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속 오늘

아돌프 히틀러 독일 총리에 취임… 인류에게 닥쳐올 대재앙의 서곡

1차대전의 패배와 경제난, 그리고 승전국의 무리한 요구로 독일 국민들이 절망과 굴욕감에 몸부림치고 있을 때 이를 이용해 아돌프 히틀러가 총리에 오른 것은 곧 인류에게 닥쳐올 대재앙의 서곡이었다. 86세의 힌덴부르크가 대통령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지만 권력은 이미 히틀러 손에 쥐어져 있었다. 1921년 군소 정당에 불과한 나치당(국가사회주의 독일노동자당) 당수에 선출된 히틀러는 무력감에 빠져있는 국민들의 마음을 교묘히 파고들었다. 1924년 총선에서 6.5%의 득표율에 불과했던 지지율은 1929년 대공황 후 치러진 총선에서 18.3%로 수직상승하며 나치당을 사회민주당에 이어 2위로 끌어올렸다.

히틀러는 여세를 몰아 1932년의 대통령선거에 나섰다. 결선투표에까지 올라 36.8%의 득표율로 아쉽게 주저앉긴 했으나 몇 개월 후 치러진 총선은 나치당에게 제1당이라는 승리를 안겨주었다. 히틀러는 이를 발판으로 1933년 1월 30일 총리로 취임할 수 있었다. 제1당 당수에게 주어진 총리 자리는 분명 힘의 자리였고 꿈을 실현시킬 수 있는 기회의 자리였다. 국회의사당 방화사건을 조작해 공산당과 사민당을 불법화시키고 국민의 기본권을 제한하며 1당 독재체제를 구축해가는 히틀러의 진짜 모습을 국민들은 아는지 모르는지 90%의 지지로 그에게 총통직까지 선물했다. 히틀러를 지나치게 믿은 것이다. 경제도 호전되고 있었다. 600만 명이던 실업자가 수만 명으로 줄어들었고, 생산도 2배로 늘어났다. 아우토반(고속도로)이 건설됐고 그 도로 위를 달릴 국민차 ‘비틀’도 보급됐다.

환호와 열광으로 지내던 어느날 국민들은 불현듯 이게 아닌데 싶었지만 이미 화살은 시위를 떠나 있었다. 히틀러를 영웅시 할수록 독일인의 ‘꿈’을 담보로 한 히틀러의 야욕도 속도를 더했다. 징병제가 실시(1935년)됐고 라인란트 비무장지대(1936년)가 짓밟혔으며, 오스트리아가 합병(1939년)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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