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토리박스

‘파이브 아이즈(Five Eyes)’의 ‘에셜론’은 전 세계 통신정보 수집·분석·공유하는 美 중심의 비밀 시스템…· 냉전 붕괴 후에도 도·감청 멈추지 않아 폐해가 심각

↑ 에셜론 본부가 있는 영국 요크셔의 ‘멘위드 힐’ 기지

 

by 김지지

 

미국의 기밀 정보 공유 동맹인 ‘파이브 아이즈(Five Eyes)’에 한국 등을 추가할 필요가 있다는 내용을 담은 법안이 2021년 9월 2일 미국 하원 군사위원회를 통과했다. 미 하원 군사위는 중국·러시아로 인해 위협의 지형이 변했다며 정보 공유 대상국을 한국과 일본, 인도, 독일로 확대할 필요가 있다고 제안했다. 하지만 미국의 ‘파이브 아이즈’ 확대 대상국에 우리나라 외에 일본, 인도 등이 포함돼 중국 견제 성격이 강하다는 점에서 중국의 반발과 견제도 우려되고 있다. ‘파이브 아이즈’에 대해 알아본다.

 

비밀 시스템 ‘에셜론’의 존재를 공식적으로 확인한 건 유럽의회 보고서

1988년 8월, 영국의 주간지 ‘뉴 스테이츠먼’에 탐사보도 전문기자 던컨 캠벨이 쓴 ‘누군가 엿듣고 있다’는 제목의 기사가 실렸다.  그는 기사에서 “프로젝트415는 1급 비밀 지구감시 시스템이다. 영국에서만 연간 10억 통화를 도청할 수 있다”고 폭로했다. 캠벨은 스파이 혐의로 긴급 체포되었다가 몇 달 뒤 구속되었다. 함께 기사를 쓴 미국 기자는 영국에서 추방되었다.

1997년 11월 영국의 ‘데일리 텔리그라프’지는 유럽연합 의회의 비밀보고서를 인용해 2차대전 후 구축된 ‘에셜론’이 냉전 붕괴 후에도 존속하고 있으며 정부, 기업, 개인의 통신을 무차별적으로 도청하고 있다고 폭로했다. 전 세계의 통신정보를 수집·분석·공유하고 분석하는 비밀 시스템 ‘에셜론’의 존재가 유럽의회 보고서를 통해 공식적으로 확인된 것이다. 유럽의회는 산하 에셜론위원회가 1년여에 걸쳐 조사한 끝에 제출한 140쪽의 보고서와 암호체계 강화 등 에셜론 방어책으로 권고한 44개 사항을 2001년 9월 압도적인 표차로 통과시켰다. 2001년 5월 영국 ‘가디언’지도 유럽의회 보고서를 인용해 “에셜론이 1947년 미국과 영국, 캐나다, 호주, 뉴질랜드 등 앵글로색슨 국가들이 체결한 비밀조약의 일부”라고 보도했다.

각종 언론 보도와 유럽의회의 에셜론위원회 발표를 종합하면 에셜론의 실체는 이랬다. 에셜론은 냉전시대 초기 공산권의 움직임을 감시하기 위해 미국의 주도로 창설된 국제정보 감시망이다. 기원은 미국과 영국 두 나라가 1943년에 체결한 통신정보협정(BRUSA)이다. 본격적인 활동은 냉전이 막 태동하던 1946년 3월 5일 미국과 영국의 첩보기관이 서명한 ‘영미안보협정(UKUSA)’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두 나라는 1948년 정보공유를 위한 ‘유쿠사(UKUSA) 협정’도 체결했다.

냉전이 본격화하자 미국은 대소(對蘇) 전략 강화를 위해 통신 감청을 통한 정보 수집, 암호 해독을 전문적으로 수행하는 비밀 기관을 창설했다. 1952년 11월 미국 매릴랜드주 포트미드에서 비밀리에 창설된 국가안보국(NSA)이다. 설립 초기에는 대통령 등 극소수를 제외하고는 NSA의 존재를 알지 못했다. 정부의 공식 발표도 없었고 언론과 의회조차 이 사실을 몰랐다.

미국의 NSA 본부

 

미국과 영국은 1956년 캐나다, 호주, 뉴질랜드 세 나라를 끌어들였다. 이로써 5개국 간 군사 동맹 및 정보 네트워크를 의미하는 ‘5개의 눈’ 즉 ‘파이브 아이즈(Five Eyes)’가 탄생했다. 그런데 ‘파이브 아이즈’의 존재는 철저히 비밀에 부쳐졌다. 호주 가입 사실은 1970년대 후반에야 드러나기 시작했다. 뉴질랜드도 관련되었다는 사실은 1980년대 중반에 터져나왔다. 5개국은 공통점이 많았다. 주류 민족이 앵글로색슨의 백인계이고, 영어를 공용어로 사용하며 다수가 개신교를 믿었다. 역사적으로는 영국에 뿌리를 두고 시장경제와 민주주의를 추구했다. 법률은 영미법을 따르기 때문에 법률상 공조도 용이했다.

 

‘파이브 아이즈’ 5개 회원국, 전 세계 모든 종류의 통신 정보 수집·분석·공유

5개국 정보기관은 각각 미국의 NSA, 영국의 국가통신본부(GCHQ), 캐나다의 통신보안국(CSE), 호주의 방위통신대(ASD), 뉴질랜드의 국가통신안보국(GCSB)이다. 그들의 정보 수집 네트워크와 분석 시스템에는 1960년대 말 ‘에셜론(ECHELON)’이란 이름이 붙여졌다. 미국의 NSA는 각국 정보기관과의 협력을 총괄하면서 중동, 중국, 구소련, 카리브해와 중남미 지역 정보를 수집했다. 영국은 유럽과 구소련의 통신 내역을 주로 수집하고 캐나다는 구소련 통신의 도·감청을 주로 하면서 한국과 일본의 외교통신까지 표적으로 삼았다. 호주는 동아시아와 남아시아의 정보수집을 관할했다. 냉전이 끝난 요즘에는 중국군 동향 등을 감시하는 핵심 기지 역할을 하고 있다. 오늘날 호주의 내륙 사막지대에 있는 ‘파인 갭’ 통신감청 기지는 1000여 명의 미·호주 정보요원들이 함께 근무하며 중국군 동향 등을 감시하는 ‘파이브 아이즈’의 핵심 기지로 알려져 있다. 뉴질랜드는 동남아시아와 서태평양 지역 통신위성을 대상으로 정보를 수집했다.

영국의 국가통신본부(GCHQ)

 

에셜론 시스템을 개발한 기관은 미국의 국가안보국(NSA)이다. NSA는 미 정보기관 중 인력과 예산 면에서 최대 규모인데도 정확한 실상은 지금까지도 베일에 가려져있다. NSA는 끊임없이 새로운 첩보기술을 개발하고 이 기술을 회원국에 공급했다. 회원국들은 전 세계 모든 종류의 통신 정보를 수집·분석·공유했다. 정보 추출과정 자체는 다소 복잡하긴 했으나 개념도는 단순했다. 도·감청 기지의 슈퍼컴퓨터에 수천 수만 개의 키워드, 전화번호, 팩스번호, 주소 등을 미리 입력해 두면 도·감청으로 확보한 수억~수십억 개의 메시지 가운데 이들 키워드가 포함된 메시지를 찾아내고 이를 숙달된 요원들이 분석·판단하는 것이다.

에셜론 본부는 영국 요크셔의 ‘멘위드 힐’ 기지에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곳에 미국이 소련을 감시하기 위해 1956년께 건설한 거대한 골프공 모양의 둥근 구조물이 핵심 시설이다. 기지는 냉전이 끝난 뒤에도 계속 확장되어 지금은 골프공 모양의 구조물이 10여개나 된다. 이곳에서는 각국 첩보위성이 보내는 정보를 저장하고 유럽, 북아프리카, 서아시아 상공에 떠 있는 상업위성이 중계하는 정보를 취합한다. 냉전시대 에셜론의 주타깃은 소련과 동유럽 국가들이었다. 냉전이 끝난 1990년대에는 위성통신과 인터넷을 파고들어 정보를 수집하는 단계로 확대되었다. 오늘날 에셜론은 첩보위성 100여 개를 이용해 전 세계 모든 종류의 통신을 감청하고 있다.

스노든이 폭로한 호주 내륙 사막에 있는 ‘파인 갭’ 기지

 

안보에 위협되지 않는 경쟁국들의 통신은 물론 자국 국민까지 마구 도·감청하는 폐해 심각

오늘날 에셜론의 폐해는 심각한 수준이다. 안보에 전혀 위협이 되지 않는 경쟁국들의 통신까지 마구 도감청하고 자국 국민을 상대로도 이 시스템을 활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테러리스트, 마약 거래, 정치·외교 정보를 수집하는 게 본연의 임무인데도 기업과 국제무역에까지 감청을 서슴지 않고 있다. 특히 미국의 NSA는 자국 내 CIA, FBI, DIA 등 정보기관으로부터 건네받은 내국인 감시명단을 이용해 급진 정치그룹으로부터 반정부 시위에 가담한 일반 시민까지 감시하고 있어 그 심각성을 더해주고 있다. 확인된 바에 따르면 미국 내 유명 연예인인 제인 폰다, 민권 운동가 마틴 루터 킹 목사도 들어 있었다. 다이애나 영국 왕세자비를 비롯해 교황, 테레사 수녀, 국제사면위원회, 그린피스 등까지 폭넓게 감청했다.

에셜론은 경쟁국가의 자원을 헐값으로 사들이거나 미국 주도의 세계 질서를 거부하는 국가의 정부를 무너뜨리는 데도 사용되었다. 1995년 미국의 보잉사와 유럽의 에어버스사가 사우디아라비아를 상대로 경쟁이 붙었을 때 에어버스사의 입찰 가격이 미 NSA의 에셜론에 도청당해 결국 미국의 보잉사가 1998년 60억 달러의 항공기 판매 계약을 성사시킨 것은 한 예에 불과하다. 1991년 한국이 캐나다와 ‘캔두 원자로 건설’을 협상할 때 캐나다의 통신보안국(CSE)이 한국 대사관과 외무부 사이의 모든 통신을 도청한 사실은 1998년 2월 캐나다의 ‘파이낸셜 포스트’지가 캐나다 통신보안국(CSE) 소속 한 작전 담당요원의 폭로를 보도하면서 드러났다.

에셜론의 부정적 측면은 2013년 에드워드 스노든이 미국의 정보 획득·공유체계의 불법성을 폭로함으로써 더욱 부각되었다. 중앙정보국(CIA)과 NSA에서 4년간 IT 전문 요원으로 근무하며 개인 정보감시와 정보 보안업무를 담당했던 스노든은 “누구라도 도청할 수 있는 권한을 가진 자리에서 일했다”면서 “당신이나 당신의 회계사, 연방검사, 심지어는 대통령도 개인 명의의 휴대전화를 가지고 있다면 도청이 가능했다”고 폭로했다. 영국 일간 ‘가디언’은 스노든이 유출한 기밀 문건을 토대로 2013년 10월 “미국 NSA가 최소 35개국 정상급의 통화를 엿들었다”고 폭로했다. 이로써 NSA가 테러 위협을 명분으로 개인정보를 수집했다는 의혹을 넘어 우방국 정상들까지 광범위하게 감시 대상으로 삼은 것으로 드러났다.

영국 ‘가디언’지와 인터뷰하는 에드워드 스노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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