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속 오늘

히틀러, 아우토반 건설을 담당할 회사 설립

히틀러는 정권을 장악하는 즉시 아우토반 건설에 박차를 가했다. 명칭은 ‘라이히스 아우토반(독일제국 자동차도로)’. 베를린을 핵으로 국경까지 퍼진 방사선과 그것들을 다시 환상선으로 연결하는 야심찬 계획이었다. 1933년 6월 24일, 아우토반 건설을 담당할 공사(公社)를 설립하고 3개월 뒤에는 프랑크푸르트~다름슈타트 간의 제1기 공사를 시작했다. 17년 동안 1만7000㎞의 도로를 까는 것이 목표였지만 2차대전 발발로 히틀러는 생전에 4000㎞의 아우토반 만 볼 수 있었다.

이토록 짧은 시간에 공사가 진행될 수 있었던 것은 이미 1926년부터 ‘하프라바(HAFRABA)’라는 민간단체가 아우토반 건설을 추진해왔기 때문이다. 하프라바는 고속도로 연결 예정지 함부르크, 프랑크푸르트, 바젤(스위스)의 머리글자에서 딴 명칭이다.

히틀러가 아우토반에 매달린 이유는 1차대전 때 마른전투의 패인이 수송력 부족에 있었다고 판단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650만 명의 실업자를 구제하는 것도 그에 못지않게 중요했다. 이를테면 공황타개를 위한 ‘독일판 뉴딜정책’이었던 셈이다. 1935녀 5월에 프랑크푸르트와 다름슈타트 아우토반이 완성되어 첫 결실을 보았다. 아우토반은 우리나라 경부고속도로와도 인연이 깊다. 1964년 12월 박정희 대통령이 서독 방문길에 올라 본~쾰른 간 20㎞ 구간을 160㎞ 속도로 달려본 뒤 경부고속도로의 모델로 삼았기 때문이다. 이때 박 대통령은 두 번이나 차에서 내려 아우토반을 유심히 살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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