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땅 구석구석

[제주 오름 가봐수까 ④] 거문오름은 제주 오름 중 유일하게 등재된 유네스코 세계자연유산… 주변 만장굴 등 6개 동굴은 거문오름과 한 몸

↑  거문오름 전경 (출처 제주관광정보센터)

 

☞ 내맘대로 평점(★ 5개 기준). 등산 요소 ★★★★(3개 코스 중 3시간 반 코스 경우), 관광 요소 ★★★★★

 

by 김지지

 

■거문오름

 

▲생성 과정

제주에는 거문오름이 3개다. 이중 일반에 널리 알려진 것은 조천읍 선흘리의 거문오름이다. 숲이 깊고 어두컴컴하다고 해서 거문오름이다. 많은 탐방객들이 이곳을 찾는데 이유는 제주 오름 중 유일하게 유네스코 지정 세계자연유산이기 때문이다.

생성 과정을 살펴보자. 8000년 전, 거문오름이 있는 땅에서 수 차례의 화산폭발이 일어났다. 그 결과 해발 465m의 거대 오름과 거대한 분화구가 생겨났다. 사실 몇 년 전까지 학계는 화산폭발이 일어난 시점을 10만~30만년 전으로 추정했으나 2016년 새로운 연대측정법으로 측정해보니 화산 분출 시기가 8000년 전인 것으로 밝혀졌다.

수 차례의 화산폭발은 오름과 분화구에서 끝나지 않고 거대한 용암의 흔적을 남겼다. 용암은 북동쪽 해안가로 흘러가 13㎞에 이르는 벵뒤굴·대림굴·만장굴·김녕굴·용천동굴·당처물동굴 등의 동굴을 만들었다. 이 일대가 2007년 7월 유네스코 세계자연유산으로 지정된 것이다. 정확히 말하면 한라산 기슭 해발 800m 이상의 천연보호구역과 성산일출봉 일대와 함께 세계자연유산으로 지정된 것이다.

거문오름 탐방 안내도

 

☞ 만장굴과 김녕굴 동영상 클릭

 

▲세계자연유산 등재

제주도 세계자연유산의 정확한 이름은 ‘제주 화산섬과 용암동굴’이다. ‘제주 화산섬’은 한라산 자락과 성산일출봉 일대를 가리키고, ‘용암동굴’은 거문오름과 용암동굴계를 말한다.

유네스코 지정 세계유산이 뭔지를 살펴보자. 유네스코는 1972년 ‘세계문화 및 자연유산보호협약’을 채택한 뒤 인류를 위해 보호해야 할 문화와 자연이 특별히 뛰어난 지역을 세계유산으로 등재했다. 세계유산은 문화유산, 자연유산, 복합유산으로 구분된다. 2019년 7월 기준 167개국 1,121건(문화유산 869점, 자연유산 213점, 복합유산 39점)이 세계유산으로 등재됐다. 세계유산을 많이 등재한 나라는 이탈리아·중국(53곳), 스페인(48곳), 독일(46곳), 프랑스(45곳) 순이다. 아시아에서는 인도(38곳), 이란(24곳), 일본(23곳) 순이고 한국과 북한은 각각 14곳과 2곳이다.

우리의 세계유산은 연대순으로 석굴암과 불국사(1995년), 해인사 장경판전(1995년), 종묘(1995년), 수원화성(1997년), 창덕궁(1997년), 고창·화순·강화 고인돌(2000년), 경주역사유적지구(2000년), 제주 화산섬과 용암 동굴(2007년), 조선왕릉(2009년), 하회마을과 양동마을(2010년), 남한산성(2014년), 백제역사유적지구(2015년), 산사, 한국의 산지승원(2018년), 한국의 서원(2019년)이다. 북한은 고구려 고분군(2004년)과 개성역사유적지구(2013년)다.

제주 세계자연유산 위치

 

▲거문오름에 오르다

거문오름과 용암동굴계 중 일반에 탐방이 허용된 곳은 거문오름과 만장굴 두 곳뿐이다. 그중 거문오름에 오르려면 인터넷으로 사전예약을 해야한다. 예약은 제주세계자연유산센터 홈페이지(wnhcenter.jeju.go.kr)에서 한다. 전화든 인터넷이든 예약은 탐방 희망 전 달 1일부터 선착순으로 이뤄지고, 당일 예약은 안된다. 탐방객들은 30분 단위로 팀이 짜여지면 이동하는데 해설사가 따라다닌다. 탐방할 때 물 외의 음식물은 가져갈 수 없다. 등산용 스틱은 물론 우산도 나무와 땅이 훼손될 수 있어 휴대할 수 없다.

거문오름의 해발고도는 456m, 비고(比高·오름 자체 높이)는 112m, 둘레는 4.5㎞다. 거문오름은 9개 봉이 분화구 한 가운데 봉긋하게 솟아있는 알오름을 에워싸고 있는 형국이다. 9개 봉은 제1룡(龍)~제9룡으로 구분되는데 저마다 고유의 명칭이 있다. 이를테면 백룡망해봉(2룡), 자룡고모봉(5룡), 회룡은산봉(9룡)이다.

들머리는 경사가 완만한 삼나무숲 오솔길이다. 뒤이어 240개 데크계단을 오르면 작은 초소 하나가 보이는데 초소를 기준으로 왼쪽 길이 입구, 오른쪽 길이 출구다. 그후 다소 가파른 숲길을 10분 정도 오르면 전망대에 이른다. 전망대에서는 움푹 파인 분화구가 한눈에 보이지만 여느 분화구와는 다른 모습이다. 분화구가 무성한 수목으로 덮여 있어 분화구라기 보다는 구릉지 숲으로 보인다. 분화구 주변의 봉들은 능선으로 이어져있다. 분화구는 지름이 1.1㎞로 한라산 백록담보다 규모가 크다. 다시 10여분 삼나무 숲을 지나면 최고봉(456m)인 제1룡이다. 그곳에서 멀리 내려다보면 거문오름이 북동쪽 산사면이 터진 말굽형 형태를 띠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용암동굴은 그 터진 곳과 해안가 사이에 자리 잡고 있다.

전망대에서 바라본 거문오름 전경 (출처 제주 세계자연유산)

 

정상에서 분화구 터진 곳으로 내려가니 억새 반짝이는 들판이다. 그곳에서 150m쯤 가로지르면 삼나무 숲길이 나타나는데 그곳으로 진입하면 분화구 안쪽의 우거진 숲속이다. 거문오름의 속살을 볼 수 있는 곳이다.

거문오름 탐방로는 크게 세 코스다. 1코스는 탐방안내소에서 출발해 정상을 지나 분화구 터진 곳까지 내려갔다가 왼쪽으로 돌아 원점회귀하는 코스(약 1.8㎞, 1시간)이고, 2코스는 분화구 안쪽 전체를 도는 분화구 코스(약 5.5㎞, 2시간 30분)다. 2코스의 분화구 숲속에는 용암협곡, 알오름전망대, 숯가마터, 화산탄, 수직동굴 등 다양하다. 본격적인 거문오름의 속살만을 보려면 2코스로 충분하다. 분화구 숲으로 들어가니 영화에 등장하는 원시림과 흡사하다. 하늘을 가릴 만큼 짙게 우거진 숲에는 온갖 종류의 나무들이 우거져 있다.

거문오름 탐방 코스 중 제3코스

 

1코스와 2코스는 해설사가 리드하며 설명한다. 나는 해설을 듣기보다는 대열 뒤에서 자연을 감상하며 따라갔다. 해설사를 쫓아가다보면 설명만 듣고 자연을 감상할 수 없기 때문이다. 물론 각각의 장단점이 있다. 설명을 들으면 얻어듣는 지식은 많으나 자연을 감상하는 시간이 부족하고 반대로 자연을 감상하면 설명을 듣지 못한다. 이런 경우에 대비해 미리 공부하고 가면 일석이조 효과가 있다.

3코스는 2코스를 모두 둘러본 뒤 능선으로 올라가 정상(제1봉)을 제외한 나머지 8개봉 능선을 도는 순환 코스다. 거리는 약 10㎞이고, 시간은 3시간 30분 걸린다.

 

▲곶자왈

거문오름의 숲속은 곶자왈이다. 곶자왈은 숲을 뜻하는 제주어 ‘곶’과 자갈이나 바위를 뜻하는 제주어 ‘자왈’이 합쳐진 말이다. 화산 폭발 후 생긴 용암 지대 위에 오랜 세월 흙이 쌓이고 그 흙에 독특하고 다양한 풀과 나무가 뿌리를 내려 숲을 이루고 있는 것이다. 다만 바닥의 흙이 얇으니 나무도 풀도 뿌리를 깊이 내리지 못한다. 그래서 곶자왈의 나무 대부분이 뿌리를 드러내놓고 살며 엉클어진 머리카락처럼 뒤섞여 있다. 나무들은 각자 형편에 따라 옆 나무에 기대기도 하고 제 능력에 따라 옆 나무를 받치기도 하면서 살아간다.

곶자왈이 모두 개방되는 것은 아니다. 평소에는 개방하지 않다가 1년 중 국제트레킹대회가 열리는 7월 하순에만 개방하는 ‘용암길’이라는 이름의 비밀의 숲도 있다. 코스 길이는 약 6㎞ 정도이고 약 3시간이 소요된다. 용암길은 거문오름에서 용암이 흘러간 길이라고 해서 붙여졌다. 곶자왈 특유의 원시림을 고스란히 보존하고 있다.

거문오름 용암길 (출처 한국관광공사)

 

곶자왈은 거문오름이 아닌 다른 곳에도 있다. 동부에는 조천, 함덕, 선흘에 있고 서부에는 한경, 안덕, 애월 등에 있다. 노꼬메오름 분화구의 애월곶자왈과 안덕면 병악의 화순곶자왈도 나름 알려진 곳이지만 가장 대표적인 오름은 거문오름에서 출발해 북오름을 지나 선흘1리까지 이어진 선흘곶자왈이다.

선흘곶자왈은 용암이 굳은 자리에 열대북방한계식물과 한 대남방한계식물이 공존하여 자라고 있어 제주에서만 볼 수 있는 세계적인 생태계의 보고다. 이곳에서 유명한 게 동백동산이다. 동백동산은 완만한 용암대지에 발달한 독특한 숲을 말하는데, 지표면이 돌투성이라 오래전부터 경작을 하지 못해 자연적인 상태로 남아있다. 이곳에 형성된 습지는 하천이나 호소 유역에 형성된 습지와 달리 곶자왈 지역에 형성된 내륙습지다. 동백동산 습지는 2011년 람사르 협약(습지와 습지의 자원을 보전하기 위한 국제 환경 협약)에 따른 습지로 지정되었다.

선흘곶자왈의 동백동산 습지

 

▲분화구 숲속 탐방 (2코스)

2코스는 분화구 안쪽 전체를 돌고 나오는 원점회귀 코스다. 거리는 약 5.5㎞이고 2시간 30분 정도 소요된다. 분화구 숲속에는 원시림의 비경이 펼쳐지고 풍혈, 용암협곡, 용암함몰구, 화산탄, 수직동굴, 풍혈 등 다양하게 발달한 화산 지형들도 관찰할 수 있다. 갱도진지, 병참도로 등 일본군의 태평양전쟁 때의 군사시설도 있어 역사탐방지로도 활용되고 있다.

풍혈(風穴)은 낙반이나 암석들이 성글게 쌓여 있는 틈 사이에서 바람이 나오는 것을 말한다. 봄에는 김이 모락모락 피어나고 여름철에는 시원한 바람이 겨울에는 따뜻한 바람이 나오는 ‘땅의 숨골’이다. 탐방로를 따라 걷다보면 아래로 깊게 패인 계곡을 여러 곳에서 볼 수 있는데 용암협곡 또는 용암붕괴도랑이다. 물이 흐르면서 암석을 깎아 만든 것이 아니라 불안정한 용암동굴의 천장이 무너져 생긴 계곡이다.

분화구 안은 천연림이 우거져 주민들이 숯을 굽고 화전을 일구며 살던 평화스런 곳이기도 했지만 태평양전쟁 때는 패색이 짙어진 일본군이 주둔했던 곳이기도 하다. 태평양전쟁 당시 일본군은 거문오름 뿐만 아니라 제주도 전역에 많은 군사시설을 만들었다. 제주도 내 360여개 오름 가운데 일본군 갱도진지 등 군사시설이 구축된 곳은 약 120개나 된다. 거문오름에서 확인된 갱도는 모두 10여 곳이다.

숲길을 걷다보면 쇠파이프를 격자로 엮어 입구를 막아 놓은, 35m 깊이의 수직굴이 보인다. 제주에서 가장 깊은 이 수직굴은 일반적인 용암동굴이 수평으로 발달한 것과 대조적으로 중단부를 지나면서 항아리 형태로 넓어져 한번 들어가면 빠져나올 수 없다. 화산탄은 용암 분출 때 날아오른 뒤 떨어진 것이다.

또 하나 인상적인 것은 탐방 초입부터 무성하게 자라 있는 온갖 종류의 양치식물이다. 고사리와 석송으로 대표되는 양치식물은 태고의 모습을 계속 간직하고 사는 식물이다. 고생대 페름기에 출현해 공룡과 같은 시대를 보냈다.

 

▲9룡 능선길 탐방 (3코스)

탐방객 대부분은 2코스까지 돌고 나가지만 우리는 분화구를 에워싸고 있는 9룡 능선길의 3코스도 선택했다. 앞에서도 설명했지만 3코스는 2코스를 모두 둘러본 뒤 나머지 8개봉 능선을 도는 순환 코스로 거리는 약 10㎞이고 3시간 30분 정도 걸린다. 기왕에 왔으면 3코스까지 돌아볼 것을 권한다.

3코스 능선길은 완만한 경사여서 크게 힘들지 않고 호젓하다. 겨울의 3코스는 무성한 나무에 가려 능선에서는 잘 보이지 않던 분화구 숲을 볼 수 있다는 게 장점이다. 물론 다른 계절은 그 나름대로 좋은 점이 많을 것이다. 3코스를 걷고 있는데 동행자가 다소 힘들다고 한다. 결국 3코스를 걸으려면 적당한 산행 경험이 필요하다는 의미다.

능선 끝자락에 있는 조릿대 군락은 장관이다. 겨울이라 생긴 잎 주변의 옅은 갈색과 잎 가운데 초록의 배합이 눈길을 끈다. 울릉도 성인봉의 고비나물 군락지를 연상케 한다. 하산 후 몸에 좋다며 조릿대음료를 팔기에 마셨는데 밍밍할 뿐 영 맛이 없다. 권하고 싶지 않다.

거문오름 조릿대 군락

 

■용암동굴계

 

▲6개 동굴

앞서 설명했지만 제주도 세계자연유산의 정확한 이름은 ‘제주 화산섬과 용암동굴’이고 용암동굴은 ‘거문오름과 용암동굴계’를 말한다. 사실 거문오름이 세계자연유산으로 등재된 것은 용암동굴계 덕분이다. 세계자연보전연맹은 심사 보고서에서 제주 용암동굴의 가치를 이렇게 평가했다. ‘거문오름 용암동굴계는 세계자연유산으로 등재된 전 세계 용암동굴 중에서도 가장 인상적이며 중요도가 높다… 다양성과 풍부함에서도 세계의 유사 용암동굴을 단연 압도한다.’

거문오름까지 다녀 왔으니 나머지 반쪽 용암동굴계도 둘러보자. 용암동굴계는 거문오름에서 수차례에 걸쳐 분출된 용암이 지표를 따라 약 13㎞ 떨어진 월정리 해안까지 흘러가는 동안 형성된 20여개의 용암동굴 무리를 말한다. 이중 2020년 현재 세계자연유산으로 가치를 인정받은 동굴은 벵뒤굴·대림굴·만장굴·김녕사굴·용천동굴·당처물동굴 6곳이다. 6개 동굴 중에서 일반에 개방된 동굴은 만장굴뿐이다. 거문오름에서 해안가까지 이어지는 동굴 이름은 벵뒤굴, 대림굴, 만장굴, 김녕굴, 용천동굴, 당처물동굴 순이다.

 

▲만장굴

만장굴은 구좌읍 김녕리에 자리잡고 있다. 전체길이는 약 7.4㎞, 최대 높이는 약 25m, 최대 폭은 약 18m다. 전 세계에는 많은 용암동굴이 분포하지만 만장굴처럼 내부 형태와 지형을 잘 보존되어 있는 용암동굴은 드물다. 규모 역시 단연 세계 최대다.

만장굴에는 동굴의 천장이 무너져 내려 푸른 하늘을 볼 수 있는 입구 형태의 천장창(天障窓)이 3개다. 이중 관람객에게 개방한 곳은 제2구간이다. 입구에서 상류 쪽으로 약 1㎞까지이고 나머지 구간은 동굴생태 보호구역으로 출입을 제한하고 있다. 제1구간은 상층굴과 하층굴로 구분되는데 상층굴은 길이가 900m, 하층굴은 1.5㎞다.

만장굴 내부

 

대부분의 용암동굴은 화산 분출 후 점성이 낮은 현무암질 용암이 흘러가면서 만들어진다. 공기와 맞닿은 표면이 먼저 굳은 후 내부를 따라 흐르던 용암의 공급이 중단되면 빈 통로가 생기면서 동굴 형태가 만들어진다. 동굴 벽 양쪽을 보면 동굴 속을 흐르는 용암의 양이 줄어들면서 용암의 높이가 벽면에 자국으로 남아 선으로 그려진 용암유선(熔岩流線)이 여러 층으로 선명하다. 자세히 보면 용암이 흘러간 방향과 높이를 알 수 있다.

만장굴의 용암유선 (출처 제주 세계자연유산센터)

 

만장굴은 단단한 현무암으로 굳어져 있어 석회암 동굴에 오랜 시간 지하수가 떨어지면서 자라는 종유석은 없어야 한다. 그러나 이곳에도 있다. 손전등으로 천장이 낮은 곳을 비춰보면 고드름 모양의 용암종유석이 보인다. 천장에 붙어 있던 용암이 떨어져 내리면서 굳어져 검은색 종유석을 만든 것이다. 높이가 7.6m나 되는, 제2구간 끝에 우뚝히 서있는 용암석주(熔岩石柱)는 세계적인 규모로 알려지고 있다.

만장굴은 어떻게 발견한 것일까. 1946년 당시 구좌읍의 김녕초등학교에는 해방후 막 부임한 부종휴 선생이 있었는데 그는 진주사범을 갓 졸업한 혈기왕성한 19세의 청년이었다. 그는 학교에서 과학반, 음악반, 탐험반을 편성했는데 탐험반에는 학교 주변의 용암동굴 탐사 과제를 주었다.

선생과 학생들이 당시에는 이름도 없는 만장굴 탐험을 처음 시작한 곳은 지금의 제1입구(김녕미로공원 주차장 뒤편)였다. 그들은 조명기구와 탐사장비는커녕 짚신을 신고 횃불을 들고 첫 탐험을 끝냈다. 그리고 1947년에도 수차례에 걸친 탐험 끝에 지금의 제3입구를 발견했다. 카메라가 드물던 시절이어서 기념사진 한 장 남기지 못했다. 만장굴이라는 이름은 제3입구의 옛 제주어 이름인 ‘만쟁이거멀’의 ‘만쟁’에서 땄다. 이후 만장굴은 1968년 문화재로 지정된 뒤로 제주도 내 최고의 관광지가 됐다.

만장굴 제3구간 입구 (출처 제주 세계자연유산센터)

 

▲용천동굴

용천동굴은 어느 날 불쑥 세상 밖으로 나왔다. 2005년 5월 11일 해안에서 불과 3㎞밖에 안 떨어진 구좌읍 월정리에서 전신주 교체 작업 중에 땅이 꺼지는 사고가 발생했다. 뚫린 구멍 속으로 들어가보니 암흑의 동굴이었다. 정밀 조사 결과 전체 길이 3.4㎞, 최대 폭 14m, 최대 높이 20m의 거대한 동굴이었다. 제주도에 100개가 넘는 용암동굴이 있긴 하나 이렇게 놀라운 비경을 품고 있는 곳은 용천동굴 뿐이었다.

용천동굴 종유석 (출처 제주 세계자연유산센터)

 

용암동굴인데도 석회암 동굴의 특성까지 띠고 있어 전 세계 동굴학자들의 주목을 받았다. 이곳에서 석회암 동굴에나 있는 생성물이 발견된 것은 독특한 퇴적과정을 거쳤기 때문이다. 월정리 방향에서 날아온 조개껍데기 같은 패류로 만들어진 모래가 쌓여 동굴 지대 위에 퇴적층을 만들었다. 빗물에 녹은 탄산염 성분이 동굴 틈으로 뻗은 나무뿌리를 타고 스며들어 석회암 동굴에서나 볼 수 있는 종유석을 만든 것이다. 그래서 동굴 안에는 국수처럼 길고 가는 종유석이 매달려 있다. 800m 길이에 7~15m 깊이의 염수호도 있다. 용천동굴이라는 이름은 이 호수에서 비롯되었다. 호수에는 5㎝ 크기의 눈이 먼 작은 물고기도 살고 있다. 동굴 내에는 여러 종류의 토기를 비롯 나무, 전복껍질, 동물뼈, 돌탑 등의 유물도 분포하고 있다.

용천동굴 (출처 제주 세계자연유산센터)

 

용천동굴이 발견된 시점은 세계자연유산 등재 작업이 한창 진행 중일 때였다. 그 덕에 용천동굴의 발견은 거문오름과 용암동굴계가 세계자연유산으로 등재되는데 기폭제 역할을 했다. 당시 심사위원들은 새로 발견된 용천동굴을 살펴보고 나서는 ‘용천동굴은 뛰어난 시각적 충격을 주는,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동굴’이라고 극찬을 아끼지 않았다.

나도 궁금해서 찾아가보니 밭에 늘어선 전신주들 사이에 하수구 맨홀처럼 생긴 시멘트 구조물이 덩그러니 놓여 있었다. 그 입구 아래에 세계적인 용천동굴이 지나고 있었다.

 

▲벵뒤굴, 당처물동굴, 김녕굴, 대림굴

벵뒤굴의 길이는 4,481m이고 세계적으로 희귀한 복잡한 미로형 동굴이다. 동굴 천장과 지표 사이 용암의 뚜께가 매우 얇기 때문에 함몰된 입구가 여러 개 있고 동굴 내부에는 용암석주, 용암교 등의 동굴지형이 잘 발달되어 있다. 총 37종의 동굴생물이 서식하는 것으로 보고되고 있다. 그 중에서도 제주동굴거미 등 3종은 제주도에만 서식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는 고유종이다. 당처물동굴은 1994년 주민이 밭농사를 위해 터고르기를 하던 중 발견했다. 길이는 360m, 폭은 5~15m, 높이는 0.2~2.5m이고 동굴 내부 경관이 뛰어나다.

벵뒤굴 (출처 제주 세계자연유산센터)

 

김녕굴은 당초 만장굴의 하나로 이어진 굴이었으나 이후 동굴 내부로 용암이 유입되면서 2개의 동굴로 나뉘어졌다. 길이는 700m로 곳에 따라 2층 구조다. 모양이 마치 뱀이 기어가는 것과 흡사하다고 하여 ‘사굴(蛇窟)’로 불린다. 거문오름과 용암동굴계가 세계자연유산에 등재될 때 대림굴은 포함되지 않았다. 그러다가 2018년 7월 세계유산위원회가 거문오름의 상류동굴군을 거문오름 용암동굴계에 포함하기로 결정하면서 세계자연유산으로 편입되었다. 상류동굴군은 대림굴, 웃산전굴, 북오름굴이다. 벵뒤굴, 당처물동굴, 김녕굴, 대림굴 모두 일반에 공개하지는 않고 있다.

김녕굴 (출처 제주 세계자연유산센터)

 

당처물동굴 (출처 제주세계자연유산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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