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속 오늘

종군 사진기자 로버트 카파 지뢰 밟고 사망

1954년 5월 24일, 전설적인 종군 사진기자 로버트 카파가 베트남전을 취재하던 중 지뢰를 밟고 폭사(爆死)했다. 1913년 헝가리에서 태어나 18살 때 유대인 추방 정책에 따라 독일의 베를린으로 거주지를 옮긴 카파는 그곳에서 저널리즘을 공부한 뒤 한 통신사에서 암실 보조로 일하며 ‘포토 저널리즘’을 익혔다. 히틀러의 유대인 박해를 피해 다시 파리로 옮겼다가 스페인 내전이 발발하자 인민전선에 가담, 종군기자로서의 삶을 시작했다.

카파의 이름이 세상에 널리 알려지게 된 것은 1938년 스페인 내전 때 한 병사가 총탄에 맞고 쓰러지는 순간을 촬영한 ‘병사의 죽음’이 미국 ‘라이프’지 표지에 실리면서였다. 전쟁의 결정적인 순간을 드라마틱하게 촬영한 이 사진으로 포토 저널리즘의 새 지평을 열었다는 찬사가 쏟아졌지만 한편에서는 사진이 지나치게 리얼하고 강렬한 탓에 연출 사진이 아니냐는 논란까지 일었다.

전쟁이 있는 곳에는 카파가 있었다. 중일전쟁, 공습하의 런던, 북아프리카 전선, 시칠리아 공략, 노르망디 상륙작전, 2차대전 때의 파리해방 등이 주무대였다. 특히 노르망디 상륙작전 사진은 종군기자 카파의 존재를 다시한번 확인시켜주었다. 카파는 이때 108장의 역사적인 사진을 촬영했으나 흥분한 암실 조수가 현상된 필름을 말리다 과열로 망쳐버리는 바람에 8장 만 겨우 건졌다. 더구나 피사체까지 흔들려 정상적인 경우라면 폐기됐어야 할 그 사진을 라이프지는 상륙작전의 긴박감이 잘 드러난다며 게재를 결정했다. ‘그때 카파의 손은 떨리고 있었다’는 게 라이프지가 붙인 사진설명이었다. 이후 이 사진은 노르망디 상륙작전의 대명사가 됐다. “만약 당신의 사진이 만족스럽게 느껴지지 않는다면 그것은 너무 멀리서 찍었기 때문”이라는 게 종군기자로서의 그의 자세였다.

error: Content is protected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