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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 인제군 ‘대암산 용늪’은 국내 제1호 람사르 습지… 5000살의 용늪 탐방하고 대암산 정상(1312m)까지 오르니 즐거움이 두 배

↑ 탐방객들이 용늪전망대에서 용늪을 내려다보고 있다.

 

by 김지지

 

■탐방에 앞서

 

요즘은 신문이나 책을 읽다가 생각지 않았던 자연 명소가 눈에 띄면 어떻게든 다녀와야 직성이 풀린다. 작년부터 꽂힌 건 국가명승지와 람사르 습지다. 명승(名勝)은 문화재청에서 경치가 뛰어난 지역을 대상으로 지정한 국가지정문화재다. 그동안 지정한 116개의 명승지 목록을 보니 다녀온 곳도 적지 않지만 다녀오지 않은 곳이 더 많다. 람사르 습지는 국내 23개 습지 중 제주 물영아리오름습지, 전북 고창의 운곡습지, 전남 순천만 갯벌 등 세 곳만 다녀왔을 뿐 나머지 지역과는 아직까지 인연을 맺지 못했다. 람사르 습지는 람사르 협약에 따라 람사르협회가 지정·등록·보호하는 습지이고 람사르 협약은 생태·사회·경제·문화적으로 큰 가치가 있는 습지를 체계적으로 보전하기 위한 국제적 환경 협약이다.

강원도 인제군 소재 대암산의 용늪이 국내 람사르 습지 1호라는 사실을 2019년 겨울 우연히 알게되어 인제군 생태관광 홈페이지에 들어갔더니 매년 5월 중순부터 10월 말까지 탐방이 가능하단다. 봄이 오기를 겨우내 기다리다가 올해 4월 홈페이지를 살폈더니 코로나 때문에 기약이 없다.  그러는 사이 대학친구 희용과도 뜻이 맞아 우리 부부와 희용 부부 넷이서 함께 탐방하기로 하고 탐방이 시작될 날만을 기다렸다. 그러던 중 탐방 일정이 확정되어 희용이 6월 4일을 탐방일로 예약했다. 대암산 용늪 탐방은 그렇게 시작되었다.

대암산과 용늪 탐방 지도

 

■용늪 탐방은 예약이 필수

 

탐방 코스는 세 곳

용늪은 가고 싶다고 해서 아무 때나 갈 수 있는 곳이 아니다. 탐방하려면 인제군 생태관광 홈페이지(sum.inje.go.kr)나 양구군 생태공원 홈페이지(http://www.yg-eco.kr/)에서 신청해야 한다. 인제군은 탐방 2주일 전, 양구군은 20일 전까지 신청해야 한다. 1년 중 탐방 가능 기간은 5월 16일부터 10월 31일까지다. 인제군의 경우 예약신청은 탐방예정일의 ‘월’을 기준으로 전월 1일부터 탐방예정일 10일 전까지만 가능하다. 예를들어 7월 10일 예약신청은 6월 1일 0시부터 7월 1일 23시 59분 까지만 가능하다. 예약 인원은 본인을 포함, 최대 20명까지다.

탐방 코스는 세 곳이다. 인제군에 서흥리탐방코스와 가아리탐방코스 두 곳이 있고 양구군에 군부대를 관통하는 코스 한 곳이 있다. 이중 가장 인기있는 코스는 적당히 등산도 하고 용늪도 탐방하고 대암산 정상도 오르는 서흥리 코스다.

용늪전망대에서 내려다본 용늪과 데크길

 

인제군 서흥리 코스 출발시간은 9시(50명), 10시(40명), 11시(40명)로 3회 운영한다. 생태 프로그램 체험비 명목으로 탐방객 20명 기준 10만원을 내야하므로 20명이 출발하면 1인당 5,000원이고 10명이면 1인당 1만원이다. 전문 연구가들이나 사진작가들은 2~3명만 참가할 때도 있는데 그럴 경우도 10만원이다. 다만 탐방객이 40명 넘을 때는 안내원 3명이 동행하므로 비용이 달라진다. 탐방 예약자는 용늪자연생태학교(강원도 인제군 서화면 금강로 1106-27)에 집결했다가 인원점검이 끝나면 7㎞ 떨어진 용늪출입통제안내소로 이동해 신분증을 제시하고 출입증을 받아야 한다. 탐방·등산 시간은 5~6시간 정도 소요된다.

가아리 코스는 인제읍 가아리 산1번지 안내소에 집결한 후, 개인 차량을 이용해 14㎞의 임로를 따라 이동한다. 출입로는 산길 도로여서 대형버스는 진입이 불가하다. 출발시간은 10시이고 1회 20명만 운영한다. 탐방비용은 없다. 가아리안내소~용늪 내부 탐방~가아리안내소 기준으로 3시간 정도 소요된다. 아이와 함께라면 개인 차량으로 용늪 입구까지 이동하는 가아리 코스가 좋다.

양구군 코스의 1일 탐방 가능 인원은 100명이다. 출발 장소는 양구군 동면 팔랑리다. 이곳에서 해발 1,200m 높이에 위치한 군부대까지 6㎞의 군사도로를 지나가야 하는데 3㎞는 승용차로 이동하고 3㎞는 걸어가야 한다. 종착지인 군부대 위병소에서 서약서를 쓰고 신분증을 맡기면 탐방을 시작할 수 있다. 출발 후 머지않아 작은용늪이 나타나는데 많이 훼손되어 용늪의 형태를 찾아볼 수는 없다. 작은용늪에서 수백미터를 걸어가면 큰용늪 입구가 나타난다. 용늪 탐방과 대암산 등정은 인제군 서흥리 코스와는 같으나 대암산에서 용늪을 거치지 않고 바로 입구로 내려가는 서흥 코스와 달리 양구 코스는 군부대에서 신분증을 찾아가야 하므로 원점회귀해야 하는 단점이 있다. 양구 코스 역시 입장료는 없으나 어린이나 노약자는 탐방할 수 없다.

 

■용늪 탐방과 대암산 등정

 

용늪도 탐방하고 대암산 정상도 오를 수 있는 서흥리 코스로 올라가

우리가 선택한 코스는 인제군 서흥 코스다. 출발시간은 오전 10시여서 9시 40분 용늪자연생태학교에 도착하니 우리 말고 2대의 차량이 먼저 와 있다. 평일이이서 그런지 우리 4명을 포함해 모두 10명뿐이다. 마을 주민인 40대의 여성 가이드가 인원을 점검한 후 각자의 승용차로 7㎞ 떨어진 곳으로 이동해야 한다고 알려준다. 가이드를 따라간 곳은 용늪 생태탐방 안내소다. 그곳에서 출입허가증을 받아 목에 차고 용늪을 향해 오른 시간은 오전 10시 8분이다.

서흥리 코스

 

완만하게 경사진 길로 올라가니 우측 계곡으로 대암산 정상에서 흘러내린 물줄기가 떨어지는 대암폭포 소리가 제법 요란하다. 수직폭포가 아니긴 하지만 물줄기는 굵고 시원하다. 안내소에서 35분 정도 올라간 곳에 길이 19m, 폭 1.5m의 출렁다리가 있고 그 출렁다리를 건너면 큰용늪으로 올라가는 길과 대암산으로 직접 올라가는 길로 나뉘는 삼거리가 나타난다. 그 길을 지나 큰용늪 방향으로 올라가면 한동안 제주도 곶자왈 같은 숲이 길 양옆으로 이어진다. 곶자왈은 나무와 덩굴 따위가 마구 엉클어져서 수풀 같이 어수선한 곳을 의미하는 제주어다. 표준말 중 비슷한 단어는 덤불이다.

그런데 덤불이 많은 지역을 지나자 작은 파리떼가 계속 따라다녀 산행의 즐거움을 빼앗아간다. 마치 소 목장 부근의 파리처럼 들끓는데 일반 파리와 날파리 중간 정도의 크기다. 가이드에게 물어보니 숲 어디엔가 죽은 짐슴이 있을 때 파리떼가 많다고 한다. 적당한 평지에서 점심을 해결하는데 파리떼가 계속 성화다. 게다가 땅에서는 검은 씨앗같은 작은 곤충들이 매트 위로 올라와 신경이 곤두선다.

출렁다리

 

용늪으로 오르는 길은 적당히 땀 흘리며 걸을 만한 길

그럭저럭 점심을 해결한 후 꾸준히 고도를 올리자 어느 순간 시야가 탁 트이고 바닥에 평평한 돌이 쫙 깔려 있는 너른 길이 나온다. 그 길을 따라 왼쪽으로 100m 올라가면 큰용늪이고 오른쪽으로 조금 내려가면 심각하게 훼손된 작은용늪이다. 용늪 탐방 길에는 야생화가 많다고 하는데 6월 초여서인지 화려한 꽃 잔치는 만날 수 없다. 봄꽃은 대부분 지고, 여름꽃은 아직 피지 않았다. 가이드는 7월말부터 8월초까지, 8월말부터 9월초까지가 가장 많은 야생화를 볼 수 있는 시기라고 한다.

초입의 생태탐방 안내소에서 용늪으로 오르는 길은 등산을 자주하지 않는 사람들도 적당히 땀 흘리며 걸을 만하다. 큰용늪 입구에 도착하니 12시 35분이다. 점심 시간을 포함해 2시간 30분 남짓 걸린 셈이다. 입구에는 ‘용늪 해발 1280m’이라고 쓰여 있는 큰 표지석이 탐방객을 맞는다. 그곳에서 가이드와 해설사가 바통터치한다. 가이드와 해설사 모두 인제군 주민이다. 관리소에 근무하는 직원들은 6시까지 근무하고 퇴근 이후에는 CCTV가 대신 감시한다.

용늪 표지석 앞에서

 

입구에는 신발 터는 장치도 있다. 탐방객 신발을 통해 외래식물이 들어오는 것을 막기 위한 시설물이다. 입장하려는데 해설가가 물병이나 지팡이는 배낭에 넣으라고 일러준다. 입구로 들어서고 용늪전망대에 서자 푹 꺼진 산등성이에 초록 융단 깔린 습지가 모습을 드러냈다. 흡사 제주 오름 같다. 전망대에서 보이는 건 큰용늪이다. 인근에 작은용늪, 애기용늪도 있지만 이미 심각하게 훼손됐다고 한다. 해설사가 “작은용늪 쪽에 군부대가 있었는데 예전에는 습지의 가치를 전혀 몰랐었다”며 “큰용늪 한가운데에 스케이트장을 만들 정도였다”라고 말한다. 전망대를 내려가 데크를 걸으며 습지를 관찰했다. 곳곳에 연못처럼 물이 고여 있고, 벼잎 같은 삿갓사초가 바람에 이리저리 흔들렸다. 용늪 입구에서 출구까지의 데크 길이는 1.4㎞다. 데크 위를 걸으며 습지를 가까이서 살펴보는 즐거음이 제법 쏠쏠하다. 1년 중 절반이 안개라는데 날씨까지 좋다.

탐방객들이 데크 위를 걷고 있다.

 

해발 1,280m 능선에 습지가 형성된 까닭은 특이한 기후환경 때문

용늪은 대암산 남서쪽 사면에 있는 1,280m의 구릉지대에서 수천년의 세월을 살아온 한반도 세 번째이자 남한 유일의 고층습원(高層濕原)이다. 고층습원은 식물 군락이 발달한 산 위의 습지를 말한다. 행정상으로는 강원도 인제군 서화면 서흥리 산 170번지 일원에 위치하고 있다.

해발 1,280m 능선에 습지가 형성된 까닭은 특이한 기후환경 때문이다. 용늪은 1년 중 절반 가량 안개에 둘러싸여 있어 습도가 높고 5개월 이상 평균 기온이 영하로 유지된다. 그러다보니 이곳의 생물들은 죽어도 미생물에 의해 분해되지 않아 썩지 않고 차곡차곡 쌓인다. 그렇게 5000년 동안 죽은 동식물들이 1년에 약 1㎜씩 쌓여 평균 1m, 최대 1.8m에 이르는, 스펀지처럼 말랑말랑한 습지 지층인 ‘이탄층(泥炭層)’을 형성했다. 이탄층이 켜켜이 쌓인 뒤에 비로소 여러 생물이 자리를 잡았는데, 특이한 지형과 기후 덕분에 끈끈이주걱, 비로용담, 삿갓사초 같은 희귀 식물이 군락을 이뤘다. 용늪은 북방계 식물이 남하하다가 남방계 식물과 만나는 곳, 즉 북방계와 남방계 식물을 동시에 만날 수 있는 곳이기도 하다.

용늪 모습

 

용늪은 1966년 비무장지대의 생태계 조사 과정에서 발견된 후 천연기념물 제246호(1973), 습지보호지역(1999), 산림유전자원보호림(2006)으로 지정되어 보호되고 있으며, 1997년 3월 대한민국 1호 람사르 협약 습지로 등록되었다.

 

대암산은 산림청 선정 전국 100대 명산

용늪 탐방 후에는 대암산 정상까지 오른다. 대암산(大巖山)은 해발이 1312m로 인제군과 양구군에 걸쳐 있다. 지명에서 알 수 있듯 정상부가 큰 암석으로 이뤄져 있어 대암이란 이름이 붙었다. 사실 나는 대암산 용늪 탐방이라고 해서 대암산에 있는 용늪만 탐방하는 걸로 알았는데 현지에 도착해 알고보니 대암산 정상 등정도 프로그램의 하나였다. 그러고보니 서울에서 멀리 떨어진 곳까지 가서 용늪만 다녀오면 많이 아쉬웠을 것이다. 대암산이 산림청 선정 전국 100대 명산이라는 것도 다녀와 알았다. 아쉬운 것은 100대 명산이 용늪 탐방을 예약한 소수에게만 문호가 열려있다는 점이다.

대암산 정상

 

오후 1시 30분 시작된 대암산 등정 때 해설사와 조금 전의 가이드가 또다시 바통터치한다. 용늪 탐방로 출구와 연결된 대암산 진입로로 들어서니 빨간 글씨의 ‘미확인 지뢰지대’ 표지판이 오른쪽 철조망에 붙어있다. 대암산 등정도 크게 힘들지는 않다. 용늪(1,280m)에서 대암산 정상(1,312m)까지 1.5㎞를 걷는데 고도를 32m만 높이면 되기 때문이다. 다만 막바지에 밧줄을 잡고 올라야 하는 일부 구간이 있다. 대암산 정상은 큰바위가 모여있는 형태다. 위험해보여 나와 희용만 정상으로 올라갔다. 자연훼손을 막기 위해 작게 만들었을 것으로 추정되는 정상표지석이 작고 앙증맞다.

40분만에 정상에 서니 사방의 전망이 장쾌하다. 날씨 좋은 날엔 설악산 대청봉과 점봉산이 뚜렷하고, 양구 펀치볼 마을과 그 너머 금강산도 보인다고 하는데 오늘은 날씨가 허락하지 않는다. 가까이는 잘 보이나 멀리는 뿌옇다. 조금 전의 큰용늪은 앞의 봉에 가려 보이지 않는다.

대암산 정상표지석. 큰바위가 아니라 흰 색깔의 작은바위다. 고정되어 있지 않아 정상석을 들고 사진도 찍을 수 있다.

 

하산길은 올라왔던 용늪 쪽 방향이 아니라 초입의 생태탐방 안내소로 바로 내려간다. 하산길은 조망 없이 내려가기만 하는 길이어서 지루하다. 출발지로 거의 내려왔을 즈음 가이드와 이런 저런 얘기를 나누면서 느낀 것은 가이드든 해설사든 탕방객 유치에 적극적이라는 것이다. 다른 두 곳과 달리 입장료를 받기 때문에 그만큼 더 열심히 하는 것일텐데 좋아 보였다.

생태탐방안내소(10:08)에서 출발해 큰용늪입구(12:35), 대암산입구(13:30), 대암산정상(14:10)을 거쳐 탐방안내소(15:55)에 도착하니 총 5시간 40분 정도 걸렸다. 총거리는 11.4㎞ 정도다. 탐방안내소 →(1.7㎞)→ 출렁다리 →(0.2㎞)→ 갈림길(큰용늪과 대암산) →2.6㎞→ 큰용늪 입구 →1.4㎞→ 대암산 입구 →1.5㎞→ 대암산 정상 →4.0㎞→ 탐방안내소다.

대암산 위치

 

■람사르 협약

람사르 협약의 정식명칭은 ‘물새 서식지로서 특히 국제적으로 중요한 습지에 관한 협약’이다. 1971년 2월 이란의 람사르에서 처음 체결되었다. 생태·사회·경제·문화적으로 커다란 가치를 지니고 있는 습지를 보전하고 현명한 이용을 유도함으로써 자연 생태계로서의 습지를 범국가적 차원에서 체계적으로 보전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는 환경 협약이다. 2018년 6월 현재 전 세계 170개국이 람사르협약에 가입하고 2,314개소가 습지로 등재되었다. 우리나라는 1997년 7월 101번째로 가입한 후 2020년 현재 대암산 용늪, 창녕 우포늪, 순천만 습지, 고창 운곡슾지 등 23개소가 람사르 습지로 등재되어 있다. 북한은 2개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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