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속 오늘

모스부호 첫 전신(電信) 송신

19세기가 막 시작될 무렵, 사람들의 가장 큰 관심거리는 전기였다. 새뮤얼 모스 역시 예일대에서 공부하며 전기에 관심을 가졌으나 그는 전기보다 그림그리는 것을 더 좋아했다. 모스는 4년간 영국 왕립미술학교에서 그림을 공부하고 돌아와 미국에서 화가로서의 명성을 쌓아갔다. 1819년에는 제임스 먼로 대통령의 공식 초상화를 그리는 화가로 고용됐고 1825년에는 미국 혁명의 영웅인 프랑스 장군 라파예트 후작의 초상화를 그렸다. 1826년에는 몇몇의 동업자와 함께 뉴욕에 미술 동아리를 결성, 이 모임이 훗날 국립미술아카데미가 됐을 때 초대 원장을 맡을 만큼 화가로서의 입지도 확실했다.

그러나 1832년 유럽을 기행하고 돌아오는 뉴욕행 슈리호에서 우연히 찰스 잭슨 박사를 만나면서 인생 행로에 변화가 찾아왔다. 그로부터 전자기에 대한 설명을 듣는 순간 모스의 머릿속에는 전기가 흐르면서 신호를 보낼 수 있는 전신기가 떠올랐다. 모스는 배에서 이 장치에 관한 아이디어와 도표를 그리는데 시간을 쏟아부은 뒤 집에 돌아와 전신기를 설계했다. 그 결과 단점(dot)과 장점(dash)으로 알파벳 철자를 표기할 수 있는 이른바 ‘모스부호’를 만들었다.

미 의회의 재정지원법 제정 덕에 3만 달러를 손에 쥐게 된 모스는 워싱턴 국회의사당~볼티모어간 65㎞에 전선을 설치해 1844년 5월 24일 첫 시연회를 가졌다. “하나님이 행하신 일이 어찌 이리 크뇨”(구약 민수기 23장 23절). 워싱턴의 모스가 볼티모어에 이 메시지를 보내자 볼티모어 쪽에서 같은 내용의 메시지를 보내왔다. 성공이었다. 1876년 전화가 발명될 때까지 30여 년간 최고속 통신수단이라는 독점적인 지위를 확보하는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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