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속 오늘

영화계 거장 알프레드 히치콕 사망

1980년 4월 29일, 독창적인 영상기법으로 현대인들의 불안·공포 심리를 세련되게 다뤄온 영상의 마술사 알프레드 히치콕 감독이 81세로 미국에서 타계했다. 그는 오락성과 예술성을 접목시킨 영화감독이었고 관객과 비평가 모두에게 사랑받았던 거장이었으며 대중의 심리를 꿰뚫고 그것을 이용하면서 대중에게 영합하지 않는 대가(大家)였다. 무성에서 유성영화로, 흑백에서 컬러영화로 20세기 영화계를 풍미한 당대 최고의 영화감독이었다.

1899년 영국에서 태어나 1925년 ‘기쁨의 정원’으로 데뷔하고 1976년 마지막 영화 ‘가족의 음모’를 찍을 때까지 52년 동안 53편의 장편 극영화를 남겼다. 할리우드 첫 진출작이자 1940년 아카데미 작품상 수상작인 ‘레베카’를 시작으로 ‘다이얼 M을 돌려라’(1954) ‘북북서로 진로를 돌려라’(1959) ‘사이코’(1960) ‘새’(1963) 등의 서스펜스 스릴러 영화로 그의 이름을 20세기 영화사에 굵게 새겼다.

그의 영화는 몇 가지 점만 유념하면 단박에 그의 영화임을 알 수 있는 그만의 독특한 스타일을 갖고 있다. 그와 동격으로 취급되는 서스펜스 스릴러라는 전제 아래 카메오나 맥거핀(MacGuffin), 그리고 등장인물이나 사물의 전후좌우 혹은 바로 위에서 다양한 움직임을 잡아내는 특유의 촬영기법이 느껴진다면 히치콕의 작품임을 연상해도 무방하다. 미남배우와 금발의 여배우가 주연을 맡고 흑인까지 등장하지 않는다면 그야말로 100% 히치콕 작(作)이다.

히치콕은 150kg의 거구이면서도 자신의 영화에 카메오로 출연하는 것을 즐겼고, 관객들이 줄거리를 좇다 헛다리를 짚도록 속임수를 쓰는 맥거핀 기법을 보편화시켰다. 배우에 대한 거침없는 독설로도 유명해 “배우는 가축”이라는 극언까지 서슴지 않았다. 특히 영화에서 금발미녀들을 영상 학대하고 쾌감을 즐겨 새디스트로 불릴 정도였다. 그는 유독 금발 백인 여배우에 집착했지만 정작 그의 영화 속 여주인공들은 아는게 별로 없는 여자로 등장하고 영화에서는 죽을 고생을 하는 역을 맡는다. 그래도 히치콕 영화에 대한 논문의 제목을 모아놓은 책이 발간될 정도로 영화에 대한 그의 영향력은 21세기까지 이어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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