. ‘고래사냥2’의 배창호 감독은 이런 강수연을 가리켜 “깡다구가 있고 열성적”이라고 했고, ‘미미와 철수의 청춘 스케치’의 이규형 감독은 “집념이 강한 연기자”라고 평했다. 영화배우 안성기는 “옛날에 태어났으면 무당이 되었을 만큼 끼가 많은 배우”라며 천생 배우임을 인정했다. 연기를 위해서라면 온 집념을 불사르는 악바리 근성은 나중에 ‘아제아제 바라아제’(1989)를 촬영할 때도 발휘되어 비구니 역을 소화하기 위해 머리를 삭발하고 촬영 기간 내내 로케이션 장소인 전남 순천 선암사 근처에서 숙식할 정도였다.

 

“옛날에 태어났으면 무당이 되었을 만큼 끼가 많은 배우”

1987년에는 한 해 동안 ‘미미와 철수의 청춘 스케치’, ‘연산군’, ‘감자’, ‘우리는 지금 제네바로 간다’, ‘됴화’, ‘씨받이’ 등 무려 6편의 영화에 출연해 자신의 전성시대를 펼쳐보였다. 송영수 감독의 ‘우리는 지금 제네바로 간다’(1987)에서는 고단한 인생역정을 살아가는 창녀 순나 역을 맡아 제26회 대종상 여우주연상을 꿰찼다.

강수연이 국제적으로 ’사고‘를 친 것도 1987년이었다. 9월 9일 폐막된 베니스 국제영화제에서 임권택 감독의 ‘씨받이’로 여우주연상을 수상한 것이다. 세계 3대 영화제에서 한국인이 부문상을 따낸 것도 초유였지만 동양권의 여배우가 수상한 것도 강수연이 처음이었다. 그의 수상은 세계영화계의 흐름과는 무관한 변방으로 여겨져 왔던 한국영화의 국제적 인식을 바꾸는 일대 전환점이었다. 강수연의 수상 이후 많은 영화인이 국제영화제에서 좋은 결과를 내고 한국 영화의 인지도가 넓어졌다는 점에서 강수연의 수상은 한국 영화사에 길이 기록될 중대 ‘사건’이기도 했다.

양반집에 대리모로 팔려간 나이 어린 산골 소녀의 비극적 운명을 그린 ‘씨받이’에서 강수연은 경험도 없는 출산 장면을 실제 이상으로 연기해 역시 강수연답다는 평을 들었다. 그러나 이런 평을 듣기까지 강수연은 출산 장면이 나오는 비디오테이프를 10편 이상 보고 산부인과 의사에게 특별 자문까지 할 정도로 노력에 노력을 거듭했다. 한 장면에서의 연기를 다섯 가지 이상 준비해와 감독을 감동시키는 배우도 강수연이었다. 베니스 국제영화제 현지 시사회에서 ‘씨받이’를 보고 일제히 기립한 1500여 명의 관객은 6분간이나 박수를 치며 애정을 보여주었다. 유럽의 언론들은 “침체된 베니스 영화제에 새 바람을 일으켰다”며 임권택 감독을 “새 세대의 감독 중 가장 재능 있는 연출가”로 치켜세웠다.

그런데 강수연은 시사회에 있지 않았다. 한국 영화의 해외 업무를 관장하는 영화진흥공사로부터 영화제에 참석하겠느냐는 제안을 받지 못한 게 이유였다. 영화진흥공사를 향해 뭐라고 할 수도 없는 것이 ‘씨받이’는 그해 3월 21일 서울 명보극장에서 개봉되어 1만 7000명의 관객밖에 모으지 못한 그저 그런 영화의 하나로 치부되었기 때문이다. 수상을 예상하는 게 오히려 이상할 정도였다. ‘씨받이’의 흥행 부진을 두고 임권택 감독은 “관객이 저속한 영화로 받아들인 것 같다”며 서운함을 드러냈지만 영화계에서 작품성과 흥행성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는 일이 여간해서 쉽지 않다는 점을 다시 한 번 확인시켜주었다. 영화평론가들은 국내에서 참패한 영화가 국제영화제에서 호평을 받은 것에 대해 “현대에 식상한 서구인들에게 동양의 신비를 안겨주고 강수연의 천부적 소질, 청순한 매력, 강한 집념이 높은 평가를 받은 것”이라고 분석했다.

강수연은 ‘씨받이’에 이어 1989년 7월 18일 공산권 최고였던 모스크바 영화제에서도 임권택 감독의 ‘아제 아제 바라아제’로 다시 한 번 여우주연상을 수상해 ‘월드 스타’ 자리를 굳게 지켰다. 그럼에도 국내에서는 강수연이 출연한 영화 대부분이 크게 히트하지 못해 강수연을 ‘국내 최고의 배우’라고 하기에는 뭔가 허전한 구석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류승완 감독의 ‘베테랑’(2015)의 대사로 유행어가 된 “우리가 돈이 없지 가오가 없냐”는 류승완 감독이 무명시절 술자리에서 강수연으로부터 들은 말을 기억해두었다가 쓴 대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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