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인과 부부 (23)] 로제타 셔우드 홀 부부의 짧은 사랑과 긴 이별… 그들이 수십 년간 펼친 의료봉사와 헌신의 삶은 이 땅에 내린 축복이었다
2023년 1월 21일 · zznz
↑ 로제타 홀(왼쪽)과 윌리엄 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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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지지
구한말과 일제강점기 시절, 이 땅에서 의료봉사한 기간이 자그마치 60년에 달하는 벽안의 가족이 있다. 미국의 로제타 셔우드 홀과 캐나다의 윌리엄 제임스 홀 부부, 그리고 그들의 아들 셔우드 홀이다. 이들 가운데 최근 화제가 된 인물이 있으니 로제타 홀이다. 미국 실험극을 대표하는 리빙시어터가 우리나라 극단과 합작으로 2023년 1월 13~14일 광주의 국립아시아문화의전당(ACC)에서 연극 ‘로제타’를 시범공연하면서 이름이 국내 유수 언론에 소개되었기 때문이다. 연극은 2024년 본공연과 뉴욕 공연으로 이어질 예정이다. 이들 가족은 현재 서울 양화진외국인선교사묘원에 묻혀있다. 로제타 부부 2명, 딸과 아들 2명, 아들(셔우드 홀)의 아내와 아들을 포함해서 모두 6명이다. 홀 가족이 구한말 한국 사회에서 어떤 의료활동을 했는지 그 지난했던 여정을 알아본다.
▲로제타 셔우드 홀
19세기 말에서 20세기 초, 서양에서 신약이 속속 개발되고 새로운 의술이 발전을 거듭해도 조선의 의료 상황은 여전히 절망적이었다. 특히 안타까운 것은 목숨까지 앗아가는 각종 질병이 활개를 쳐도 여성이라는 이유로 치료를 받지 못한 채 죽어가는 여성들의 참담한 현실이었다. 이런 상황에서 미국의 감리교회가 파견한 여성 의료선교사 로제타 셔우드 홀(1865~1951)은 각종 질병으로 고통받는 조선의 여성과 아이들을 위해 하늘이 이 땅에 내려준 축복이었다. 로제타는 치료에 그치지 않고 여성들이 다른 여성들을 치료하도록 여성 의료인도 길러냈다. 그가 조선에 처음 설립한 평양의 아동병원, 맹아학교, 농아학교와 서울의 여자의학강습소도 그가 흘린 피땀의 산물이다. 여자의학강습소는 오늘날 고려대 의과대학으로 발전해 국내 의학교육의 일익을 담당하고 있다.
로제타는 1865년 미국 뉴욕주 리버티에서 부유한 농장주 집안에서 태어났다. 사범학교를 졸업하고 교사로 근무하던 1885년 인도에서 의료선교를 하는 여성 선교사의 강연을 듣고 의료선교사의 꿈을 꾸었다. 1886년 10월 필라델피아의 펜실베이니아 여자의과대학에 입학한 것은 해외 의료선교의 길을 가기 위한 출발점이었다. 이 대학은 1850년 미국의 퀘이커 교도들이 세운 세계 최초의 여자의과대학으로 로제타가 입학할 당시에는 해외 의료선교사들의 메카로 명성이 자자했다. 문제는 로제타의 건강이었다. 어린 시절 척추에 이상이 있어 몇 차례 수술을 받았는데도 대학 재학 중 목에 결핵성 종양이 생겨 또다시 수술을 받았다. 로제타는 의사가 될 수 없다는 생각이 들어 고민에 빠지곤 했다.
다행히 1889년 3월 대학을 졸업하고 맨해튼 소재 아동병원에서 인턴과정을 시작하면서 미국 북감리교 여성해외선교회와 장차 해외 의료선교사가 되겠다고 약속했다. 당시 여성해외선교회의 모토는 ‘여성을 위한 여성의 일’이었다. 로제타가 장차 남편이 될 윌리엄 제임스 홀을 만난 것은 뉴욕 빈민가의 무료진료소에서 봉사를 시작한 1889년 11월 어느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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