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땅 구석구석

[양주 불곡산] 거대 암봉 불끈 솟아 오르고 정상 조망 일품인 양주의 진산(鎭山)… 블랙야크·산림청 지정 ‘100대 명산’에선 빠졌어도 내 눈엔 ‘100대 명산’이지요

↑ 상투봉 뒤쪽에서 바라본 임꺽정봉

 

☞ 내맘대로 평점(★5개 만점). 등산요소 ★★★ 관광요소 ★★★

☞ 6~7㎞ 4~5시간

☞ 코스1 : 양주시의회 ~ 상봉(정상) ~ 상투봉 ~ 임꺽정봉 ~ 악어바위 암릉 ~ 대교아파트

☞ 코스2 : 별산대놀이마당 ~ 상봉(정상) ~ 상투봉 ~ 임꺽정봉 아래 ~ 악어바위 암릉 ~ 임꺽정봉 ~ 전망대 ~ 김승골쉼터 ~ 불곡산숲길 ~ 원점회귀

 

by 김지지

 

2022년 10월 10일 경기 양주의 불곡산을 다녀왔다. 대학동창인 갑표 동규 정형 태성 희용 다섯이다. 나만 한 번 다녀온 적이 있고 의외로 산을 좋아하는 다른 친구들은 모두 초행이어서 의아했다. 내가 친구들에게 불곡산을 추천한 것은 7~8년 전 이곳에서 거대 암봉을 바라보고 느꼈던 강렬한 인상 때문이다. 하지만 인상만 그러할 뿐 구체적인 산의 지형이나 등산로는 기억하지 못하니 내 기억력의 한계다.

산행 들머리는 양주시청이다. 출발에 앞서 희용이 예의 아재개그로 웃음을 유도한다. 조선 후기 문신인 이익의 ‘성호사설’에 따르면 국내 3대 도적은 임꺽정, 장길산, 홍길동인데 요즘의 3대 도둑은 비(가수), 연정훈(탤런트), 간장게장이란다. 왜 그런지는 독자들이 알아서 캐치하기를. 우리 모두 웃음으로 화답하자 으쓱해진 희용이 또 다시 아재개그를 던진다. 경기 양주시를 양주(술)에 빗대 양주에는 ‘마시면 취하리’와 ‘소주면 막걸리’도 있다며 웃음 보따리를 마구 펼쳐놓는다. 양주군 은현면이 고향인 갑표가 “그래서 3만원짜리 양주 한 병을 편의점에서 사 갖고 왔다”며 산행 중 적당한 곳에서 즐기자고 거든다. 불곡산은 블랙야크·산림청 지정 ‘100대 명산’에서 빠져있다. 그러나 100대 명산을 70여군데 다녀온 내 눈엔 ‘100대 명산’으로 손색이 없다.

불곡산 지도

 

■불곡산 개요

불곡산은 경기도 ‘양주의 진산’(대동여지도)이다. 정상 높이가 낮고 규모도 작지만 거대 암봉인 상봉(470m·정상), 상투봉(431m), 임꺽정봉(449m)이 불끈 솟아 있어 서울과 경기 북부권 등산객들에겐 나름 인기 산행지다. 임꺽정봉 서쪽 옆 암릉에는 기암괴석들이 즐비해 감탄사를 자아낸다.

주능선에서 바라보는 탁 트인 조망도 일품이다. 불곡산 양쪽에 펼쳐있는 양주벌판이 시원하게 트여있고 의정부·동두천 등 주변 시가지도 한눈에 내려다보인다. 의정부시 남쪽 너머로 병풍을 친 듯 이어지는 수락산~도봉산~북한산 인수봉과 백운대 연봉도 눈길을 끈다. 불곡산 아래 자락에는 둘레길 코스인 ‘불곡산 숲길’이 29㎞나 되어 걷는 재미도 있다. 숲길 옆으로는 옛날 양주목사가 400여 년간 행정을 하던 관아지(官衙址), 양주향교, 양주별산대놀이마당 등 볼거리와 즐길 곳들도 많다.

 

■불곡산 코스

불곡산 등산로는 동네 뒷산만큼이나 많다. 그 중 등산객들이 자주 찾는 코스는 서너 가지다. 첫째는 양주시청(양주시의회)에서 출발해 상봉(정상)~임꺽정봉에 오르는 코스다. 소요산행 지하철 1호선을 타고 양주역에서 내려 양주시청까지 1.4㎞ 거리를 걷거나 양주역 건너편에서 버스를 타고 양주시청에서 내린 후, 시청 옆 양주시의회를 들머리로 삼는다. 승용차를 갖고 갈 경우 양주시의회 주차장에 무료로 주차할 수 있다. 상세 내용은 이 글 아래에서 소개한다.

불곡산 개념도

 

둘째는 양주역에서 내려 양주시청, 별산대놀이마당, 유양공단 등 10개 정도 버스정거장을 지나 대교아파트(무태안) 정거장을 들머리로 삼는 코스다. 임꺽정봉으로 바로 올라가 상투봉과 상봉(정상)을 지나 백화암, 별산대놀이마당, 양주시청 중 한 곳으로 내려온다. 대교아파트에서 하차하면 바로 옆에 등산안내판이 있다. 그곳에서 불곡산 쪽으로 5분 정도 걸어가면 갈림길이 나온다. 왼쪽은 김승골쉼터를 거쳐 임꺽정봉으로 바로 오르는 길이고 오른쪽은 악어바위 암릉을 거쳐 임꺽정봉으로 오르는 코스다. 임꺽정봉까지는 왼쪽이 1.4㎞, 오른쪽이 1.7㎞다.

셋째는 별산대놀이마당에서 오르는 코스다. 들머리는 별산대놀이마당 부근 양주향교 옆이다. 들머리에서 1.2㎞를 오르면 양주시청에서 올라오는 남동릉(제2보루)을 만난다. 그곳에서 상봉(정상)까지는 1㎞, 임꺽정봉까지는 2㎞ 거리다. 상세 내용은 이 글 아래에서 소개한다. 넷째는 백화암에서 올라가는 코스다. 들머리는 승용차를 이용할 경우 백화암 주차장이고 버스를 이용할 경우 양주시청에서 5개 정거장을 지난 불곡산입구(유양1동) 버스정거장이다. 버스정거장에서 백화암까지는 1㎞ 정도 아스팔트 오르막길이다. 백화암에서 능선까지는 0.4㎞이고 임꺽정봉까지는 2.8㎞ 거리다.

불곡산은 산행 중 올라갔던 길을 그대로 내려오지 않는 한 원점산행이 불편하다. 그래도 승용차를 갖고 가고, 오르막과 내리막을 달리 잡는 원점산행을 하고 싶다면 둘레길인 ‘불곡산 숲길’을 통해 원점으로 돌아가야 한다.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경우 도로로 내려가 버스를 이용한다. 불곡산은 어느 지점에서 올라가든 3~5시간이면 주요 코스를 모두 다녀올 수 있다.

양주시내와 주변 산들

 

■양주시청(양주시의회) 출발 코스

 

상봉 정상, 사방이 파노라마로 트여 있는 최고 조망터

들머리는 1호선 양주역에서 1.4㎞ 떨어진 양주시청 옆 양주시의회 건물 왼쪽 돌계단이다. 상봉(정상)을 지나 임꺽정봉까지 3.8㎞ 거리다. 승용차를 갖고 갈 경우 시의회 무료 주차장에 주차하면 된다. 들머리에서 25분 정도 올라가면 정상으로 이어진 능선을 만난다. 능선을 따라 5분 정도 올라가면 과거 산성이 있었음을 알려주는 제1보루(堡壘) 안내판이 세워져 있다. 보루는 이후 임꺽정봉(제8보루)까지 나타났다가 없어지기를 반복한다. 보루는 적의 침입을 막기 위해 돌이나 흙으로 쌓은 구축물이다. 불곡산 보루는 극히 일부만 남아있고 대부분은 토사에 묻혀 있거나 사라졌다. 1998년 지표조사 결과 양주 일원 불곡산~도락산~천보산에서 모두 27개의 보루가 발견되었는데 상당수는 고구려 때 보루로 확인되었다. 불곡산에는 모두 8개소의 고구려 보루가 해발 200~550m의 능선을 따라 선형으로 배치되어 있다.

의정부시를 사이에 두고 수락산-불암산과 도봉산-북한산이 길게 펼쳐져 있다.

 

제1보루를 지나는 능선은 완만한 뒷산 수준이다. 이런 평범한 산에 거대 암봉이 있다는 게 믿기지 않을 정도다. 그저 그런 숲길을 지나니 해발 289m의 제2보루다. 그곳에서 가까운 곳에 왼쪽 별산대놀이마당으로 내려가는 삼거리가 있다. 놀이마당까지는 1.2㎞ 거리다. 직진하면 상봉 정상까지 1㎞, 임꺽정봉까지 2㎞다. 이후 15분 사이 임꺽정생가터(보존비)와 백화암으로 내려가는 삼거리가 나온다. 백화암까지는 0.4㎞, 백화암 버스정거장까지는 1.4㎞ 거리다. 1.2㎞ 아래 임꺽정생가터에서는 도로로 직접 연결된 산길이 없어 ‘불곡산 숲길’을 통해 백화암 버스정거장으로 하산해야 한다.

곧이어 불곡산의 8개 기암괴석 사진과 위치를 보여주는 안내판이 서 있다. 바로 뒤는 제5보루이고 그 옆 데크계단을 오르면 양주 서쪽 시내(남면 광적면 백석읍)가 한 눈에 들어온다. 그 뒤로 북한산 도봉산 사패산 앵무봉 등 익숙한 이름의 산과 봉우리들이 연봉을 이루고 있다. 곧이어 상봉 정상으로 오르는 데크계단이다. 100m를 오르면 상봉이고 1.1㎞를 지나면 임꺽정봉이다. 데크계단을 오르니 거대 바위 위에 상봉 지킴이로 불리는 펭귄바위가 홀로 서 있다. 펭귄바위 옆에서 사진을 찍고 몇 걸음 올라가니 마침내 사방이 파노라마로 트여 있는 상봉 정상(470m)이다. 들머리에서 1시간 40분 걸렸다.

상봉 저 멀리 북서쪽으로 임꺽정봉이 우뚝하다. 시선을 가까이 맞추면 눈이 풀린 두꺼비처럼 생긴 바위가 보인다. 불곡산 안내판에는 없는 바위여서 ‘두꺼비 헤롱바위’라 이름지었다. 상봉에서 0.3㎞ 떨어진 상투봉으로 가려면 데크계단을 따라 내려간다. 오른쪽에 산을 파먹은 모습의 천주교공동묘지가 보이고 데크계단 양쪽으로는 연초록의 소나무들이 반긴다.

상봉 정상

 

상투봉 능선, 암릉과 소나무들 조화 이뤄

데크계단을 내려가다 보면 상투봉을 머리에 이고 있는 거대 암봉이 정면으로 바라보이고 그 뒤로 임꺽정봉이 머리를 내밀고 있다. 상투봉은 상봉에서 내려간 안부에서 다시 0.1㎞ 올라간 곳에 있다. 바위에 일명 호치키스로 불리는 <ㄷ자 꺽쇠>가 깔려있다. 전국의 많은 산을 가보았지만 이곳의 <ㄷ자 꺽쇠>만큼 발바닥에 쫙 달라붙고 미끄럽지 않는 것은 보지 못했다. 단단하고 튼튼하고 안정감이 느껴지니 체중을 실어도 불안하지 않다. 불곡산에는 로프나 철봉 등이 설치된 급경사 바위마다 <ㄷ자 꺽쇠>가 깔려있다.

상봉에서 내려가다가 바라본 상투봉 모습

 

상봉에서 상투봉까지는 0.3㎞에 20분 거리다. 상투봉 바로 아래에 불곡산 족보에는 없는 바위가 또 다시 내 눈에 들어오니 거북바위다. 사실 전국 산에는 거북처럼 생긴 바위가 지천이다. 김춘수의 시 ‘꽃’에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기 전에는 그는 다만 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았다.”는 싯구가 있듯이 앞서 ‘두꺼비 헤롱바위’나 이곳의 ‘거북바위’도 내가 이름을 불러주기 전에는 다만 하나의 바위에 지나지 않았는지 모른다.

내가 이름지은 바위들. 왼쪽 위부터 미어캣바위, 사자바위, 두꺼비 헤롱바위, 거북바위

 

상투봉(432m) 뒤쪽은 사방을 두루 감상할 수 있는 전망바위다. 그곳에서 한동안 임꺽정봉과 악어바위 암릉 그리고 양주시내를 살펴본 후 임꺽정봉으로 진행하는 암릉을 따라 안부로 내려가는데 암릉에서 자라는 소나무들이 수석 분재처럼 기품이 있다. 암릉길에서 약간 떨어진 곳에 동쪽을 바라보는 생쥐바위가 보인다.

상투봉에서 0.7㎞ 거리의 임꺽정봉으로 가려면 안부로 한참을 내려가야 한다. 10분 정도 내려가니 안부에서 임꺽정봉으로 오르는 급경사 계단식 암벽이 정면에서 펼쳐진다. 두타산의 베틀바위를 닮은 암벽은 지켜만봐도 스릴이 느껴진다. 안부에서 임꺽정봉 정상까지는 0.3㎞이지만 초반부터 로프를 잡고 올라가야 하는 급경사여서 불곡산 최고 난이도를 자랑한다. 하지만 쇠봉과 로프가 워낙에 잘 되어 있고 <ㄷ자 꺽쇠>도 촘촘해 위험하거나 힘들지 않다.

임꺽정봉을 오르는 직벽에 가까운 급경사 계단식 암벽(왼쪽)과 그곳을 오르는 태성

 

급경사 암벽을 오르다가 뒤돌아보면 방금 걸어온 상투봉 능선이 펼쳐지고 암릉과 소나무들이 한데 어울려 조화를 이룬다. 안부에서 15분 정도 오른 곳에 물개바위가 있고 곧이어 갈림길이다. 직진하면 0.2㎞ 올라가는 임꺽정봉이고 왼쪽으로 방향을 정하면 악어바위로 대표되는 기암들이 줄지어 있는 암릉이다. 우리는 악어바위 암릉으로 내려갈 예정이기 때문에 임꺽정봉을 먼저 올라갔다. 정상부는 불곡산의 마지막 보루인 제8보루다. 임꺽정봉(450m)에 오르니 상봉에서 1시간, 들머리에서 2시간 40분 걸렸다.

임꺽정봉 오르다가 뒤돌아본 상봉(뒤)과 상투봉

 

정상에는 낙락장송이 긴 가지 늘어뜨린 채 독야청청 서 있어

정상에서 우리를 먼저 맞는 것은 덩그러니 놓여있는 거대 바위다. 다른 바위들은 수천년 수만년 전 굴러 떨어졌는데 이 바위만 홀로 정상에서 꿋꿋히 버티고 있다. 바위를 등진 곳에 양주 서쪽 시내를 내려다볼 수 있는 벤치 2개가 있다. 등산객들이 그곳에 앉아 황금빛으로 물들은 양주시내를 여유롭게 바라보고 있다. 정상석 옆에는 양팔을 벌린 듯한 모습으로 낙락장송이 긴 가지를 늘어뜨린 채 독야청청 서 있다. 정상에서 북쪽을 바라보니 거대 암벽으로 된 전망대가 내려다 보인다. 그 길로 내려가고 싶었으나 악어바위 암릉을 놓칠 수 없어 발걸음을 되돌렸다.

임꺽정봉 정상

 

정상에 놓여있는 벤치

 

이제 악어바위를 만나러 갈 차례다. 조금 전 올라왔던 삼거리로 다시 내려가 악어바위 암릉을 따라 내려갔다가 날머리인 대교아파트로 하산한다. 삼거리에서 암릉을 따라 0.2~0.3㎞ 진행하면 기암괴석 등이 전시장을 이룬다. 먼저 만나는 게 공깃돌바위다. 경사 30도쯤 되는 암릉 사면에 커다란 달걀처럼 동그스름하게 생긴 큰 바위 하나가 얹혀 있는 모습이다. 다음은 코끼리바위다. 20여m 크기의 바위 하나가 코끼리 코처럼 가늘게 늘어져 있는데 안타깝게도 코끝이 땅으로 내려가지 않고 앞으로 뻗어나가 바위에 붙어있다.

코끼리바위를 지나면 10m 정도 높이의 암봉이 내려다 보인다. 암봉 아래 등산로를 기준하면 왼쪽에 공룡바위가 있고 오른쪽으로 20m 정도 내려간 곳에 불곡산 최고 명물인 악어바위가 있다. 악어가 바위를 기어오르는 모습이라는데 이리저리 위치를 바꿔보아도 그 모습이 보이지 않는다. 악어가죽 특유의 모습을 하고 있어 차라리 악어가죽바위라고 했다면 더 와닿았을 것이다.

악어바위 앞은 막다른 곳이어서 조금 전 내려온 길을 다시 올라가야 하는데 조금전 보았던 암봉 왼쪽으로 공룡바위가 내려다보인다. 이곳에서 임꺽정봉까지는 0.35㎞이고 날머리인 대교아파트까지는 1.65㎞다. 공룡바위 아래로 난 급경사 바위구간을 내려서면 거대한 바위가 3단으로 포개진 삼단바위에 닿는다. 삼단바위 바로 옆으로는 불곡산 족보에 없어 내가 또다시 이름지은 ‘사자얼굴바위’가 보이고 그 뒤로 역시 내가 작명한 ‘미어캣바위’가 고개를 내밀고 있다. 삼단바위에서 내려와 복주머니바위 안내판이 가리키는 곳을 바라보니 내 눈엔 돼지머리바위처럼 보인다. 곧이어 남근바위가 나타나는데 남근처럼 보이지 않는데다 실감나는 남근바위들이 전국적으로 많아 이곳 남근바위는 명함을 내밀 정도는 아니다.

가파른 길을 따라 내려가면 곧 평탄해지고 잠시 후 둘레길인 ‘불곡산 숲길’을 만난다. 왼쪽의 임꺽정생가터까지는 1.8㎞, 양주시청까지는 4.2㎞이고 우리가 가야하는 오른쪽 대교아파트까지는 0.5㎞다. 대교아파트 버스정거장이 있는 날머리로 내려오니 들머리에서 5시간 10분 걸렸다. 총 거리는 5.85㎞였다.

왼쪽 위부터 오른쪽으로 악어바위 복주머니바위 삼단바위 코끼리바위 물개바위 공룡바위 펭귄바위 생쥐바위다.

 

■산행 후 아쉬워 20일 뒤 한 번 더 올라가

하산 후 임꺽정봉에서 내려다 보이는 전망대를 들르지 않고 악어바위 암릉으로 내려간 게 못내 아쉬웠다. 해서 집에 돌아와 불곡산 지도를 펼쳐놓고 최적의 등로가 무엇인지 살펴보았다. 그 결과 임꺽정봉 0.2㎞ 아래 지점 삼거리에서 악어바위 암릉 일대로 내려가 기암괴석들을 두루 확인한 후 다시 올라와 임꺽정봉과 전망대를 거쳐 하산하는 것이 효과적인 산행이라는 결론을 내렸다. 또 하나는 양주시청에서 능선을 타고 올라갈 때 제5보루까지는 불곡산 암봉을 조망하는 게 마땅치 않고 산길도 그저그러 하므로 별산대놀이마당이나 백화암에서 올라가는 것이 괜찮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승용차를 갖고 가든 버스를 타고 가든 결론에는 별 차이가 없다.

그러던 중 주말 이틀 동안 몸살감기 때문에 집에서 쉬고 있는데 햇살이 따사롭고 하늘이 청명해 집에만 있자니 답답했다. 임꺽정봉 아래 전망대를 지나 하산하는 코스와 둘레길인 ‘불곡산 숲길’ 제2구간(4.5㎞), 그리고 양주별산대놀이마당 들머리와 불곡산 중턱의 백화암도 궁금했다. 해서 홀로 불곡산을 또다시 찾아가니 10월 30일이다. 두 번째 산행 때는 별산대놀이마당 옆 양주향교 부근에서 바로 제2보루로 올라가 임꺽정봉 뒤 전망대를 경유해 대교아파트로 이어진 김승골쉼터로 하산했다. 다만 이 날은 승용차를 갖고 갔기 때문에 김승골쉼터에서 둘레길인 불곡산 숲길을 따라 별산대놀이마당으로 원점회귀하는 코스(3㎞)로 진행했다.

임꺽정봉에서 내려가다가 바라본 전망대(왼쪽)와 아래에서 올려다본 전망대

 

■별산대놀이마당 출발 코스

내비게이션에서 양주별산대놀이마당 주차장을 검색해 찾아갔더니 늦게 도착한 데다 주차장이 소규모여서 주차가 마땅치 않았다. 다른 차들이 길가에 주차한 것을 보고 양주향교 앞 적당한 길가에 주차하고 홀로 등산을 시작했다. 들머리는 주차장과 양주향교 중간 지점이다. 1.2㎞ 거리의 제2보루 지능선에 도착하니 20분이 지났다. 이후 진행할 임꺽정봉까지 산행과 악어바위 암릉 코스는 위에서 소개했으니 여기서는 생략하고 임꺽정봉에서 전망대 경유하는 하산 코스를 소개한다.

전망대에서 임꺽정봉을 올려다 보면 거대 암벽이다. 오른쪽 옆으로 악어바위 암릉이 서쪽을 향해 길게 이어져 내려간다. 전망대를 지나면 한동안 급경사 데크가 길게 이어지다가 임꺽정봉에서 0.3㎞ 아래 지점에서 왼쪽으로 하산 숲길이 나 있다. 대교아파트 버스정거장까지 1.3㎞ 거리다. 20분 정도 내려가니 날머리인 김승골쉼터다. 그곳에서 대교아파트 버스정거장까지는 0.5㎞다.

임꺽정봉 뒤 전망대에서 올려다본 임꺽정봉. 오른쪽은 악어바위 암릉이다.

 

김승골쉼터에서 0.2㎞ 내려가면 불곡산 숲길 중 제2구간(전통문화숲길)과 연결된다. 그곳에서 임꺽정생가터는 2.1㎞, 별산대놀이마당은 3.0㎞, 양주시청은 4.5㎞ 거리다. 내 목적지는 승용차가 있는 별산대놀이마당이다. 초반에는 살짝 오름길이어서 산행의 연장선처럼 느껴지지만 곧 완만한 오르내림이 포함된 전형적인 둘레길이다. 김승골쉼터에서 20분 후 재활용협동조합(가나자원) 공장 안쪽을 지나야 해서 호젓한 맛이 사라진다. 둘레길을 10분 정도 걸어가니 지저분하기 이를 데 없는 먹거리집이다. 음주와 함께 간단히 요기를 할 수 있는 집인데 산에서 이렇게 어수선한 먹거리집은 처음이다. 다시 20분을 걸어가면 선유동천교를 건너고 곧이어 ‘仙遊洞天(선유동천)’이라고 새긴 바위가 계곡 건너편으로 보인다. 임꺽정이 어린 시절 뛰어놀았다고 설명을 달았는데 양주시청의 상상력이 대단하다.

잠시 후 백화암으로 올라가거나 백화암 버스정거장으로 내려가는 사거리이고 100m를 지나면 임꺽정 생가터다. 이름만 생가터일 뿐 정확히는 임꺽정생가보존비라고 새긴 비석 바위다. 15분 후 만난 불곡산 산림욕장을 빠져나와 별산대놀이마당을 지나 양주향교로 원점회귀하니 숲길을 걷는데만 1시간 30분 정도 걸렸다. 산행 시간이 5시간이니 총 시간은 6시간 30분 걸렸다. 거리는 산행이 4.7㎞, 둘레길이 3.0㎞다.

왼쪽부터 김승골쉼터, 선유동천교, 임꺽정생가 보존비

 

■임꺽정생가터는 사실인가

양주시가 불곡산 아래에 임꺽정생가보존비를 세워놓고 임꺽정의 출생지라고 대대적으로 홍보하는데 문헌상이든 유물이든 그곳이 실제 생가터라는 근거는 정말 있기나 한 것인지 전후 사정을 살펴본다. 결론부터 말하면 정확치 않다는 것이다. 문화일보 기사 <임꺽정 뛰놀던 그곳… 굽이굽이 암릉 ‘스릴 만점’>(2011년 6월 24일자) 기사에 따르면 양주시가 역사학자들에게 의뢰해 탐사와 노인들의 고증을 받아 작성한 보고서가 남아있다. 보고서에 따르면 조선왕조실록 등 공식적인 기록을 통해서는 임꺽정의 신분과 출생 지역을 확인할 수는 없다. 이익의 ‘성호사설’이나 박동량의 ‘기재잡기’ 등 개인 저술에 임꺽정이 양주 출신이며 백정의 신분이라는 기록이 있긴 하지만 임꺽정이 당시 양주목의 어디에서 태어났는지를 알려주는 기록은 없다. 그런데도 홍명희의 소설 ‘임꺽정’에선 양주읍 유양리를 태생지로 설정하고 있다.

양주시의 의뢰를 받은 한 향토사학자는 16세기 양주 읍치(邑治·관아가 있는 곳)의 형태를 분석해 임꺽정의 출생지를 추정했다. 그에 따르면 조선시대 양주목의 읍치는 현재의 양주읍 유양리(현재는 유양동)다. 그는 읍치 내 거주자를 관아의 행정직 종사자나 양반으로 보고 백정 신분인 임꺽정이 태어난 곳은 인가가 드문 읍치 밖일 것이므로 현재의 유양초등학교 뒤쪽 불곡산 자락 객사 근처의 숲속일 가능성이 높다고 추정했다. 하지만 기자는 역사적 사실을 밝히는데 전설과 소설과 추정을 근거로 하는 것은 무리가 있다고 결론을 내린다.

 

■백화암

산행 후 불곡산 중턱의 백화암이 궁금했다. 해서 일부러 찾아갔는데 도로에서 1㎞ 정도 아스팔트길을 따라 올라간 곳에 있다. 통일신라 때인 898년(효공왕 2년) 도선이 불곡사(佛谷寺)라는 이름으로 창건했다가 조선 후기에 현재 이름으로 바뀌었다고 한다. 불곡산 이름도 불곡사에서 유래한다. 창건 후 재난과 중건을 거듭하다 6·25전쟁 때 건물이 모두 불에 타 없어진 것을 1956년 복원하면서 지금에 이르고 있다. 대웅전 아래에는 사찰의 부침을 지켜본 350년 수령의 느티나무가 있고 대웅전 앞에는 노거수 느티나무도 있다. 백화암 아래 약수터는 가뭄에도 물이 줄지 않고 혹한에도 얼지 않는다고 한다.

대웅전 오른쪽으로 산길과 마애삼존불상으로 올라가는 길이 나있다. 능선의 제5보루까지는 0.4㎞이고 대략 60m 정도의 고도를 치고 올라가는 마애불까지는 10분 정도 걸린다. 바위 절벽을 절묘하게 깎아서 조각한 3기의 마애불은 2004년에 만들어졌으니 문화재는 아니지만 현대 기술이 들어간 만큼 정교하고 세련되었다.

백화암

 

■별산대놀이와 양주향교

양주별산대놀이는 경기도 양주시 주내면 유양리에서 전승되어온 가면극이다. 1964년 중요무형문화재로 지정되었다. 산대놀이는 서울 근교에서 전승되던 가면극으로, 애오개(아현동)·녹번·구파발·사직골 등에 있었다고 하나 현재는 전하지 않는다. 학자들은 애오개·사직골 등에 있었던 원래의 산대놀이 가면극을 본산대놀이라고 부르고, 본산대놀이에서 전파된 양주와 송파 등지의 가면극을 별산대놀이라고 부른다.

양주향교는 태종 원년(1401년)에 세웠다는 기록이 있으나 어디에 세웠다는 기록은 없다. 현재 향교는 중종 원년(1506년) 양주목이 부활되면서 양주관아와 함께 지금의 자리에 세워진 것으로 전문가들은 보고 있다. 1592년(선조 25) 임진왜란 때 소실되었다가 1610년(광해군 1) 재건하고, 6·25전쟁 때 불에 타 없어진 것을 1958년 유림들이 나서 대성전과 동무·서무를, 1984년 명륜당을 복원했다. 현재 대성전에는 공자, 안자, 증자, 자사, 맹자 등 중국의 5성을, 동무와 서무에는 신라의 설총, 최치원, 고려의 안향, 정몽주, 조선의 조광조, 이언적, 이황, 이이, 송시열 등 우리나라 18현의 위패를 봉안하고 있다.

양주향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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