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토리박스

[에드워드 윌슨 별세] ‘사회생물학’을 새 학문분야로 개척하고 ‘진화’의 새 장을 연 ‘생물학의 거두’

↑에드워드 윌슨

 

by 김지지

 

1970년대 세계 지성사에서 주목할 사건의 하나는 사회생물학의 도전이다. 사회생물학을 이끈 이들이 리처드 도킨스와 미국의 생물학자 에드워드 윌슨이다. 대중적으로는 도킨스의 ‘이기적 유전자’가 더 유명하지만, 지식사회 안에서 사회생물학의 등장을 알리고 격렬한 논쟁을 일으킨 저작은 윌슨의 ‘사회생물학’(1975)이다. 윌슨(1929~2021)은 개미에 관한 연구만으로 일가를 이룬 생물학자다. 여기에 ‘사회생물학’이라는 새 학문분야를 개척하고, 생물학과 사회과학을 침윤시키는 통찰력으로 ‘진화’의 새 장을 연 ‘생물학의 거두’다. 2021년 12월 26일 눈을 감은 윌슨에 대해 알아본다.

 

저서 ‘사회생물학-새로운 종합’은 사회생물학 이론을 체계적으로 정리한 명저

윌슨은 미국 앨라배마주 버밍햄에서 태어나 아버지의 잦은 전근으로 고교 때까지 16개의 학교를 전전했다. 이로 인해 늘 새로운 환경에 적응해야 했는데 부모님의 이혼과 내성적인 성격 게다가 형제까지 없어 자연스럽게 혼자 개미·개구리 등 각종 동물을 관찰하며 시간을 보냈다. 7살에는 낚시를 하다가 물고기 지느러미에 눈이 찔려 오른쪽 시력을 잃었다.

앨라배마대에서 개미에 관한 연구로 생물학 학·석사 과정을 마치고, 1955년 하버드대에서 박사학위를 취득했으며 1956년 하버드대 동물학과 교수로 부임했다. 윌슨은 교수로 재직하며 400종이 넘는 개미를 발견하고 개미가 페로몬이라는 화학 물질을 통해 의사소통한다는 사실을 밝혀냄으로써 개미 연구의 세계적인 권위자로 우뚝 섰다.

젊은 시절의 닐슨

 

그가 사회생물학이라는 용어를 처음 사용한 것은 ‘곤충사회’(1971년)라는 책에서였다. 그가 말하는 사회생물학은 인간을 포함한 동물의 행동이 종의 유전적 구성에 의해 불가항력적으로 결정된다는 이론이다. 이 사회생물학 이론을 체계적으로 정리한 명저가 ‘사회생물학-새로운 종합’(1975년)이다. 윌슨은 2000개가 넘는 참고문헌과 50만 단어 이상을 사용한 방대한 분량의 이 책에서 새, 사자, 원숭이, 유인원 그리고 인간 등의 번식행동, 서열행동, 협동행동 등을 개체나 집단이 아닌 유전자의 관점에서 분석했다. 그는 인간을 포함해 모든 동물이 보이는 사회적 행동의 대부분은 각 개체에 내장된 유전자들에 의해서 통제된다고 설명했다.

동물들의 이타적 행위에 대해서도 새로운 관점으로 접근했다. 그는 이타적 행위들이 사실상 서로 밀접한 혈연관계를 맺고 있는 동물 집단 속에서만 나타난다는 점에 주목했다. 비록 자신은 죽지만 결과적으로 자신과 동일한 유전자를 공유하는 다른 개체들에게 더 많은 생존의 기회를 부여한다는 점을 간파했다. 예를 들어 침팬지들은 사냥에서 획득한 먹이를 집단 내 다른 침팬지들에게 나누어주고, 새는 적의 출현을 처음 발견하면 경고음을 발산해 다른 새들을 보호하는 대신 자신은 희생의 제물이 된다는 것이다.

그는 이런 사실들을 통해 동물의 이타적인 행동조차 오랜 진화의 과정에서 그들의 유전자 속에 각인된 본능적 행동이라고 분석했다. 이는 결국 후손에게 더 많은 자신의 유전자를 전달하기 위한 고도의 전략적 행위라는 것이다. ‘남성이 바람을 피우는 것도 자기 유전자를 퍼뜨리기 위한 본능적 행동’이라고 해석했다.

‘사회생물학’은 출간되자마자 격렬한 논쟁에 휩싸였다. 인간의 사회적 행동이 생물학적 기초 위에 이뤄진다는 주장은 인간 본성에 대한 논쟁을 유발했다. 인간이라고 해서 사회생물학이 제시하는 이론에서 결코 자유로울 수 없다는 그의 주장은 그의 이론이 인종차별, 남성 우월주의, 성차별에 관한 과학적 근거를 제공했다며 비판을 받았다. 그는 동물의 사회행동을 진화론적 관점에서 설명하고자 했지만, 동료들은 인간의 사회적 행동은 유전자 못지않게 교육을 포함한 사회적 요소들로부터 큰 영향을 받는다며 반박했다.

에드워드 닐슨

 

인간의 도덕적 행동도 유전적 이기심을 충족시키는 행위

윌슨은 1978년 ‘인간 본성에 대하여’를 출판해 또다시 주목을 끌었다. 이 저서에서는 사랑, 윤리, 자기희생, 종교 등 인간만이 갖고 있을 법한 특성조차 인류의 진화사를 통해 어떤 방식으로든 번식을 도왔기 때문에 오늘날까지 우리 속에 남아있다는 주장을 폈다. 결국 인간의 도덕적 행동이란 것도 휴머니즘적 원칙이나 감정과는 아무 상관이 없는 유전적 이기심을 충족시키는 행위라는 것이다.

즉 그의 주장에 따르면, 사람들은 비록 자유 의지를 갖고 자신의 행동을 결정하는 선택을 행사하지만 이런 결정에 관계하는 심리적 발달의 경로는 비록 우리 자신이 아무리 다른 길로 들어서고자 발버둥친다고 해도 우리 몸속에 깃든 유전자들에 의해 어떤 일정한 방향을 지향할 수밖에 없게 된다.

인간 본성에 대한 윌슨의 이런 관점은 1970년대의 시대조류에서 볼 때 대단히 예외적인 관점이었다. 서구사회에서는 20세기 내내 결정론과 환경론 간에 논쟁이 끊이지 않고 있다가 1970년대에는 환경론이 승리를 거둔 것처럼 보였기 때문이다. 그런점에서 인간의 본성을 동물 본성의 연속선상에서 보려는 그의 시도는 본능보다는 학습 혹은 환경을 중시했던 좌파 계열의 지식인들에게 하나의 도발이었다. 하버드대의 동료 교수이면서 신좌파 계열인 스티븐 제이 굴드와 생물학자 리처드 르원틴 등은 인종주의와 나치즘까지 결부시켜 윌슨의 사회생물학이 근거도 없고 정치적으로도 위험하다고 비판했다.

윌슨의 사회생물학이 미국의 이민제한법이나 독일의 인종차별주의 부활을 시도한다고 격렬하게 비판하는 목소리도 있었다. 1978년 2월 15일 미국과학진흥협회 회의장에서는 한 여성 인종차별 반대 시위자가 단상 위에 올라가 윌슨의 머리 위에 주전자로 얼음물을 쏟아붓는 불상사도 일어났다. 그럼에도 ‘인간 본성에 대하여’는 윌슨에게 퓰리처상을 안겨주었다. 윌슨은 1990년에도 ‘개미들’로 두 번째 퓰리처상을 받았다. 문학이나 인문학이 아닌, 생물학을 전공하는 과학자가 두 번이나 퓰리처상을 수상한 것은 극히 이례적이었다. 1990년에는 스웨덴 과학아카데미가 노벨 과학상에서 제외된 분야를 배려하여 시상하는 ‘크라포르드상’을 받고, 1995년에는 ‘타임’지가 선정한 20세기 미국 최고의 지식인 25인 중 한 사람으로 선정되었다.

에드워드 닐슨의 두 명저. ‘사회생물학'(왼쪽)과 ‘통섭’

 

우리나라의 최재천 교수는 “오로지 윌슨 교수의 문하생이 되고자” 1983년 하버드대 대학원 석사과정으로 입학했다. 1998년 발간한 그의 저서 ‘컨실리언스(Consilience)’를 최재천 이화여대 교수가 2005년 ‘통섭(統攝)’이라 번역하면서 국내에도 ‘통섭’ 바람이 불었다. 윌슨은 이 책에서 서로 다른 것을 한 데 묶어서 새로운 것으로 만든다는 ‘통섭’ 개념을 제시했다. 그런데 윌슨은 2000년대 들어 자신의 이론을 스스로 뒤엎고 ‘친족 선택론’에서 ‘집단 선택론’으로 전환했다. 협동성과 공감을 비롯한 집단 수준의 형질들이 유전될 수 있고, 집단들 사이에 생존 경쟁이 있을 경우 협동하는 집단이 살아남는 데 더 유리하다는 것이다.

 

error: Content is protected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