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속 오늘

서태지 1집 ‘난 알아요’ 발표

반독재 민주화운동의 사회분위기에 눌려 제대로 꽃피우지 못한 80년대 대중문화가 90년대를 맞아 활짝 만개하려한 그 길목에 서태지가 있었다. 1992년 3월 23일 ‘서태지와 아이들’의 첫 음반 ‘난 알아요’가 발매되고 3월 29일 그들의 춤과 노래가 KBS 2TV ‘젊음의 행진’에 소개되면서 ‘서태지…’는 일약 신세대 대중문화의 아이콘으로 부상했다. 빠른 음악, 격렬하면서도 유연한 춤동작, 알아들을 수 없는 가사에 젊은이들은 환호하며 열광했고, 노래는 모든 방송프로그램의 정상을 휩쓸었다. 음반은 발매 3개월도 안돼 100만 장이나 팔려나갔다. 무대의상까지 ‘서태지 패션’으로 유행돼 ‘서태지…’는 곧 스타산업의 선두주자로 떠올랐다.

3년 전 17세 고교생 신분으로 그룹 ‘시나위’에서 베이스를 맡아 가요계 생활을 시작한 서태지는 자신의 데모음반을 들고 음반사들을 쫓아다녔으나 가는 곳마다 ‘충격적’이라는 말만 할 뿐 번번히 퇴짜를 맞았다. 그러나 서태지는 고교를 그만두고 당대 최고 춤꾼 이주노와 양현석을 합류시켜 그룹 ‘서태지와 아이들’을 결성, 곧 이 땅에 몰아칠 ‘서태지…’ 태풍을 준비했다.

‘서태지…’는 과거의 또래 집단보다 많은 용돈과 소비성향을 가졌으나 탈출구를 찾지 못하던 거대한 10대를 블랙홀처럼 빨아들여 단숨에 문화시장의 최대 소비자로 등장시켰다. 서태지는 마케팅과 스타시스템의 생리를 일찌감치 간파하고 표절시비, 결혼설, 공연윤리위와의 충돌, 악마주의 논란 등 돌발적으로 일어난 이슈들까지 적절하게 이용할 줄 아는 영악한 아이돌이었다. 1집부터 4집까지 시류에 맞춰 민첩하게 변신하면서도 음악의 진보를 위한 시도를 멈추지 않은 덕에 서태지의 음반은 모두 350만 장이나 팔려나갔다.

서태지 등장 이후 방송은 댄스없이 오직 음악만을 들려주고 싶어하는 전통적 가수들을 TV에서 깨끗이 퇴출시키고 TV 바깥의 음악현장을 폐허로 만들었다. 분명 서태지는 90년대 스타산업의 물꼬를 튼 주인공이었으나 곧 ‘아류 서태지들’이 무수히 복제되면서 그 역시 스타산업가 희생자가 됐다. 1997년 삼성경제연구소는 ‘한국의 역대 최고히트상품’을 발표하며 ‘서태지…’의 음반을 당당히 1위에 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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