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땅 구석구석

양평 백운봉에 반하다… 일망무제로 펼쳐진 조망, 유장하게 흘러가는 남한강 물줄기, 초가을의 청명한 날씨가 더해지니 이보다 좋을 수 없구나

↑ 백운봉 옆 바위에 올라 멀리 함왕봉 장군봉 용문산으로 이어지는 능선을 바라보고 있다.

 

by 김지지

 

☞ 내맘대로 평점(★5개 만점). 등산요소 ★★★ 관광요소 ★★★

☞ 코스와 거리 : 총 7~8㎞

     용문산자연휴양림~두리봉~백운봉~함왕봉~사나사 계곡

☞ 산행 시간 : 6시간 (휴식 포함하면 7시간)

 

기대하지 않았는데 멋진 조망 덕분에 산행의 즐거움이 배가되는 산이 있다. 경기 양평의 백운봉(940m)이 그랬다. 서울에서 가깝고 알려지지 않은 산이어서 애당초 기대를 하지 않았는지 모른다. 그러나 백운봉은 어설픈 100대 명산 그 이상이었다. 사방이 막힌데 없이 일망무제로 펼쳐있는 환상적인 조망에 멀리 유장하게 흘러가는 남한강 물줄기, 여기에 9월 초가을의 청명한 날씨가 더해지니 여느 명산과 비교해도 꿀림이 없다. 일부 구간이긴 하지만 내가 좋아하는 평지 흙길이어서 발걸음도 가볍다. 이 멋진 백운봉을 2021년 9월 4일 고교 동창들과 다녀왔다. 남수 동정 상호 정형 종훈 태훈이다.

 

■백운봉은

 

6번 국도를 타고 가다가 경기 양평을 지날 무렵 쇠뿔처럼 뾰족한 산이 보인다면 그것은 영락없이 백운봉이다. 산의 생김새가 알프스산맥의 마터호른과 닮았다고 해서 별명이 ‘양평의 마터호른’이다. 해발고도가 940m이니 경기도에서는 제법 높은 편이다. 경기도에서 백운봉보다 높은 산이나 봉우리를 소개하면 화악산(1,468m 가평), 명지산(1,267 가평), 국망봉(1,168 포천), 용문산(1,157 양평), 석룡산(1,155 가평), 촛대봉(1,125 가평), 연인산(1.068 가평), 광덕산(1,046 포천), 귀목봉(1.036 가평), 민둥산(1,023 포천), 문례봉(1,004 양평) 등 11곳이다. 주요 들머리는 세 곳이다. 양평읍 백안리의 용문산자연휴양림, 옥천면 용천리의 사나사, 용문면 연수리다.

백운봉 산행 지도

 

■우리 산행은

 

용문산자연휴양림~두리봉~백운봉~함왕봉~사나사 계곡

용문산자연휴양림으로 올라가 백운봉 정상을 밟고 사나사 계곡으로 하산한다. 휴양림이 비교적 높은 곳에 있어 출발 고도가 덩달아 높아진다. 휴양림 입구에 승용차 대여섯 대가 주차할 수 있는 공간이 있지만 이미 만차다. 아래로 내려가 도로폭이 넓은 도로가에 주차했다.

가벼운 스트레칭 후 계곡 위를 가로지르는 목교를 지나 50m 정도 오르니 갈림길이다. 직진하면 백운봉 정상까지 2.7㎞이고, 오른쪽 데크계단으로 올라서면 1.0㎞ 거리의 두리봉(543m)을 지나 백운봉으로 향한다. 두리봉에서 백운봉까지 거리가 2.6㎞이므로 총 거리는 3.6㎞다.

용문산자연휴양림 입구

 

우리는 두리봉을 우회해 백운봉으로 오른다. 살짝 가파르지만 무리는 없다. 계단과 고정 로프가 있어 위험하지도 않다. 아직은 더위가 가시지 않은 전형적인 초가을 날씨다. 얼굴에 송글송글 땀이 맺는다. 그렇게 40분 올라가니 두리봉이다. 북쪽 너머로 뾰족한 백운봉이 보이고 남쪽 남한강 건너로는 양자산과 앵자봉이 눈을 마주 친다. 휴양림 입구에서는 두리봉까지 1.0㎞라고 표시해놓고 이곳에서는 휴양림 입구까지 0.63㎞란다. 우리나라 전국 어느 산을 가도 이런 식이다. 국립공원 조차도 이런 곳이 부지기수다.

백운봉을 향해 두리봉에서 잠시 내려가니 한동안 평탄한 흙길이다. 내가 좋아하는 둘레길 수준이다. 길 바닥이 온통 도토리 천지다. 밟지 않으려 해도 피할 수 없을 정도로 많다. 1년 중 드물게 도토리 떨어지는 소리를 들으며 올라간다. 임의로 내가 정한 이름이 도토리길이고 상수리길이다.

길옆은 나무 무성한 숲이다. 잎과 잎 사이를 비집고 들어온 햇살이 초록 숲길을 드문드문 밝혀준다. 오르막이 한동안 이어지지만 대부분 짙은 숲속이라 시원하다. 곳곳에 가파른 바위 구간이 있으나 백운봉의 개성을 도드라지게 해주는 장치일 뿐이다. 밑동에서부터 갈라진 대여섯 가지가 하늘로 높이 뻗어올라간 아름드리 소나무를 지난다. 밑동 위 기둥에서 가지를 치는 대부분의 소나무와 달리 아예 밑동에서부터 가치를 치고 올라가는 이런 소나무는 처음이다. 하산 길에도 밑동에서 세 가지로 뻗어올라간 굵은 굴참나무가 있다.

두리봉에서 바라보이는 백운봉

 

두리봉에서 1시간 정도, 1.5㎞ 거리에 헬기장이 있다. 올라서니 백운봉이 정면으로 바라보인다. 우뚝하고 우람하다. 헬기장에서 50m 아래로 내려가니 휴양림 초입에서 갈라진 길과 반갑게 만나는 갈림길이다. 푯말에 휴양림 1.7㎞, 백운봉 1.0㎞, 두리봉 1.6㎞를 가리킨다. 그곳에서 북쪽으로 뻗은 완만한 능선을 타고 오르면 형제우물 갈림길이다. 푯말에 형제우물 0.5㎞, 백운봉 0.4㎞, 휴양림 2.3㎞로 되어 있다.

 

정상에서 바라보는 하늘이 명징하고 파래

이후 20~30분 정도 급경사 데크계단과 조망대를 지나면 백운봉 정상이다. 초입을 기준하면 2시간 50분, 헬기장을 기준하면 1시간 걸렸다. 보통의 산행이라면 이 정도로 시간이 걸리지 않을테니 그만큼 쉬엄쉬엄 올랐다는 얘기다. 정상에서 하늘을 바라보니 명징하고 파랗다. 그 하늘에 솜사탕같은 뭉개구름이 넓고 낮게 깔려 있다. 사방은 일망무제다. 막힘이 없다.

백운봉 정상

 

남서쪽으로는 양평읍내와 옥천들판이 훤히 드러나고 남한강이 그 사이를 가로지른다. 북동쪽으로는 함왕봉(947m)과 장군봉(1055m)을 거쳐 철탑이 있는 용문산(1157m)으로 이어진다. 동쪽 아래에는 산속 분지를 이룬 연수리가 속살을 보여준다. 시계가 좋아 서쪽으로는 청계산, 검단산, 예봉산이 보이고 그 멀리 북한산, 도봉산, 수락산이 줄지어있다. 용문산이 바라보이는 곳에 자리 잡고 점심을 하는데 동정이가 직접 담근 막걸리 맛이 환상적이다.

백운봉에서 북쪽으로 가파른 내리막을 10분 정도 내려가면 구름재다. 그곳에서 오른쪽 연수리까지 3.4㎞다. 조금 더 나아가면 두 번째 형제우물 갈림길이다. 푯말이 장군봉 2.5㎞, 형제우물 0.6㎞를 가리킨다. 조금 더 가면 왼쪽 사나사로 내려가는 하산길이 있으나 우리는 함왕봉과 함왕산성 방향으로 직진한다. 함왕봉에는 표지석이 없고 조망대만 있다. 그나마 훼손된 상태여서 함왕봉이라는 사실을 알지 못한다. 함왕산성은 그저그런 너덜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1천 수백년 전 산성의 흔적이다.

백운봉 정상에서 바라본 남한강과 양평 시내

 

쉬엄쉬엄 하며 보고 즐겼던 초가을 산행

함왕봉과 장군봉 사이 고개에서 왼쪽 사나사로 하산한다. 처음에는 평탄길이다가 곧 급경사 지그재그길이다. 그렇게 1시간 정도 내려가니 우물지(井址) 지나 함왕성지다. 풀밭 공터에 함왕성지 설명문이 있다. 설명에 따르면 그곳은 과거 산성의 서문이다. 모름지기 산성이라면 성 안에 평탄한 터가 있어야 하는데 함왕산성은 평지는 거의 없고 능선까지 뻗어 있는 성벽 뿐이다. 옛날 사람들이 쓰던 토기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다고 하는데 우리 눈에는 보이지 않았다.

함왕성지에서 사나사 계곡까지 1.73㎞를 내려가는데 40분 걸렸다. 계곡은 폭이 넓고 물이 많으며 깨끗하다. 제법 땀을 흘렸으니 그냥 지나칠 수 없다. 마침 오가는 사람도 없다. 여름 산행 때 의례적으로 하는 알탕을 즐기니 30분이 흘렀다. 알탕 후 잘 정돈된 평지길을 내려가니 사나사다. 천년고찰이라는데 깔끔하고 정갈할 뿐 전통의 향기가 느껴지진 않는다. 다소 휑하다는 느낌을 준다.

사나사 계곡

 

사나사를 내려와 아담한 일주문을 지나자 소나무들이 서로 이웃해 자라고 있는 소나무 삼형제다. 일주문 지나 10분이면 함왕혈이다. 그 옛날 물에 잠긴 바위 속 구멍에서 함왕이 태어났다는 전설을 품고 있다. 사나사에서 아스팔트길을 따라 20분을 내려가니 옥천면 용천2리 주차장이다. 마터호른에 가장 근접한 모습의 백운봉을 제대로 감상하려면 부근에서 마을 주민한테 물어봐야 한다. 산행에 7시간 20분이 걸렸다. 점심 50분, 알탕 30분 빼면 6시간이다. 거리는 7.5~8㎞다. 빠른 산행보다 쉬엄쉬엄 올라가며 쉬고 보고 하는 산행이었다는 얘기다. 이렇게 멋진 산행지를 안내해준 남수야 고맙네!!

 

■사나사와 함왕산성

 

용문산에는 여러 사찰이 있으나 사나사만 유일하게 기록이 전해지는 고찰이다. 신라 경영왕 7년(923) 창건하고 고려 공민왕 16년(1367) 보우대사가 중창하면서 대찰이 되었다. 하지만 16세기 말 임진왜란, 1907년 의병전쟁, 6·25전쟁 등 역사의 소용돌이 속에서 불타고 재건되기를 반복했다.

사나사에서 눈여겨 보아야 할 것은 절 마당 한켠에 놓여있는 보우대사의 사리탑(부도)인 원증국사탑과 그의 행적을 기록한 원증국사석종비다. ‘원증’은 보우대사의 시호다. 보우대사의 사리탑은 보우 스님의 입적 다음 해인 우왕 9년(1383) 건립되었다. 그런데 보우의 부도는 경기도 고양시 덕양구에도 있다. 태고사 원증국사탑인데 1382년 보우가 입적하자 제자들이 다비한 후 수습한 사리를 나누어 여러 사찰에 봉안했기 때문이다. 원증국사석종비는 고려 우왕 12년(1386) 보우의 제자 달심이 세웠다. 정도전이 비문을 짓고, 승려인 의문이 글씨를 썼다. 받침돌에 네모난 홈을 파서 비의 몸체를 끼워세웠는데 지금은 일부가 파손되어 비문 내용을 온전히 알 수 없다. 사나사 경내에는 고려 초기에 세운 것으로 추정되는 2.8m 높이의 삼층석탑도 있다.

사나사

 

함왕산성은 용문산의 험준한 지세를 이용하여 쌓은 산성이다. 함왕봉 남릉 동쪽 암벽지대는 자연 그대로 살리고, 서쪽 사나사 계곡 방면에 석축을 쌓았다. 둘레는 2,150m에 달하지만 현재는 성벽 대부분이 무너지거나 토사에 덮여 있어 외벽이 노출된 곳은 북벽과 남벽의 일부에 지나지 않는다. 고려시대 때 이곳 주민 900여 명이 몽고군을 피해 항전했다가 항복했다는 기록이 ‘신증동국여지승람’에 있다.

함왕산성(왼쪽)과 함왕산성 유허지

 

함왕(咸王)에 대해서는 삼한시대 양평 함씨 시조라는 설과 고려 개국공신인 함규라는 설이 있다. 기록에 따르면 함규는 후삼국 군웅할거 시대에, 양평에서 강력한 세력을 구축한 호족이었다. 승자인 왕건을 지원함으로써 고려의 개국공신으로 승승장구했다. 왕족인 왕씨 성을 하사 받아 양평에서 왕규라는 이름의 ‘함왕’으로 불렸다. 태조 왕건이 죽고 아들 혜종이 왕위에 올랐을 때 왕권을 인정하지 않았다. 혜종이 병사해 왕요(정종)가 왕위에 올랐을 때는 반란을 일으켰다가 실패했다. 강화도로 귀양 보내졌다가 얼마 후 죽임을 당했다. 함왕에 대한 또 다른 기록에 따르면 함왕은 양근(양평) 함씨의 시조 함혁이다. 삼한 시절, 한나라에서 병사 2,000명을 이끌고 한반도로 왔다가 양평에 부족국가를 세우고 뿌리를 내렸다고 한다. 함왕산성은 그 무렵 쌓은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함혁의 후손 중 함신이 통일신라시대 때 김주원(강릉 김씨 시조)을 따라 강릉으로 이주하면서 강릉 함씨가 생겨났다.

백운봉에서  만난 꽃들. 왼쪽 위부터 시계방향으로 마타리, 병조희풀, 산박하, 왕고들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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