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토리박스

[인천농민 신형준의 ‘세상 바투보기’] “차라리 한국사 교육을 폐지하라!” 외치는 이유 ②… 과거 조선과 중국이 대등한 외교관계를 맺은 것처럼 기술하고 있는 역사교과서를 보고

↑ 영은문(왼쪽)과 독립문

 

과거 이 땅의 지식인들은 ‘우리가 중국의 속국’이라고 인정했는데

잊고 싶은 ‘흑역사’가 누구에게나 있을 겁니다. 실수를 전혀 하지 않거나, 비굴했던 적이 단 한 번도 없는 사람이 어디 있으려고요. 사람이 모인 사회나 국가도 마찬가지일 겁니다. 현재 독립문이 선 자리 주변에는 원래 영은문(迎恩門)이 있었습니다. 중국 사신을 대접하기 위해 지은 모화관(慕華館)의 정문 격이었습니다. 모화관은 중국(=화)을 그리는(=모)는 관이고 영은문은 황제의 은혜(=은)를 맞는(=영) 문이라는 뜻입니다. 여기서 관(館)에 해당하는 마땅한 번역어가 뭐가 될까요? ‘국가가 경영하는 호텔’ 정도일까요?,

모화관과 영은문은 1896년까지 존재했습니다. 청일전쟁(1894~1895)으로 무참히 깨진 청나라를 보면서, 조선은 더 이상 중국의 속국이 아님을 대외적으로 보여줄 필요가 있었습니다. 그래서 영은문은 헐렸고, 모화관은 독립관으로 사용됩니다. 헐어버린 영은문 대신 세운 것이 독립문이었습니다.

독립문은 역설적으로 19세기 말까지 조선의 국제적 위상을 보여줍니다. 청일전쟁으로 승리한 일본이 아니었으면, 독립문은 아마 더 늦게 건립됐을 겁니다. 청나라가 ‘시퍼렇게 눈 뜨고 있었다’면 말입니다. 이것은 팩트입니다. 부정하고 싶어도 부정할 수 없는…

그럼 1896년 이전은 어떠했을까요? 우리나라의 초중고 역사 교과서에서 우리와 중국의 관계를 ‘냉정하게 기술한’ 것은 단 하나도 없습니다. 우리와 중국은 대등한 외교 관계를 맺은 것처럼 기술돼 있습니다. 한데, 이게 사실인가요? 현재의 시각에서 보면 아쉬울지 몰라도, 이 땅의 지식인들은 ‘우리가 중국의 속국’이라고 인정했습니다. “그럴 리가?”라고 생각하십니까?

 

한국고전종합DB, 한국사학계가 얼마나 국수적인 시각으로 역사 보는지 알려줘

역사의 진보는 역시 과학에 의해 이뤄집니다. 예전에는 고서를 보려면 도서관에 가서 하나하나 찾아야 했지요. 이제는 웬만한 고서는 안방에서 ‘한국고전종합DB’(인터넷 주소는 http://db.itkc.or.kr/ 입니다.)에 접속만 하면 번역문과 원문을 모두 볼 수 있습니다.

여담이지만 구텐베르크의 인쇄술이 지식의 전파에 공헌을 하면서 중세를 깨뜨리는데 1등 공신이었다면, 한국사학계의 국수성을 깨는데 1등 공신은 한국고전종합DB 등 각종 인터넷에 오른 우리 고전의 원문과 번역문이 될 것이라고 저는 봅니다. 누구라도 직접 우리 선조들이 쓴 글을 검증해 볼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 자료를 하나하나 검색하다 보면, 한국사학계가 얼마나 국수적이고 자국중심적인 시각으로 역사를 보는지 알 수 있을 것입니다.

한국고전종합DB에서 ‘고전번역서’라는 항목을 클릭하신 뒤 검색창에 ‘속국’이라고 적어 보십시오. 이 땅의 지식인들이 우리를 중국의 속국이라고 표현한 내용을 숱하게 찾을 수 있습니다. 창피하십니까, 우리 선조들이 스스로를 중국의 속국이라고 불렀다는 점이? 하지만 그것이 사실이라면 우리는 냉정히 받아들여야 할 것입니다.

☞ 클릭! 한국고전종합DB

http://db.itkc.or.kr

 

‘역사 인식의 천동설’로는 미래를 제대로 그릴 수 없어

중요한 것은 앞으로 그러지 않으면 되는 것이 아닐까요? 아니, 더 솔직히 말해서, 인구와 국토 면적이 주변 국가에 비해 절대적으로 적거나 좁은 ‘상대적 약소국가’가 외교에서 어떤 자세를 취해야 할지 과거를 통해서 배울 수 있지 않을까요? 우리와 ‘국경’을 맞대고 있는 중국 러시아 일본의 인구나 국토 면적을 생각해 보시기를….

저는 “일본 정도는 우리가 이길 수 있다”고 이야기하는 분들을 보면 참으로 답답합니다. 우리 역사에서 ‘우리 자력’으로 일본과 군사적으로 싸워 이긴 경우는, 아마 광개토대왕 정도밖에는 없을 겁니다. 이런 시각이 ‘친일적’으로 보이신다면, 저에게 팩트로 반론하시면 됩니다.

영국 소설가 레슬리 폴 하틀리(1895~1972)의 소설 ‘The Go-Between’(1953년 발표)의 첫 문장은 이렇게 시작합니다. “과거는 낯선 나라이다. 과거에는 모든 것이 오늘날과 달랐다.” 이것을 미국의 역사지리학자 데이비드 로웬달(1923~2018)은 책 제목으로 그대로 인용합니다. 1985년 출간된 ‘과거는 낯선 나라다’(The Past is a foreign country)가 그것입니다.

20세기 전반기 이전까지의 역사적 상황은 지금 우리와는 확연히 달랐습니다. 지금은 국제연합이라도 있어서 한 나라가 다른 나라에 일방적인 힘으로 외교 관계를 맺기 힘듭니다. 아니 최소한, 힘들어 보입니다. 한데 19세기 이전에 그런 게 어디 있었나요? 힘 있는 나라가 주먹 불끈 쥐면 찍소리도 못했지요. 그런 역사가 창피하다면, 앞으로 그런 역사를 어떻게 하면 되풀이하지 않을까를 고민해야지, 그것을 숨긴다고 해결 될까요? 부끄러운 것도 알아야, 그 부끄러움을 반복하지 않지요.

현재와 같은 국수적, 혹은 “모든 역사는 한국사를 중심으로 돈다”는 식의 ‘역사 인식의 천동설’로는 미래를 제대로 그려 나아갈 수 없습니다. 그럴 바에는 차라리 한국사 교육을 폐지하는 게 낫다고 저는 봅니다. 미래 세대에게 우리가 진정 가르쳐야 할 역사는, ‘냉정하고도 객관적으로 기술된’ 세계사일 것입니다.

 

※‘바투보기’는
‘가까이에서 정밀하게 바라본다’는 뜻이다. 고유어 ‘바투’(두 대상이나 물체의 사이가 썩 가깝게)와 ‘보기’를 합친 필자의 造語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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