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세기 이야기

조세희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 출간

↑ 조세희와 ‘난쏘공’ 초판본

 

1980년대 대학생들의 ‘의식화 교재’로 읽혀

흔히 ‘난쏘공’으로 불리는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의 소설 속 주인공 김불이는  117㎝ 키에 몸무게가 32㎏에 불과한 난쟁이였다. 곧 철거될 서울특별시 낙원구 행복동에서 2남1녀의 아버지이자 남편으로 살았다. 그는 산업사회의 그늘에서 벗어나지 못한 날품팔이 노동자였고 성장의 과실과는 거리가 먼 도시 빈민이었다. 채권 매매, 칼 갈기, 고층건물 유리 닦기, 펌프 설치하기 등을 거쳐 수도 수리공이 되었으나 40대 후반에는 나이보다 훨씬 늙어 보이는 얼굴 때문에 더 이상 일거리를 찾지 못했다. 남은 건 그가 직접 짓고 수리하며 살아온 무허가 주택 한 채뿐이었다. 그나마 곧 철거될 예정이었다.

아파트 입주권을 준다고는 하나 아파트에 입주하려면 추가 비용이 만만치 않았다. 추가 비용이 있다한들 유지비가 없어 들어가 살 수도 없었다. 결국 김불이는 경기도 성남으로 이사가기 위해 아파트 입주권을 팔았다. 전세자에게 전세금을 주고 나니 몇푼 남지도 않았다. 이사를 앞둔 어느 날, 김불이는 동네 벽돌공장 굴뚝 위로 올라가 굴뚝 속으로 몸을 던졌다. 고도성장기의 낙오자가 겪어야 했던 마지막 선택이었다. 김불이의 죽음은 나중에 굴뚝을 허무는 철거반원들에게 발견되었다. ‘난쏘공’은 이렇게 1970년대 도시빈민의 처참한 생활상, 공장 노동자들에 대한 억압과 착취 실태를 정면으로 고발했다.

 

벼랑 끝에 ‘위험’ 표지판 하나 세운다는 심정으로 글을 써

조세희(1942~2022)는 경기 가평에서 태어나 서라벌예대 문예창작과와 경희대 국문학과를 졸업했다. 1965년 경향신문 신춘문예에 당선된 단편 ‘돛대 없는 장선(葬船)’으로 등단했다. 하지만 1971년 단편소설 ‘심문’을 월간문학에 발표했을 뿐 10여 년 동안 평범한 직장인으로 살며 작가의 길을 포기했다.

조세희에게 1970년대는 파괴와 거짓 희망, 모멸과 폭압의 시대였다. 그때서야 글을 쓸 생각이 들었다. 1970년대 고도성장기 한국 사회의 그늘을 고발한 작품을 쓰고 싶었다. 그래서 시작한 소설이 1975년 ‘문학사상’ 12월호에 실린 단편 ‘칼날’이었다. 의도한 것은 아니지만 ‘난쏘공’ 연작의 시작이었다. 이후 ‘굴뚝청소한 두 아이 에피소드’로 유명한 단편 ‘뫼비우스의 띠’(‘세대’지 1976년 2월호),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문학과지성 1976년 겨울호) 등을 거쳐 ‘내 그물로 오는 가시고기’(창작과비평 1978년 여름호)를 마지막으로 12편의 연작소설이 완성되었다. 이 소설들을 모아 1978년 6월 5일 문학과 지성사가 단행본으로 출판한 것이 ‘난쏘공’이다.

조세희는 연작을 쓰면서 벼랑 끝에 ‘위험’ 표지판 하나를 세워야 한다는 심정으로 글을 썼다. 글을 쓰면서 작가는 울기도 하고 분노하기도 했다. 소설은 시제(時制)가 뒤섞여 있고 이야기가 큰 줄기를 따라가지 않고 연상되는 상황들이 이어지는 판타지적 구조로 이뤄져 난해했다. 그런데도 평단과 독자로부터는 엄청난 지지를 받아 부동의 스테디셀러가 되었다. 소설의 환상적인 분위기에 대해 작가는 훗날 “검열을 피하기 위한 방법이었다”라고 고백했다. 독특한 제목은 당시 화제가 됐던 인공위성에서 착안했다. 출판사는 소설의 날선 비판 정신을 동화적인 이미지로 덮기 위해 책을 최대한 예쁘게 꾸몄다.

‘난쏘공’의 힘은 1980년대 들어 더욱 뚜렷해졌다. 리영희의 ‘전환시대의 논리’, 한길사에서 펴낸 ‘해방 전후사의 인식’ 등과 함께 1980년대 대학생들의 ‘의식화 교재’로 읽혔다. 수없이 연극으로 만들어졌고 영화로도 제작되어 관객을 울렸다. 책은 1978년 6월 초판 1쇄를 찍은 후 100쇄(1996년), 200쇄(2005년), 300쇄(2017년)를 거쳐 2022년 7월까지 총 320쇄 148만 부가 팔려나갔다. 대중성에 초점을 맞춘 베스트셀러 소설들이 짧은 기간에 100만 부를 넘겨 팔리는 경우는 종종 있었지만 사회성과 예술성을 두루 갖춘 무거운 주제의 문학작품이 장장 40년에 걸쳐 150만부 가까이 팔리는 것은 좀처럼 드문 일이었다. 문단에서는 ‘한국 현대문학사에 한 획을 그은 사건’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error: Content is protected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