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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농민 신형준의 ‘세상 바투보기’] 겸재 정선의 ‘인왕제색도’ 상단에 적힌 한자 12자 이해하기

↑ ‘인왕제색도’ 그림

 

5월 7일 서울 용산 국립중앙박물관에서 고 이건희 소장품 전시회(공식 명칭은 ‘어느 수집가의 초대’)를 보았습니다. 관객의 눈길을 가장 오래 붙들고 있는 것은 역시 겸재 정선의 ‘인왕제색도’였습니다. 조선 중후기 진경산수(眞景山水)의 대표작이니 그럴 수밖에요. 아름다움에 눈 먼 미맹(美盲)인 저는 솔직히 인왕제색도에서 큰 감동을 받지 못했습니다.

더 솔직히 말하겠습니다. 이 그림은 18세기 중엽(1751년) 작품입니다. 그림을 보면서 미술사학자들은 ‘실제 우리 풍경을 화폭에 빼어난 솜씨로 담았다’(=진경산수)고 극찬합니다. 솔직히 이 시기 유럽의 풍경화와 비교해 보십시오. 과연 그런 그림과 비교하고도 인왕제색도를 걸작이라고 이야기할 수 있을지. 저는 그리 봅니다. ‘중국풍 산수화, 더 정확히 말해서 중국의 풍경을 그린 중국 산수화를 베껴서만 그리다가, 우리의 실제 산과 강 풍경을 그린 점에서 인왕제색도 같은 진경산수화의 가치는 무척이나 크다. 하지만 이 그림을 당대의 서양 풍경화와 비교하지는 말자. 조선의 진경산수화는 조선의 실제 풍경을 담았다는 것에 의미를 두어야 한다. 거기서 한발 더 나아가, 당대 조선화가 세계적 수준이었다는 식으로 이야기하지는 말자.’

1983년 11월 22일 치른 학력고사에서 ‘(중학교 때보다 월등히 오른 성적을 받아) 모 대학 모 과를 겨우 들어갈까 말까 한 점수’를 받은 저를 ‘서울대 법대 장학생 입학 실력의 우수한 점수를 받았다’고 과장하지는 말자는 의미입니다. 우열은 그 자체로 인정하자는 뜻입니다. 돌아가신 미술사가 황수영 선생님(동국대 미술사학과 교수. 전 국립중앙박물관장)은 저에게 “미술품은 눈싸움을 하듯 봐야 한다”고 하셨습니다. 한데 미맹에, ‘근대 이후 서구 콤플렉스에 찌든’ 제가 인왕제색도를 보면서 그런 생각을 할 리가 없지요. 하여 그림보다는 그림 오른쪽 위편에 적힌 글씨에 더 눈이 갔습니다.

‘인왕제색도’ 상단에 적힌 한자 12자

 

위에 첨부한 사진에서도 알 수 있듯, 인왕제색도에는 한자 열두 자가 적혀 있습니다. 한자 까막눈인 저는 이 중 세 글자는 제대로 읽지 못하고, 뜻도 전혀 모르겠더군요. 사진 중 노란색 원 안에 담긴 글자를 말합니다. 우선, 1번으로 표시한 글자부터 설명하면. 인왕제색도는 문화재청의 국보 설명 등 거의 대부분의 자료에서 ‘仁王霽色圖’라고 씁니다. ‘霽’자는 ‘비 갤 제’입니다. 비 雨 자에, 가지런할 齊 를 써서, ’비가 갠 뒤’라는 뜻입니다. 한데 겸재가 그림에 직접 쓴 글에는 雨 자 밑에 有를 적었습니다.(이 글자는 한자 자판에서는 찾을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이렇게 파자를 해서 올립니다.)

이게 뭔 음이고 뜻일까? 한자 자전도 찾아보고, 전광진 성균관대 중문과 명예교수 님께도 여쭈었습니다.(전 선생님은 국내 한학 연구의 최고 권위자 중 한 분이십니다. ‘이런 분을 제가 알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감사에 감사) 뜻이 비슷하여 서로 바꿔쓸 수 있는 한자랍니다. 한데, 겸재는 비 갠 뒤 풍경을 의미하는 ‘제’를 ‘霽’로 쓰지 않고, 雨 밑에 有 자로 썼습니다. 앞으로 인왕제색도를 설명할 때 표기가 비록 힘들기는 하겠지만, 가능하면 겸재가 쓰던 대로 표기해야 하지 않을까 합니다.

글자 사진에서 2번으로 표현한 두 글자는 전혀 읽지 못하겠더군요. 전광진 선생님은 초서체로 정선의 호인 겸재(謙齋)를 쓴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마지막 3번. 점 세 개를 삼각형처럼 찍었는데, 제가 보기에는 ‘六’처럼 혹은 마음 心 자를 흘려 쓴 것처럼 보였습니다. 국립중앙박물관장을 지내신 이영훈 선생님, 그리고 대전시립미술관장이신 선승혜 선생님의 설명에 따르면 이 글자는 아래를 뜻하는 ‘下’ 자랍니다. 이영훈 선생님은 왕희지가 ‘下’ 자를 자주 이렇게 썼다고 말씀하셨고, 전광진 선생님은 초서체라고 부연하셨습니다.

돌머리에 한자 까막눈인 제가 쟁쟁한 대가들의 설명을 들으니, 그제야 열두 자에 대한 독음과 해석이 되더군요. ‘仁王제(제는 雨밑에 有)色 謙齋 辛未(1751년) 閏月(1751년에 윤달은 음력 윤오월을 말함)下浣(하순下旬과 같은 의미) / 비 갠 뒤 인왕산 모습을 겸재가 1751년 윤오월 하순에 그림.’ 무식하고 한자에 까막눈이다 보니, 옛 그림에 적힌 글자조차 제대로 이해하지 못합니다. 한자와 한문 공부를 기초부터 다시 해야 할 듯합니다. ‘한자의 정석’ 혹은 ‘성문 기본 한자’ 같은 책, 어디 없습니꽈!

 

※‘바투보기’는
가까이에서 정밀하게 바라본다‘는 뜻이다. 고유어 ‘바투(두 대상이나 물체의 사이가 썩 가깝게)’와 ’보기‘를 합친 필자의 造語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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