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속 오늘

프랑스 대문호 빅토르 위고 사망

“당연히 위고지!” 영국에 셰익스피어, 독일에 괴테, 러시아에 톨스토이가 있다면 프랑스의 문호는 누구냐는 질문에 앙드레 지드가 가리킨 그 빅토르 위고가 1885년 5월 22일 세상을 떠났다. “나는 가난한 사람들의 영구차에 실려 무덤으로 가기를 원한다”는 그의 유언에 따라 볼품없는 수레에 실려 영웅들이 묻힌다는 팡테옹에 묻혔다. 그의 마지막 길을 보기위해 200만 명이 운집했다.

위고는 위대한 작가이면서 열렬한 공화파 정치가였고 사형 폐지를 주장한 인도주의자였다. 프랑스인들에게 위고는 수사가 필요없는 ‘영웅’이었다. 당초 왕당파·낭만주의였던 위고의 정치·문학적 경향이 공화파와 자유주의적·인도주의적으로 변신한 것은 1830년의 7월혁명과 1848년의 2월혁명을 경험하면서였다.

1851년 제정(帝政)으로 복귀하려는 나폴레옹 3세의 쿠데타에 항거, 망명길로 들어선 것은 위고의 문학적 성취를 위해서는 오히려 다행이었다. 망명기간 중 ‘레 미제라블’ 등 숱한 작품이 발표돼 작가로서의 입지를 굳혔기 때문이다. 나폴레옹 3세가 퇴위한 1870년, 19년 간의 망명 생활을 청산하고 파리에 돌아와서는 정치인으로 빈민구제, 언론자유보장, 초등학교 의무교육 등을 위해 헌신했다. 특히 그 당시에 이미 유럽통합을 주창하고 유로화의 출현을 예고한 그의 통찰력과 혜안은 또 다른 의미에서 “당연히 위고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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