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속 오늘

미국, 오키나와를 27년 만에 일본에 반환

1972년 5월 15일 0시, 사이렌과 기적소리가 일본 오키나와 전역에 울려퍼졌다. 27년간의 미국 통치에서 벗어나 ‘오키나와현(縣)’이라는 새로운 출발을 자축하기 위해서였다. 오키나와현 지사가 “오키나와라는 영원한 새 생명의 탄생”이라며 감격해했지만 진보 진영은 핵과 미군기지 없는 전면반환을 요구하며 강하게 반발했다. 그럼에도 반환은 예정대로 진행돼 일본 각지와 오키나와를 오가는 국제선은 국내선이 됐고, 미국식으로 우측에서 달리던 차량은 일본식의 좌측으로 달렸다.

‘류큐(琉球) 왕국’이라는 독립국가로 한국·중국·일본·동남아를 연결해 온 해상무역 중심지 오키나와가 일본령이 된 것은 1609년 가고시마 영주가 이곳을 복속한 뒤부터였다. 1879년에는 오키나와현으로 정식 편입됐지만 일본 본토로부터는 언제나 버려진 섬이었다. 종전을 앞둔 1945년 4월부터 석달간 미군·일본군 간에 벌어진 ‘오키나와 전투’가 무시당하는 섬의 위상을 일깨워준 가장 대표적인 사례였다. 이 전투로 미군 1만 5000명과 일본군 6만 5000명이 목숨을 잃었지만 주민들도 12만 명이나 희생됐다. 이처럼 많은 주민들이 희생된 것은 본토 방어를 위해 시간을 벌기위한 ‘옥쇄작전’ 때문이었다. 즉 오키나와 주민들을 일본의 총알받이로 내세운 것이다.

패전 후에도 오키나와는 미국과 일본의 흥정대상이었다. 군사요충지로 오키나와를 필요로 했던 미국에게 일본은 오키나와를 바치고 그 대가로 미일강화조약을 체결했다. 그리고 27년의 세월이 흐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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