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토리박스

[인천농민 신형준의 ‘세상 바투보기’] 다수의 이익을 앞세워 소수의 피해를 당연시하는 행위는 전체주의적 폭력이다

↑ 풍납토성 발굴 현장 (출처 서울시)

 

서울 송파구 풍납토성 주민들에게는 지금도 미안함 남아 있어

회상 하나. 1998년이었을 게다. 필자가 서울 성북구 정릉동에 살 때였다. 신문 사회면에 조그마한 기사가 났다. ‘서울시, 외곽순환도로건설 계획. 홍제동~정릉 등 거쳐…’(이하 블라블라) 당시 도로 건설 예정지 근처에 살던 선배 한 분과 이 기사를 보면서 “이야, 그럼 그 동네 주변 교통이 편해지겠네요”라며 좋아했다. 2000년대 초반, 외곽순환도로 건설 공사가 정릉동에서도 들어갔다. 알고 보니 고가 형태였다. 고가가 건설되면서, 고가 바로 주변 땅은 ‘죽은 땅’으로 변함을 그제야 알았다.

회상 둘. 2003년 하반기인지, 2004년 상반기였는지는 확실하지 않다. 당시 나는 서울시청 출입기자였다. 어느 날, 기자실이 무척이나 시끄러웠다. 목동에서 아파트 주민들이 기자실로 몰려왔다. 대부분 주부였다. 한 20 여 분 됐을까? “목동 아파트 단지 내부에 고가도로를 건설한다는 겁니다. 이게 주민을 위한 행정입니까? 이명박 시장, 물러나라!” 서울 남부지역을 잇는 고속도로 형태의 도로를 서울시가 건설하려는데, 목동 아파트 단지 사이를 고가 형태로 지나기로 계획됐다는 것이다. 서울시 관계자가 바로 나서서 시위대를 설득했다. “지금 확정된 게 없습니다. 이러지들 마시고…” 주민들의 반대 시위가 목동에서 그 뒤로도 열렸다고 들었다. 목동을 지나려던 고가도로는 결국 취소됐다.

회상 셋. 지금도 서울 송파구 풍납토성 주민들에게는 미안함이 남아 있다. 1997년 1월 6일자 조선일보 사회면에 ‘풍납토성 아파트 공사 현장에서 백제 토기 대량 발견’ 기사를 특종으로 썼다. 이후 정식 발굴을 거치면서 풍납토성이 백제 초기 도읍이었던 위례성이라는 게 정설이 됐다. 귀중한 우리 문화유산을 지키도록 만드는데 도움이 되는 특종 기사를 썼다는 것을 한동안 자랑스러워했다.

한데 지금도 잊지 못하는 목소리가 있다. 그 기사를 썼던 날 아침, 나에게 걸려온 전화였다. “기자님, 저는 풍납토성 주민입니다.(여자 목소리였다.) 귀중한 문화유산을 지키는 것도 좋지만, 주민들이 피해는 도대체 누가 보상하나요?” “죄송한데 그건 국가에 물으셔야 할 문제라고 봅니다. 저야 법적 차원에서 문화유산 보존을 위해 기사화한 것입니다. 제가 보상을 해 드릴 방법도 없는데 저에게 이러시면 제가 무슨 말을 할까요?” 풍납토성은 그 뒤 우여곡절을 거쳐 토성 내부에서는 아파트 건설이 불가능하게 됐다. 재개발 개건축이 사실상 어렵게 된 것이다. 그 결과는? 풍납토성의 아파트 가격은 송파구 내에서 가장 싸다. 아니, 그 주변인 강동구나 동작구와 비교해도 싸다.

 

문화유산 보존해야 한다면, 재산권 피해자에게 세금으로 보상해야

문화유산의 보존, 반드시 해야 한다. 하지만 공익을 위해 문화유산을 보존해야만 한다면, 그로 인해 재산권 피해를 보는 사람에게 다수가 갹출한 돈, 즉 세금으로 ‘보조’해야 하는 것은 아닐까? 95명을 만족시킬 수 있다고, 5명에게 피해를 강요하는 행위는 국가의 폭력이 아닐까? 이를 깨달은 뒤부터, 필자는 ‘풍납토성의 합리적 개발’을 외쳤다. 아마 2002년 즈음부터였을 것이다. 풍납토성 내부의 재건축 재개발을 허용하되, ‘건폐율은 한껏 낮추고, 용적률은 한참 높여서 고층화’하자는 것이었다. 이를 통해, 공원녹지로 변한 지역은 국유화해서 앞으로의 재개발 논란을 잠재우되, 개발비는 높아진 용적률로 가능해진 민간 분양을 통해 충당하자는 것이었다. 그것 외에는 개발과 보존을 조화시킬 다른 방법이 없어 보였다.

이 말을, 청와대를 때려치우고 나올 때도 대통령과 ‘매일 얼굴을 맞대는 이’에게 간곡하게 부탁했다. 아쉽지만, 여태껏 변한 것은 없다. 박원순 서울시장은 “꿈에 백제 왕이 나타났다”는 ‘주술적 이야기’까지 해가면서 풍납토성 보존을 외치고 있지만, 정작 풍납토성 내부 주민의 재산권 행사에는 여전히 눈을 감고 있다.

‘재산권 행사의 의무’라는 법 조항이 있다. 공익을 위해 개인의 재산권 행사가 제한될 수 있다는 조항이다. 한데, 입장 바꿔 생각해보시라. 귀하의 토지 바로 주변에 군부대가 들어서게 됐다고 정부가 발표한다. 이리 되면, 하고 한 날 총소리 대포소리를 귀하는 듣게 된다. 이 장면에서 귀하는 “재산권 행사의 의무를 국민은 따라야 한다”며 흔쾌히 받아들이겠는가?

경북 성주에 사드를 배치하겠다고 발표했을 때, 성주 주민들의 극렬한 반대가 있었다. 당시 이를 준엄하게 비판하는 몇몇 우파 언론의 사설을 보면서 나는 솔직히 비웃었다. ‘보상을 어떻게든 합리적으로 해서 주민을 설득할 생각은 않고, 공익을 위해 무조건 성주 주민이 참아라? 그럼, 사드 배치를 귀하 집 바로 코앞에 해보자.’ 그 글을 쓴 해당 논설위원은 사시미 칼을 들고 나설지도 모른다.

경주 방폐장이 주민 동의를 통해 건설될 수 있었던 것은 ‘합리적인 보상’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국가의 발전과 안위에 직결되는 시설이 들어서거나 혹은 보존돼야 하는데, 만약 그로 인해 주민들이 재산상의 피해를 본다면 세금으로 보상해야만 한다. 그럴 수 없다면, 아니 그럴 의사가 없다면, 그것은 ‘전체주의적 폭력’일 뿐이다.

국가가 국민의 신뢰를 얻지 못하는 것은 ‘제도의 합리성’이 결여됐을 때라고 본다. 다수를 만족시킬 수 있다면, 소수는 희생돼도 좋다는 식의 발상을 우리는 숱하게 목도한다. 하지만 그에 대한 진정한 반성은 나부터도 없다. 그런 점에서 우리 사회와 그 구성원들은 여전히 자유주의와 개인주의의 진정한 가치를 이해하지 못 하는 ‘유아적 사고 단계’에 머물러 있는지 모른다. 물론 나를 포함해서다.

 

※‘바투보기’는
가까이에서 정밀하게 바라본다‘는 뜻이다. 고유어 ‘바투(두 대상이나 물체의 사이가 썩 가깝게)’와 ’보기‘를 합친 필자의 造語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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