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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창 선자령 겨울 산행] ② ‘계곡길 → 능선길’ 원점회귀 코스… 눈이 내린다 싶으면 전국에서 모여드는 설산(雪山) 명소

↑ 같은날 저녁, 백팩을 위해 선자령에 오른 후배 용준이 찍은 선자령 초지(草地). 형형색색의 텐트가 인상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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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지지

 

☞ 거리는 11㎞에 4~5시간 정도 걸려

 

10대 시절, 함께 도봉산 수락산 불암산을 누비던 중학 동창이면서 교회 친구였던 4명의 중년 남성들이 수십년만에 다시 뭉쳐 산행을 도모했다. 기태 덕곤 동기 정형 4인이 떠난 곳은 강원 평창의 선자령이었고 때는 겨울 끝무렵이던 2023년 2월 17일이었다.

 

■선자령은 이런 곳

선자령(1157m)은 강원도 영동과 영서를 가르는 백두대간의 고갯길 중 한 곳이다. 강릉시 성산면과 평창군 대관령면 경계에 있다. 백두대간 마루금 등산로 답게 남쪽으로는 새봉~대관령~능경봉과 연결되고, 북쪽으로는 곤신봉~매봉~소황병산~노인봉~진고개로 이어진다. 선자령(仙子嶺) 명칭은 계곡이 아름다워 선녀가 아들을 데리고 와서 목욕을 하다가 하늘로 올라갔다고 한데서 유래한다. 능선 동쪽(강릉 방향)으로는 산줄기가 가파르게 뻗어내려가 동해 바다까지 눈에 걸리는 게 없다. 서쪽(평창 방향)은 포근하고 편안한 구릉지다. 선자령 등산길은 강릉시가 정한 강릉바우길 선자령 풍차길(제1구간)이면서 산림청이 지정한 국가숲길 중 ‘대관령숲길’의 일부이기도 하다. 선자령은 사시사철 여행객들이 끊이지 않는 곳이지만 사람들이 특히 선호하는 계절은 눈쌓인 겨울철이다. 그래서 겨울철에는 눈이 내린다 싶으면 평일에도 등산객들로 붐빈다.

선자령 산행 지도

 

■계곡길 → 능선길 산행

▲산행에 앞서 알아두면 좋은 것

주차장에서 선자령 정상으로 오르는 길은 크게 능선길과 계곡길 두 갈래다. 편의상 계곡이라고 했지만 실제로는 시내나 개울 수준이다. 두 길의 들머리는 주차장에서 멀지 않은 대형 표지석 ‘대관령 국사성황당’이다. 그곳에서 오른쪽이 능선길이고 왼쪽이 국사성황당을 거치는 계곡길이다. 국사성황당에서는 능선길로도 이어진다. 표지석에는 국사성황당이라고 쓰여 있지만 정확한 명칭은 성황사다. 현지 안내판에도 국사성황사로 표시되어 있다.

계곡길로 접근하는 방법은 또 있다. 하나는 ‘국사성황당’ 표지석 방향으로 가다가 황색칠을 한 목재터널 못미쳐 왼쪽 공터 방향으로 진행한다. 그러면 양떼목장 펜스를 지나 풍해조림지 삼거리(지도상 표기)가 나오는데 성황사에서 오는 길과 합류한다. 들머리 공터 입구에 안내판이 있다. 다만 공터 입구 지도에는 양떼목장이 표시되어 있지만 산행 중 만나는 표지판에는 양떼목장 표시가 없어 산행 중 간혹 헷갈릴 때가 있다. 또 하나는 표지석 들머리에서 국사성황사로 가는 아스팔트길에서 왼쪽 계곡 쪽에 난 산길을 따라가는 것이다. 곧 양떼목장 펜스를 만난다.

왼쪽 사진에서 주황색 목재 터널 못미쳐 왼쪽 공터가 양떼목장 펜스를 지나가는 코스다. 오른쪽 사진은 들머리에 세워져 있는 성황당 표지석이다.

 

우리는 들머리에서 성황사를 거치는 계곡길로 올라가 능선길로 하산한다. 마지막 하산 단계에서 바로 주차장으로 내려가지 않고 성황사~양떼목장 펜스를 지나 원점회귀하므로 풀코스인 셈이다. 순서상으로는 들머리 → 국사성황사 → 재궁골삼거리 → 선자령 정상 → 새봉 전망대 → 국사성황사 → 양떼목장 펜스 → 원점회귀 순이다. 대략 11㎞에 4~5시간 정도 걸린다. 구체적인 길은 위 지도를 보면 쉽게 이해할 수 있다. 주차장 해발이 830m이고 정상이 1157m이니 표고차는 320여m밖에 안 된다. 전체적으로 경사가 완만하고 길도 좋아 초보 산행객들도 쉽게 오를 수 있다. 운동화를 신고 올라가는 사람들도 많다. 다만 눈쌓인 겨울철에는 아이젠이 필요하다. 눈이 많이 내린 날, 스패치까지 있으면 금상첨화다.

이 대목에서 궁금한 것은 능선길과 계곡길 중 어느 코스로 올라가고 내려가는 게 좋으냐는 것이다. 등산객 대부분은 오른쪽 능선으로 올라가 계곡으로 내려가지만 나와 덕곤의 경험상으로는 계곡길로 먼저 올라가는 게 좋다는 생각이다. 계곡길은 전체적으로 완만하고 호젓한 데다 숲길이어서 걷는 맛이 좋고, 능선길은 사방이 터진 내리막이어서 왼쪽으로는 동해바다를 오른쪽으로는 평창 일대 구릉지를 여유롭게 감상하며 하산할 수 있기 때문이다.

 

▲들머리(성황당 표지석) ~ 선자령 정상

1년 전 여름, 처음 인연을 맺은 대관령 휴게소 내 대관령국수집에서 장칼국수로 배를 채우고 표지석 들머리에 도착하니 12시 45분이다. 그곳에서 성황사까지는 1.2㎞ 거리의 아스팔트로 10분 정도 걸린다. 성황사에서 오른쪽 오르막은 능선길로 연결되고 왼쪽 숲길은 계곡길로 이어진다. 왼쪽 방향 0.4㎞ 지점에 양떼목장과 재궁골(선자령 방향)로 갈라지는 삼거리가 나온다. 지도상 명칭은 풍해조림지 삼거리인데 현장에는 그런 안내가 없다.

풍해조림지 삼거리. 왼쪽이 양떼목장 방향이고 오른쪽이 재궁골 방향이다

 

그곳에서 재궁골삼거리까지는 0.5㎞ 거리의 내리막길이다. 재궁골삼거리에서 오른쪽은 선자령 방향이고 왼쪽은 가시머리 마을 방향이다. 가시머리 방향은 올라갈 때든 내려갈 때든 피해야 한다. 주차장으로 돌아가는 원점회귀와 더욱 멀어지기 때문이다. 문제는 재궁골삼거리에 양떼목장을 가리키는 표지판이 없어 선자령에서 내려와 양떼목장을 가려는 사람들을 헷갈리게 한다는 것이다. 2년 전, 내가 그런 경험을 해 곤욕을 치렀다.

재궁골삼거리에서 선자령은 3.7㎞, 휴게소는 2.3㎞ 거리다. 이 글에서는 편의상 계곡길로 칭했지만 상류로 올라갈수록 계곡이 없는 숲길의 연속이다. 이곳 숲길은 정취가 살아있다. 호젓하고 포근하니 발걸음이 가볍다. 계곡은 올라갈수록 개울이나 시내로 바뀌어 좁아진다. 선자령 명칭은 이 계곡에서 유래한다. 크고 작은 주목도 곳곳에 보이고 눈부시게 흰 나무껍질을 가진 자작나무 군락도 있다. 낙엽송(일본잎갈나무)과 전나무 혼재림도 나타나는데 낙엽송이 심어지기 전 그곳에는 화전민이 살고 있었다. 산에서 화전을 일궈 살던 주민을 내보내고 남은 빈터에 속성으로 자라는 낙엽송을 심은 것이다. 숲길에는 화전민들의 식수원이었던 샘터 표시가 있지만 산속에 있는지 길가에서는 보이지 않는다. 샘터는 재궁골삼거리에서 10분 정도(0.5㎞) 올라간 곳에 있다.

재궁골 가는길에 보이는 전나무와 낙엽송 나무

 

산길에는 2~3일 전 내린 눈이 수북히 쌓여 있다. 온통 순백의 세상이다. 다만 낮에는 기온이 영상으로 올라가 햇볕을 직접 받는 나뭇가지의 눈들은 대부분 녹아 특유의 황량한 갈색을 띠고 있다. 아이젠을 차니 걷기 편하다. 사실 눈이 쌓인 겨울, 아이젠을 차면 눈을 밟고 걷기 때문에 맨땅을 걷는 것보다는 한결 편하고 부드럽다. 눈이 녹는 소리와 나뭇가지에서 눈 떨어지는 소리가 낯설면서도 새롭다. 한낮이라 상고대와 설화는 보지 못했지만 밤새 나뭇가지에 살포시 올라앉아 있던 눈들이 녹았다가 얼어 영롱한 빛을 띠고 있다. 동기가 그것을 보고 상고대에 빗대 수정대라고 작명했으나 선뜻 와닿지는 않았다. 비가 온다는 기상예보에다 오후여서 그런지 등산객이 생각보다 많지는 않다. 눈쌓인 길을 걸을 땐 선글래스가 좋다. 햇빛 반사 때문에 얼굴이 타는 것을 막을 수 있기 때문이다.

하늘목장 북쪽 초소

 

재궁골삼거리에서 20분 정도를 걸어가니 하늘목장 삼거리다. 오른쪽이 선자령 방향이고 왼쪽이 하늘목장 방향인데 지키는 사람 없이 출입하지 말라는 표지판이 세워져 있다. 그래도 풍력발전기가 돌아가는 초지(草地) 쪽으로 올라가면 건너편 선자령 정상과 초지가 보이므로 한 번은 올라가보는 것이 좋다. 이곳 하늘목장은 양떼목장, 삼양목장과 함께 선자령 주변의 대표적인 3대 목장이다. 7~8분 정도 걸어가면 풍력발전기가 돌아가는 선자령 아래다. 그곳에서 선자령 코스 중 가장 가파른 300미터를 오르면 선자령 정상이다.

하늘목장에서 바라본 선자령 초지

 

▲선자령 정상 ~ 원점회귀 하산

정상(1157m)에서 북쪽을 바라보면 곤신봉~매봉~소황병산으로 이어지는 알몸의 백두대간 능선들이 너른 초지 위로 길게 뻗어있다. 사이사이에 백색의 풍력발전기들이 도도하게 바람을 맞고 있다. 이처럼 대관령 일대는 국내 최대 규모의 풍력발전단지다. 모두 46기이고 연간 총 발전량은 2억5000만kW 내외다. 약 5만 가구가 사용할 수 있는 양이다. 이 지역 백두대간 길을 거리로 표시하면 대관령 (2.8㎞) 새봉 (1.6㎞) 선자령 (1.5㎞) 곤신봉 (4.1㎞) 매봉 (4.5㎞) 소황병산이다.

선자령 북쪽 백두대간 모습. 곤신봉 매봉 소황병산이 길게 뻗어있다.

 

선자령 정상석

 

선자령 정상에는 ‘백두대간 선자령’이라고 쓰여있는 7m 높이의 거대 정상석이 우뚝 서 있다. 정상에 서면 선자령의 랜드마크라 할 수 있는 초지(草地)가 넓게 펼쳐있다. 이곳 초지는 계절에 상관없이 언제보아도 환상적이다. 겨울에는 온통 순백으로 덮여있지만 다른 계절에는 털갈이를 하듯 봄 여름에는 초록이다가 가을에는 누런 색으로 변해 또다른 장관을 자아낸다. 멀리는 발왕산, 가까이는 양떼목장을 바라보며 초지 옆길로 쉬엄쉬엄 내려가는 데만 7~8분 걸린다. 약간의 경사가 있는 초지에서 동기가 썰매 대신 비닐포대기를 이용해 내리막의 즐거움에 빠져있다. 초지를 지나면 사방이 트여있는 능선이다. 15분 정도 걸어가면 비로소 완만한 숲길이 이어지는데 이파리가 모두 떨어진 나목이어서 숲의 느낌은 없다. 숲길을 따라가다보면 삼거리가 나온다. 왼쪽은 오름길이고, 오른쪽은 7~8부 능선의 평지길이다. 갈림길은 500m 지나 다시 만난다.

아래쪽(왼쪽)과 위쪽에서 바라본 눈덮힌 선자령 초지. 왼쪽 사진은 동기가 비닐포대기를 타고 미끄럼을 타고 있는 모습.

 

갈림길에서 왼쪽으로 10분 정도 올라가면 동해 바다와 강릉시가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새봉 전망대(1050m)다. 동쪽으로 급경사여서 눈에 걸리는 것 없이 동해까지 일망무제로 펼쳐진다. 전망대 남쪽으로는 마치 외계인이 타고온 우주선 같은 흰색의 건물이 내려다 보인다. 한국공항공사 무선표지소 건물이다. 그곳에서 무선표시장치인 VOR과 TACAN이 만든 신호를 공중으로 방사하면 항공기는 전파를 수신해 목적지와 방향을 찾는다. VOR는 민항기에 방위 정보를 제공하고 TACAN은 전투기에 제공한다. 전국적으로 10곳이 있는데 이곳 선자령 말고 경북 예천·포항, 부산, 대구, 전북 부안, 경기 송탄·안양·양주·제주에 있다.

갈림길에서 오른쪽 7~8부 능선 방향으로 걷다보면 선자령에서 하룻밤을 보낼 백패커들이 대형 배낭을 메고 성큼성큼 선자령을 향해 걸어가는 것을 볼 수 있다. 내가 아는 후배 용준도 그날밤 선자령에서 하룻밤을 보낸다고 했는데 다음날 후배가 찍어 보낸 형형색색의 텐트 사진을 보니 장관이 따로 없다.

하산길. 앞의 봉우리가 새봉이다.

 

갈림길 합류 지점에서 주목 군락지를 끼고 완만한 경사의 숲속 샛길과 콘크리트길을 20분 정도 걸어가면 능선 양쪽으로 내리막길이 나있다. 왼쪽(동쪽)의 대관령옛길(강릉바우길 제2구간)은 신사임당이 어린 율곡(이이)의 손을 잡고 강릉과 한양을 오가던 길이다. 율곡의 친구이자 강원도 관찰사였던 송강 정철은 이 길을 지나 ‘관동별곡’을 썼다. 청운의 꿈을 안은 영동의 선비들이 대관령 아흔아홉 굽이를 넘어 한양으로 과거시험을 보러가던 정취가 서린 옛길이기도 하다. 김홍도는 이 길 중턱에서 대관령의 경치에 반해 화구를 펼쳐놓고 그림을 그렸다. 오른쪽(서쪽)으로 0.4㎞ 내리막길을 걸어가면 국사성황사와 만난다.

성황사는 신라말 고려초 강릉 출신의 범일국사를, 산신당은 신라 장군 김유신을 모시고 있다. 범일국사는 전립을 쓰고 백마를 탄 모습이고 김유신 장군은 호랑이를 타고 있는 산신 모습을 하고 있다. 성황사와 산신당은 국가무형문화재 제13호인 강릉 단오제가 시작되고 끝나는 곳이다. 매년 음력 4월 15일 산신당에서 먼저 산신제를 올린 뒤, 성황사에서 국사성황제를 지내고 신맞이 굿을 한 다음 뒷산에서 신목인 단풍나무를 베어 들고 강릉으로 행차한다. 이것을 ‘대관령 국사성황신행차’라고 한다. 신목은 강릉 시내 홍제동에 있는 ‘대관령국사여성황사’에 봉인했다가 음력 5월 3일 영신제를 지내고 시내를 도는 영신 행차를 한 후 남대천 단오장 제단에 봉안하고 단오제를 치른다.

우리는 성황사를 지나 4시간 전 지났던 풍해조림지 삼거리에서 왼쪽 양떼목장으로 방향을 정한다. 전나무 숲을 지나 15분 정도 진행하니 양떼목장 펜스가 나오고 다시 15분 정도를 걸어가니 마침내 원점회귀 종착점이다. 시간을 재보니 4시간 40분 정도 걸리고 총 2만8000보를 걸었다.

양떼목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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