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토리박스

민음사 발간 <세계문학전집> 400권 중 가장 많이 팔렸다는 소설 ‘호밀밭의 파수꾼’과 작가 제롬 데이비드 샐린저에 대하여

↑제롬 데이비드 샐린저

 

by 김지지

 

민음사가 최근 김수영 시인의 ‘시여, 침을 뱉어라’를 출간함으로써 세계문학전집 400권을 돌파했다. 그중 독자들에게 가장 많은 사랑을 받은 책은 제롬 데이비드 샐린저의 ‘호밀밭의 파수꾼’(2001년 5월 발간)이다. 샐린저는 어떤 인물이고 소설은 어떤 책인지 그 내용을 알아본다.

 

‘호밀밭의 파수꾼’, 작가 생전에 30여 개국 언어로 번역되어 6,000만 부 팔려

소설 ‘호밀밭의 파수꾼’은 내용이 단순하다. 그런데도 세월을 뛰어넘어 전 세계인의 사랑을 받고 있다. 소설은 작가 제롬 데이비드 샐린저(1919~2010)의 생전에 30여 개국 언어로 번역되어 6,000만 부나 팔렸다. 이를 반영하듯 ‘20세기 영미 100대 소설’(1998년 미국의 랜덤하우스 출판사), ‘현대 영문소설 베스트 100선’(2005년 타임), ‘100대 명저’(2009년 뉴스위크)로 선정되었다.

샐린저는 미국 뉴욕에서 폴란드 출신 유대인 아버지와 아일랜드계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나 성적 불량으로 중학교를 퇴학당해 육군 소년학교(1934~1936)를 졸업했다. ‘호밀밭의 파수꾼’에 등장하는 펜시고등학교는 이 소년학교가 모델이다. 샐린저는 뉴욕대 등 몇몇 대학의 청강생으로 다니면서 소설을 썼다. 1940년 ‘젊은이들’이라는 단편으로 등단하고 ‘뉴요커’ 등의 잡지에 작품을 발표했다. 2차대전에 징집되어 노르망디 상륙작전에 참전했을 때도 틈틈이 작품을 썼다. 1951년 3주 만에 탈고한 ‘호밀밭의 파수꾼’(1951년 7월 16일 발간)을 발표함으로써 일약 전후 미국 문학을 대표하는 작가로 부상했다.

‘호밑밭의 파수꾼’ 초판(1951년)

 

‘호밀밭의 파수꾼’은 세 번 퇴학을 당하고 성적 불량을 이유로 네 번째 퇴학을 앞두고 있는 펜시고등학교 3학년생 인 16살 홀든 콜필드가 2박3일 가출 기간 겪은 경험을 의식의 흐름 형식으로 그린 청소년 소설이다. 주인공은 어느날 학교에서 나와 뉴욕 시내를 방황하며 겪는 일상을 통해 어른 세계의 부조리와 교육계의 가식과 위선을 가차없이 꼬집었다. 그는 세상의 혼돈 속에서 어린 여동생 피비가 깨끗하고 맑은 사랑의 소유자임을 발견하고 현실세계로 돌아온다. 주인공은 넓은 호밀밭에서 놀고 있는 어린이들이 낭떠러지에서 떨어지지 않게 안전하게 붙잡아주고 보호해주는 파수꾼의 역할을 하고 싶다고 고백한다.

육군 소년학교 시절의 샐린저

 

‘샐린저 현상’이라는 말까지 생겨

소설은 거침없는 비속어와 냉소적이고 거친 언어로 가득하다. 줄거리까지 단순해 발간 초기에는 호평을 받지 못했다. 뉴욕타임스의 북리뷰는 “너무 길고 단조롭다”고 평했으며, 저속하고 천박하고 추잡하다는 비평도 적지 않았다. 청소년의 학교생활 부적응, 음주, 혼전 섹스, 동성애 등을 다뤄 소설을 금서목록에 올리는 학교도 많았다. 소설을 권장한 교사의 사임을 요구하는 학부모도 있었다.

그러나 곧 주인공 홀든의 민감한 감수성과 결벽증을 통해 허위로 가득찬 사회와 삶의 이면을 조명하는 생생한 장면들이 독자들을 사로잡으면서 1950년대 미국 사회에 회의를 품은 청년문화를 대표하는 작품으로 인정받았다. 미국의 젊은이들 사이에는 반드시 읽어야 하는 통과의례적인 작품으로 받아들여지고 ‘샐린저 현상’이라는 말까지 생겨 빈번하게 연구와 비평의 대상이 되었다. ‘샐린저 현상’은 기성세대의 질서와 안정, 허위와 위선을 거부하는 일종의 정신적 운동을 뜻했다. 여기에 1959년 윌리엄 포크너가 “현대문학의 최고봉”이라고 격찬한 덕에 샐린저는 “20세기의 가장 문제적인 미국 작가”라는 명성을 얻었다. 일본의 무라카미 하루키는 이 소설을 일본어로 직접 번역 출간하고 자신의 대표작 ‘상실의 시대’에서 주인공을 통해 최고의 작품으로 꼽았다.

2차대전에 참전했을 때 파리에서

 

기행의 연속… 세계적 명성에도 지독한 은둔생활을 고집

수십년 후에도 미국 저명인사들의 살해범 다수도 이 소설을 즐겨 읽은 것으로 알려져 더욱 유명세를 탔다. 1980년 존 레논의 살해범인 마크 채프먼은 “모든 사람들이 ‘호밀밭의 파수꾼’을 읽는 것이 내 소망”이라고 암살 동기를 밝히는가 하면 케네디 대통령의 암살범인 리 하비 오스월드와 로널드 레이건 대통령의 저격 미수범인 존 헨릭도 이 소설을 좋아했다. 음모론을 다룬 멜 깁슨 주연의 영화 ‘컨스피러시’(1997년)에서는 주인공이 불안할 때마다 이 책을 구매하는 장면이 나온다.

샐린저의 삶은 기행의 연속이었다. 그는 세계적인 명성에도 불구하고 지독한 은둔생활을 고집했다. 1953년 뉴욕 생활을 청산하고 홀연 뉴햄프셔주 코니시의 산골마을에 정착한 후 인터뷰를 철저히 거부하고 외부세계와 담을 쌓은 채 지냈다. 신문과 잡지사 기자들이 수시로 그를 찾았지만 그는 무응답으로 일관했다. 엘리아 카잔 감독의 영화 제의도 거부하고 스티븐 스필버그도 문전박대했다. 그가 쓴 편지 내용을 끼워 제작한 ‘샐린저 전기’도 출판을 금지시켰으며 그의 사생활을 과장해 소개한 웹사이트는 소송을 통해 문을 닫게 만들었다. 허락 없이 원작을 모티브로 삼아 속편을 쓴 작가를 상대로 판매금지를 요구하는 법정 소송을 벌여 결국 미국과 캐나다에서 소설이 출간되지 못하도록 했다. 이처럼 기인 생활을 하니 그를 모델로 삼은 영화도 등장했다. 대표적인 영화가 ‘파인딩 포레스터(2001년)’와 ‘호밀밭의 반항아’(2018년)다.

샐린저는 은둔하면서도 여성 편력은 멈추지 않았다. 상대는 언제나 젊은 여성이었다. 1955년에는 19살의 하버드대생과 결혼했다가 1968년 이혼하고, 1972년에는 18살의 예일대 여학생과 1년간 동거했다. 작품도 발표하지 않아 1965년 단편소설 ‘햅워스 16, 1924’ 발표를 마지막으로 죽는 날까지 45년 동안 단 한 편의 소설도 세상에 내놓지 않았다. 15권의 소설을 써놓고도 “나 자신을 위해 쓴 것”이라는 이유로 발표하지 않았다. 샐린저는 평생 단 1편의 장편소설 ‘호밀밭의 파수꾼’과 13편의 단편소설을 남겼다.

샐린저가 은둔하며 살았던 뉴햄프셔주 코니시의 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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