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속 오늘

청국-미국, 조선 빠진 채 ‘조미수호통상조약’ 체결

‘조미(朝美)수호통상조약’은 19세기 말 숨가쁘게 전개되던 동아시아 국제 외교의 산물이었다. 미국에 조선의 개항은 대(對) 아시아 무역팽창정책을 펼치고 러시아의 남진을 저지할 수 있다는 점에서 매력적이었다. 강제개항을 시도했지만 실효를 거두지 못하자 포함외교(砲艦外交)를 포기하고 청의 중재를 통한 개항으로 방향을 선회했다. 청의 이홍장 역시 러시아의 남침과 일본의 대한침략을 저지하기 위해 조선에 미국 세력을 끌어들일 필요가 있었다. 대한(對韓) 종주권 유지를 위해서였다.

이홍장은 조선에 밀서를 보내 조약의 긴요성을 역설했다. ‘조선책략’이 소개돼 쇄국정책에 대한 인식 전환이 조선에 막 싹틀 때였다. ‘조선책략’은 아라사(러시아)의 남진을 막기위해(防俄) 조선은 중국과 친하고(親中) 일본과 결탁하고(結日) 미국과 연대(聯美)해야 한다는 내용을 담은 책이다. 고종은 척사파의 반대를 피해 대청(對淸)교섭을 비밀리에 추진, 전권을 청에 위임했다.

이에 따라 미국과 청이 조선을 사이에 두고 테이블에 마주앉았다. “조선은 청의 속국”이라는 속방(屬邦) 조항을 조약에 명문화할 것을 고집한 청과 이를 반대하는 미국이 대립했지만 결국 별도 조회문에서 속방론을 밝히기로 하고 외교전을 마감했다. 이에따라 1882년 5월 22일, 조미수호통상조약이 강화도에서 체결됐다. 불평등이 배제된 주권 독립국가간의 최초의 쌍무적 협약이었다. 이로써 조선은 조중(朝中)간의 종속관계를 청산하고 자주 독립국가의 일원으로 국제사회에 그 모습을 드러내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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