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세기 이야기

63빌딩 개관

 

 

2007년 대한건설협회가 국내 토목·건축 전문가 1,000여 명에게 ‘한국의 건설산업 60년을 대표하는 부문별 10대 건설’을 물었다. 토목 분야에서는 경부고속도로가 1위로 선정되고, 경부고속철도와 인천국제공항이 2위와 3위를 차지했다. 해외 분야에서는 리비아 대수로공사가 1위로 뽑혔으며, 아랍에미리트의 버즈두바이(현 부르즈 칼리파)와 사우디의 주베일 산업항이 각각 2위와 3위에 랭크되었다. 건축 분야에서 1위는 여의도 63빌딩이 무역센터와 예술의전당 등을 제치고 영예의 주인공으로 선정되었다.

63빌딩은 1980년 2월 19일 기공했다. 미국의 유명 설계회사인 ‘스키드모어, 오잉스 앤드 메릴(SOM)’이 설계하고 국내에서는 건축가 박춘명이 외관 설계를, 이리형 한양대 교수가 구조설계를 각각 맡았다. 위로 갈수록 좁아지는 날씬한 세련미를 부각하고 한강변 어디에서나 보이도록 설계했다.

시공사인 신동아건설은 육상 건물로는 우리나라에서 처음 시도해보는 교량건축용 피어(PIER) 공법으로 지반을 다져 토목·건축 전문가들의 주목을 끌었다. 건물 위치가 모래가 많은 한강변이었기 때문에 시공사는 모래를 45m나 파 내려가 찾은 암반 위에 콘크리트 말뚝 240여 개를 박고 지반을 다졌다. 초속 40m의 강풍과 진도 7도 이상의 지진에도 견딜 수 있도록 건물 맨 꼭대기층은 좌우 30㎝까지 흔들리도록 설계했다. 1만 3516장의 황금 유리창으로 건물 외부를 둘러쌌고, 유리창은 태양의 각도에 따라 은색, 노란색, 황금색, 적색 등의 각기 다른 빛깔로 보이도록 설계해 눈길을 끌었다. 건물 면적도 당시 가장 넓다는 대우빌딩보다 넓었고 공사비도 국내 건축사상 최고액을 기록했다.

 

여전히 서울의 랜드마크이면서 마천루의 상징

빌딩은 1985년 5월 30일 준공하고 7월 27일 개관했다. 높이(249.6m)가 당시 아시아 최고층 빌딩이었던 일본 도쿄의 ‘선샤인 60’(239.7m)보다 10m나 높아 분야마다 ‘아시아 1위’를 갈망하는 한국인에게 자부심을 안겨주었다. 1987년 싱가포르에 ‘원 래플스 플레이스’(281m)가 세워질 때까지 아시아에서 가장 높은 빌딩에 랭크되었다.

고층빌딩이라고는 1970년에 세워진 삼일빌딩(31층·114m)이 고작이었을 때에 갑자기 2배나 높은 빌딩이 솟아오르자 전국적으로 화제를 불러일으켰다. 63빌딩은 황금색을 연상시키는 외관으로 개관 때부터 유명했다. 이 같은 색깔은 황금색 이중 반사 유리 때문에 나타나는 건데 처음 63빌딩을 지었을 때에는 유리창에 진짜 금을 코팅했다. 총 1만3516장의 유리창에 0.5g의 공업용 금을 사용했다. 그러다가 2013년에 니켈 등을 함유한 특수 코팅 창으로 바꾸면서 빌딩 겉면의 금은 없어졌다.

개관 첫날, 최대 1만 5000명을 수용할 수 있는 시설에 3만 명의 관람객이 몰려 북새통이 따로 없었다. 꼭대기층에 있는 초고층전망대, 그 곳까지 25초에 올라가는 초고속 엘리베이터, 지하수족관, 아이맥스 영화관 등은 서울 시내 초등학교 학생들의 단골 소풍 장소가 되었다. 지방에서 서울관광을 할 때도 반드시 들러야 하는 필수 코스가 되었다. 이렇게 우리나라 빌딩 관광의 시초가 되었다.

63빌딩이라고 해서 실제로 63층으로 착각하기 쉬운데 사실은 지상 60층에 지하 3층의 건물이므로 엄밀히 말하면 60빌딩으로 불러야 한다. 더구나 44층이 없어 가장 꼭대기층은 61층이다. 빌딩은 2003년 서울 목동 하이페리온(69층·256m)이 완공될 때까지 18년간 한국 최고층 빌딩 자리를 지켰다. 이후 고층 빌딩이 계속 세워져 2023년 현재 19번째 고층빌딩으로 밀려났지만 63빌딩은 여전히 서울의 랜드마크이면서 마천루의 상징으로 인식되고 있다. 미국의 엠파이어스테이트 빌딩이 그러하듯 앞으로도 계속 그렇게 기억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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