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토리박스

[인천농민 신형준의 ‘세상 바투보기’] 솔직하지 않은 한국사 연구 풍토에 대한 斷想… 치욕스럽고 아픈 상처라고 사실 그대로 받아들이지 않아

↑ 무령왕릉 묘지석 오른쪽에 ‘寧東大將軍百濟斯麻王(영동대장군 백제 사마왕)’이라고 새겨있다.

 

기자 생활 대부분을 문화재 기자를 하면서 지냈다. 나름 특종도 많이 했다고 자부한다. 자랑질을 아주 노골적으로 하자면, 필자가 조선일보를 그만 둘 때 역대 조선일보 특종자 랭킹 10위 안에 들 정도였으니까. 하지만 이른 나이에 기자를 그만두면서 큰 미련은 없었다. 더 정확히 말하면, 문화재 기자를 그만 둘 때 아쉬움이 거의 없었다. 왜였을까?

 

백제 무령왕 묘지석에 중국 ‘계급’이 먼저 적혀 있다고 사대주의에 빠졌다고 볼 수 있나

1971년 무령왕릉이 우연히 발굴됐다. 무덤 주인공을 알 수 있었던 것은 무덤에 묻힌 묘지석 덕분이었다. 묘지석은 무덤 주인공이 누구인지 적은 뒤 묘지 안에 넣은 돌을 말한다. 한데 이 무덤의 묘지석에는 무덤 주인공을 ‘영동대장군 백제 사마왕(寧東大將軍百濟斯麻王)’이라고 소개하고 있다. ‘사마(斯麻)’는 무령왕의 생전 이름이었다. 이를 통해 이 무덤에 묻힌 이가 무령왕임을 알 수 있었다. 그런데 ‘영동대장군’이라는 직책은 왜 왕이라는 호칭보다 앞서서 적혀 있었을까? 일반적으로 장군은 왕보다는 낮은 계급이 아닌가?

예를 들자. 어느 사람이 직업 공무원으로 장관까지 올랐다가 죽었다. 그러면 그 사람 무덤에는 ‘아무개 장관’이라고 적는 것이 상식일 것이다. 그 사람은 죽기 직전까지 “아무개 장관”으로 불리지, “어디 부처 사무관으로 시작한 아무개 장관”이라고 불리지는 않을 것이다. 한 사람의 행적을 소개하면서 ‘가장 높이 오른 자리’를 부르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한데, 무령왕 묘지석에는 ‘장군’이 왕보다 앞서서 나온다. 여기서 말하는 ‘장군’은 중국 왕조에서 내린 계급이었다. 무령왕은 재위 21년이던 서기 521년, 중국 대륙의 남쪽을 장악하고 있던 양나라에 사신을 보내 조공했다. 당시 중국은 북쪽을 다스리던 나라와 남쪽을 다스리던 나라로 나뉘어 있었다. 이를 통일한 게 수나라이다.

양나라는 이를 치하하며, 무령왕을 ‘사지절도독 백제제군사 영동대장군’에 책봉했다. 도독이니 장군이니 하는 직책은 중국 황제를 모시는 벼슬아치이다. 즉 중국의 반쪽짜리 왕국인 양나라는 무령왕을 자신들의 ‘수하’로 인정한 뒤 벼슬을 내린 것이다.

한데, 무령왕이 죽자 백제 조정은 중국의 반쪽짜리 왕조에서 내린 계급을 ‘백제왕’이라는 직함보다 먼저 ‘자랑스레’ 적어 넣었다. 이를 두고 “백제의 지배 계급은 사대주의에 빠져 있었다. 그러니 망할 수밖에…”라고 이야기해야 할까?

 

중국 왕조 이름이 먼저 등장하는 것은 힘이 없었던 현실을 반영한 결과

신라의 경우를 보자. 신라 후기에 김헌정(정확한 생몰년은 미상)이라는 최고위 귀족이 있었다. 서기 9세기 초반 시중(지금으로 치면 총리)을 지냈고, 아들은 희강왕(재위 836~838년)에 올랐다. 서기 813년 경남 산청군 단성면 단속사에 신행선사를 기리는 비가 서는데, 비문을 김헌정이 지었다.

김헌정은 비문에서 ‘황제국 당나라의 위위경(조정에서 병기 관리를 맡던 부서의 장관)이며 신라의 국상 병부령이자 수성부령’이라고 자신을 소개한다. 신라의 수상(=국상)인 김헌정 역시 당나라 계급을 먼저 적고 있는 것이다. 김헌정 역시 사대주의에 찌든 사람이어서 이런 표현을 썼던 것인가?

신라 54대 임금인 경명왕(재위 917~924)은 진경대사(서기 855~923년)를 기리기 위해 세운 진경대사탑비의 문장을 직접 지었다. 이 탑비의 첫머리는 ‘당나라 신라국의 돌아가신 국사인 진경대사…’로 시작한다. 신라의 국사가 돌아가셨는데, 왜 당나라가 신라보다 먼저 나올까?

신라 후기 이후, 고려시대, 조선시대의 탑이나 묘비 문장의 첫 머리를 유심히 보신 분들은 잘 아실 것이다. ‘유당’ ‘유송’ ‘대원’ ‘대명’ 등 중국 왕조의 이름이 신라 고려 조선보다 먼저 적혀 있는 경우가 결코 적지 않음을…. 문장의 형식을 제대로 갖춘 경우일수록 이는 더 심해지고 있다는 사실도 말이다.

 

한국사 연구, ‘우리 것은 소중한 것’이라는 생각에 빠지면 사실을 사실대로 볼 수 없어

한국사 연구에서 우리는 많이 솔직해져야 한다. 사실을 사실대로 보아야 한다. ‘우리 것은 소중한 것’이라는 생각에 빠져, 사실을 버린 채 지금 우리의 시각을 일방적으로 덧댈 수는 없는 일이다. 번역문을 보면 ‘유당 신라국’이니 ‘유명 조선국’이니 하는 경우, 하나 같이 그냥 발음 그대로만 번역하고 있다. 이는 잘못된 것이다. 왜 신라나 고려, 조선의 지식인들은 자신들의 국가 이름 앞에 중국 왕조의 이름을 먼저 썼을까?

그들은 알고 있었던 것이다. 자신들이 중국 왕조의 ‘영향력’ 아래 있다는 사실을…. 그랬기에 고구려를 포함해서 삼국시대 이후, 한반도의 지배자는 중국 왕조에 국서를 보낼 때 자신을 ‘신하’라고 표현했던 것이다. 자신들의 왕조 이름 앞에 중국 왕조가 먼저 적힌 것도 그런 까닭이다. 그 역사는 청일전쟁으로 중국 왕조가 한반도에 소위 ‘종주권’을 잃기 전까지 지속됐다.

그러니 ‘중국 황제의 사신을 은혜롭게 맞는다’는 영은문을 헐고 그 자리에 ‘독립문’을 세웠지(1897년 준공) 조선이 진정한 독립국가였다면, 우리가 독립국가임을 밝히는 건축물을 굳이 왜 세웠겠는가? 진정한 독립국가가 세자를 세우거나 왕이 즉위할 때 중국 왕조에 먼저 사신을 보내 굳이 허락을 받을 필요가 있었겠는가?

이것이 그저 형식적인 외교의 하나였을 뿐이라고? 형식적인 절차였을 뿐이라고? 그러면, 왜 중국은 세자를 바꾸고, 황제가 설 때 한반도 국가에 ‘허락’을 받지 않았을까? 이것에서 보이는 영향력과 힘의 차이를 마냥 무시하자고?

지금 입장에서 이는 무척이나 치욕스럽고 아픈 상처일 수 있지만 그것이 사실이라면, 사실은 사실 그대로 받아들여야 한다. 이를 ‘나라를 팔아 먹은 사대주의’니 ‘토착 왜구’ 혹은 ‘토착 짱깨’식으로 비난하고 비하하는 것은 사실을 왜곡하는 일에 불과할 뿐이다.

 

대한민국의 성과 비판하는 사람일수록 과거 역사 자랑하는 경우 많아

그런 점에서 필자는 20세기 후반기의 대한민국 역사가 무척이나 자랑스럽다. 외세에 강점당했던 나라가 단 몇 십 년 만에 이렇게 세계적으로 발돋움한 경우가 세계사적으로 있었던가?

필자가 10대 시절, 소니의 워크맨은 선망의 대상이었다. 삼성의 마이마이는 그에 비해, 플레이어를 누르면 ‘탱크 소리 같은 잡음’이 났다. 한데 그로부터 단 20여년 만에 소니와 히타치, 파나소닉 등 유수한 일본 가전제품사의 총매출액이 삼성보다 못한 세상이 왔다. 놀랍지 않은가? 한데도, 여전히 대한민국이 이룬 빛나는 성과를 독재와 착취, 오욕으로 점철된 역사로만 보는 이들도 많은 듯하다. 세상사, 만점이 어디 있겠는가? 크게 봤을 때 이 정도면 빛나는 성과를 이뤘다고 볼 수 있겠지.

한데 대한민국의 성과를 비판하는 사람일수록 과거의 한민족 역사가 빛났음을 자랑하려드는 경우가 많다.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는, 누가 한 소리인지도 모를 이야기를 되뇌며 역사 공부를 해야 한다고 이야기한다.(이 말을 처칠이 했다고 하는데, 언제 어디서 했는지는 아무도 명확하게 밝히지 못하고 있다.)

한데 역사를 잊지 않고 기억하는 것이, 역사를 왜곡하는 것과 같은 말일까? 미술사학자 곰브리치가 세계적 베스트셀러 ‘서양미술사’에서 “서구 미술은 모두 그리스의 자식이다”라고 선언했을 때 그가 자신의 조국인 오스트리아나, 자신이 주로 활동한 영국 문화에 대한 자존심이 없어서 이런 말을 한 것일까? 영국의 적지 않은 기초 역사 교과서가 “우리는 로마의 침입으로 문명에 접어들었다”고 이야기하는 게 영국에 ‘토착 로마놈’들이 많아서일까?

과거 박근혜 대통령이 한국사 교육 강화를 이야기하면서 한국사는 수능에서도 필수 과목이 됐다. 그를 탄핵시키고 등장한 문재인 대통령 역시 역사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다. 그러니 6·25 발발의 주역인 김원봉의 서훈까지도 이야기하셨지. 한데, 과연 이런 흐름이 좋기만 한 것일까? 역사를 잊지 않는 게 아니라, 잘못된 역사 이해에 발목을 잡히고 있는 것은 아닐까?

 

※‘바투보기’는
가까이에서 정밀하게 바라본다‘는 뜻이다. 고유어 ‘바투(두 대상이나 물체의 사이가 썩 가깝게)’와 ’보기‘를 합친 필자의 造語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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