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속 오늘

중국·소련, 오소리강(우수리강) 진보도에서 대규모 군사충돌

1956년 흐루쇼프가 스탈린을 비판하자 마오쩌둥은 ‘소련 수정주의’라며 모스크바와 거리를 두기 시작했다. 1958년 소련이 중국 내에 장파(長波)무선국 건설과 연합 잠수함대 창설을 제안했으나 중국이 주권을 위협하는 것이라며 반대하고 나서면서 양국 간 갈등이 더욱 증폭됐다. 1960년 7월부터 중국에 파견된 소련 기술자 전원이 철수하고 중·소 정부 사이에 체결된 각종 협정이 파기되면서 양국관계는 더 이상 회복할 수 없는 단계로 치달았다. 양국은 국경지대에 100만 명의 병사들을 배치해 만일의 사태에 대비했다.

잠잠하던 국경분쟁이 고개를 든 것은 흐루쇼프가 실각하고 브레즈네프가 득세한 1964년이었다. 그해 10월부터 1969년 3월까지 총 4189건이나 국경분쟁이 발생했다. 분쟁이 정점을 이룬 것은 1969년 3월 2일이었다. 그날 새벽, 양국의 국경을 이루는 오소리강(소련명 우수리강)의 진보도(소련명 다만스키섬)에서 중소 양군이 무력충돌한 것이다. 본격적인 군사충돌은 처음이었다.

진보도는 면적이 0.74㎢ 밖에 안되는 작은 섬이지만 소련과 중국 모두에 전략적 가치가 높은 요충지였다. 이날 소련의 타스통신은 중국군 300명이, 중국의 베이징 방송은 장갑차로 무장한 소련 국경경비대가 침입했다고 서로 다른 주장을 펴며 비난전을 펼쳤다. 첫날 전투는 다수의 사상자만 내고 막을 내렸으나 3월 15일 또 다른 대규모 전투가 벌어졌다. 9시간에 걸친 대접전 끝에 중국은 1000명 전사에 2000명이 부상하는 큰 피해를 입었다. 소련 프라우다는 소련군 240명이 사망했다고 발표했다. 국경문제는 고르바초프가 등장하고나서야 해결됐다. 현재 진보도는 중국령에 속해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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