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9년 6월 24일 새벽, ‘가요계의 여왕’ 미소라 히바리(美空雲雀·52)가 간암으로 눈을 감으면서 일본 열도가 슬픔에 잠겼다. 애도 행렬은 줄을 이었고 매스컴은 연일 특집을 쏟아내며 그의 육성과 어록을 전했다. 팬들은 히로히토 천황이 죽고 5개월 만에 있은 그의 죽음에 “정말 히로히토(昭和) 시대는 끝났다”며 울먹였다. 한 평론가는 “미소라는 전후(戰後)를 상징하는 대명사였다”며 심경을 토로했다. 살아생전 미소라는 ‘100년에 한 번 나올까 말까한 천재가수’였고 ‘일본주식회사의 사가(社歌)를 불러온 특별한 여인’으로 추앙받았다.
죽기 몇 년 전에서야 한국계였음을 밝힌 미소라는 ‘아름다운 하늘(美空)의 종달새(雲雀)’라는 예명으로, 1945년 12월 여덟 살 어린 나이로 데뷔했다. 어려서부터 노래에 남다른 소질을 보인 미소라는 뛰어난 외모와 놀라운 가창력으로 엔카는 물론 재즈, 맘보 등 다양한 장르를 넘나들며 일본인으로부터 아낌없는 사랑을 받았다. 한번 듣기만 하면 모든 노래를 따라 부를 수 있었던 미소라라고 해서 슬럼프가 없지는 않았다. 1970년대 들어 인기가 떨어지고 말년에는 만성간염까지 걸려 사실상 가수로서의 수명이 다하는 듯했다. 그러나1988년 5만 명이 운집한 도쿄돔에서 눈물의 부활 콘서트를 가져 재기에 성공했고 그것이 가수로서의 마지막 대형무대였다.
그가 남긴 노래만도 1500여 곡을 헤아렸고 음반 판매량도 4000만 장이나 됐다. 그의 노래가 일본인의 가슴을 파고들었던 것은 패전 후 황폐해진 국토와 그 잿더미 속에서 고달픈 생을 살아야 했던 일본인의 아픔을 어루만져 주었기 때문이다. 전후의 일본인들은 늘 라디오와 영화에 넘쳐나는 그의 노래를 들으며 고통의 터널을 지날 수 있었다. 그는 만인의 연인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