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속 오늘

정인숙 여인 의문의 피살

눈발이 날리던 1970년 3월 17일 밤 11시경, 서울 강변대로에 서있는 코로나 승용차에서 목과 가슴에 2발의 총알을 맞고 쓰러져있는 26세 여인이 숨진 채 발견됐다. 단순한 치정살인으로 여겨졌던 이 사건이 갑자기 세인의 관심을 끌게 된 것은 그녀가 고급요정 선운각의 얼굴마담인데다 수첩에 정·재계 거물 26명의 이름이 적혀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였다. 게다가 여권발행이 힘들던 시절에 불법발급된 복수여권을 가지고 있었고 미화 20달러 지폐 100여 장까지 소지하고 있었다.

여인은 빼어난 몸매와 세련된 매너 그리고 뛰어난 화술로 서울 특급요정에서 한창 주가가 높았던 얼굴마담 정인숙이었다. 그녀에게는 세살배기 아들이 있었다. 검찰은 정여인의 오빠가 여동생의 문란한 사생활에 분노해 살해했다고 발표했지만, 사람들은 발표를 곧이 곧대로 믿으려 하지 않았다. 오히려 어린 아들의 아버지가 정일권 국무총리라는 소문이 무성했다. 범행에 사용된 권총이 발견되지 않았고 현장도 2시간 만에 돌연 치워버린 뒤 현장검증도 하지 않았으며 더구나 간첩수사를 담당하는 공안검사가 이 사건을 지휘한 점 등 의문점이 한 두가지가 아니었다.

그러자 중앙정보부가 보도통제를 시작했다. 27일 이후부터는 신문지면에서 정여인의 이름이 사라졌다. 또한 김지하가 재벌·국회의원 등 고위층의 부정과 부패를 신랄하게 풍자한 시 ‘오적(五賊)’을 발표하면서 “사회정화다. 정인숙을 철두철미 본밧아랏?”는 내용을 게재하자 김지하를 구속하고 사상계를 폐간하는 등 민감한 반응을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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