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땅 구석구석

[춘천 오봉산] 따사로운 가을 햇살과 친구들의 왁자지껄 소리가 어우러진 암릉을 걸어가며 소양호와 능선을 바라보니 이보다 좋을 수가 없더군요

↑ 배꼽봉에서 바라본 소양호

 

by 김지지

 

☞ 내맘대로 평점(★5개 만점). 등산요소 ★★★ 관광요소 ★★★

☞ 5~6㎞ 4~5시간

☞ 배후령 ~ 오봉산(제5봉) ~ 삼거리 ~ 청평사

 

2022년 10월 15일, 산행지는 강원 춘천 오봉산이다. 동행인은 고교 동창 산행 모임인 금동산악회 벗들이다. 15인의 벗들에 4인의 아내가 동행했다. 개인적으로 오봉산은 작년 10월 이후 1년 만이다.

 

■오봉산은

오봉산(779m)은 강원도 춘천시 북산면과 화천군 간동면에 걸쳐 있다. 하지만 오봉산 아래 소양호와 청평사가 춘천에 속해 있어 ‘춘천의 산’으로 알려져 있다. 오봉산(五峰山)은 이름 그대로 5개 봉우리 뜻이다. 서쪽의 배후령부터 1봉(나한봉)∼2봉(관음봉)∼3봉(문수봉)∼4봉(보현봉)∼5봉(비로봉)이 주능선을 따라 서쪽에서 동쪽으로 길게 이어져 있다. 이 가운데 정상이 제5봉이다.

오봉산은 호반 명산이다. 산행을 하면서 호수든 강이든 바다든 내려다 볼 수 있다는 것은 큰 매력이다. 충북 제천·단양·충주에 명산이 많은 것도 충주호 덕분이다. 오봉산의 산세는 크지도, 웅장하지도 않다. 그런데도 산림청과 블랙야크가 100대 명산으로 지정했다. 멀리 소양호를 바라보면서 연초록의 소나무와 어우러진 암릉을 걷는 맛이 제법 쏠쏠하기 때문이다. 오봉산 아래에는 천년고찰 청평사와 국가지정 ‘명승(名勝)’인 고려선원까지 있어 산행으로 지친 몸을 달랠 수 있다. 산행 후, 소양호 유람선을 타고 10분 정도 푸른 소양호 물살을 가르는 뱃길여행은 덤이다.

배후령~정상~청평사로 이어지는 산행 거리는 대략 5~6㎞에 4~5시간 정도 걸린다. 5~6㎞라고 애매하게 표현한 것은 이곳 역시 방향판에 표시된 거리가 들쑥날쑥이기 때문이다.

오봉산 지도

 

■들머리는 배후령 혹은 청평사

들머리는 배후령이나 청평사다. 등산객 대부분은 배후령으로 올라가 청평사로 내려오는 코스를 선호한다. 배후령에서 정상까지 표고차가 얼마 안되고 청평사에서 시작하는 급경사 오름길보다 수월하기 때문이다. 이렇게 들머리와 날머리가 다르면 교통편이 문제가 된다. 접근 방법은 두 가지다. 승용차를 이용할 경우, 배후령이나 청평사에 주차하고 산행 후 반대로 내려가 택시를 불러 원래 출발지로 되돌아 가는 것이다. 전철을 이용할 경우, 경춘선이나 ITX청춘열차를 타고 춘천역(혹은 남춘천역)까지 가서 택시를 타고 들머리로 갔다가 날머리에서 다시 택시를 타고 출발 역으로 되돌아가는 것이다. 그런데 청평사까지 승용차가 들어가는 것을 의외로 모르는 사람들이 많다. 내비게이션에서 ‘청평사’를 검색하면 알아서 안내한다. 이동이 싫으면 청평사에서 올라가 부챗살로 원점회귀하는 다소 긴 코스도 있다.

우리는 남춘천역 건너 닭갈비집에서 제공하는 25인승 버스를 이용했다. 등산시 남춘천역에서 배후령까지, 하신시 소양강 선착장에서 남춘천역까지 모두 음식점의 도움을 받아 교통시간도 단축하고 편하게 다녀왔다. 무엇보다 비용 절감 효과가 크다. 1년 전 오봉산에 갔을 때는 서울에서 ITX청춘열차를 타고 춘천역 도착 후 택시를 타고 배후령으로 이동했다가 오봉산을 거쳐 청평사로 내려와 유람선으로 소양호를 건넌 후 택시를 타고 춘천역으로 돌아갔는데 ITX청춘열차의 경우 용산-춘천 요금은 1인당 왕복 19,600원이다. 4인이 이용한 택시요금은 춘천역→배후령이 24,600원이고 소양강댐 선착장→춘천역이 18,700원이다.

이 모두가 금동산악회 임원진의 노고 덕분이다. 월례 산행 때마다 발동하는 그들의 면밀한 계획과 민첩한 현장 리더십, 무엇보다 헌신이 있기에 금동산악회 회원들이 63명이나 된다.

우리가 지나온 능선. 왼쪽이 경운산과 끝봉이다.

 

■우리 산행은

청명하다. 전형적인 가을 날씨다. 새삼 느끼는 것이지만 5월과 10월엔 무조건 집 밖으로 나가 자연을 즐겨야 한다. 서울에서 출발할 때 쾌청했던 날씨가 춘천에 다가가니 온통 흐리다. 알고보니 호반의 도시 답게 춘천을 덮고 있는 운무(雲霧) 때문이다. 배후령에 올라가니 운무가 모두 사라지고 기대했던 가을 하늘이 우리를 반긴다.

 

▲배후령~제5봉(정상)

배후령길은 오랫동안 국도 제46호선의 일부였으나 2012년 배후령터널이 개통된 후에는 국도에서 제외되고 통행하는 차량도 드물어졌다. 우리가 오봉산을 찾은 날도 사이클 단체행사가 진행되고 있었다. 우리는 제1봉에 오른 후 능선을 타고 제5봉(정상)까지 갔다가 청평사로 하산한다. 배후령의 해발고도가 600m이고 오봉산 정상(제5봉)의 해발고도가 779m이니 고도를 180m만 높이면 된다. 배후령에는 승용차 10여대를 주차할 수 있는 간이 공간과 화장실 정도만 있다. 산행 입구도 어수선하다.

내 역할은 후미 사수다. 요즘 내 산행 스타일이 천천히 걸어가며 자연을 완상하는 것이다 보니 나에게 딱이다. 후미가 좋은 것은 산행속도가 늦어도 뭐라는 사람이 없다는 것이다. 한마디 보탠다면 산행할 때는 전방주시 만 하지말고 수시로 뒤돌아보아야 한다는 것이다. 그래야 보이지 않던 새로운 풍광을 만날 수 있다.

배후령에서 가파른 산길 360m를 15분쯤 올라가니 주능선 삼거리 안부다. 안내판에 <← 오봉산 1.67㎞, →끝봉 1.7㎞>라고 쓰여 있다. <끝봉 1.7㎞> 표시는 오봉산과 반대 방향인 경운산(794m)과 785봉을 거쳐 끝봉에서 청평사로 하산하는 등산객을 위한 안내다. 코스를 설명하면 청평사매표소~청평사~5봉~경운산~785봉~끝봉~청평사~청평사매표소로 원점회귀하는데 거리는 9.6㎞다. 나중에 필히 다녀올 생각이다. 배후령에서 주능선으로 올라가는데 단풍이 살며시 고개 내밀고 있다. 완연하지는 않지만 단풍 계절의 초입이다. 나는 이때가 좋다. 단풍 절정은 조만간 추운 겨울이 온다는 신호이기 때문이다.

삼거리에서 평탄한 능선을 따라 5분쯤 가면 제1봉이다. 화강암 표지석이 있으나 높이는 표시되어 있지 않다. 살짝 내려가 완만한 산길을 10분쯤 진행하니 제2봉이다. 평탄한 길에 표지석을 설치했는데 표지석만 없다면 봉우리가 아니라 그냥 능선길의 일부다. 2봉과 마찬가지 모습의 3봉을 지나니 뱀꼬리처럼 늘어진 배후령길이 내려다보이고 곧이어 첫 조망바위가 나타난다. 조망바위에서는 이리 휘고 저리 휜 고사목이 산행객을 맞는다. 비로소 소양호가 멀리 내려다보인다. 누가 강원도 산 아니랄까봐 첩첩산중이다. 오른쪽으로는 경운산과 끝봉 능선이, 왼쪽으로는 우리가 가야할 오봉산 능선이 길게 이어져 있다. 고사목과 소양호를 배경으로 사진을 찍느라 모두가 폼잡는데 열심이다. 덕분에 멋진 사진 몇 장을 선물받았다.

3봉부터 4봉까지 능선에 뿌리내린 적당한 크기의 소나무들이 도열해 있고 멀리 오른쪽(남쪽) 소양호를 감상하며 걷느라 발걸음이 자꾸 늦어진다. 오봉산의 매력 중 하나는 소나무다. 직접 눈으로 확인하니 경주나 강릉에서 보았던 아름드리나 낙락장송은 아니다. 괴산의 도락산이나 양주의 불곡산처럼 분재같은 소나무도 많지 않다. 대신 젊고 싱싱하고 푸르른 소나무들이 가을햇살을 받아 반짝이니 눈길이 간다. 좋은 토양에서 자라는 쭉쭉빵빵 금강소나무도 멋이 있지만 바위 틈에서 모질게 자라는 소나무도 나름 매력이 있다.

조망바위에서 찰칵

 

호수 에워싸고 있는 온갖 산들이 소양호를 향해 줄달음치며 달려가

능선길은 소양호를 오른쪽으로 끼고 진행하다가 5봉부터는 소양호를 정면으로 내려다보며 걷는다. 그래서 오봉산을 ‘소양호의 전망대’라고 한다는데 소양호를 감상하기에는 살짝 거리가 멀다. 소양호를 바라보고 있으면 호수를 에워싸고 있는 온갖 산들이 소양호를 향해 줄달음치며 내려가는 형상이다. 4봉은 오봉산 다섯 개 봉우리 중에서 전망이 가장 좋다. 우리가 지나온 서쪽의 주능선은 물론 주변의 여러 산줄기가 한눈에 들어온다. 제4봉에서 제5봉으로 가려면 안부로 내려갔다가 올라가는 급경사 암릉을 두 군데 지나야 한다. 가파른 바위구간이어서 쇠줄과 발디딤판이 설치되어 있다.

오늘도 태훈이 선두에서 뚜벅뚜벅 걷는다. 무릎수술을 받고 체력이 달려서 먼저 간다고 하지만 내가 볼 때는 체력이 전혀 달리지 않는다. 실제로 태훈과 산행을 하다보면 언제나 나보다 속도가 빠르고 힘도 넘친다. 혹시라도 친구들한테 폐 끼치지 않으려고 하는 태훈의 삶의 태도가 이런 산행 방식을 낳은 것 같다. 창화는 수시로 앞으로 갔다가 뒤로 빠지며 친구들 모습을 사진에 담느라 분주하다. 그러면서 수시로 농담을 던져 친구들에게 웃음보따리를 선물한다. 내가 볼 때 창화의 사진 수준은 아마추어와 프로의 중간 급이다. 4명의 중년 여성들은 힘든데도 여전히 씩씩하고 명랑하고 쾌활하다.

4봉을 지나 첫 번째 암릉을 타고 올라가면 사람 키의 3배는 되어 보이는 바위가 우뚝 솟아있고 꼭대기 바위 틈에는 사시사철 눈, 비, 바람을 이겨내며 홀로 버티고 있는 젊은 소나무가 늠름하다. 소나무 옆에 작은 표지석이 있는데 자세히 보니 ‘청솔바위’라고 새겨 있다. 한 번 더 안부로 내려갔다가 쇠줄이 설치된 급경사 암릉길을 올라가야 비로소 5봉이다. 5봉은 오봉산의 정상 답게 대접이 다르다. 1봉에서 4봉까지 정상석은 일반적인 흰색 화강암이지만 5봉 정상석은 반질반질한 검은색의 오석(烏石)이다. 다만 사방이 숲으로 에워싸여 조망은 별로다.

창화가 5봉 정상석 뒤에서 앙증맞은 표정을 하고 있는 태훈의 얼굴을 찍으려고 하자 선종이 “태훈 얼굴이 일본의 도요토미 히데요시 닮았다”며 도리우치 모자를 쓰고 있는 자신은 “하야시 형사”라며 정상석 옆에서 포즈를 취한다. 그 모습을 본 친구들의 웃음소리가 5봉 하늘 위와 소양호로 퍼져나간다. 친구들은 산행의 즐거움과 벗과의 만남을 기대하고 오봉산까지 왔다. 웃고 떠들고 즐기려고 작정한 상태이니 아무 농담에나 반응하고 껄껄거린다.

4봉에서 5봉 중간의 급경사 바위구간(왼쪽)과 청솔바위

 

▲제5봉~배꼽봉(소요대) 前 안부 삼거리

5봉 정상을 지나 50m 아래에 <부용산 2.1㎞, 청평사 2.2㎞> 안내판이 있다. 그곳을 지나 청평사(남쪽) 방면으로 내려가면 경사가 만만치 않은 암릉길이 또다시 이어진다. 다행히 오르막이 아니라 내리막이다. 그 암릉을 중심으로 서쪽(왼쪽)이 선동계곡(청평사계곡)이고 동쪽(오른쪽)이 부용계곡이다. 이곳 암릉은 오봉산에서 가장 빼어난 암골미와 풍광을 자랑한다. 암릉을 따라 소양호를 바라보며 내려가는 이 길이 사실상 오봉산행의 백미로 꼽힌다. 대신 경사가 만만치 않아 조심스럽다.

소양호를 내려다보면서 걷는 암릉길은 서서히 고도가 낮아진다. 암릉을 타고 7~8분 내려서면 조망 좋은 암봉이다. 그곳에 서면 바로 앞으로는 배꼽봉이, 멀리는 소양호가 내려다 보인다. 배꼽봉 조망터로도 불리는 암봉에서 다시 10분 정도 내려가면 홈통바위(일명 구멍바위)다. 배낭을 메고 통과하는 게 까다로울 정도로 공간이 좁고 경사가 가파르다. 쇠줄과 발디딤판을 설치해 위험하지는 않지만 스릴은 있다. 경훈이 이번 산행에서도 놀라운 능력을 보여준다. 한쪽 다리가 불편해 다른 친구들보다 2~3배는 더 힘들텐데도 헉헉거리며 오르내린다. 경훈이 만세다.

홈통바위

 

홈통바위를 빠져나와 10분쯤 내려서면 안부 삼거리에 다다른다. 그곳에 청평사까지 거리를 표시한 안내판이 있다. 부용계곡으로 내려가는 오른쪽(완경사)은 1.6㎞이고 배꼽봉을 지나는 남릉바윗길인 직진(급경사) 방향은 1.5㎞다. 1시간 전 만난 안내판에도 청평사까지 거리가 1.5㎞인데 이곳에서도 청평사까지 거리가 1.5㎞란다. 우리나라 어느 산에 가도 흔히 발견되는 엉터리 안내판을 이곳에서 또 확인한다.

안부 삼거리에서 초보자나 노약자는 오른쪽 계곡길로 내려가는 것이 좋다. 완경사라고 하지만 안부에서 20분 이상이 가파르다. 급경사를 다 내려가면 청평사까지 흙길에 완경사여서 위험하지도 힘들지도 않다. 반면 배꼽봉을 지나 벼랑 아래로 내려가는 코스(남릉 바윗길)는 가파른 내리막이다. 쇠줄이 설치되어 있어 위험하지는 않지만 워낙에 급경사여서 노약자나 초심자에게는 피하는 것이 좋다. 우리 코스는 계곡 쪽이다.

그런데 후미에서 가던 내가 선근과 성기와 아내에게 “배꼽봉 정상이 정말 멋지니 올라갔다가 내려오자”며 꼬드긴다. 원칙주의자 남수 대장 몰래 하는 것이니 우리로서는 소심한 일탈이다. 나로서는 1년 전 10월 내려갔던 남릉바윗길이 다시 보고싶었고 두 친구에게 그곳의 조망을 선물하고 싶었다. 우리는 배꼽봉에 올라 조망을 즐기고 다시 안부삼거리로 내려가 계곡 쪽으로 하산했다.

 

▲안부 삼거리~청평사

 

계곡 코스(안부삼거리~계곡~청평사)

안부삼거리에서 오른쪽 계곡 쪽으로 방향을 정하면 시작부터 급경사다. 20개 쯤 되는 데크계단만 있고 그 아래로는 급경사 흙길이다. 전국 산마다 설치된 그 흔한 데크 계단을 설치하면 딱 좋을 것 같은데 폭우가 내리면 쓸려내려갈 것 같아 자연 상태 그대로 나뒀다는 생각이 든다. 계곡 길을 걷는 것이니 조망도 없고 풍광도 그러 그렇다. 그러다가 안부 삼거리에서 30분 쯤 내려가면 <청평사 고려선원> 안내판이 나온다. 그곳부터 청평사 아래 매표소까지가 고려선원 영역이라는 안내판이다. 청평사와 고려선원은 이 글 아래에서 소개한다.

<청평사 고려선원> 안내판 옆에 오층석탑이 산쪽으로 140m 올라간 곳에 있다는 방향목이 있다. 이번에도 혼자 오층석탑에 올라갔는데 오래 전 것이 아니라 1978년에 조성한 것이서 살짝 실망했다. 다만 최근에 만들어져 세련되고 균형감도 있다. 앞에서 친구들이 기다리는데도 설렁설렁 내려가다보니 배후령에서 청평사까지 4시간 40분 걸렸다. 물론 친구들은 청평사에서 우리를 30분 이상 기다렸다. 미안하오 남수대장 각하. 전체 코스를 요약하면 ‘배후령 → (2.0㎞) ← 오봉산(제5봉) → (1.5㎞) ← 배꼽봉 → (1.5㎞) ← 청평사’다.

 

남릉바윗길 코스(안부삼거리~배꼽봉~청평사)

남릉 바윗길 코스를 소개한다. 안부 삼거리에서 10분 정도 올라가면 배꼽봉(688m봉)이다. 봉우리 끝에 조망이 빼어난 ‘소요대(逍遙臺)’가 있다. 소요대는 조선 후기 학자 서종화가 ‘청평산기’에 소개할 만큼 조망이 뛰어나다. 암릉에서는 잘 보이지 않던 낙락장송이 깎아지른 절벽 위에서 소양호를 내려다보고 있다. 청평사 지붕도 비로소 내려다 보인다. 오봉산 전체에서 최고 전망터라는 수식이 결코 과장이 아니다. 배꼽봉에서 10분 정도 내려가면 과거 하늘에 제사를 지냈다는 천단이 있고 그 위에 촛대바위가 우뚝하다.

거북바위에서 내려다본 청평사와 소양호(왼쪽). 오른쪽은 촛대바위다.

 

이후 하산길은 청평사까지 본격적인 급경사 암릉길이다. 바위마다 척박한 환경 속에서 질긴 목숨을 이어가는 소나무들이 즐비하다. 거북이 뒷모습을 한 바위도 있다. 수십 길 벼랑 위를 걷는 이곳 암릉길은 험하기도 하지만 일부 구간은 위험하기까지 하다. 쇠말뚝과 쇠줄의 연속이다. 따져보지 않았지만 구불구불 이어진 쇠줄 지대가 100m 이상은 되는 것 같다. 자세를 최대한 낮춰 조심조심 쇠줄을 잡고 내려오는 데만 30분 이상 걸린다. 이렇게 긴 쇠줄 지대는 내 산행 경험상 이곳이 처음이다. 팔을 써서 내려가야 하므로 한동안 팔뚝이 무겁고 욱신거린다.

그럼에도 급경사 바윗길을 내려가며 파란 가을 하늘, 푸르른 소양호, 호수를 감싸고 있는 초록의 연봉들, 선동계곡의 울창한 숲, 청평사의 지붕 등을 바라보는 맛은 오봉산이 왜 100대 명산인지를 실감하게 한다. 생각해보니 등산 초보자가 청평사에서 바로 오르는 것은 무리다. 배낭을 멘 상태에서 팔을 이용해 길고 가파른 바위 구간을 오르는 게 결코 쉽지 않기 때문이다.

 

■청평사와 고려선원

오봉산까지 왔는데 청평사를 스쳐 지나칠 수는 없다. 보물 제164호로 지정된 회전문과 천년 이상 지켜온 고려선원의 정취를 눈으로 확인할 수 있기 때문이다. 수령이 각각 800년과 500년 된 주목도 있다. 오봉산에 오르지 않고 청평사와 고려선원만 보려고 오는 사람들도 많다. 길도 순하고 소양호 유람선까지 있으니 일부러 찾아올만 하다.

청평사 모습. 뒤 봉우리는 남릉바윗길이다.

 

청평사는 고려 광종 24년(973) 때 세운 백암선원을 연원으로 하고 있다. 그 후 고려 전기 학자 이자현이 이곳 경치에 반해 청평산(淸平山)이라 부르고 절 이름을 문수원이라 했다는 기록이 있다. ‘청평(淸平)’은 더러운 것을 맑게 하고, 소란스러운 것들을 평화롭게 한다는 의미다. 이자현의 호이기도 하다. 조선 중기 보우대사가 중건한 뒤 청평사라고 개칭했다고 한다.

청평사에는 국보로 지정된 극락전 건물과 고려 최고의 명필가인 탄연이 쓴 문수원기비가 있었으나 6·25 전쟁 때 모두 불타고 회전문만이 유일하게 남았다. 지금의 극락전과 문수원기비는 최근 복원한 것이다. 회전문(廻轉門)은 1557년경 보우대사가 청평사를 대대적으로 중건할 때 세운 사찰의 중문(中門)이다. 한글 이름만 보면 빙글빙글 돌아가는 문으로 생각하기 쉬우나 사실은 청평사 창건설화인 공주설화와 연계해 중생들에게 윤회의 전생을 깨우치기 위한 마음의 문이다. 그래서 이름이 윤회 의미의 회전문이다. 용마루 곡선과 오봉산 바위봉우리의 조화가 일품이다.

고려선원 영역

 

청평사를 소개하면서 고려선원(高麗禪園)을 빼놓을 수 없다. 고려선원은 청평사를 중심으로 계곡, 영지, 소(沼), 반석, 기암괴석, 폭포 등이 어우러진 일대를 일컫는다. 대한민국 명승 제70호로 지정되었으니 문화재청이 보증한 자연 명소다. 청평사에서 소양호 선착장으로 이어진 호젓한 길을 내려가다 보면 영지(影池)가 계곡 옆에 있다. 일본이 자랑하는 정원보다 200년이나 앞선 정원이어서 우리나라 ‘연못의 시조’로 불린다. 다시 길을 따라 내려간다. 오른쪽으로 이자현의 부도가 있고 왼쪽에 중국 원나라 순제의 공주와 상사뱀의 전설이 얽힌 삼층석탑(공주탑)이 있다. 그 아래에 아홉 가지의 소리를 내며 떨어진다는 전설의 구송폭포(혹은 구성폭포) 소리가 요란하다. 높이 10m에 12폭 병풍을 펼친 듯한 길이 40m 수직 절벽 아래로 계곡물이 세차게 쏟아져 내린다.

청평사 주변엔 ‘공주와 상사뱀’ 동상(계곡), 공주굴(구송폭포 옆), 공주탕(청평사 옆)도 있는데 모두 당나라 공주 설화와 관련 있다. ‘공주와 상사뱀’ 설화는 절에 대한 흥미를 한층 더해준다. 청평사 문화유산 해설사는 설화를 이렇게 설명한다. “옛날 중국에서 공주를 사랑하다 왕에게 발각되어 처형된 평민이 ‘상사뱀’으로 환생, 공주의 몸을 감싸고는 떨어지지 않았다. 주변사람들의 권유로 청평사를 찾은 공주가 기도를 올리자 회전문을 통과하던 뱀은 갑자기 쏟아진 폭우에 떠내려가 죽고 말았고 그 공주가 부처님 은공에 감사드리기 위해 삼층석탑을 세웠다.”는 것이다. 고려선원 일대를 감상하며 선착장에 도착하니 유람선이 기다린다. 소양호를 가로지르니 오늘 산행의 대미다.

구송폭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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