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땅 구석구석

남양주시 수락산(水落山)에서 4월 연초록의 향연이 펼쳐졌다… 황홀했다

↑ 내원암 하산길 우측 능선에서 연초록 향연이 펼쳐지고 있다.

 

by 김지지

 

연초록에 대한 나의 관심, 거의 집착 수준

해마다 4월이 되면 맥박이 요동치고 가슴이 뛴다. 4월 중순에만 만날 수 있는 연초록의 향연이 나를 초대하기 때문이다. 온 산하에 넘실거릴 봄날의 연초록은 1년 중 이때가 절정이다. 그런데도 ‘싱그럽다’는 단어 말고 아는 표현이 없으니 부끄럽고 답답하다. 50대 중반까지 이 정도는 아니었다. 하지만 50대 후반부터 연초록에 대한 나의 관심은 거의 집착 수준이다. 내 비록 공감하지는 못하나 과거 봄처녀의 벌렁거리는 마음이 이러했을 것이다. 연초록은 5월의 진초록과 확연히 구분된다. 5월이 되어야 왜 4월의 연초록이 그토록 내 가슴 속을 헤집어 놓았는지 그 이유를 알게된다.

올해도 어김없이 4월이 찾아왔다. 머지않아 온 산하를 뒤덮을 연초록을 서울에서 기다리는데 하루하루가 지루하다. 해서 하루라도 빨리 그를 만나기 위해 남쪽으로 떠났다. 4월 3일 경북 안동으로 떠났으나 막 새순이 돋는 수준이어서 허탕을 쳤다. 대신 하회마을 신작로를 온통 덮고 있는 벚꽃에 취했다. 4월 7일, 10일, 16일 다시 짐을 꾸려 떠났다. 황장산(경북 문경). 도락산(충북 단양), 구담봉과 옥순봉(충북 제천)을 찾아갔으나 연초록이 도무지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다.

안동 하회마을 벚꽃나무 아래서 망중한을 즐기고 있는 나. 건너편은 부용대

 

그토록 만나기를 간청했던 연초록 숲이 계곡 입구에서부터 나를 기다려

이처럼 연초록의 갈증이 좀처럼 해소되지 않고 있던 4월 17일, 고교 친구들과의 수락산 산행이 마련되었다. 수락산은 서울에서 접근성이 좋다는 이유로 진가를 제대로 인정받지 못하고 있다. 하지만 기암괴석은 아니더라도 다양한 형태의 바위와 탁 트인 조망은 전국 어디에 내놓아도 손색이 없다. 공식 등산로는 10곳이 넘는다. 노원구에만 9곳이고 남양주와 의정부 관할 등산로도 그 정도는 될 것이다.

우리 코스는 노원구에서 정한, 수락산역 인근의 제3등산로를 출발해 경기 남양주시가 정한 제2코스로 하산하는 것이다. 정상까지 거리는 3.2㎞다. <수락산역 → 벽운동계곡 → 새광장 → 도솔봉과 치마바위 사이 능선 → 수락산 정상 아래 → 내원암 → 금류폭포 → 옥류폭포 → 수락산유원지> 코스다.

서울 노원구 방향 수락산 지도

 

경기 남양주 방향 수락산 지도

 

수락산역에서 얼마 지나지 않아 벽운동계곡으로 들어섰다.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그토록 만나기를 간청했던 연초록 숲이 벽운동계곡 입구에서부터 나를 맞는게 아닌가. 연초록이 눈으로 가슴으로 파고 들어와 황홀했다. 가슴까지 벅차올랐다. 연초록을 사진에 담기 위해 두 손이 스마트폰과 사실상 한 몸을 이루고 있다. 때로는 홀로 멈춰서서 연초록과 눈을 마주쳤다. 짝사랑이었지만 1년만의 해후에 절로 탄성이 터져나왔다.

계곡에서 산 중턱의 새광장까지 거리는 1.9㎞다. 정상을 향해 고도를 높이는 우리와 달리 반대 방향으로 고도를 낮추는 벽운동계곡에는 물소리가 낭랑하다. 보통 4월의 산은 갈수기인데 오늘 벽운동계곡만큼은 제법 물이 많다. 연초록의 이파리와 물소리에 눈과 귀가 호강한다. 드문드문 연초록 사이에 피어있는 산벚꽃들이 오늘만큼은 시들해보인다. 늦게 만개한 벚꽂은 생기가 있긴 하나 연초록에 가려 존재감이 약하다.

새광장에서 잠시 숨을 고르고 오른쪽 길로 오르니 능선까지 깔딱고개다. 중간중간 저 옛날 산 위에서 굴러내려온 돌의 크기가 엄청나다. 그 중 한 바위를 옆에서 살펴보니 홍어처럼 보인다. 그 바위는 나에게서 ‘홍어바위’라는 이름을 얻었다. 시인 김춘수의 시 ‘꽃’이 떠오른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홍어바위가 되었다.”

수락산 벽운동계곡 숲

 

바위 형태와 이름 사이에서 미스매치 일어나는 것은 작위적인 작명 탓

가파른 언덕길을 가뿐 숨을 몰아쉬면서 오르니 도솔봉과 치마바위 사이 능선이다. 들머리에서부터 1시간 40분쯤 걸렸다. 새광장에서 능선까지는 0.9㎞, 다시 정상까지는 0.4㎞다. 능선에 올라서니 흡사 늦가을처럼 기온이 급격히 떨어지고 바람이 거세다. 그래서 춘래불사춘(春來不似春)이다. 왼쪽 저멀리 도봉산과 북한산을 바라보며 능선을 오르내리는데 비가 내리는가 싶더니 이내 쌀알 크기의 우박이 요란하게 떨어진다.

치마바위 아래서 성철의 내자(內子)가 주저앉는다. 충북 단양의 금수산(1015m)과 경기 양평의 용문산(1157m) 등 전국의 1000m급 명산에 오를 정도의 산행 실력을 갖춘 복현씨가 주저앉다니 컨디션 난조에 깔딱고개 후유증이다.

치마바위에서 바라본 도솔봉

 

치마바위에서 바라보는 남쪽의 도솔봉은 언제보아도 단아하다. 치마바위 옆으로는 하강바위와 코끼리바위가 붙어있다. 그 바위 아래에 난 길을 지나면 철모바위가 있으나 장님이 코끼리 다리 잡는 식으로 도무지 바위 형상을 알 수 없다. 수락산의 그 많은 바위 중에서 이름을 얻었으니 나름 출세한 이들 바위들의 형상은 수락산 정상에 다가가야 비로소 보인다. 다만 바위 이름과 형상이 잘 매치가 안돼 사전 정보가 없으면 무명 바위일 뿐이다. 미스매치가 일어나는 것은 바위 작명이 작위적인 탓이다. 코끼리바위라고 하면 바위를 보는 순간 코끼리가 연상되어야 하는데 잘 연결되지 않는다. 그래도 앞으로 수락산행을 하게될 사람들을 위해 몇몇 바위를 소개한다. 누군가의 블로그에서 가져온 사진도 있고 내가 작년과 올해 수락산에 오를 때 찍어둔 사진들이다.

수락산 바위들(출처 블로그 <벌교 땅골로>)

 

수락산 바위들 (출처 블로그 <벌교 땅골로>)

 

철모바위 옆을 지나면 수락산 정상 오름길이다. 우리는 정상 100m 전, 남양주시 별내면 소재 수락산유원지 방향으로 하산한다. 내원암까지는 급경사 0.6㎞이고 수락산공영주차장까지는 비교적 완만한 3.15㎞ 거리다.

 

수락산을 수십번 올랐는데도 남양주 방향은 처음

급경사 데크계단을 내려가도 또다시 급경사 길의 연속이다. 조심조심 내려가니 내원암이다. 크지않은 암자인데도 나름 전설따라 삼천리 식의 이야기꺼리를 품고 있다. 이곳에 소개할 정도는 아니므로 인터넷 백과사전을 참고하시라. 다만 내원암 마당 이곳저곳에서 자라는, 이름을 알 수 없는 나무들만큼은 인상적이다, 내원암 왼쪽 멀리 대형 암반이 늠름한 모습으로 속세를 내려다보고 있다. 이름까지 있다. ‘485대암반’이라는.

내원암 왼쪽의 ‘485대암반’

 

그동안 수락산을 수십번 올랐는데도 남양주 방향은 처음이다. 그런 점에서 남수가 고맙다. 남수는 코스 개발을 위해 비가 내리던 날 종훈과 함께 답사했었다. 내가 경험하지 않은 코스를 알려주었다는 점에서 두 친구에게 감사함을 전한다. 올해 안에 남양주 코스만 따로 오를 계획이다. 왼쪽 능선의 포토존에서 485대암반을 쳐다볼 생각에 벌써부터 기대 만땅이다.

내원암

 

내원암에 도착하니 따사로운 4월의 햇살이 절의 이곳저곳에 생기를 불어넣고 있다. 시야를 멀리 하면 왼쪽으로 거대 암릉이 산의 경사면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고 오른쪽으로 무성한 연초록 숲이 온 산을 뒤덮고 있다. 물감을 뿌려놓은 듯 온통 연둣빛이다. 연초록의 나뭇잎에서는 오묘하고 화려하고 신비로운 기운이 느껴진다. 물구나무서기를 하면 초록의 바다였을 것이다. 내원암 바로 아래에 금류폭포가 있다. 부근에 은류폭포가 있다는데 길이 달라 다음에 둘러볼 계획이다. 옥류폭포는 저 아래에 있다.

금류폭포(왼쪽)와 옥류폭포

 

내원암에서 한참을 내려가다 보면 우측으로 난 소로(小路)가 있다. 산길에서는 소리만 들릴 뿐 모습은 보이지 않는 천혜의 장소다. 계곡은 적당한 규모에 수량이 풍부하다. 다가오는 여름 알탕을 이곳에서 해야겠다는 생각이 절로 난다. 어떻게 이런 곳을 찾아냈는지 남수와 종훈의 안목이 그저 놀라울 뿐이다. 하산하는 발걸음이 가볍고 마음이 뿌듯하다. 무엇보다 연초록과 가슴 설레이는 데이트를 할 수 있도록 기회를 마련해 준 친구들의 수고에 감사함을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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