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토리박스

[연인과 부부 (21)] 세기의 ‘로맨스’인가 ‘스캔들’인가… 대영제국 왕위(王位) 포기하고 심프슨 이혼녀를 선택한 에드워드 8세 영국왕의 사랑 이야기

↑ 월리스 심프슨과 에드워드 8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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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지지

 

1936년 12월, 두 번이나 이혼한 월리스 심프슨과 결혼하기 위해 대영제국의 왕위를 포기하겠다고 선언한 에드워드 8세의 퇴위 방송이 워낙에 충격적이어서 전 세계  신문과 잡지들이 이 소식을 도배했다. 완전히 다른 환경에서 살아온 그들이 어떻게 만나 사랑을 나누고, 영국 왕실·정부의 끈질긴 반대와 국민의 실망에도 불구하고 어떻게 결혼하게 되었는지 그 지난했던 과정을 살펴본다.

 

■에드워드 8세

에드워드 8세(1894~1972)는 증조할머니 빅토리아 여왕의 재위 시기인 1894년 6월 태어났다. 출생 무렵 그는 할아버지 에드워드 왕세자(에드워드 7세)와 아버지 앨버트 윈저(조지 5세)에 이어 왕위 계승 서열이 세 번째였다.

에드워드는 13세이던 1907년 해군사관학교에 입학하고 한때는 옥스퍼드대학도 다녔으나 공부에는 흥미가 없었다. 1914년 1차대전이 발발했을 때 영국 근위대 장교로 임관했으나 전선 배치를 거부당하자 “내가 전사한들 어떻다는 말인가. 형제가 4명이나 되지 않는가”라고 군에 항의한 끝에 전투에 참전했다. 그는 용맹함과 냉정함으로 전투에서 여러 일화를 남겼다. 1918년 종전 후에는 주로 여행을 하며 20~30대 시절을 보냈다. 1936년 1월 왕위에 오를 때까지 18년 동안 영 연방 국가들을 포함해 세계 45개국을 여행한 거리가 320만㎞나 되었다.

왕세자는 키가 작았지만 잘생긴 외모에 뛰어난 패션 감각으로 여성들에게 인기가 많았다. 플레이보이 기질까지 갖춰 뭇 여성들과의 스캔들로 각종 화제와 염문을 뿌리고 다녔다. 아버지 조지 5세는 이런 에드워드의 여성 행각을 역겨워했다. 아들이 왕위를 물려받는 것도 원치 않았다. “내가 죽은 후, 아들은 12개월 안에 스스로를 망칠 것이다.”라고 말할 정도로 아들을 불신했다. 그러나 에드워드는 1차대전에 참전하고 대공황기에 임금노동자 클럽을 방문하거나 실업자 구제 계획을 구상하는 등의 행보를 보여 국민들로부터 인기가 많았다.

부왕 조지5세(우측)와 에드워드 왕세자

 

■월리스 심프슨

월리스 심프슨(1896~1986)은 미국 펜실베이니아주에서 태어나 메릴랜드주 볼티모어에서 자랐다. 어렸을 적 이름은 베시 월리스 워필드였다. 태어난지 수개월만에 아버지가 죽어 불안정한 소녀시절을 보내고 청소년기에는 어머니마저 재혼해 친척의 도움을 받으며 생활했다. 여학교를 졸업하고 20살이던 1916년 11월 미 해군 중위 조종사와 결혼했으나 남편이 군대 업무로 바빠 부부 사이에 균열이 생겼다. 1918년 전쟁이 끝난 후에도 남편의 술주정과 질투 그리고 사랑 없는 결혼 생활이 이어져 남편과 별거를 선언하고 중국으로 떠나 1924년부터 2년간 머물렀다.

그 무렵 심프슨 앞에 새로운 남자가 나타나는데 선박 중개인이었던 어니스트 심프슨이었다. 둘 다 이혼 전의 만남이었기 때문에 둘의 만남은 불륜이었다. 결국 그녀가 택한 결론은 이혼과 새로운 인생의 개척이었다. 1927년 12월 남편과 이혼한 그녀는 어니스트 심프슨을 따라 영국으로 건너가 1928년 7월 런던에서 결혼했다. 이후 이름은 월리스 심프슨으로 바뀌었다. 부부는 런던의 사교계를 드나들었다. 심프슨은 뼈가 앙상하고 각이 져 미인은 아니었지만 타고난 패션 감각과 당당하고 솔직한 태도로 남자들의 시선을 끌어 단숨에 사교계의 별로 떠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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