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속 오늘

전 세계 죽음으로 몰아넣은 ‘스페인 독감’ 미국에서 첫 발병

1918년 봄, 돌연 ‘저승사자’가 나타나 전 세계를 죽음으로 몰아넣고는 이듬해 홀연히 사라졌다. 1년 간의 사망자만 놓고 볼 때 1347년의 흑사병보다 더 희생이 컸다는 ‘스페인 독감’이었다. ‘스페인 독감’으로 명명된 것은 그 해 5~6월 스페인에서 집중적으로 발병했기 때문이지만 첫 발병지역도 아니고 사망자를 가장 많이 내지도 않은 스페인으로서는 그저 억울할 뿐이다. 저승사자가 남겨놓은 건 시체더미와 공포 그리고 살아남은 이의 슬픔이었다.

비극은 세 차례로 나뉘어 몰려왔다. 첫 파고는 1918년 3월 11일 미국 캔자스주의 미군 부대에서 시작되었다. 한 취사병이 고통을 호소하는가 싶더니 정오 무렵 비슷한 증세를 보이는 환자가 107명으로 늘어났다. 이틀 후까지 환자는 522명으로 불어났고 이 가운데 48명이 숨졌다. 이후 독감은 미 전역으로 퍼져나가 1주일 뒤 조지아주의 군부대에서는 2만 8500여 명의 군인 가운데 2900여 명이 독감 증세를 보인 것으로 보고되었다. 4월 하순에는 필라델피아 시민 1000명 중 158명이, 볼티모어 시민 1000명 중 148명이 같은 증세를 보였다.

그 무렵 독감은 이미 대서양을 건너 1차대전이 막바지로 치닫고 있는 유럽의 서부전선까지 휩쓸고 있었다. 5월에는 영국, 스칸디나비아, 폴란드까지 덮쳤고 5월말부터는 인도를 초토화시켜 당시 인구의 5%나 되는 1700만 명을 쓰러뜨렸다. 독감은 전선이든 후방이든 가리지 않았고 소문보다 더 빠르게 퍼져나갔다. 6월에는 푸에르토리코, 브라질, 오스트레일리아, 뉴질랜드가 사정권에 들어갔고, 극지방이라고 예외가 아니었다. 스페인 독감은 두가지 점에서 과거와 달랐다. 사망률이 높았고 주로 젊은 남성들이 표적이 되었다.

1918년 8월 말, 첫 번째 파고보다 더 큰 두 번째 파고가 몰아쳤다. 8월 22일부터 27일 사이에 서로 다른 세 곳에서 동시다발적으로 발병·유행했다. 프랑스의 브레스토, 아프리카 시에라리온의 프리타운, 미국의 보스턴이 발병지역이었다. 세 지역은 주로 먼 지역에서 온 사람들로 늘 북적거리는 곳이었다. 브레스토는 유럽 전선에 투입된 79만 명의 미군이 도착한 항구였고, 프리타운은 유럽에서 석탄을 실은 증기선이 기항하는 석탄보급지였다. 보스턴은 전쟁물자를 취급하는 회사들로 넘쳐나는 곳이었다. 프리타운에서만 1000명 이상이 죽고, 브레스토에서는 8월 22일부터 9월 15일까지 1350명의 군인이 입원해 370명이 숨졌다. 보스턴은 1개월간 시 전체 인구의 10%가 감염되어 이 중 60~70%가 사망했다.

1918년 9월부터는 뉴욕과 필라델피아를 거친 독감이 철로를 따라 미 전역으로 퍼져나가면서 미 인구의 28%가 감염되었고 67만 여명이 목숨을 잃었다. 1차대전으로 죽은 미군 전사자의 10배가 넘는 숫자였다. 이 때문에 미국인의 평균수명이 10년이나 낮아졌다는 기록도 있다. 교회와 극장은 폐쇄되고 야외에서 야구경기를 치를 때는 마스크를 착용했다.

독감은 1919년 1월에 세 번째 파고를 일으켜 또 많은 사람의 목숨을 앗아갔으나 이번에는 마지막 발악이었다. 이때 이후 슬그머니 자취를 감췄기 때문이다. 3차례의 독감 파고로 세계 인구의 20%가 감염되어 2000만 명에서 4000만 명이 죽은 것으로 알려졌다. 영국에서 20만 명, 일본에서 67만 명이 죽어나갔다. 우리나라도 예외가 아니어서 10만 명이 목숨을 잃었다. 최근의 연구조사에 따르면 조류에서 인체로 감염된 바이러스가 곧 인간전염 바이러스로 변이, 광범위하게 확산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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