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토리박스

MBC TV 드라마 ‘전원일기’(1980~2002)… 농촌 대가족의 일상을 진솔하게 표현해 ‘국민 드라마’로 자리 잡아

↑ ‘전원일기’ 출연진

 

by 김지지

 

22년 2개월 동안 갖가지 방송 기록을 쏟아냈던 MBC TV의 인기드라마 ‘전원일기’가 대단원의 막을 내린 것은 2002년 12월 29일이었다. 그로부터 19년이 지난 2021년 6월, 당시 출연진들이 그때를 회고한 다큐멘터리 형식의 ‘전원일기 2021’이 MBC다큐플렉스 채널에서 4부작으로 방송되고 있다. ‘전원일기’가 어떤 드라마였는지 살펴본다.

 

드라마를 보지 않은 사람은 이튿날 대화에 끼지 못할 정도로 인기 높아

‘전원일기’는 1980년 전두환 정권이 집권한 후 불륜·퇴폐 드라마를 정화하는 바람이 불었을 때 MBC TV가 대안으로 내놓은 건전 드라마였다. 차범석이 극본을 쓰고 이연헌이 연출한 ‘전원일기’가 첫 방송 전파를 탄 것은 1980년 10월 21일이었다. 1회부터 초기 1년간 48회는 차범석이 극본을 쓰고 그 후에는 11년 동안 작가 김정수가 500여 회를 맡았다. ‘전원일기’는 무대만 농촌일 뿐 농촌의 아기자기한 일상과 인간의 심성을 다룬 휴먼 드라마를 추구했다.

방송작가 김정수

 

최불암과 김혜자(극중 양촌리 김 회장 부부), 정애란(김 회장 어머니), 김용건과 고두심(김 회장의 장남 부부), 유인촌과 박순천(김 회장의 차남 부부), 김수미(일용 어머니)와 박은수(일용) 등이 농촌 대가족의 일상을 진솔하게 표현하면서 ‘전원일기’는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국민 드라마’로 자리를 잡았다.

‘전원일기’의 전성시대는 김정수가 극본을 쓰던 11년 동안이었다. 인기가 워낙 높아 ‘전원일기’를 보지 않은 사람은 이튿날 대화에 끼지 못했다. 드라마에서 식사 때 돼지고기를 먹으면 이튿날 아침에 돼지고기가 불티나게 팔리기도 했다. 미국 여성을 며느리로 맞은 미국의 한 교포는 ‘전원일기’ 녹화 테이프로 한국의 예절을 공부시킨다며 일부러 파란 눈의 며느리를 데리고 녹화 날 스튜디오로 찾아와 출연진에게 큰절을 올리게 한 적도 있었다.

최불암은 ‘전원일기’를 촬영하며 ‘파’라는 별명을 얻었다. 극 중 어머니와 함께 사는데 (김 회장네) 부부가 방에서 웃고 있으면 얼마나 외로울까 하는 생각에 입을 틀어막고 “파하∼”하는 소리를 내다보니 버릇이 되었고 그래서 별명이 ‘파’였다는 것이다. 극중 어머니 정애란은 항암치료를 받으며 출연했다는 사실이 뒤늦게 알려지기도 했다.

극중 김 회장 부부. 김혜자(왼쪽)와 최불암

 

22년 2개월 동안 갖가지 방송 기록 쏟아내

‘전원일기’는 국내외 각종 상을 휩쓸며 전성기를 구가했다. 그러나 농촌 현실을 외면할 수 없던 탓에 일부 방송에서는 풍파를 겪기도 했다. 군사정권 하에서 민감할 수밖에 없는 추곡수매, 양파 파동, 배추 파동 등의 주제를 다룰 때면 “국민을 선동한다”, ‘농민 사기를 떨어뜨린다“는 등의 이유로 방송 중단 처분이 내려졌다. 더 큰 위기는 11년간 극본을 쓴 김정수가 더 이상 쓸 소재가 없다며 1993년 1월 500회를 마지막으로 ‘전원일기’를 떠나면서 찾아왔다.

김정수가 떠난 후 ‘전원일기’는 갈짓자 걸음을 걸었다. 작가는 수시로 바뀌고 그때마다 인물들의 성격은 오락가락했다. 특히 아버지(최불암)와 어머니(김혜자) 역이 문제였다. 과묵하던 아버지는 있으나마나 한 존재가 되었고 지혜롭던 어머니는 온갖 동네 일에 참견하는 수다쟁이이자 며느리들과 말다툼이나 하는 시어머니로 변해버렸다. 처음 방송할 때의 따뜻하고 정감 넘치던 인물들도 점점 도시 어디서나 볼 수 있는 이기적이고 속된 인물들로 퇴색해갔다. 그래도 ‘전원일기’는 계속 제작되었고 방송되었다.

김혜자는 방송을 질질 끌고 가면 갈수록 처음의 감동이 하루하루 부서지는 것 같아 견딜 수가 없었다. 흰머리 가발을 쓰고서 우두커니 앉아 있는 역할이나 창조적인 연기가 전혀 필요하지 않은 박제된 인형에 속이 상했다. 김혜자는 그만 하고 싶다고 방송국에 누차 얘기했다. 몇 해 동안 빼달라고 부탁하고 또 부탁했다. 심지어는 제작진에게 “나를 극 중에서 죽여달라”고까지 했다. 김혜자 뿐만 아니라 자기를 도중하차시켜달라고 요청하는 배우들도 생겨났고 일용엄니 김수미도 전원일기가 더 하기 싫어졌다.

‘전원일기’ 출연진이 이처럼 피로감을 호소하는 동안 국내 드라마 전반의 흐름도 화려한 트렌디 드라마로 바뀌었다. 시청률까지 떨어져 이리저리 방송시간이 옮겨지는 신세가 되었다. 그래도 시청자들의 항의로 힘들게 유지되었다. 하지만 결국에는 낮은 시청률을 어쩌지 못해 2002년 12월 29일 ‘박수할 때 떠나려 해도’(1088회)를 마지막으로 대단원의 막을 내렸다.

전원일기는 22년 2개월 동안 갖가지 방송 기록을 쏟아냈다. 단일 드라마로는 우리 방송 사상 가장 많은 출연자, 연출자(13명), 작가(14명)가 드라마에 매달렸고 경기 송추에서 시작한 촬영장은 8번이나 바뀌었다. 방송시간도 평일, 주말, 밤과 오전을 오가며 10차례나 바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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