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세기 이야기

美 잭 케보키언의 안락사 논란… 자신이 발명한 ‘자살 기계’로 중병 환자 130여 명 자살 도와줘

↑ 미 타임지 커버 스토리(1993.5.31)로 소개된 잭 케보키언

 

“환자들이 편안히 숨을 거두게 하는 것도 의사로서 중요한 의무”

잭 케보키언(1928~2011)은 “환자들이 편안히 숨을 거두게 하는 것도 의사로서 중요한 의무”라며 1990년부터 8년간 그가 발명한 ‘자살 기계’로 중병에 걸린 환자 130여 명의 자살을 도와주었다. 이 때문에 의사 면허증을 박탈당하고 6차례 기소되어 4차례 법정에 섰다. 시한부 환자가 고통에 울부짖는 비디오를 상영하고 “안락사가 최선의 선택이었다”라는 환자 유족들의 증언 덕에 3차례는 무죄 평결을 받고 1차례는 배심원단의 의견 불일치 판정을 받아 무혐의 처리되었다.

그러나 미국 미시간주에서 루게릭병을 앓고 있던 환자의 동의 하에 1998년 9월 17일 치사량의 독극물을 직접 주사해 숨지게 하고 이 장면이 담긴 비디오테이프가 그해 11월 22일 CBS 방송의 ‘60분’에 방영되면서 더 이상 법망을 피해갈 수 없었다. 1급 살인죄로 기소될 처지에 놓였는데도 케보키언은 “안락사 문제를 법정에서 논의하는 기회를 만들기 위해 검찰이 자신을 기소하기 바란다”고 말하며 평소의 주장을 굽히지 않았다. 미시간주 오클랜드 법원은 1999년 4월 13일 케보키언에게 2급 살인혐의를 적용해 10~25년의 징역형을 선고했다. 케보키언은 8년 6개월간 복역하다가 2007년 6월 건강 이상으로 가석방되었다.

케보키언은 미시간대 의대 재학 시절부터 “사형수들에게 마취제로 사형당할 수 있는 선택권을 주어 이들의 시신을 의료 해부용으로 사용하고 장기를 활용하자”며 일찍부터 죽음 방식에 관해 관심이 많았다. 하지만 1952년 의과대를 졸업한 뒤에는 죽음에 대한 관심을 접고 병리학자로 생활하거나 예술 활동에 몰두했다. 그러던 중 1984년 사형 집행이 늘어나자 “사형수들에게 죽음의 방법을 선택할 수 있는 권리를 주어야 한다”고 다시 주장하기 시작했다. 1987년에는 네덜란드로 건너가 안락사에 대해 연구하고 1년 뒤 돌아와 안락사 전도사로 나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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