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속 오늘

‘첩보계의 전설’ 킴 필비, 소련으로 탈출

해럴드 킴 필비는 20세기 첩보계의 전설이다. 30년 동안 조국을 배신하고 적국을 위해 암약했던, 그래서 한때는 007로 유명한 영국 해외정보국(MI6)의 국장 자리까지 넘보았던 그의 완벽한 변신으로 영국 첩보계는 철저히 농락당하는 수모를 겪어야 했다. 필비는 1929년 영국의 케임브리지대에 입학, 대학에서 가이 버지스, 도널드 매클린 등과 어울리며 이른바 ‘5인의 고리(Rings of Five)’의 한 사람이 되어 서서히 공산주의자로 빠져들었다.

‘붉은 10년’으로 불리던 1930년대는 지식인 사이에 좌파가 횡행하던 때였다. 대공황으로 세계가 몸살을 앓고 이로 인해 계층간 불평등이 심화하여 자본주의의 모순이 맨살을 드러내고 있었다. 그들에게 불평등은 마땅히 타파되어야 자본주의의 산물이었다. 공산주의에 대한 열렬한 믿음, 자본주의를 파괴해 세상을 구원하겠다는 굳은 결의는 소련을 유일한 대안으로 떠올렸다. 1934년 오스트리아 빈에 파견돼 서슬 퍼런 나치의 폭거를 목도하면서 필비는 열렬한 공산주의자가 되겠다는 결심을 굳히게 된다. 그곳에서 소련 첩보원이 되었고 귀국 후에는 영국 정보부에 침투하기 위해 자신의 공산주의 이력을 지워나갔다. 우익으로 가장하고 1937년 런던타임스 특파원으로 스페인 내란을 취재할 때는 프랑코 지지 기사를 써 우익의 신임을 얻었다.

1939년 필비는 마침내 허점투성이의 전력 조사를 거쳐 MI6에 잠입했다. 첩보원으로는 결격 사유였던 선천적인 말더듬이였으나 그 덕에 내근 요원으로 발령받아 다양한 정보를 접할 수 있었다. 1949년 MI6의 워싱턴지국으로 전출되면서 활동영역이 미 CIA 기밀까지 염탐하는 데까지 넓어졌으나 한편으로는 위험에 노출될 가능성도 그만큼 높아졌다. 소련 정보기관의 통신을 해독하는 CIA의 극비작전을 전해 듣던 중 미국에서 활동하는 소련 첩보원 ‘호머’(대학친구 도널드 매클린의 코드명)가 노출됐음을 알게 됐고 이 사실을 전해들은 맥클린은 1951년 5월 역시 미국에서 활동하고 있던 가이 버지스와 함께 소련으로 탈출했다. 이 때문에 필비는 둘을 빼돌린 배후인물로 의혹을 받았다.

무혐의 처리되어 체포되진 않았지만 CIA가 의혹의 눈길을 거두지 않자 MI6 베이루트 지국으로 활동 장소를 옮겼다. 그러나 그곳에서도 위기가 감지되면서 결단이 필요했다. 1963년 1월 23일 필비는 슬그머니 베이루트를 빠져나갔고, 6주일 후 모스크바로부터 “필비의 정치적 망명을 허락한다”는 발표가 흘러나왔다. 필비는 소련에서 큰 아파트와 풍족한 돈으로 그런대로 윤택하게 살았으나 소련 정부는 그가 언제 소련을 배신할지 모른다며 신뢰하지 않았다. 그 역시 갑갑증을 견디지 못하고 말년에는 술에 빠져 1988년 5월, 76세로 소련 땅에 묻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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