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땅 구석구석

‘신두리 해안사구’를 아십니까… 충남 태안의 사구(沙丘)를 보러 갔다가 산책길과 해수욕장에도 반했답니다

↑ 신두리 해안사구의 모래언덕과 데크길

 

by 김지지

 

여행을 떠나기 전 해당 지역 지자체 홈페이지를 살피는게 습관이 됐다. 그중 특히 관심이 많은 곳은 지자체가 추천하는 ‘8景’ ‘10景’ 등이다. 이를테면 예천8경, 고흥10경 식이다. 충남 태안을 찾아갈 때도 홈페이지에 들어가니 ‘태안팔경’이 손짓을 한다. 전국적으로 유명한 만리포해수욕장이 4경이고 이름이 생소한 ‘신두리 해안사구’가 5경이다. ‘사구(沙丘)’의 뜻이 바람으로 운반된 모래가 쌓여서 만들어진 언덕이므로 해안사구(海岸沙丘)는 해안을 따라 발달한 모래 언덕이다. 신두리는 지명이다.

하늘에서 내려다본 해안사구. 바다와 숲 사이의 모래 벌판이 사구다. (출처 태안군청)

 

■신두리해수욕장 주변

신두리 해안사구는 태안군 원북면의 신두해변길 도로가 끝난 지점에 있다. 사구 앞으로는 엄청난 길이를 자랑하는 신두리해수욕장이 있다. 전체적으로 깔끔하고 깨끗하다. 주차장과 화장실도 그러하고 주변 상가 시설도 세련됐다. 태안에서 만리포해수욕장 등 오래전 개발된 곳은 도로나 상가들이 어수선하고 지저분한데 이곳은 신도시 느낌이 물씬 풍겨 쾌적하다.

해안사구로 가기 전 먼저 신두리해수욕장으로 내려갔다. 상상했던 것 이상으로 넓고 컸다. 태안군 홈페이지에 따르면 만리포해수욕장 길이는 3㎞, 신두리해수욕장 길이는 3.1㎞다. 그렇다면 규모가 얼추 비슷해야 하는데 같은날 두 해수욕장을 모두 살펴본 내 눈에 비친 규모는 차이가 많이 났다. 네이버에서 위성지도를 보아도 신두리해수욕장이 1.5배는 더 길어 보인다. 참고로 해운대해수욕장 길이는 1.5㎞, 경포대해수욕장은 1.8㎞, 대천해수욕장은 3.5㎞다. 신두리해수욕장은 수심이 얕고 경사가 완만하다. 찾아간 날은 마침 간조였는데 해안선이 정말 멀게 느껴진다. 바닥 모래는 푹푹 파이지 않고 단단해 걷거나 뛰는데 불편함이 없다. 모래 위를 걷는데 가늘고 고운 모래가 바람에 날린다. 오래전 이 모래들이 쌓이고 쌓여 해안사구를 만들었을 것이다.

신두리 해안사구에서 바라본 해수욕장

 

■신두리 해안사구

신두리 해안사구는 우리나라 사구 중 가장 큰 모래 벌판과 언덕이다. 바닷물 흐름에 따라 연안의 바닷 속에서 생성된 모래가 바람과 파랑(잔물결과 큰물결)과 밀물에 밀려 올라와 모래 언덕을 만들었다. 특히 바다에서 내륙으로 강력한 북서풍이 부는 겨울철에 모래의 대이동이 벌어지는데 현재의 사구 모습은 빙하기 이후 1만 5000년 동안 쌓이고 쌓인 결과물이다.  전체 길이는 3.4㎞, 폭은 0.5∼1.3㎞, 언덕의 최대 높이는 19m다. 신두사구센터 직원에 따르면 사구 곳곳에서 초록이 춤을 추는 계절에는 이렇게 넓게 보이지 않지만 식물들이 누렇게 변해 모래와 색깔 구분이 쉽지 않은 황량한 계절에는 더 넓고 크게 보인다고 한다. 사구 배후에는 소나무의 일종인 곰솔이 길게 방풍림을 이뤄 또 다른 분위기를 연출한다. 원형이 잘 보존된 북쪽지역 일부가 2001년 11월 천연기념물 제 431호로 지정되었고 2021년에는 ‘한국관광 100선’에 선정되기도 했다.

신두리 해안사구에는 독특한 생태계가 조성되어 있다. 식물군으로는 해당화, 초종용, 순비기, 통보리사초, 모래지치는 물론 갯완두, 갯매꽃, 갯방풍 등 희귀식물들이 분포하고 둥물군으로는 멸종위기 2급의 표범장지뱀(도마뱀 일종), 종다리, 맹꽁이, 쇠똥구리, 아무르산개구리, 금개구리 등이 서식하고 있어 생태적으로 중요하다. 국내에서 신두리 해안사구와 비교되는 곳도 있다. 전남 신안군 우이도의 모래언덕이다. 경사면 길이 100m에 해발고도 50m, 경사도 32~33도여서 얼핏 신두리보다 더 사구같은 모습일 것 같지만 언덕 가운데에 좁게 자리잡고 있어 신두리에 비해 인상적이지 않다.

신두리 해안사구 산책길 코스

 

■해안사구 산책길

신두리 해안사구는 전체적으로 야트막한 언덕이다. 그 안에 모래 벌판과 높고 낮은 언덕이 있다. 그중 가장 눈에 띄는 둔덕(가운데가 솟아서 불룩하게 언덕이 진 곳)은 길이가 얼핏 200m 정도 되어 보이는데 둔덕 주변에 나무 펜스를 쳐놓아 접근할 수 없다. 그렇기 때문에 장소를 옮겨가며 살펴야 다양한 모습을 만날 수 있다. 방문자를 위해 태안군이 조성한 것이 세련되고 멋진 산책길이다. 산책길을 걷다보면 사구를 다양한 위치에서 바라보는 맛도 있지만 산책길 자체가 주는 매력이 그에 못지 않다. 내게는 산책길이 사구보다 더 만족스러웠다. 해안사구의 가치가 높아진 것도 산책길 덕분이다.

해안사구 주변 산책로는 크게 A, B, C 3개 코스로 나뉜다. A코스는 1.2㎞에 30분, B코스는 2㎞에 1시간, C코스는 4㎞에 2시간 정도 걸린다. 가장 짧은 A코스는 한자에서 입구(口)자를, B코스는 날일(日)자를, C코스는 눈목(目)자의 바깥 선을 생각하면 이해하기 쉽다. 세 코스를 눈목(目)자처럼 지그재그로 걸어가면 전체 거리가 5㎞ 정도 된다. A, B 코스는 모래 위에 조성한 세련되고 깔끔한 목재 데크길이고 C 코스는 흙길이다. 데크길은 마치 제주도 윗세오름의 데크길 느낌을 준다.

기대치도 않았던 산책로 주변 무성한 식물을 보고 아내가 “드넓게 펼쳐진 초원 같아서 제주도가 연상된다”며 만족감을 표시한다. 해안이 바라보이는 흙길을 따라 걷는데 아내가 갑자기 가던 길을 멈추고 춤을 춘다. 영화 ‘마더’에서 김혜자가 이곳 억새골에서 춤을 춘 것처럼. 아내가 따라한 춤은 가수 선미가 추었던 섹시하고 요염한  ‘열이 올라요’ 춤이지만 50대 후반 아내의 춤은 영화 ‘마더’에서 춤췄던 김혜자의 춤과 흡사해 살짝 웃프다는 생각이 든다.

산책길을 걷다가 춤을 추는 아내

 

제주도라면 말이 노닐었을 풀밭 위에 3마리 한우가 한가롭게 쉬고 있다. 옛 시골 정취를 느끼게 할 관광 목적의 방목 한우로 알고 있었는데 다녀와 알고보니 ‘쇠똥구리 복원’이라는 괴로운 미션을 수행 중이었다. 신두리 해안사구는 태안의 대표적인 쇠똥구리 서식지였다. 하지만 쇠똥구리는 자연 생태계 변화로 2001년 이후 관찰되지 않고 있다. 태안군은 이곳 신두리에서 쇠똥구리가 사라진 이유를 “소를 방목해 키우는 농가가 없는 데다 해안사구가 갈수록 건조해서 쇠똥구리가 살기에 부적절한 환경으로 바뀐 것”으로 보고 쇠똥구리 복원을 추진했는데 기생충 약이나 방부제 등이 섞인 배합사료를 먹고 자란 한우 배설물에서는 쇠똥구리가 서식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 한우들에게 풀만 먹으라는 미션을 준 것이다. 다행히 신두리 사구에는 갯그령·산조풀·갯쇠보리 등 한우가 좋아하는 식물이 많다. 물론 풀만 먹었다간 소의 건강이 문제가 되므로 콩죽·콩 껍질 등 유기농 사료도 먹이로 준다.

 

■해안사구의 테마별 이름

산책로 곳곳에 그곳을 특징짓는 이름이 있다. 초종용 군락지, 순비기언덕, 고라니동산, 엽낭게달랑게, 곰솔생태숲, 작은별똥재, 해당화동산, 억새골 등이다. 왜 이런 이름을 지었는지 미리 알고 산책하면 아는만큼 보이므로 산책이 더 흥미로울 수 있다. 초종용은 바닷가 모래톱에 자생하는 다년생 희귀식물이다. 5~6월에 갈색 줄기에 연한 보라색의 꽃이 층층이 핀다. 다만 엽록체가 없어서 광합성을 하지 못한다. 결국 사철쑥의 겉뿌리에 자신의 기생뿌리를 부착시켜 자란다고 해서 사철쑥더부살이로도 불린다. 고라니동산이라고 한 것은 고라니가 있어서일 텐데 고라니는 새벽과 해질녘에 활발하게 활동하기 때문에 대낮에 고라니를 만나는 일은 흔치 않다.

순비기언덕은 언덕에 순비기나무가 많이 자라서 붙여진 이름이다. 주로 해안가 모래땅에서 자라는데 뿌리가 땅을 움켜쥐고 있어 바닷물에 모래밭이 씻겨 내려가 해안 침식이 일어나는 것을 막아주는 중요한 역할을 한다. 다만 미국의 일부 지역에서는 해안가를 너무 무성하게 뒤덮어 침입종으로 여겨지기도 한다. 줄기가 옆으로 비스듬히 누워 땅 위를 기는 모양으로 자라는데 다 자란 높이는 20~100㎝ 정도다. 7~9월쯤 보라색과 자주색의 꽃이 군락으로 핀다. 순비기나무의 이름은 ‘해녀가 숨을 비우고 (물 안에) 들어간다’는 뜻의 제주도 방언 ‘숨비’에서 유래했다고 전해진다.

고라니동산으로 이어진 데크길

 

곰솔생태숲에서 곰솔은 소나무과에 속하는 상록침엽수다. 소나무보다 억세고 강한 잎을 가지고 있다. 바닷가에서 자란다고 해서 해송, 줄기의 껍질이 검다고 해서 흑송으로도 불린다. 곰솔이 양옆으로 빽빽한 곰솔생태숲을 걷다보면 절로 힐링이 된다. 강추다. C 코스 중간의 작은별똥재는 오래전 운석이 떨어져 생긴 움푹 패인 둥글고 큰 구덩이다. 신경쓰지 않고 지나가면 그냥 지나칠 수도 있으나 다행이 안내판이 있다. 엽랑게달랑게는 엽랑게와 달랑게를 합친 말로 해변에서 종종 발견되는 작은 모래 경단을 쌓아놓은 주인공이다.

곰솔생태숲

 

C코스 끝지점의 해당화동산은 주로 6~7월에 삭막한 모래 언덕에서 분홍꽃을 피우는 해당화 군락지다. 꽃은 고우면서도 강렬하고 열매는 주황색이어서 탐스럽다. 신두리해수욕장에서 시작하는 태안해변길 1코스 바라길(12㎞)은 해당화동산을 지나 북쪽의 학암포항까지 이어진다. 억새 군락의 억새골은 넓게 펼쳐진 사구와 함께 이국적인 풍경을 자아낸다. 봉준호 감독의 영화 ‘마더’에서 김혜자가 춤을 추며 등장했던 첫 장면이 억새골에서 촬영되었다.

 

■영화 속 신두리 해안사구

친구 희용에게 신두리를 다녀왔다고 하니 자신은 다녀오지 않고도 영화에서 이곳이 소개되었다며 영화 제목과 스토리를 알려준다. 영화 ‘가을로’(2006년)인데 내용은 이렇다. 방송사 PD인 민주(김지수)와 사법연수원생 현우(유지태)는 결혼식을 불과 한 달 앞둔 연인 사이다. 둘이서 혼수품을 고르기로 한 1995년 6월 29일. 현우는 일이 많아 자신은 조금 늦게 가겠다며 민주를 먼저 삼풍백화점에 보냈다. 그러나 민주는 백화점 붕괴로 처참하게 세상을 떠난다. 현우는 민주를 죽음으로 내몬 것이 자신이라는 자책감으로 10년 동안 피폐한 삶을 살아가다가 어느날 민주 아버지에게서 한 권의 다이어리를 건네받았다. 민주가 현우와 함께 가고 싶은 신혼여행지를 써 놓은 다이어리인데 그중 한 곳이 신두리 해안사구였다.

신두리 해안사구는 특유의 신비로운 분위기 덕분에 ‘가을로’ 말고도 여러 영화가 촬영되었다. ‘마더’(2009년)에서 김혜자가 억새풀 사이에서 춤을 추며 혼란스러움을 표현한 곳도 이곳이었고 ‘최종병기 활’(2011년)에서 청나라 기마 병사 류승룡이 병사들을 이끌고 벌판을 내달리는 박해일을 추격하는 장면도 이곳에서 탄생했다. 또 영화 ‘스캔들’, ‘불꽃처럼 나비처럼’에도 신두리 해수욕장 백사장이 등장한다.

영화 ‘마더’의 한 장면. 배우 김혜자씨가 이곳 억새골에서 춤을 추고 있다.

 

영화 ‘가을로’ 한 장면

 

■두옹습지

신두리까지 갔다면 꼭 두옹습지를 둘러보는 것이 좋다. 사구에서 남쪽으로 1.5㎞ 거리에 15분 정도 걸린다. 길이 200m, 폭 100m, 수심 3m이니 꽤 규모가 크다. 희귀 야생동식물의 서식처로 유명하다. 텃새인 황조롱이, 천연기념물 323호 불은배새매, 멸종위기종 2급인 금개구리와 맹꽁이 등이 이곳에 터전을 마련하고 있다. 노랑부리백로와 이끼도롱뇽을 비롯해 다른 곳에서 보기 힘든 생물들이 새롭게 발견되는 등 생태적 가치를 인정받아 2007년 람사르 습지로 지정되었다.

두옹습지 (출처 태안군청)

 

신두리 해안사구에서 자라는 식물들. 왼쪽부터 순비기나무, 해당화, 초종용

 

error: Content is protected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